"자기 가치의 현현"(그림; gurudev.artofliving.org)
“고집과 무시의 계절을 넘어서, 존중과 연민의 계절로 기꺼이 나아가라.
보석같이 귀하고 값진 당신의 손길을 세상에 뿌려라.
당신 마음을 뿌려라!”
우리 인간은 평생 무수히 많은 감정들을 반복적으로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존경, 연민, 존중, 경외, 고집, 무시, 행복, 만족, 화(분노), 스트레스, 후회, 고독(외로움), 정의감 등이 바로 그 대표적인 감정(혹은 마음)일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여러 복잡한 감정들을 한가득 지니고서, 때로는 환호하며, 때로는 이러한 감정들에 의해 매우 시달리고, 무척 괴로워하기도 한다.
우리의 생(生)은 그렇게 그렇게 감정의 오르내림으로 유유히 흘러가고 있는 것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겠다.
보통 ‘존경’이라는 마음은 상대가 자기보다 매우 훌륭할 경우, 자신이 평소 바라고 있던 모습을 상대방은 이미 제대로 갖추고 있는 경우 혹은 상대가 사회적 보편 가치를 아주 수준 높게 지니고 있는 경우에 많이 생겨날 수 있다.
자존심이 너무 강하여 상대의 인격이나 장점을 절대 잘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경우를 제외한다면, 대부분 이러한 대단한 대상에게 자연스럽게 자신의 존경심이 발동하게 되어있다.
반면에, ‘연민’이라는 감정은 특정한 부분에서 자신보다 상대방이 어느 정도 부족할 경우, 굳이 비교하지 않아도 객관적으로 상대방이 많이 애석한 부분이 있는 경우 혹은 내가 충분히 그러한 딱한 상태를 공감하거나 이해할 수 있어 측은한 마음이 저절로 들 경우에 많이 생겨날 수 있다.
그래서, 이러한 연민의 감정은 당신의 측은지심을 발동시켜 불쌍한 상대에게 무엇인가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게 하거나, 당신 마음속의 공감을 크게 불러일으켜 그 연민의 대상과 깊숙한 소통을 하고 싶은 그러한 감정 또한 생겨나게 할 수 있다.
만약, 누가 보아도 매우 부족하거나 불쌍한 사람을 연민의 감정으로 바라볼 수 없다면, 내 감정이 매우 메말라 있거나, 공감 능력이 너무 떨어져 있다는 반증이 될 수도 있겠다.
또한, ‘존중’이라는 마음은 상대방이 나보다 잘났거나 못났거나 간에, 이러한 객관적인 비교와는 무관하게 생겨날 수 있고, 외부로 쉽게 표명할 수도 있다.
이 감정은, 어떻게 보면, 인간의 존재 그 자체를 매우 귀하게 생각하여 제대로 대접하려고 하는 그러한 감정이기에, 보통의 인간에게 가장 기초가 되고, 기본이 되어야 할 그러한 덕목이기도 하다.
또한, 이 감정은 대부분의 사회적 관계에서 워낙 그 중요성이 크고, 무언의 파워가 아주 대단하기에, 누구나 이 감정만 잘 지니고 있어도, 웬만해서는 자기 평정심이 절대 흐트러지지 않게 할 수 있고, 대부분의 인간관계에서 그 어떤 트러블도 없이 잘 관리해 줄 수도 있으며, 자신의 세상을 더욱 풍요롭게 해 줄 수도 있는 아주 대단한 힘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경외’의 감정은 상대의 행동이나 처신이 너무나도 대단하여, 내가 감히 쫓아갈 엄두를 내지 못할 때 혹은 그러한 대단함과 보이지 않는 위력에 너무나도 압도되어, 내 마음이 두렵기까지 할 때 많이 생겨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경외라는 감정은 존경심과는 제법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 아무리 자기가 자존심이 강하여도, 이러한 감정을 발동하게 만드는 이를 만나게 된다면, 그 느낌을 결코 거부하기는 힘든 그러한 특성을 지닌다는 것이다.
마치 절대신에 대한 경외심의 발동처럼 말이다.
그래서, 경외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인물에게는 웬만해서는 자신의 자존심을 내세울 수가 없고, 그냥 자연스럽게 그러한 감정을 받아들이게 되어있다.
그러니, 언제나 흔쾌히 그러한 감정을 인정하고, 또 쉽게 표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고집’이라는 마음은 내가 성격이 좀 특별하거나, 메타인지 능력이 매우 부족할 경우에 많이 발생한다.
이러한 마음의 원인으로는, 먼저 자신에게 무슨 성격적 결함이 있거나 성격이 매우 독특해서 그러할 수 있다.
또 다르게는, 자기 스스로는 자신이 고집스럽다고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자기 주변에 있는 대부분 사람들이 그렇게 평가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여기서, 후자의 경우에는 당연히 더욱 문제가 심각할 수 있다.
자신은 도저히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심지어는 주변의 시선에 대해 자기 스스로는 매우 억울하게 생각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기 주변에서는 당신에 대해 매우 부담을 가지거나, 당신이 매우 고집스럽다며 투털대기까지 할 수도 있을 것이니 말이다.
또, 이러한 고집이라는 감정은, 그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에게나 아주 흔하게 생겨날 수 있는 감정일 것이며, 욕심이나 결벽증 또한 큰 범주에서는 이러한 고집의 감정에 포함될 수 있다는 점이 그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일 것이다.
욕심이나 결벽증 때문에 고집스런 마음이 생겨날 수도 있고, 반대로 이러한 고집스런 마음 혹은 결벽증이 다시 욕심을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이니 말이다.
또한, 이러한 고집의 감정은, 자기 자신이나 자기 주변을 잘 관찰해 보면, 비교적 용이하게 발견할 수 있고, 따라서 자신이 고집스럽다는 점을 쉽게 인정을 할 수도 있는 반면, 이를 스스로 고치기란 참으로 어렵다는 특징도 지니고 있다.
‘무시’라는 감정은 자기가 매우 오만하거나 거만할 경우 혹은 사교적인 측면에서 문제가 좀 많은 성격을 소유한 경우에 보다 많이 생겨날 수 있다.
이러한 감정에 사로잡힌 사람은 스스로 잘난 척을 잘하며, 상대를 쉽게 깔보기도 하고, 매사 자기 착각과 경솔함이 많은 편이며, 특히 자신의 가오(폼)나 과시를 무척 좋아하고 다툼이 많은 편이기도 하다.
또, 이러한 마음이 심해지면, 상대에게 안하무인 격으로 대하기도 하며, 심지어는 불법적인 행태까지 마구 보여주기도 한다.
때로, 이러한 무시를 당하게 되는 사람의 경우에는, 사람이란 참으로 작은 감정에도 민감해질 수 있는 존재이다 보니, “○○에게 무시당했다!”며 무척 분해하거나 억울해하기도 하고, 칼부림까지 일으키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런데, 이 감정은 ‘고집’이라는 감정만큼 아주 흔한 감정은 아니더라도, 누구나 각박한 세파에 파묻여 살다 보면, 언제라도 생겨날 수 있는 감정이기도 하다.
또한, 이 감정은 자신이 아주 잘 나갈 때, 매우 우쭐해 있을 때, 아무것도 무서울 것이 없을 정도로 모든 일이 잘 풀려나갈 때 더욱 잘 발생하게 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자기가 생(生)의 전성기를 맞이했을 때 혹은 이와 유사하게 무엇인가 아주 크게 이루었을 때일수록, 더욱더 조심을 잘해 나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무시라는 감정은 고집의 감정과는 달리, 자기 스스로도 쉽게 알아채기가 매우 어려울 수 있다는 특성도 지니고 있다.
즉, 자기 스스로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였는데도, 가까운 지인이나 친구 등의 태도가 전과 다르게 어쩐지 매우 냉랭하여, 스스로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그동안 상대를 이래저래 무시한 자신의 태도를 반추해 봄으로써 비로소 발견하게 되는 등으로 확인할 수 있는 그러한 유형의 감정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니, 평시에도 자신의 태도를 자주 성찰하여 혹여 상대에게 오해를 받을만한 일이 없었는지를 늘 잘 살펴 나가는 사려 깊은 태도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 감정은 고집의 감정보다 더욱, 아주 은밀하게 사회적 관계를 점차 악화시킬 수 있어서, 사회적으로는 그 폐악이 상당히 크다고 하겠다.
그다음의 감정은, ‘행복’과 ‘만족’이다.
이는 우리 인간이 궁극적으로 가장 바라는 바일 것이며, 평생을 추구하여도 그 정점을 찾기 어려울 것이고, 설령 어쩌다 그 정점에 어느 정도 가까워졌다고 하더라도, 그 상태를 계속 유지하기가 너무 힘들어, 바로 다시 아래로 곤두박질치기가 일쑤이다.
여기서 매우 중요한 점이, 자신의 행복과 만족을 위해서 너무 무리를 하거나, 욕심을 내면 결코 안 된다는 점이다.
행복이나 만족은 무리를 하거나, 욕심을 내어서 얻어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결코 아니며, 오히려 자신의 욕심을 잘 자제하고서, 아주 작은 것에서도 이러한 감정을 발현할 수 있어야 비로소 얻어질 수 있는 그러한 청개구리 같은 감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즉, 행복과 만족을 느낄 수 있는 자기 심리적 기준선을 제대로 낮추는 것이야말로, 이러한 감정에 쉽게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지혜로운 길일 것이다.
그다음, ‘심리적 통증’의 감정이라는 것이 있다.
이 부류에는, 화(분노), 스트레스, 후회, 고독(외로움) 등이 포함될 수 있을 것이며, 자기 정신적 생활의 균형감을 크게 잃어버렸을 때 혹은 편견 된 마음을 오래 지니고 있을 때 많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야말로, 여러 부적절하고 부적합한 심리적 상태를 그대로 방치하여 생긴 복합적 통증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인간은 누구나 평생 이러한 자기 심리적 통증에 무척 시달리게 되어 있으며, 그 누구라도 이러한 감정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음은 아주 당연하다.
모쪼록, 이러한 심리적 통증에 대해서는, 그러한 여러 통증들을 결코 거부하려는 마음을 갖지 말고서, 그냥 통증 그 자체로서 잘 받아들이고, 오직 자기 치유력과 회복력을 굳게 믿으며, 꿋꿋하고 태연 작약하게 대처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다.
‘정의감’은 또 어떠한가?
인간은 누구나 아주 공정하고 공평하게, 그리고 아주 정당하게 대우받기를 원하며, 절대 조금이라도 차별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물론 자기 자신도 그렇게 대접받기를 원하겠지만, 자기와 이해관계가 전혀 없는 타인에 대해서도 당연히 그렇게 되기를 바랄 것이다.
그래서, 만약 자신과 특별한 관계가 없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어느 누구에게 불평등하고, 불공정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게 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면, 자기 정의감이 불타올라 이를 바로잡고 싶은 감정이 불쑥불쑥 솟아나게 될 수 있다.
이러한 심정이 바로 정의감의 핵심 요체의 발로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니, 정의감이라는 것은 어쩌면, 공정, 공평, 정당성 등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가치가 될 수 있을 것이며, 선(善)과 더불어 진리에 가장 가까이 맞닿아 있다고도 볼 수 있겠다.
지금까지 이렇게 여러 정신적이고 심리적 감정(마음)들을 두루 살펴보았는데, 우리는 이러한 여러 감정들을 어떠한 눈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이며, 어떠한 자세를 취하는 것이 당신에게 가장 맞을 것인가?
어떻게 하는 것이, 자기 생에서 가장 이상적인 자세일 것인가?
바로, 자신의 고집과 무시의 마음을 잘 떨쳐내고, 오로지 세상을 존중과 연민의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된다.
위에서 알아보았듯이, 존경, 경외, 행복감, 정신적 통증(분노, 후회, 스트레스 등), 정의감 등의 마음에 대해서는, 항상 자신에게 좀 더 솔직해지고, 좀 더 있는 그대로를 잘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그러한 감정에 대한 처리를 어느 정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스스로 가장 처리하기 어려운 문제는 바로 고집과 무시의 감정일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자기 스스로의 고집과 누구를 무시하려는 감정의 추운 계절을 잘 떨쳐내고, 보다 존중과 연민의 따뜻한 계절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그래서 결국 자기 생(生)을 잘 완성해 나가기 위해서는, 과연 어떻게 하여야 하겠는가?
첫째는, 자신의 ‘메타인지 능력’을 키우는 일이다.
메타인지 능력이라는 것은 자신의 생각이나 지식 등에 대해 스스로가 느낀 그대로를 받아들이지 않고, 다시 한번 검열을 하는 방식 혹은 스스로 자기 검증 과정을 거치는 내면적 능력을 말하는 것이므로, 만약 이러한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라면, 자신의 행동에 대한 인지나 평가 측면에서 자기 자신과 타인의 그것이 사뭇 다르게 나올 수밖에 없다.
원인이야 어떻든 간에, 자신에게 이러한 메타인지에 대한 능력이 부족하다면, 많은 부분에서 자기 착각을 초래할 것이고, 그럼으로 인하여 자기 고집이나 남을 쉽게 무시하려는 마음이 심각하게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자신에게 이러한 메타인지 부족 문제의 조짐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스스로 그러한 자기 성격적 문제점 혹은 판단 능력의 문제점을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잘 끄집어내고, 심정적으로 기꺼이 인정도 잘하고, 그러한 메타인지 능력의 향상을 위한 지속적인 훈련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하겠다.
또, 그러한 문제가 과연 어디로부터 왔으며, 현재 자신에게 어떤 현상과 문제를 낳고 있으며, 또 앞으로도 어떠한 문제를 더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도 잘 살필 수 있어야 한다.
이 경우, 절대 자기 내면 속에 그냥 매몰되어 있어서는 아주 곤란하다.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자기 내면세계를 아주 객관적으로 통찰할 수 있어야 하며, 모든 사안을 ‘아전인수’ 격으로 보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점이 아주 중요할 것이고, 특히나 스스로 아주 합리적이고 균형 잡힌 마음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하겠다.
또한, 자기 마음에 대한 통찰과 동시에 상대방의 마음 또한 가급적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잘 헤아릴 수 있다면 더욱 좋겠다.
둘째는, 매일의 성찰과 경계의 마음이다.
크든 작든, 고집과 무시라는 자신의 아주 큰 단점을 열심히 극복하고자 한다면, 분명히 방법이 있을 것이다.
만약, 이 감정을 그토록 벗어나려고 작정하고, 또 노력을 많이 기울인다면, 왜 그런 어두운 터널을 벗어날 수 없겠는가?
당연히 그럴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마음의 지속성에 달려있을 공산이 크다.
즉, 당신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아주 고집스런 마음도, 남을 쉽사리 무시하려는 태도도 한동안 잘 개선하였다고 하더라도, 결코 안심할 수가 없다.
당신이 조금만 한 눈을 팔게 되면, 어느덧 자기 마음의 균형추가 매우 기울어져 있거나, 아예 무너져 있을 수도 있으니, 이러한 지속성의 문제는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그러니, 항상 매일 아침 자신을 성찰하여 영점을 다시 잘 맞추어 주어야 할 것이다.
항상 초심을 잃지 않고서, 자신의 어느덧 흐트러지는 마음을 잘 리셋하고서, 오직 초지일관으로 그러한 경계의 마음을 지속해 지닐 수 있어야만, 비로소 해결될 가능성이 있다.
조선 영남학파의 거두 남명 조식(曺植) 선생은 자기 마음의 흐트러짐을 잘 경계하기 위해서, ‘성성자(惺惺子)’와 ‘경의검(敬義劍)’을 지니고 다녔다고 한다.
늘 성성자라고 부르는 방울을 옷고름에 차고 다녔는데, 자세가 흐트러질 때마다 방울 소리가 나게 하여 스스로 자세를 바로잡고서 정신을 바짝 차렸다고 한다.
또, 그는 경의검이라는 칼을 늘 차고 다녔는데, 이는 사악한 것과 불의(不義)를 물리치고, 의(義)를 실천하겠다는 그의 강한 의지였던 것으로 평가된다.
셋째, 자기 가치의 현현이다.
위에서 우리는, 자신의 고집과 무시의 마음을 잘 떨쳐내고, 오로지 세상을 존중과 연민의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이 좋겠다고 했지만, 이러한 마음만으로는 다소 부족할 수 있다.
이러한 존중과 연민의 마음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지닐 수 있는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할 덕목임에는 분명하나, 자기 생에서 무엇인가 의미 있는 결과를 잘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여기에 ‘자기 가치의 현현(자신만의 가치에 대한 진실한 추구 및 실천)’을 잘 추가하여야 하겠다.
그래야 비로소, 스스로 무엇인가 자기 생의 완성을 향해가는 느낌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자기 가치의 현현은 이 세상에서 당신만의 유일하고 귀한 색깔에 대한 추구이자 당신 존재의 의미와 완성을 향한 그러한 길이기도 할 것이니 말이다.
그러니, 당신은 오직 존중과 연민을 바탕으로, 오롯이 자기 가치에 대한 진실한 실천의 길로 힘차게 한번 나아가 보아라.
이러한 진실된 길은 결국 세상을 매우 정의롭고도 따뜻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설령, 당신의 힘이 미약하다고 하더라도 별 문제될 것이 없다.
이 길은 세상을 아주 따뜻하고 행복하게 만들어 나가는 데 있어서, 스스로 무언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는 그러한 아주 겸손하고도 낮은 마음으로부터 시작하면 된다.
오로지, 세상 모든 존귀한 존재들에 대한 지극한 존중의 마음으로, 때로 상처받은 자들이나 슬픈 자들에 대한 매우 자연스러운 연민의 마음으로 출발하여, 차츰 자기 가치의 현현에 집중을 잘해 나가다 보면, 이 길은 당신 자신의 아주 큰 의미가 되어줄 것이고, 모든 이들에게 당신의 사랑과 축복을 전해주는 길이 되어주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런 무리나 욕심도 필요 없다.
당신의 작지만 지속적인 실천만 있으면 된다.
당신 스스로가 정말로 인정하는 그러한 가치를 향한 꾸준한 실천만 있으면 된다.
그러니,
당신이 생각하는 당신만의 가치를 이 땅에 잘 한번 뿌려 보라라.
그 가치가 무엇이라도 좋다.
당신이 진심으로 정한 것이면 된다.
그러한 가치가 사회의 보편적 가치와도 잘 맞닿아 있게 하여라.
세상 진리와도 맞닿아 있게 하여라.
그러한 당신 진심의 마음을 세상에 뿌려라.
매우 가치로운 당신의 진심을 세상에 뿌려라.
그 가치가 매우 아름답고 정의로워 세상을 축복케 하여라.
그리하여, 마지막 날까지 늘 푸근하고 흐뭇한 감정이 당신을 과연 떠나지 않게 하여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