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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정수 Dec 14. 2024

고단함을 벗어나려면

(그림;.progettodesignebuild.com)

   

   “스스로 고단함을 불러들이지 말아라.

스스로를 고달프게, 마치 학대하듯 하지 말아라.

스스로를 고달픔의 구렁으로 몰아넣지 말아라.

생의 고단함을 벗어나, 한껏 편하고 자유롭게, 진정 가치로움으로 나아가라!”     



 작금의 우리 사회는 매우 고단함을 많이 유발하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마치 자발적으로 고달픔을 끌어들이는 사회인 듯하다.

 모바일 문화의 발달이 이를 더욱 부추기기도 한다.

 무분별한 자기 과시와 자기 노출로 인하여, 상대에게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가 많다.

 또, 이러한 행동이 소중한 자기 정보의 누출로 이어져, 딥페이크, 스팸, 스미싱, 보이스피싱 등 온갖 사기성 피해를 스스로에게 안겨주기도 한다.

 또, 매우 사려 깊지 못한 혹은 악의적 모바일 댓글, 문자 등을 통해서 상대에게 심한 상처를 주기도 한다.

 이렇게 한껏 가벼워지고 매우 가해적인 문화는 가면 갈수록 더욱 심화되니, 우리 주위에는 온갖 가짜 뉴스, 경박하고 예의 없는 모습 등이 판을 치고 있다.

 온갖 무분별한 돈벌이, 클릭수 올리기, 사기 행각, 기타 이기주의적 행태들이 매체를 통해 마구 쏟아지고 있기도 하다.

 또한, 심한 자기 자랑이나 허위 경력, 무단 표절 등을 일삼아, 주변인들에게 아주 심각한 자기 박탈감 혹은 유무형의 피해를 유발하기도 한다.     


 자기와 반대편의 이야기는 아예 들으려 하지도 않는 아주 고집스러운 모습들도 너무나 많다.

 자기와 뜻이 조금만 달라도, 무조건 공격을 일삼거나, 마구 모멸감을 주려는 행위도 서슴지 않는다.

 또, 사회적으로 온통 극우와 극좌 세력이 대립하여, 자신과 반대편의 세력에 대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지지 않고 해롭게 하려 든다.

 특히, 자기 생각을 적극적으로 옹호해 주지 않는 경우라면, 아무런 죄가 없는 중간 지대의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마치 적군으로 취급하여 마구 오해를 해버리기도 하고, 아예 악마화의 딱지를 붙여버리기도 일쑤이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를 마구 편 가르려 하거나, 이유 없이 세대 간의 갈등을 부추기는 매우 일그러진 모습들도 너무나 많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상적으로 자기 생각의 균형, 사상의 균형을 잘 잡은 시민들은 어디에 설 자리가 없다.

 그야말로, 참으로 모순된 세상이 아닐 수 없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고, 기가 막힐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온갖 가짜 뉴스의 홍수 속에, 과연 누가 정상이고 누가 비정상인지를 거의 구분할 수 없는 세상이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고단함을 벗어나 ~”(그림;.progettodesignebuild.com/scienza)


                

 이런 식으로 유발된 사회적 마찰, 피곤, 상실감, 박탈감 등으로 인해, 아주 많은 사람들이 자기 가슴속에 불필요하게도 심한 스트레스 혹은 깊은 상처를 한가득 지니고 살아가게 된다.

 때로, 서로가 서로를 원망하고, 자기 스스로를 원망하기도 하여, 아주 우울해지기도 한다.

 그야말로, 스스로를, 사회 전체를 상실의 계절, 우울의 계절로 마구 몰아넣는 격이 된다. 

 이러한 사회적 스트레스나 상처는 사실상 대부분의 경우에, 사회 구성원 개개인 스스로가 자처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 이 모두가 굳이 안 해도 될 말을 하고,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하고, 너무나 경박하고 즉흥적인 행동을 마구 행하며, 삼가야 할 지나친 욕심이나 이기심을 너무나 많이 남발한 탓 등으로 생겨난 것이니 말이다.    

 

 과연, 스스로 조금만 더 삼갈 수 있다면, 조금만 더 조심하고 조신할 수 있다면, 조금만 더 사려 깊게 생각할 수 있다면, 조금만 더 스스로의 처신을 잘 살필 수 있다면, 조금만 더 먼저 사과를 건넬 수 있다면, 과연 아주 많은 사회적 스트레스, 아픈 상처들을 미리 막아낼 수 있을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야, 불필요하게 고단함을 불러들이지 않았을 수 있고, 그 지긋지긋한 심리적 피곤함과 번아웃 같은 것들을 겪지 않을 수 있고, 모두가 아주 편안하게 살 수 있겠는데 말이다. 

 그러나, 그야말로 아무런 성찰도 없는 듯, 매우 즉흥적이고 자극적인 언행들이 마구 쏟아져 나온다.

 사회적으로 온갖 스트레스와 상처, 심리적 흉터만을 계속 축적해 가는 아주 일그러진 세상이 되어버렸다.

 이렇게 매우 일그러진 세상을 스스로들 만들어 내고도, 아무런 느낌이 없는 듯, 아무런 생각도 없는 듯, 매우 무감각한 사회가 되어버렸다.

 자신의 고단함이 과연 어디로부터 온 것인지에 대한 가늠조차 못하고 있기도 하다.

 이 모든 것은 스스로 자초한 것임을 절대 인정하지도, 느끼지도 못하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러한 고단함의 굴레에서 어떻게 하면, 잘 빠져나올 수 있을까?

 과연 어떻게 하여야, 아주 지혜롭게 이러한 구렁으로부터 스스로를 잘 보호해 낼 수 있겠는가?

 우리 일상의 팁 몇 가지를 한번 살펴보자.   

  

 첫째, 나이와 직위를 묻지 마라.     


 우리가 일상에서, 아주 특별한 사무적 행위의 경우를 제외한다면, 나이와 직위를 그렇게 궁금해하여야 할 이유가 거의 없다. 

 그러니, 웬만해서는 상대의 나이와 직위를 구태여 먼저 물어보지 말아라.

 꼭 알아야 한다면, 대부분의 경우, 아주 천천히 알아도 될 것이다.

 그러니, 상대의 나이나 직위 같은 것들을 꼭 물어보아야 할 상황이라면, 나중에 천천히 물어보아라.

 절대 너무 성급하게 물어보려 하지 말아라.

 잘 생각해 보면, 그런 것이 그렇게 급하게 궁금해야 할 이유가 거의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사회적 대인관계에서는, 전래의 유교적 문화 탓도 있겠지만, 누구를 처음 만나게 되면, 대뜸 나이를 궁금해하고, 그 사람의 회사적 직급을 궁금해하고, 그 사람의 사회적 계층(지식층, 재산층, 사회적 소속, 기수 등)에 대한 정보 또한 매우 궁금해하기 쉽다.

 그런데 이러한 태도는 사실, 요즘과 같이 어느 정도 대등하게 개방된 사회에서는, 그렇게 바람직하지 못하게 작용할 수 있다.

 잘 생각해 보면, 사람을 처음 대할 때는 무엇보다, 아주 대등하면서도 존중하는 마음, 예의, 경청, 태도 등이 일차적으로 매우 중요할 것인데, 과연 이런 것이 나이나 직위 같은 것과 무애 관련성이 있겠는가?     


 제발이지, 모든 계급장을 좀 떼고서, 모든 허울을 벗어던지고서, 오직 상대와의 동등한 관계를 기본으로 하여 대해 보아라.

 그 어떤 사람을 만나더라도,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아주 동등한 인격체로서 대하려 하는 것이 좋다.

 당신에게 아무리 높은 계급장이 있다고 하더라도, 여기에 의지하려는 나약한 마음을 지니는 것보다는, 그러한 계급장 없이도 당신이 우뚝 설 수 있다면, 그런 큰 인품과 자신감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면, 이는 세상에서 당신 스스로를 온전히 완성해 가는 가장 지혜로운 길이 되어 줄 것이다.

 과연 이렇게 매우 열린 모습으로, 세상 모두를 대하고, 상대의 인품과 인격도 잘 음미하고, 서로 마음으로 교감을 주고받게 된다면, 세상에 대한 당신의 이해의 폭과 깊이를 한층 더해 나가는 데 있어서도, 아주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기존의 틀에 꽉 박힌 사고를 떨치고, 모두를 똑같은 마음으로 대하여라.

 오히려, 하급자 혹은 사회적으로 부족한 자일수록 더욱 예의 있고 진심으로 대할 수 있다면, 당신은 더욱 훌륭하겠다.

 또, 이렇게 아주 자연스럽고 넓게 구축된 당신의 네트웍은 나이를 초월하고, 직위를 초월하고, 사회의 모든 신분이나 계층까지 초월할 수가 있어서, 세상을 보는 당신의 시야를 더욱 넓고 풍부하게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이 아니겠는가?     

 

 만약, 당신이 직위나 명함, 사회적 계급 등에 너무 의지하려 한다면, 나이를 이유로 무리한 양보를 마구 받아내려 한다면, 이러한 상황은 점차 상대를 매우 피곤하게 만들 수 있고, 당신 스스로마저도 매우 피곤해질 수 있다.

 그런 것들이, 과연 인간관계의 본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한 허상은 금방 물거품과 같이 사라져 버릴 것이기에, 결국 나중에는 사상누각과도 같이 온갖 허무함만이 몰려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제발, 모든 껍데기를 과감히 벗어던지고, 모든 계급장 같은 것들을 떼어내고서, 그냥 자신감 하나로 붙어라.

 세상을 자신감 하나로, 스스로 이겨낼 수 있어라.

 당신이 이런 방식으로 성공할 수 있어야, 가히 제대로 된 롱런의 길에 보다 가까워질 수 있다.

 당신 생에서 진정한 승리를 이루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상대방에 대해 쓸데없는 궁금증을 앞세우기보다는 차라리, 지위고하를 막론하고서, 나이를 막론하고서, 그 사람으로부터 배울 점을 먼저 챙겨 보아라.

 좋든 나쁘든 간에, 그 사람의 인품과 인격도 한번 감상해 보아라.

 당신이 진정 배울 수 있는 부분에 먼저 시선과 마음을 집중해 보아라.

 얻을 수 있는 정보에 먼저 귀 기울여 보아라.

 이런저런 공감도 많이 해 보아라.

 무엇보다, 껍데기는 뒤로 하고, 모든 허울을 뒤로하고, 대하려는 목적에 보다 집중하여 보아라.

 우리가 쓰는 호칭 또한 마찬가지이다.

 너무 서열을 상기시키는 호칭이라든지, 연장자임을 도드라지게 나타내 따위의 호칭은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다.

 가급적 수평적 호칭, 수평적 관계가 좋다.

 서로 부르기가 애매하다면, 상대방의 이름이나 일반 호칭 뒤에 그냥 ‘~선생님’ 혹은 ‘~님’만 잘 붙여주어도 충분할 것이다. 

             

“너무 까칠하게 굴어, 정신적 소모전을 펼치지 말아라!"(그림; mamikos.com/info)



 둘째, 너무 까칠하게 굴지 말아라.    

  

 우리는 팍팍한 현실 속에서,  고된 생활 속에서, 경쟁에 대한 압박 속에서, 여러 이권 앞에서, 서로가 조금이라도 손해보지 않으려고 매우 민감해지기도 하고, 점차 남을 미워하게 되고, 남을 원망하게 되고, 심지어는 남을 저주하고 싶은 마음이 발동하는 등으로 많은 정신적 소모전을 펼치게 되기 쉽다.

 이러한 과정에서 많은 스트레스가 가중되기도 한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사실 이러한 삶의 속박과 경쟁의 굴레는 모든 게 스스로 자초한 것일 수 있다

 그래 놓고도, 이러한 스트레스나 삶의 속박 같은 것들은, 살다 보면 절대 피할 수 없는 영역이라며, 그래서 어쩔 수 없다며, 마구 변명을 늘어놓고 싶어 하는 심리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자신이 스스로 그러한 스트레스를 만들어 내고, 그러한 속박을 채우기도 하고, 그러한 굴레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갔는데도 말이다.

 만약, 스스로 자기 욕심으로부터 좀 더 멀어질 수 있다면, 여러 경쟁이나 이권 등으로부터 좀 더 태연자약할 수만 있다면, 절대 그러한 함정으로 빠져들지 않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자기중심을 잘 잡고서, 세상 부질없는 것에 마음만 뺏기지 않았더라면, 절대 그런 함정으로 빠져들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고, 오히려 자기 마음속에 한없는 평정과 평온함을 유지할 수 있었는데도 말이다.

 이렇게, 생의 모든 문제는 거의 자업자득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자기 마음을 매우 평화롭게 잘 유지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

 그렇게 마음이 평화로운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이유가 반드시 있을 것이다.

 바로, 팍팍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자기 마음을 절대 소모적인 감정에 뺏기지 않고서, 아주 작은 것에도 늘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자기 마음을 지속해 평화롭게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러할 것이다.

 반면에, 자기 마음이 평화롭지 못하고, 매우 불안해하거나, 스트레스 상태에 사로잡혀 있다면, 이는 아주 팍팍한 현실의 속박과 굴레에 그대로 굴복하고, 거기에 마구 빠져들어 탐욕과 욕심의 상태로부터 빠져나오지 못하고서, 허우적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현재 자신의 심리 상태, 행복의 상태, 만족의 상태는 모두 자기 스스로가 불러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모든 것이 자기 생각하기 나름일 터이고, 자기 마음먹기 나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사실, 현재의 자기 모습과 처지는 오로지, 심리적으로 자기 스스로가 자처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볼 수 있다.     


 당신의 영혼도, 당신이 상대하는 그 누구의 영혼마저도 항상 잘 어루만져 주어 보아라.

 상대가 비록 매우 밉더라도, 매우 까칠하게 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그러한 감정을 드러내기 이전에 모든 것을 잘 곱씹어 보아라.

 그 미움의 근원이 상대가 아닌 당신으로부터 비롯되었을 수도 있다.

 그 미움은 당신이 전혀 생각하지 못한, 전혀 예측하기 어려운 또 다른 이유로부터 출발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니, 무엇이든 쉬이 오해하지 말고, 쉬이 화내는 일은 더더욱 피하도록 하여라.


 물론, 그 미움이 정말이지, 무엇인가 상대의 부족함으로부터 비롯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게 상대의 고의가 아니고, 상대도 어찌할 수 없는 사정에 의해 그러했을 수도 있다.

 상대의 원래 의도와는 무관하게, 주변 상황과 정황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게끔 흘러갔을 수도 있는 것이겠다.

 그러니, 모든 상황을 아주 너그럽게 대해 주고, 너무 쉬이 까칠하게 굴지 말아라.

 적어도, 당신의 잘못된 생각이나 편견으로 인하여, 상대를 오해하는 일은 절대로 없게 하여라.

 설령, 나중에 판단해 보니, 상대의 잘못이 거의 백 퍼센트였다고 하면 또 어떠한가?

 당신은, 그 사람의 그릇된 행동에 대해서도, 일단은 당신의 믿음을 그대로 지탱해 주었고, 섣불리 남을 재단하려 하지는 더더욱 않았으니, 그 어떠한 경우에도 마음의 부채가 전혀 없을 것이다.

 오히려, 빚을 진 사람은 상대방일 것이니, 언제나 관계의 선한 주도권은 당신이 거머쥐게 되는 셈이다.     


 자기 스스로가 매우 부족하다고 생각되더라도, 이 경우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게 부족한 자신을 미워하기 이전에, 마구 화를 내기 이전에, 자신을 잘 위로하고, 따뜻하게 감싸 안을 수 있어야 한다.

 스스로 자긍심과 자존감을 잘 회복할 수 있어야 한다.

 차분히, 자신의 지나친 욕심을, 너무 높은 눈높이를, 심리적 미약함을 잘 달래어 보기도 하고, 자기 스스로에 대한 편견과 불찰도 잘 살피고, 스스로에게 응원의 큰 박수도 한번 보내어 보아라.

 만약, 이렇게 하지 못한다면, 적어도, 자신을 자학(自虐)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래서, 앞으로 또 다른 기회가 계속해 많이 열려 있게는 해 두어야 한다.

 잘 기다리면, 언젠가는 자기 기운이 용솟음칠 기회가, 가기 자긍심과 자존감을 회복할 기회가 꼭 찾아올 것이니 말이다.     


 그러니, 대부분의 사회관계 속에서, 제발 상대에 대해 너무 까칠하게 굴지 말아라.

 자기 스스로에게도 절대, 너무 까칠하게 굴지를 말아라.

 타인도, 자신도 절대 미워하지도 말고서, 항상 잘 위로해 주어라. 칭찬이나 덕담도 많이 해 주어라.

 항상 모두를 진심으로 대하고, 최대한 많이 보듬어 주려고도 한번 해 보아라. 

 까칠하면 까칠할수록, 미워하면 미워할수록, 당신의 생이 매우 고단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니, 항상 이해와 격려를 먼저 보내려 하여라.

 현재의 유쾌하지 못한 모습들도 잘 참고 기다려 주어야, 나중에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더라도 항상 마음의 부채가 없고, 생의 주도권을 결코 잃지 않게 될 것이 아니겠는가?   

                 

“‘온전한 자유로움’이 중요하다!”(그림; mamikos.com/info)



 셋째, ‘온전한 자유로움’이 중요하다.     


 오해가 없어야 할 것이, 자신이 돈도 많고, 기타 여러 가지로 가진 게 많아 비교적 자기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처지라고 하여도, 온전한 자유로움을 누리고 있다고 쉽게 단정할 수는 없다.

 사람의 욕심이란 것이 과연 끝이 없을 것이기에, 자기 욕심으로 인한 욕망과 그 욕망을 계속해서 채우려는 마음이 아주 크다면, 온갖 심리적 속박이 생겨날 것이고, 자기 마음이 자유롭기는커녕, 안달과 초조감만 깊어질 수 있다.

 과연 그러한 추구의 끝은 결코 없을 것이니, 점점 심리적 옥죄임의 구렁으로 빨려 들어갈 수 있다.

 그러니, 그러한 상태에서는, 아무리 돈이 많아도, 아무리 가진 게 많아도 결코 자기 마음속에 진정한 자유라는 것은 안착할 수가 없다.

 오히려, 돈에 대한 중독적 추구, 끊임없는 이익 추구의 심리만 키워갈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이 심화되어 간다면, 결국 자신을 타락이나 추락의 결과로 몰고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온전한 자유로움이란 역설적이게도, 가진 것과는 아주 무관하게, 아무것에도 너무 과도하거나 지나침이 없고, 이리저리 흔들리거나 들뜸이 결코 없는 기저의 마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스스로 매우 자신이 있고, 자긍심 또한 강하여, 자기 허영으로부터도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독립의 마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세상의 여러 유혹에 대해서도 비교적 자신을 잘 제어해 내고서, 오히려 아무리 대단한 것에도 결코 마음을 뺏기지 않고, 현혹되지도 않는 자기 절제의 마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세상의 온갖 화려함과 환상에도 결코 미혹되지 않아서, 언제 어디서나 고요함을 유지할 수 있는 평정의 마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오로지 자기 스스로가 생각하는 가치와 자기 양심에 따라서 행동하는 그러한 ‘자유 의지’의 마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여기에 하나를 더 추가하자면, 사리에 매우 밝아, 자신이 나아가야 할 때, 물러나야 할 때, 포기해야 할 때, 전진해야 할 때 등을 잘 가릴 줄 알고서, 항상 세상 이치에 알맞게 따를 수 있는 마음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다시 말해, 온전한 자유로움이란 그 무엇에 대해서도 누가 시켜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고, 순전히 자기 스스로의 믿음과 양심 그리고 자기 스스로의 가치에 따라 그렇게 생각하여 판단을 내리고 행동하는 것이니, 이러한 자유는 과연 아주 “큰 자유로움”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러한 큰 자유로움이야 말로, 그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일 것이니, 그 어떤 부러움에도 아랑곳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니, 그 어떤 욕망이나 욕심, 허영 등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가 있어서, 진정 우리를 피곤함의 사회로부터 구원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처방이 되어줄 수 있지 않겠는가?     


 넷째, 캐묻지 말고, 들추어내지도 말아라.    

 

 상대에게 아무리 궁금한 게 있어도, 그게 상대에게 부담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된다면, 결코 캐묻지를 말아라.

들추어 내려 하지는 더더욱 말아라.

 상대의 프라이버시에 해당되는 것, 지극히 개인사와 관련된 일들, 기타 상대의 취약점이나 아킬레스건에 해당하는 것 등이 바로 그러한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의 궁금증을 위해, 이런 것들에 대해서, 마치 탐정이라도 된 듯, 안테나를 세워서는 아주 곤란하겠다.

 쓸데없는 오지랖을 넓히거나, 정확하지도 않은 내용들을 이리저리 퍼뜨려서는 더욱 곤란하겠다. 

 당신의 알고 싶어 하는 심리, 캐내고 싶어 하는 욕구 등을 해결하기 위해, 상대에게 무슨 부당한 부담을 지우게 되거나, 어떠한 상처라도 주게 된다면, 이는 아주 곤란할 것이니 말이다.

 이러한 언행은 분명히 당신의 도리가 아닐 것이니 말이다.      


 당신이 우연히 무엇인가를 좀 많이 알게 되었다고 하여, 무슨 비밀스러운 것들을 들었다고 하여, 주변으로 이를 마구 퍼 날라서는 더욱 곤란하겠다.

 그런 소문들이 나중에 가면, 결국 엉터리이거나 가짜로 판명될 수도 있겠으니 말이다.

 만약 그렇지는 않더라고, 매우 부정확한 소문이었을 수도 있을 것이니 말이다.

 말로도, 문자나 댓글로도, 그 어떠한 행동으로도 절대 그런 경박한 언행은 삼가라.

 역지사지의 마음에서, 서로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볼 때, 당신이 그러한 상황을 당하게 되는 경우라면, 이 얼마나 불쾌하고 억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니, 매사 불필요하게 너무 궁금해하는 버릇을 절대 들이지 말고서, 이것저것 잡다한 것에 너무 민감해하지도 말고서, 쓸데없는 오지랖을 마구 넓히는 행동은 더욱 경계하여라.     


“절대 캐묻지 말고, 들추어내지도 말아라.!”(그림;.bonobology.com/ko)



 절대 예의 없이 상대의 비밀스러운 곳으로 불쑥, 기습적으로 들어가지 말아라.

 상대의 예민한 부분을 캐내려는 욕심은 더더욱 부리지 말아라.

 그런 행동은 장차, 크게 신뢰를 깨는 행동이 될 것이니 말이다.

 그러한 행동은 결국 상대를 더욱 실망시킬 수밖에 없을 것이니 말이다.

 웬만한 상황에서는, 그냥 상대가 먼저 이야기를 해줄 때까지 잘 기다려라.

 잘 기다려준 당신에게 상대가 언젠가는 반드시 응답해 올 것이다.

 그도 목석이 아닐진대, 당신이 그동안 궁금해 한 사실을 왜 모른 척하겠는가? 

 매사 이렇게 하여, 아주 자연스러운 관계, 매우 멋진 관계를 지속해 유지할 수 있게 하여라.

 그래서, 당신의 소중한 친구를 지켜내고, 정겨운 이웃 또한 잘 지켜낼 수 있어라.     


 언제 어디서나, 항상 예의 있고, 신사적이어라.

 당신의 모든 궁금증에 대해, 결코 조급증을 부리지 말고서, 성급하게 타인을 몰아세우지는 더더욱 말고서, 그냥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살아라.

 매사 아주 푸근하고 여유 있게 살아가고, 절대 아무 때나, 마우 곳에나 귀를 쫑긋 세우지 말고, 늘 점잖게 기다려 주어라.

 아무 때나 예의 없이 치고 들어가지 말고, 아무 때나 전투 모드로 마구 돌입하려 하지도 말아라.

 불필요한 상황에서 마구 열을 내며 덤벼들거나 인신공격을 하여, 서로 얼굴을 붉히는 어리석음 또한 절대 범하지 말아라. 

 그냥 모든 주변인들을 아주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대하여라.     


 이렇게 하여, 아무런 고단함도 스스로 불러오지 말고서, 스스로 그 고단함의 구렁에 빠져드는 일은 더욱 없도록 하여라.

 그냥 모든 것을 아주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대하며 살아라.

 어느 때나, 별 궁금한 것이 없는 듯, 별 주장이 없는 듯, 아무것도 내세우지 않는 듯하여라.

 항상 여유 있는 웃음을 보여주고, 친구나 이웃에게 고요한 쉼터가 되어주어라.

 또, 그 어떤 날 선 주장도, 차라리 그냥 차분히 받아주어라.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서, 웬만한 일에 대해서는 절대 문제 삼지 말고서, 모든 것을 관대하게 보아주고, 항상 잘 소화도 해 내어라.  

   

 그러면서도, 당신의 냉철한 뇌리 속에서는 항상 세상을 꿰뚫어 볼 수 있어라.

 언제나, 크게 크게 세상을 바라보아 주고, 그 속의 대세적 흐름에 잘 주목하고, 그 흐름의 힘줄기를 주도할 수도 있어라.

 세상의 미묘한 흐름을 절대 놓치지 말아라.

 그래야 세상의 속살을 제대로 음미하고, 제대로 즐길 수도 있겠으니 말이다.

 그러나, 우선적으로는 세상을 보다 더 큰 범위로 내다보고, 보다 거시적 관점에서 해석해내려 하여라.

 그래야만, 산에 오르면서 나무는 잘 보는데, 그 산의 형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니, 스스로를 잘 캐어해 내고, 보다 제대로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항상 너무 지엽적이거나 국소적인 것에 민감해하지 말아라.

 그렇게 큰 마음으로, 구정물도 맑은 물로 정화해 내고, 상대의 욕설마저도 축복으로 승화해 내어라.

 그리하여, 모든 세상이 저절로 당신에게로 수렴해 오게 하여라.     


 다섯째, 자기 생의 자취와 향내에 집중하여라.    

 

 세상에 자신의 좋은 자취를 많이 남겨 보아라.

 온 세상에 자신의 멋진 향내를 많이 남겨보아라.

 그 자취를, 그 향내를 세상 사람들이 모두 기쁘게 누릴 수 있게 하여라.

 자신의 가치가 온통 담긴 그러한 자취와 향내를 많이 많이 남겨 보아라.

 자신이 늘 흐뭇해하고, 마지막 날까지 기쁘게 생각할 수 있는 그러한 자취와 향내일 수 있다면, 더욱 훌륭하겠다.

 특히, 이 세상에 자신의 생각과 뜻이 흠뻑 담긴 그러한 작품을 단 한편이라도 남겨 보아라.

 거창한 예술이나 문학 작품이 아니어도, 그냥 자신만의 최애이어도, 아무런 상관이 없겠다.

 자기 스스로만 흡족할 수 있으면 될 것이니 말이다.    


 사실, 이런 일에 있어서, 너무 힘들어하거나,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다.

 너무 욕심을 낼 필요는 더더욱 없으며, 가장 자기 다운 '생의 작품'으로 잘 준비해 나가면 될 것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크고 작은 자기 작품 혹은 최애 위에 자기 진심만 살짝 올려놓으면 된다.

 항상 진심으로 정하고, 정성으로 꾸리고, 또 이루어 나가면 된다.

 설령, 나중에 그것이 미완성으로 남게 되면 또 어떠한가?

 당신은 전혀 그런 부담을 가질 필요가 없다.

 당신이 이 땅에 와서 진심으로 무엇인가, 자기 가치를 추구하였고, 자기 양심에 진정으로 충실하였다면, 이미 당신의 신은 미소로서 당신을 대할 것이다.

 아주 흐뭇한 미소로서 당신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자기 생의 아주 멋진 작품 혹은 최애에 잘 집중할 수 있다면, 보다 심취할 수만 있다면, 가히 대부분의 생의 씨름은 모두 잊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불필요한 스트레스나 고단함은 더 이상 불러들이지 않아도 된다.

 이러한 방법은 매우 고단한 사회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아주 멋진 방법이 될 수 있다.

 모든 고달픔을 훌훌 털어버리고서, 오로지 자기 생의 가치가 오롯이 담긴 자기 작품이나 최애에 잘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고단한 사회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아주 훌륭한 방법 중 하나가 기꺼이 되어줄 것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자기 생의 자취와 향내에 집중하는 삶은 고단함에 지친 자기 영혼과 이웃들의 영혼을, 사회 모든 구성원들의 영혼을 잘 달래고 위로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당신과 이웃이 모두 모두 행복해질 수 있는 아주 멋진 선택이 아닐 수 없다.

 또한 무엇보다, 기왕에 이러한 자기 생의 자취와 향내를 많이 남기려 마음먹었다면, 자신만의 가치가 오롯이 담긴 그러한 길을 선택하고, 멋지게 추구할 수도 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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