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칙칙한 생의 한복판에 내버려 두지 말아라

부제; ‘창의’의 가치(그림; apkainterior.com)

by 신정수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블레즈 파스칼은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말을 그의 유고집, 팡세를 통해 남겼다.

이 말을 좀 더 의역해 보면, “인간은 갈대처럼 매우 연약한 존재이지만, 생각(사고, 아이디어, thinking 등)이라는 위대한 힘을 통하여 그 약함을 가장 잘 극복할 수 있다.” 혹은 “인간 개인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가치를 잘 증명해 보이려면, 반드시 좋은 생각을 많이 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도 충분히 말할 수 있겠다.

그만큼 ‘생각’이라는 것은 인간에게 매우 중요한 사고 활동이며, 인간이 그러한 수단을 통해 엄청나게 많은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게 해 주며,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 주는 가장 기초이면서도, 핵심적 요소가 될 수 있다는 것이겠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이라는 것이 제대로 가치를 만들어 내려면, 여러 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하겠지만, 그중에서도 과연 가장 중요한 요소라면 “그 생각이 창의적이어야 한다.”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니, 생각이라는 의미 그 자체가 이미, 창의라는 개념을 어느 정도 포함한다고도 볼 수 있겠다.

누구나, “생각을 깊이 한다!”라는 것은, 무엇에든, 보다 최선의 선택을 하려는 의지이자, 자기 생에 올바른 솔루션을 얻어내기 위한 진심 어린 행보일 것이니 말이다.

그러려면 결국, 스스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많이 만들어 내지 않으면 안 될 테니 말이다.


만약, 어떤 사람의 생각이 전혀 창의적이지 않고, 아주 구태의연하다면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을까?

자기 생에서, 별 중요한 가치를 만들어 내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물론, 그런 구태의연한 생각도 인간이 자신의 생존을 다소 보수적으로 잘 지켜내기 위해 어느 정도는 필요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보다 더 발전적이고, 미래 지향적일 수 있으려면, 반드시 거기에 창의가 개입되어 있어야 하겠다.

이러한 창의적인 생각은 인간을 하루하루 더 발전하게 만들어, 어제의 생(生)보다 오늘의 생이 더 가치 있게 하고, 오늘의 생보다 내일의 생이 더욱 가치 있고 보람 있게 만들어 줄 것이니 말이다.

즉, 하루가 다르게 더 나아지는 생, 늘 그런 생을 위해 기꺼이 도전을 잘해 나갈 수 있는 원동력, 미래를 향한 희망 가득한 비전을 위해서는, 창의적인 생각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겠다.


스스로를 칙칙한 생의 한복판에 내버려 두지 말아라-1.jpg "늘~ 당신의 창의가 가득 깨어있어라!”(그림; apkainterior.com/blog)



또한 사회적인 측면으로 보더라도, 어떤 사람의 생각이 전혀 창의적이지 않고, 그저 자기 혼자 먹고살기에 급급하다면 혹은 본능적 욕구 해결에만 급급하다면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절대, 가치롭거나, 훌륭한 생각이라고는 말할 수 없지 않을까?

물론, 그 생각이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범위에서 자신의 이익이나 욕심, 권리 등을 챙기는 정도의 수준이라면, 사회적으로는 별 문제가 될 게 없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이 좀 더 가치를 지니려면, 좀 더 세상에 좋은 의미를 내어 놓을 수 있으려면, 그 속에 반드시 창의적 공유 가치가 내포되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만, 그러한 창의를 서로 공유함으로써, 서로 집단지성을 더욱 키울 수 있고, 그렇게 키워진 집단지성은 자기 개인의 꿈도 더욱더 잘 이룰 수 있게 해 줄 테니 말이다.

즉, 이렇게 스스로 창의적일 수 있어야만, 자기 혼자만이 아닌, 자기 보다 더 큰 자기, 우리 모두에게 아주 훌륭한 선택과 보다 발전적 방향을 잘 제시해 줄 수 있게 된다.


이렇게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자기 생에서 창의라는 요소는 너무나도 중요한 개념이 아닐 수 없다.

세상에 창의적이지 않는 생은 과연 어디에 쓸모가 있을까?

전혀 가치롭지도, 발전적이지도 않은 생에 대해 과연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그저, 모든 것이 따분하고 구태의연하기만 하다면, 먹고 살기에만 급급하기만 하다면, 돈 벌기에만 급급하다면, 자기 눈앞만을 보고 생활하는 지극히 근시안이 된다면, 그런 생이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을까?

아마, 자기 생에서 가장 중요한 자신의 마지막날에, 자기 생에 대해 그 어떤 보람도, 의미도, 가치도 제대로 부여하지 못할 것 같다.

전혀 창의적이지 않아서, 그저 남의 뒤꽁무니만 쫓아다닌 생이란 것은 자신의 거룩한 '신'조차도 인정하지 않지 않을까?


우리는, 좀 더 가치 있는 자기 생을 잘 살아내기 위해서는, 항상 보다 창의적인 생각을 통해, 어제보다는 오늘을 좀 더 전진시키고,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욱 전진시켜 나가야 하지 않을까?

물론 그 전전의 수준이나 성취의 정도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러한 발전적 추구 방향 자체가 참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닐 것이다.

그래야만, 우리 생이 정말 제대로 가치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적어도, 그 가치를 제대로 추구할 수 있는 토대 정도는 잘 만들어 줄 것이니 말이다.


스스로를 칙칙한 생의 한복판에 내버려 두지 말아라-2.jpg "당신의 뇌리는 늘 창의로 가득하여라!”(그림; qz.com/1293467)



이해를 돕기 위해 관련 사례를 몇 가지 들어 보자.

자기 생을 아주 엄청난 창의로 살아냄으로써, 죽기 전까지도 결코 타의 추월을 허락지 않았던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먼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인물, 추사 김정희이다.

그는 늘, 자기가 개발한 서체에 만족하지 않고, 젊어서부터 청나라 학자들로부터 많은 지식을 습득하려 애썼다.

이미 스스로의 재주가 아주 출중한 가운데서도, 결코 방심하지 않았고, 더욱더 높은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 부단히 배워나간 결과, 우리 역사에 길이 빛나는 추사체를 창시하게 된 것이다.

말년에는, 고된 귀양살이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제자가 당시 최고의 선진국인 청나라로부터 구해서 가져다준 서책, 시집 등을 통해 더욱더 큰 깨우침을 이어나간 결과, 서예, 금석학, 그림, 시, 학문 등에서 아주 엄청난 작품을 생산해 낼 수 있었다.

그야말로 그는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가장 창의적인 예술가이자 학자로서 평가받아 마땅하다.


파블로 피카소는 인류 역사상 대표적인 천재 화가 중 한 명이다.

말을 배우기 이전부터 그림을 배우기 시작하였는데, 그의 천재성은 입체파(큐비즘)의 창시를 통해 더욱 도드라졌다.

입체파 그림을 그리기 이전부터, 이미 그의 실력은 정점에 이른 수준이었으며, 스무 살이 채 되기 이전에 그의 회화 실력은 기존의 고전주의를 완전히 마스터한 수준 이상이었다고 한다.

그의 큐비즘은 당시에는 매우 난이한 그림이라고 여겨져, 외면도 많이 받았으나, 아주 고전적인 그림마저도 타 화가 대비 훨씬 더 우월하게 그려낼 수 있었던 그를 두고서, 누가 감히 무어라 대들 수가 있었겠는가?

물론, 그의 사생활이나 정치적 성향 측면에서는 여러 논란거리도 많았지만, 적어도 그림에서만은 끊임없는 창의로 번득였으며, 죽기 전까지, 타의 추월을 결코 불허했던 것이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은 작곡을 하다가 악상이 떠오르지 않을 때, 찬물을 자기 머리에 끼얹으면서, 자신의 창의적 뇌리를 계속해 일깨워나갔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그만큼 자신이 원하는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 치열하게 전진을 해 나간 것이다.

특히, 베토벤의 후기 작품들을 보게 되면, 당대의 악기 기술과 연주 기교, 성악의 한계를 뛰어넘는 경우가 많았다.

말년에는 병마에 시달리면서도, 정말 죽을 때까지 스스로를 계속 채찍질해 가며, 오직 음악에 의해 스스로 위안을 받았고, 음악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호소해 나갔고, 음악의 소리로써 대중들을 감동시켜 나갔다.

그 또한 너무나 시대를 앞서 나간 작품 활동으로 인하여, 경쟁자들로부터 비난도 많이 받은 편이지만, 복잡한 음악 구조와 큰 규모를 가진 대작들 이외에도, 피아노 소품이나 가곡집, 관현악을 위한 서곡 등의 비교적 소규모의 작품에서마저도 걸작들을 많이 남긴 그에게 감히 누가 “어려운 음악을 이제 그만하세요!”라며 불평을 털어놓을 수 있었겠는가?


스스로를 칙칙한 생의 한복판에 내버려 두지 말아라-3.jpg “당신 생은 늘 창의로 번득여라!”(그림; apkainterior.com/blog)



물론, 위에 언급한 몇 가지의 사례들과 달리, 자신의 엄청난 창의성과 천재성에도 불구하고, 말년에 조금의 방심으로 인하여, 자기 생에서 도저히 극복하지 못한 장벽에 봉착한 천재들도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들을 두어 가지 살펴보자.


먼저, 천재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다.

아인슈타인은 특수 상대성 이론, 일반 상대성 이론, 브라운 운동 이론, 광전 효과 등의 전무후무한 연구 결과물을 무수히 많이 내어 놓았다.

그야말로 세기의 천재이자, 너무나 완벽한 과학자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통일장 이론 연구에 매진하면서부터는 그 명성을 많이 구기게 되었다.

그 당시에는 중력과 전자기력만이 잘 알려져 있었고, 그러한 통일장 이론 정립에 필수라고 할 수 있는 강한 핵력과 약한 핵력에 관련된 연구는 거의 이루어지지 못한 상황이었다.

또, 통일장 이론을 완성하는 데 필요한 실험적 증거나 수학적 도구가 당시에는 너무나 부족하였기에, 결과론적이기는 하지만, 너무 무리한 시도에 매달렸던 것이다.

물론, 이 정도의 실패 정도라면, 충분히 인정해 주어야 한다.

그가 아무리 천재적 물리학자이지만, 어차피 인간으로서의 한계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니 말이다.


오히려, 그의 치명적인 실수는 그가 끝까지 양자역학을 거부함으로써, 벌어지게 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그는 자연 세계의 미시적인 물리 현상을 너무 거시적인 잣대로만 해석하려 했던 것이다.

이렇게, 당시만 해도 신 개념의 물리 이론에 해당하는 양자역학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함으로써, 자기 생의 후반부에는 그 자세를 엄청나게 많이 구기게 된 것이다.

그야말로 자기 명성에 맞지 않는 옥에 티를 그만 만들어버린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그다음은,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워렌 버핏’과 그의 동지인 ‘찰리 멍거’이다.

이 둘은, 알다시피, 세계적인 투자 전문가로서 부와 명예를 한 손에 거머쥔 인물들이다.

그런데 그들은 그만, 가상자산 등(암호화폐, 코인, 금 등)에는 매우 부정적이었다.

가상자산 등의 미래 가치를 제대로 해석해 내는 데는 실패하였다고 보아야 한다.

워렌 버핏은 비트코인은 창의적 가치 창출을 결코 해내지 못할 것이며, "세상의 모든 비트코인 물량을 단돈 25달러에 준다고 해도 나는 안 받겠다"라고 말하며 강하게 비판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이 이끌고 있는 버크셔 해서웨이에는 암호화폐에 전문적으로 투자하는 파이낸셜 그룹 등이 생겨났으며, 사실상 암호화폐에 대한 본인의 실수를 스스로 자인해야만 했었다.

그의 동반 기업가인 찰리 멍거 또한 가상자산 등에 대해 버핏과 유사한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멍거는, 가상자산 등의 거래에 뛰어드는 기관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똥을 거래하는 데, 나라고 빠질 수 없지!"라는 꼴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었다.

그는 이러한 표현 외에도, 가상자산을 쥐약, 성병, 치매라고 부르기까지 하며 극도의 비판을 쏘아붙이기도 한 바 있다.


그렇지만, 가상자산 등에 대한 그들의 이러한 시각은, 새로운 금융 질서가 빠르게 형성되어 가고 있는 요즘에는, 크게 잘못된 시각이라고 보아야 한다.

스테이블 코인, CBDC 등을 포함한 온갖 가상자산 등이 세상을 뒤흔들어 놓고 있는 요즘의 시대에, 그러한 코인 종류 등을 마냥 비난만 하고 있을 게 아니라, 적어도 적절한 의미 부여나 공정한 평가, 향후 가능한 시나리도 등 정도는 내어 놓았어야 했지 않을까?

지나친 비난이나 혹평만으로는 가상자산 등의 위력을 절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할 것이니 말이다.

장차, 개인뿐만 아니라, 한 나라의 생존이 달린 문제로 비화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지금까지는 세상에 없었던 새로운 금융 질서를 대하는 데 있어서, 그들은 좀 더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임했어야 했었다.



스스로를 칙칙한 생의 한복판에 내버려 두지 말아라-4.jpg “당신의 창의가 늘~ 아주 날카롭게 깨어 있어라!”(그림; motivationandlove.com)



결론적으로,


우리는 늘 스스로, 창의가 잘 깨어 있어야 아주 의미 있는 자기 생을 일구어 낼 수 있다.

자기 생을 통해, 스스로의 사명을, 스스로의 가치를 제대로 완성해 나갈 수도 있다.

그러니, 절대 구태의연한 생을, 남의 뒤꽁무니만 졸졸 따라다니는 생을, 먹거리가 있는 곳이라면 그 어디라도 몰려다니는 그러한 생을 아주 멀리 하고서, 당신의 제대로 된 창의를 잘 발현해 내어 보아라.

당신 속에 내재된 그 창의를 이제는 좀 꺼내어 놓아라.

이미 충만해 있는 당신의 창의적 능력을 이제는 좀 일깨워 내어라.

세상을 위해, 보다 크게 한번 사용할 수 있어라.

보다 창의적이고, 보다 발전적인 아이디어를 많이 많이 창출해 낼 수 있어라.

당신 덕택에, 세상이 참으로 풍요롭도록 하여라.

당신 덕분에, 보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어라.


옛 속담에 “등잔 밑이 어둡다!”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는 이미 자신에게 충만해 있는 그 창의적 재능을 제대로 바라보지도, 제대로 알아차리지도 못하는 경우가 참으로 많다.

그저, 자기 알량한 매너리즘에 빠져, 전혀 새로움을 창출하지 못하고, 가치로운 아이디어는 더더욱 떠올리지 못하고서, 아까운 시간을 흘려보내는 경우도 많다.

FOMO에 빠져 허우적 대면서, 잘 난 사람을 시기하거나 질투의 시선을 보내면서, 자기 절호의 기회를 그만 놓쳐버리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다.

스스로를 고되고 칙칙한 생의 한복판에 마냥 방치해 두어, 마구 피폐하게 만들어버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우리는, 언제나 이러한 모습들을 잘 경계하고서, 늘 자기 뇌리를 창의로 번득이게 해야 한다.

당신의 모든 지식과 지혜는 이러한 창의적 사고를 그 바탕으로 해야만, 아주 유의미하게 동작될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그래야만, 세상 모두를 위해, 제대로 된 봉사를 할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니, 당신은 언제나 쉬이 안일해지려는 마음을 잘 돌아보고서, 당신 뇌리를 늘 새롭게 일깨울 수 있어라.

당신 스스로의 가치로운 생을 위해서도, 보다 큰 자아, 즉 당신의 이웃을 위해서라도, 이미 당신 속에 가득히 내재된 창의를 잘 끄집어낼 수 있어라.

당신의 창의가 늘~ 아주 날카롭게 깨어 있어라.

당신의 마지막날까지, 늘 창의가 활짝 깨어 있어, 당신 생을 통해 아주 큰 의미와 가치를, 과연 최대로 창출해 낼 수 있어라.

그럼으로써, 당신 입가에도, 가슴속에도, 가면 갈수록 아주 큰 보람과 만족이 그득히 고일 수 있어라.


생각해 보면, 모든 게 이러하니,


“당신은 생을 통해, 늘 창의가 깨어있어라.

과연, 끝까지 창의적이어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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