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네 가치가 듬뿍 담긴 좋은 카르마를 많이 짓고 일구어라!
누구나 한번 사는 자기 인생에서 자신만의 참된 가치를 잘 찾아내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한 좋은 카르마(자기 인생에서 누적된 행적)를 많이 짓고 일구는 것 이상의 큰 보람은 없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 매우 큰돈을 가졌다고 한번 가정해 보자.
그것을, 자신을 위해 쓴다면, 그 돈을 마음껏 쓴 후에는 결국 나중에 허무함이 밀려온다.
즉, 큰돈을 쓸 당시에는 기쁨을 맛볼 수 있었겠으나, 그 쾌락의 시기는 눈 깜짝할 새 이미 지나가 버릴 것이고, 나중에 결국 돈의 무상함만이 네 가슴속에 남을 것이다.
만약 그 돈을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가정해보자.
처음에는 기뻐하는 자녀들에게 에워싸여 즐거움을 잠시 맛보았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돈은 자식에게는 마약과도 같은 것이어서, 스스로 일어서려는 용기를 꺾어버리기 일쑤이다.
즉, 차라리 그 돈을 주지 않았더라면, 많은 노력 끝에 결국 성공할 가능성이 매우 컷을 자식들이, 부모가 준 그 돈의 맛에 취하여 더 이상 노력할 의미가 없어지고, 결국 그만그만한 작은 일생을 살거나 혹은 추락하는 인생을 살게 될 수 있다.
그렇다면 그 돈을 좋은 곳 혹은 자신이 의미가 크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곳에 썼다고 한번 생각해보자.
가령 예를 들어, 일단 그 돈을 잘 저축하거나 투자를 해두었다가, 일부는 이웃을 위해 쓰고, 일부는 자기 가족이 혹여 아플 때 병원비 등으로 유용하게 쓰게 되었고, 다른 일부는 개인재단을 설립하여 대대손손 좋은 일을 할 수 있게 하고, 또 다른 일부는 사회의 낮은 곳을 돕는 공익재단에 기탁하여 유용하게 잘 썼다고 가정해보자.
이렇게 되면, 자기 말년에 항상 흐뭇한 감정이 가슴속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자식들은, 처음에는 부모가 재산 전체를 고스란히 자기들에게 물려주지 않은 것에 실망이 컸을 수 있었겠으나, 그 재산이 쓰여지는 형세를 가만히 보고 있다가, 결국은 부모의 선택과 그 선한 영향력에 존경해 마지않을 것이 아니겠는가?
또한, 자신이 이 세상과 이별한 이후에도 그 선한 영향력은 지속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들인가?
중국을 두 번째로 통일한 한(漢)고조 유방의 최고 명재상으로 유명한 ‘소하’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자기 주군이나 주변 경쟁자들에게 결코 자신의 존재감을 그리 크게 드러내지 않은 채, 한나라의 실질적인 보배이자 처신의 달인으로서 자신의 인생을 훌륭하게 살아낸 인물이다.
특히, 황제로부터 하사받은 큰 재산을 더 크게 불리거나 축적하는 대신, 아예 자기 집의 울타리(담장)를 허물고, 재산의 많은 부분을 이웃과 나누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그런지, 소하가 죽고 난 후에도 황실이 대대손손 소하의 후손들을 차례로 찾아와 그의 작위를 계속 잇게 한 유명한 일화가 전해지고 있는데, 이는 역사적으로도 유래를 찾기 힘들 정도이다.
이렇게 그의 나눔의 정신과 선한 카르마는 소하 자신뿐만 아니라, 자기의 자손 대대로 그 영화를 이어 나갈 수 있게 하였다.
그에 관한 여러 문헌을 참조로 해보면, 그는 항상 매사 검소했으며, 많은 재산을 불리는 것에는 큰 관심이 없었고, 오히려 주변으로 자신의 재산을 나누는 것에 집중하였던 것 같다. 즉, 엄혹하고 살벌한 한나라 당시의 정치 상황에서도, 자신이 먼저 베풀면 나중에 억지로 빼앗기거나, 자손 대에 몰수당하는 일이 절대 없을 것이라고 스스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다! 우리는 삶을 살면서, 거의 본능에 가까울 정도로 돈을 탐닉하고, 힘을 과시하고, 권력을 휘두르려고 하는 유혹에 빠지기가 매우 쉽다.
그러나, 생각을 좀 전환시켜 보면, 이러한 행동보다는 주변에 선한 영향력(카르마)을 많이 전하는 것 이상의 보람은 결코 없을 것이다.
삶의 온갖 영화는 순식간에 지나가 버릴 것이니, 너무 탐닉하지 말고, 적절한 수준에서 절제해 나가면서, 소하처럼 자기 가치가 듬뿍 담긴 카르마를 많이 짓고, ‘영원히 사는 방법’을 찾아보는 것도 매우 현명한 길이겠다!
너로 인하여 기뻐하는 이웃이 많게 하여라.
네게 은혜를 받은 자가 많게 하여라.
너를 바라보며 흐뭇해하는 사람이 많게 하여라.
네 도움에 감사하는 동료가 많게 하여라.
당신의 사랑에 감동하는 이가 많게 하여라.
버선발로 반가이 너를 맞아주는 친구가 많게 하여라.
네 말 한마디에 위안과 위로를 받는 벗이 많게 하여라.
악인이 범접하지 못하도록 선한 내공을 길러라.
악담도 축복의 말로 받아넘겨라.
이렇게 좋은 카르마를 많이 짓고, 부지런히 일구어 나가라.
우리는 자신의 삶이 세상에 가장 보람있게 빛나게 하기 위해서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러한 관점에 대한 대답은 사람마다 많이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그 대답은 ‘자기 인생에서 모쪼록, 좋은 카르마를 많이 짓는 일’로 귀결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기 위해서는 가급적 젊어서부터 많은 내공(물질적·정신적 총체적 능력)을 쌓거나, 유무형의 자산을 많이 축적하는 것이 좋겠다.
만약 그 내공과 자산이 점차 커지고, 결국 나중에 크게 넘쳐나게 된다면 자기 혼자 혹은 자기 가족만 쓰기에는 너무 큰 덩어리가 되어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대목이 중요하다. 이 시점에 욕심을 내게 되면, 끝없이 추락할 것이요, 이 대목에서 선한 카르마를 많이 펼쳐나가면 대성공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내공이나 자산이 완성되지 못한 초기 단계부터 이미 선한 카르마를 차곡차곡, 단계 단계 쌓아나가는 것이 좋겠다. 그래야, 나중에 크게 성공하였을 때도 자연스럽게 그러한 카르마의 실천을 보다 쉽게 이어 나갈 수 있을 것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우리는 적은 재산도, 작은 권한도, 작은 권력도 결코 함부로 휘두르지 말고, 선한 카르마를 짓는 데 쓰는 것이 좋겠다.
역설적으로, 자신이 소중히 간직한 것도, 때로 기꺼이 버릴 줄 알아야, 많은 새로운 것으로 다시 채울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내어놓을 줄 알아야 더 큰 인물, 하루가 다르게 커나가는 인물, 스스로 깨우치는 인물이 될 수 있다.
또, 아주 작게 가진 것마저도 좋은 의미를 담아, 좋은 곳에 쓰여질 수 있도록 항상 배려하려는 자세가 바로 당신이 이 세상을 실존하면서 앞으로도 영원히 살 수 있는 방법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이러한 선한 카르마를 짓는 일을 너무 멀리서 찾을 필요는 전혀 없다.
바로 네 주변에서부터 찾으면 된다. 어려운 친구에게 희망의 말을 건네고, 이웃에게 작은 도움이라고 건네주고, 울고 있는 자에게 위안과 위로를 보내고, 심지어 악담에도 축복의 말을 기꺼이 건넬 수 있다면, 이 또한, 훌륭한 카르마를 짓고 일구는 일이 아닐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