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태나 문제의 근본적 본질을 꽉 움켜잡아 모든 문제가 해결의 구조화(실마리끼리의 연결 구조)를 이루게 하여라.
그러면, 그 문제가 스스로 술술 잘 풀려나가서,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밖에 없게 된다.
무슨 일이든 우리가 가끔 “정곡을 찌른다”라는 말을 쓰듯, 본질을 제대로 챙겨야 네 뜻도 보다 쉽게 펼칠 수 있을 것이고, 무엇보다 네 보람과 삶의 가치도 이룰 수 있게 될 것이다.
요즘은 참 세상 편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별생각 없이 몸을 마구 쓰고, 그러다가 아프면 약 먹고, 그래도 안 되면 병원에 가면 된다고 생각한다.
먹고 싶은 것 마음껏 먹고, 그래서 살이 너무 찌거나 몸이 찌뿌둥하면 헬스클럽이나 피트니스에 가면 되고, 그래도 해결이 안 되면 약물이나 병원 치료로 강제로 살을 빼려 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벌이나 자기 욕심을 채우다가, 문제가 발생하면 사과 한마디 없이 슬그머니 꼬리만 내리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래도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으면 잔머리를 잘 굴려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면 될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하는 이가 많다.
그러나, 이러한 단세포적 생각과 행동이 자신을 심각하게 망친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도무지 이런 방법 외 다른 방법은 생각하려 들지 않는다.
실제로 이러한 단순한 생각의 패턴은, 무슨 문제이든 간에,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제대로 된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의지를 매우 약화시키고, 가능하면 쉽게 남의 힘을 빌려 해결하려 하게 하고, 그래도 해결이 잘 안 되거나 그 해결 내용이 마음에 안 들면, 남 탓을 하기 시작하게 만든다.
그래서 이러한 단편적이고 이기적인 생각의 패턴은 참으로 자신을 망치는 길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구겨지고 일그러진 우리 모습들에 대한 사례를 몇 가지 들어보고, 그 해결책도 같이 한번 생각해 보자.
“본질을 꽉 움켜잡아라”(그림;.adorama.com/alc)
첫째 예로, 우리가 허리나 발이 아프면, 정형외과에 가서 많은 돈을 써가며 온갖 엑스레이, MRI, CT 등을 찍고, 진단을 받은 후 수술적 치료, 주사치료, 약물치료 등을 받게 된다.
그런데 사실, 이런 치료와 무관하게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치유 방법은 자기 스스로의 생활상 ‘자기 케어(자세 교정, 체중관리, 운동, 식이요법 등)’라고 할 수 있겠다.
특히, 책상에 앉을 때 허리를 쫙 펴고 곧게 앉는 것, 생활상 어정쩡한 자세를 절대 취하지 않고 항상 꼿꼿하고 잘 정돈된 자세를 취하려 할 것, 무거운 물건이나 먼 거리의 물건을 들어 올릴 때 허리를 다치지 않도록 가급적 가슴 쪽으로 가까이 붙여 들어 올릴 것, 걸음걸이를 반듯하게 하여 기울어지거나 쏠림현상이 없게 하여 걸을 것, 신발 맵시에 너무 욕심내지 않고 발에 편한 신발을 신는 것 등만 잘 행하여도, 아마 많은 환자들이 병원에 방문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병원이나 약물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나도 지나쳐, 조금만 몸에 이상이 있어도, 문제의 본질은 아예 생각해 보지도 않고서, 무조건 병원부터 가야 한다고 막연히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렇게 지나치게 병원 우선적인 생각이 고착되면, 항상 정상적인 생활상의 원인 치료가 이루어지지 못하여, 설령 수술이나 약물 등으로 완치를 하였다고 하더라도, 금방 재발하기 십상이다.
두 번째 예로, 머리가 아프면, 그냥 두통약으로 해결하고 끝낼 수 있다고들 많이 생각한다.
그런데, 두통도 그 원인이 엄청나게 많을 것이니, 그 원인을 먼저 잘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의사를 포함한 그 누구도 그 원인을 정확히 찾아줄 수 없다, 일부 도움을 줄 수는 있겠지만.
자신을 성가시게 하는 두통이 과연 과로가 원인이라고 생각되면, 과로를 먼저 해결해야 할 것이고, 스트레스가 원인이라고 생각되면, 자기 생활 패턴을 심플하게 정리하고, ‘마인드 컨트롤’에도 힘쓰고, 명상이나 요가도 한번 해보는 등 자발적으로 스트레스 부하를 낮출 수 있는 여러 수단을 강구해 보아야 한다.
또, 만약 자기 생활 습관이나 버릇이 잘못되었다면, 그것부터 정상화를 시켜주어야 한다.
그런 이후에, 필요하다면 병원의 도움을 살짝만 더 추가해 준다면, 비교적 본질적인 치료가 가능해져, 자주 두통에 시달리는 일이 더 이상 없어질 가능성이 매우 클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냥 그때그때 아플 때마다 진통제만 먹고 빨리 통증에 대한 고통을 끝내버리는 것에만 생각의 초점을 맞추고, 그 전후에 스스로 책임져야 할 몫에는 거의 신경을 안 쓰니, 도무지 제대로 된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두통 치료는 요원해지고, 스스로 그 두통을 평생 달고 살 수밖에 없다.
세 번째 예로, 왠지 자기 주변에 자기를 싫어하거나 경계하려는 이가 많은 것 같아서 항상 마음이 편하지 않거나, 인간관계상 기분이 늘 상쾌하지 못하다면, 이를 해결하기 위해, 급한 마음에 서로 논쟁을 벌이거나, 어떠한 형태로든 대립각을 세우는 것은 절대 안 좋다.
물론 마음 같아서는, 얽혀있는 일들에 대해 정확하게 따져 묻고, 시시비비를 명확하게 가려서, 의심되는 내용을 깔끔하게 정리하고픈 마음이 들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조급증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이러한 문제의 가장 큰 본질적 원인은 “상대방 마음의 문이 아직 안 열린 탓”일 것이다.
따라서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이 부분부터 해결해 나가야 한다.
방법적 측면에서는, 가능한 한 먼저 자신의 예민한 감정을 억누르고서, 사태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도록 ‘마인드 컨트롤’을 해야 한다.
그다음은 보통, 상대가 마음의 문을 서서히 열도록 긍정적이고 우호적인 소통을 꾸준히 이어 나가는 것이 좋겠다.
이렇게 상대의 감정을 진심으로 어루만져 주게 되면, 당연히 상황은 점점 호전되어 네가 원하는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풀려나갈 것이다.
그런데 끝끝내 상대방의 문이 열리지 않으면 어쩌겠는가?
그래도 상관없다. 당신의 노력이 진심이었고, 그렇게 꾸준히 텔레파시를 상대에게 보내었다면, 이미 상대방 마음의 문은 열렸을 가능성이 클 것이고, 단지 그 사람의 성격상 혹은 다른 특이 사유로 인하여 네게 표시를 안 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아마 이러한 정도라면, 더 이상 네 심리적 부담도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네 번째 예로, 우리나라 출산율 저하 문제를 한번 생각해 보자.
이 문제는 누구나 심각하다고 생각하고, 누구나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고, 정치인들의 각 공약 속에서도 이 출산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다양한 대책들이 빠지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대부분 정치인이나 사회 리더들이 내어놓은 정책이 돈으로 해결하려는 방법으로 일관된다.
물론 출산 장려금, 금전적 혜택 등이 직접적인 효과가 있기도 하고, 곧바로 사람의 마음을 끌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수단은 결코 본질적 수단이 될 수 없다.
인구문제라는 것이 국가 ‘백년지 대계’이고, 사회 전체 시스템의 문제이며, 국민 문화적·의식적 문제이니만큼, 전반적 사회 시스템을 정비하고, 국민 의식 제고, 사회적 캠페인 등을 통하여, 뭔가 ‘사회적 붐’을 일으켜 나가야 할 문제이다.
따라서, 금전적 대책은 보조적 수단은 될 수 있어도, 그 본질적 수단은 결코 될 수 없는 것이다.
과거 우리가 전쟁 후 ‘베이비 붐’ 시대가 있었다. 당시 아무리 가난하여도 자식들에 대한 소망이 곧 자기 미래의 희망이 되어 국민들의 마음과 동기를 움직여 나갔고, 여기에 아이와 아동을 위한 국가적 지원시스템이 점차적으로 잘 바쳐주면서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바 있었지 않은가?
물론, 현재는 인구 정책상 시대적 상황이 녹록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렇게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방법이 우선되고, 금전적인 지원 대책은 그 뒤를 바쳐주어야지, 지금은 알맹이라고 할 수 있는 본질은 어디에 가고 없고, 온갖 껍데기만 난무하는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 사태의 본질을 꿰뚫어 보아 실천함으로써, 아주 큰 공(功)을 이루어 낸 역사 인물에 대해서도 한번 살펴보자.
첫 번째 인물로, 우리의 성웅 이순신은 엄청난 난국의 상황에서도, 사태의 본질을 꿰차서 항상 이길 수밖에 없는 게임을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가 턱도 안 되는 작은 군사력을 가지고서, 큰 전투만을 비교해도, 일본군과 23번 싸워 23번 모두 이긴 것은 모두 사태의 본질을 휘어잡고 움켜잡아 이기지 않으려야 이기지 않을 수가 없는 그러한 게임을 한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
이순신은 당시 정부나 지방 관청으로부터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한 채, 오히려 임금과 원균 등의 모함이나 질투를 심각하게 받은 채 외로운 전투를 벌여 나갔고, 특히 전쟁 도중 어머니의 임종조차 지키지 못하는 슬픔을 감수해야만 하였고, 셋째 아들 이면이 일본의 보복성 공격으로 무참히 살해당하는 등,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감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항상 전투에 임함에 냉정함을 잃지 않고, 끝끝내 싸워, 거의 대부분의 전투를 이겨낸 것이다.
우리는 그가 엄청난 능력으로 적을 쳐부순 것으로만 많이들 알고 있지만, 사실은 질만한 전투는 아예 철저히 피하는 전략을 많이 구사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대부분의 개별적 전투에서 일단은 수적 우위를 점한 채로 싸워 이기려 했으며, 그렇지 못한 상황에서는 전력의 열세를 극복할 만한 완벽한 함정을 팠거나, 정치적 이유로 어쩔 수 없이 출정해야 했을 때는 적을 염탐하며 천천히 지연작전을 벌이기도 했고, 이도 저도 믿을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극한의 상황에서는 정신적인 측면을 강조하여 ‘사즉생 생즉사(死卽生 生卽死)’로 배수의 진을 친 것이다.
그는 이렇게 각 전투마다 그야말로, 본질적으로 이길 수밖에 없는 전투를 추구한 것이다.
즉, 개별 전투마다 항상 사전에 철저한 준비를 선행하고, 치밀하고 승산이 매우 높은 전략으로 임함으로써, 대체적으로 패하려야 패할 수 없는 전쟁을 치른 것이다.
두 번째 인물로, 중국 한나라 장량(장자방)의 예이다.
장량의 집안은 원래 전국시대 한나라 재상이라는 고위직 출신이지만, 조국이 진나라에 의해 멸망했고, 이후 가문은 몰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그는 자기 조국에 대한 복수의 일환으로 진나라 시황제에 대한 암살까지 감행하다가 결국 실패로 돌아가, 도망자 신세가 되어 지방 소도시로 숨어들어야 했고, 거기에서 이름과 성마저 모두 바꾸고, 오랜 세월을 쥐 죽은 듯 숨어 살아야만 했었다.
이때부터, 그는 어떠한 삶의 극한 상황에서도 인내심을 가지고, 모든 일을 찬찬히 살피는 성정을 지닐 수 있도록 자기 내면을 점차 수련해 나갔으며, 어떠한 급변하는 사태를 만나더라도 결코 두려워하지 않고, 그 사태의 본질을 제대로 꿰뚫어 볼 줄 알아서, 마침내 한 고조 ‘유방’으로부터 “ 군막에서 계책을 세워 천리 밖에서 이미 승리를 결정짓는 장자방”이라고 칭찬을 들을 정도였다고 전한다.
한 번은, 진나라 수도인 함양을 공격해 들어갈 때, 자신들의 수적 부족을 숨기고, 적들을 기만시키기 위해서, 수많은 깃발과 수많은 가짜 군량을 적에게 먼저 보여줌으로써, 적군 장수가 겁을 먹게 하여 투항을 받아내었고, 또, 적군 병사들이 끝까지 협조하지 않을 수 있음을 예견하여, 함양을 공격하기 이전에 장수를 잃은 적군 병사 진영을 먼저 쳐서 무너뜨림으로써, 수도인 함양으로 거의‘무혈입성’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기록도 있다.
그리고, 유방을 도와 천하통일을 이루고, 통일국가의 기반을 닦고 난 뒤에는, 돌연 더 이상 권력에 뜻을 품지 않고, 지방 도시의 유후가 되어 조용히 물러났고, 말년을 대체로 평온하게 보냈다.
이런 그의 행보는, 과연 놀랍게도, 후일에 벌어진 유방의 조강지처인 ‘여태후’의 엄청난 피바람으로부터 그를 모면하게 해 주었다.
그는 여태후의 권력욕, 증오심, 토사구팽의 칼부림, 그 밖의 많은 잔인한 행보들을 미리 내다본 듯, 이에 철저히 대비를 하였으며, 그래서 절대 지지 않는 권력 게임을 선택했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만약 어떤 일이나 사태에 있어서, 과연 본질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겠으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그 답은 아마 당신의 ‘지극한 마음과 궁리(窮理)’ 속에 담겨 있을 수 있겠다.
욕심내지 않고 차분히 사태를 관조하고, 힘써 수고를 마다하지 않으면서, 꾸준히 본질을 헤아리려 한다면, 언젠가는 점차 그 본질이 명료해질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즉, 어떠한 난관에도 절대 조급해하지 않고,
“보일 때까지 들여다보아라. 보일 때까지 궁리하여라. 그러면 언젠가는 또렷하게 보일 것이다!”
결론적으로 볼 때,
무엇이든 문제를 해결하려면, 그 본질적인 해결책을 생각해 보는 것이 우선이다.
그런데 만약 얕은 수로 다행히 쉽게 어떤 문제를 잘 해결하였다고 가정해 보아라. 그 해결책은 근원적 혹은 항구적 처방이 결코 될 수가 없어서, 금방 재발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래서, 세상에 공짜는 없고, 쉽게 해결되는 것이 더더욱 없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본질적 해결책이라는 것은 살짝 ‘단세포적 해결책’이나 ‘임시방편적 해결책‘의 수면 아래에 숨겨져 있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설령 그것을 잘 찾아내었다고 하더라도 별로 구미가 당기지 않을 가능성이 크고, 실천하기에 힘이 많이 들거나 참을성을 많이 요구하는 것이라서, 보통 많이들 외면하고 싶어 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문제라도 그 해결책으로서, 이러한 본질적 해결책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항상 어정쩡한 상태로 봉합된 미봉책의 상태로 머물러 있게 될 것이어서, 그 문제가 언제든 다시 네 삶의 전면에 대두될 수 있다.
따라서, 때로 시간이 다소 걸리고 힘이 들더라도,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먼저 바탕에 단단히 깔고서, 꼭 필요하다면 수동적 수단 혹은 보조적 수단을 살짝 곁들여 나가는 것이 좋겠다.
이렇게 매사 본질 우선으로 접근하다 보면, 아주 드라마틱하게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못하더라도, 일단 한번 제대로 해결이 되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재발도 거의 없을뿐더러, 모든 것이 자연스러워져서, 마치 자연 면역력이 생겨난 듯, 별로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정신적·육체적·사회적‘자기 보호 회로'가 자동으로 작동하게 될 것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