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점에 사로잡히지 말아라
하나의 관점에 사로잡히지 말아라!
남의 관점에 사로잡히지 말아라,
자기 관점에도 얽매이지 말아라!
세상 모든 일에는 아주 다양한 관점(perspective)이 있을 수밖에 없음을 우리는 늘 많이 느낀다.
그런데, 사실 그러한 다양한 관점들은, 저마다 모두 그럴싸한 논리를 가지고 있어서, 통째로 꿰어서 서로 비교를 잘해보아야, 비로소 서로의 차이점과 우열, 그리고, 그 정확한 가치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평소 많이 겪듯, 단순히 하나의 관점에 얽매이거나 사로잡히다 보면, 비록 ‘확증편향’까지 가지는 않더라도, 어느덧 진실은 온데간데없어지고, 자기 생각의 균형을 잃어버리게 되어, 그릇된 판단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뒤늦게 이를 알아차려, 반성해 보아도, 후회를 해 보아도 아무 소용이 없는 노릇이다.
그럼 여기서, 오늘날 이렇게 사회 여러 분야에 만연된 ‘관점의 볼모’가 되어 사리 판단을 잘 못하는 사례를 몇 개 살펴보자.
그 첫째 예로, ‘진영논리’의 문제이다.
정치적 진영논리에 사로잡혀, 한쪽은 A를 주장하고 다른 한쪽은 B를 주장하는 상황이고, 또 다른 소수의 이익 단체들은 A도, B도 아닌 절충안을 주장하고, 또 어떤 일부 단체는 A와 B를 모두 반대하는 상황이라면, 과연 당신은 어떻게 판단하고, 어떤 방식으로 처신하여야 하겠는가?
이런 상황에서는, 여러 주장하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내용의 요점과 그 장단점을 빠르게 캐치하고 비교할 수 있어야, 네 생각의 보다 온전함을 제대로 확보할 수 있겠다.
이렇게 하여, 당신 나름의 정답을 잘 구했다면, 머릿속에서 앞으로의 합리적 대응 시나리오를 잘 그려낼 수 있을 것이고, 차분히 기회를 보아서 단계적으로 이를 꺼내놓으면 될 것이다.
하나의 관점에 사로잡히지 말아라(그림; grab.careers)
이렇게 당신이 이미 여러 관점을 모두 섭렵했다고 본다면, 네 주장이 매우 타당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세상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
온갖 진영논리에 휩싸인 사람들은 네 주장이 아무리 합리적이고, 맞는 이야기라고 할지라도, 결코 쉽게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도 별로 서운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진영논리라는 것은 공정성과 합리성 등이 매우 결여되어 있고, 무엇보다 평정심을 잃어버린 상태를 의미하므로, 그 끝은 대개 승자도 패자도 없는 모두가 실패하는 길이 되며, 매우 ‘허망함’만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당신은 분명히 나름의 진실한 정답을 이미 마음속에 굳혔고, 이미 어느 정도의 확신으로 마음이 편안해진 상태라면, 그들의 진영논리에 같이 휘말려 허우적대거나, 나중에 크게 허망해하는 일이 결코 없을 것이다.
오직 담담한 자세, 자신감 있는 자세를 끝까지 잘 견지해 나가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당신은 그 누구보다도 변화하는 상황에 대처 또한 현명하게 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는 하나의 관점에 결코 매몰되지 않고, 평정심을 지켜내었으며, 보다 많은 관점을 파악하고 지배한 너를 위한 보상일 수가 있겠다.
만약, 자기 양심을 속이고, 잔머리를 굴려, 무리하게 어느 한쪽으로 줄을 잘 서서, 자기 편익을 챙기려 하는 이가 있다면, 이는 아주 저급한 이기심의 발로이며, 이러한 편협된 사고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그 끝 또한 편치 않을 가능성이 크다.
둘째 예로, ‘님비현상’의 문제이다.
당신이 살고 있는 집 주변에 대규모의 ‘쓰레기 소각장’을 건설하기로 발표되었다고 가정을 해보자.
동네에 살고 있는 주민 중 일부는 지역 공동체의 문제 해결에 동조하여 순수한 마음으로 찬성할 수 있고, 어떤 주민은 생활이 팍팍하여 보상금을 받을 생각에 환영할 것이고, 어떤 주민은 자녀가 많아서 학자금 지원을 해주는 조건부로 허락하겠다고 주장하고, 어떤 주민은 자기 땅값이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여 반대를 할 것이고, 또 어떤 주민은 소각장에서 날아올 미세먼지 때문에 ‘절대 불가’라고 현수막을 써 붙일 것이고, 또 다른 주민은 자기 집값이 하락할 것을 걱정하여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가 반대 시위를 하겠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다.
실제로도 많은 우리 삶의 현장에서, 하나의 사안을 두고서도, 이러한 관점 외에 훨씬 더 많은 관점과 주장이 부딪힐 수 있겠다.
이렇게 주민들의 복잡한 이해관계만큼이나, 복잡한 관점이 산재해 있을 것이고, 여기에 더해, 쓰레기 소각장을 건설하려는 건설 측(정부, 지자체, 시행사, 건설사 등)의 의도나 입장 또한 그리 만만하지 않을 것이다.
이럴 경우, 당신은 가능한 한 이들 각 주장의 숨겨진 의도 혹은 행간에 감춰진 꼼수 등을 특히 잘 파악해 볼 필요가 있겠다.
그런 후, 차분하게 그것들의 내용과 진실을 잘 확인하고 비교하여, 자신만의 정답(자신이 작심하고 생각해 낸 통합적인 관점)을 정리해 두어라.
한편, 이렇게 쓰레기 소각장을 둘러싼 이해관계나 입장들이 다양하고 첨예할 것이니, 이 과정에서 다소간의 충돌은 불가피할 수 있다.
그런데 당신이 이 과정에 동참하여 원만히 해결을 잘해 나가려면, 일단 여러 주장을 잘 이해하려 해야 하고, 항상 통찰적 자세를 취하는 것이 좋다.
즉, 일단은 본인의 주장을 내려놓고, 많은 관점에 대한 팩트와 객관적인 사실만을 위주로 접근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래야 여러 토론 시에도 네 말의 합리성과 일관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그리고, 당신이 먼저 많은 관점을 선점하여 그 장단점을 꿰차야 여러 단계의 이해 조절 시에도 원만하고 합리적인 의견을 피력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건설 측이 주장하는 사업의 타당성이나 문제점(투명한 공개의 부족, 주민과 소통의 부족, 비합리성 등)도 잘 파악하여야 하고, 각 주민들의 반대하는 입장(반대를 하는 이유나 근거) 또한 두루 잘 살펴야 한다.
이때 만약, 네가 장악한 관점이 3개이고, 상대방이 장악한 관점이 5개라만, 당연히 당신은 그 어떤 토론이나 협상 과정에서도 상대자를 대응하기 벅찰 것이고, 말발에서도 밀릴 수밖에 없을 것이 아니겠는가?
또한, 관점의 수만큼이나 관점의 수준도 매우 중요할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대체적으로는, 자기 개인적 이익을 챙기려는 개인적 관점, 공동체의 이익을 챙겨야 한다는 공익적 관점, 사회적 조화와 약자에 대한 보호가 우선이라는 사회적 관점 등이 서로 대립하고 충돌할 수도 있다.
그런데, 만약 당신이 개인적 관점만을 너무 내세우다가는 결코 주변의 지지를 받기 어려울 것이며, 보다 공익적 관점이나 사회적 관점 등을 두루 어필하여야, 비로소 네 주장이 힘을 얻을 수 있고, 최종적으로 선택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당신이 그렇게 열심히 노력을 하였는데도 불구하고, 최종 결과는 네가 주장한 안(案)대로 안 될 수도 있겠다.
첨예한 이익적(개인적) 관점의 이슈 지배력이 생각보다 클 것이니, 그럴 수도 충분히 있다.
그렇지만, 너무 염려할 필요가 없다.
네가 그 결정 과정에 충분히 많은 관점을 선점하여 이해 및 대응을 잘하였고, 그 대부분 안들의 장단점을 꿰찼다면, 그 향후 대응책 마련도 그만큼 쉬워져 있을 것이고, 최종안 또한 네 의견과 그리 멀지 않은 안으로 선택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셋째 예로, ‘생필품 사재기’의 문제이다.
글로벌 재난이나 경제위기의 상황에서, 우리는 생필품 사재기를 서슴없이 하는 이웃 모습들을 많이 보아왔다.
이러한 현상은, 한편으로는 인간이 살아남기 위한 기본적 본능에 가까운 행동이라고도 볼 수 있겠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다소 이성적이지 못하고, 객관적이지 못하며, 지나치게 감성과 감정에 치우치는 판단의 결과라는 모순이 있음을, 나중에 지나고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경험적으로 여러 글로벌 위기 때마다 라면, 물, 쌀, 인스턴트식품, 화장지, 위생용품 등의 생필품 사재기를 어김없이 겪어온 바 있다.
최근에도,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의 생필품 사재기가 극성을 부린 경험이 있었고, 더 최근에는 일본의 방사능 오염수 해양 방류에 대한 발표를 시점 하여, 천일염 사재기, 해산물 사재기 등으로 골머리를 앓은 바도 있다.
이러한 상황을 각자가 살아남기 위한 본능이라고 인정해 주기보다는, 차라리 ‘이기주의’에 가깝다고 솔직히 평가하는 것이 더 합당하겠다, 자기들만 챙기면 이웃들은 굶어 죽으라는 꼴이 될 것이니.
모든 사람들이 그러하지는 않지만,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상황에서도, 들쥐 떼처럼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대형마트를, 백화점을, 동네 작은 슈퍼마저도 마구 할퀴고 다니는 것이다.
제발 이렇게 즉흥적으로 몰려다니는 행동만은 그만하고, 한 가지 관점에 매몰되지도 말고, 자기 이성을 잘 작동시키고, 보다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판단을 행함으로써 모든 것을 현명하게 대처하고 처신하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자기에게도 훨씬 유리하다는 것을 좀 깨달아야 하겠다.
모두들, 도대체 이웃보다 얼마나 더 오래 살고 싶은 것인지를 잘 따져 볼 일이다!
어쨌든, 이럴 때일수록 자기 이성을 잘 챙기어, 여러 과학 채널이나, 일반 뉴스채널 등 다양한 매체와 관련 서적 등을 통해 종합적인 지식을 잘 취합하고, 이렇게 취합한 지식을 바탕으로 자기만의 이성적 판단을 잘 내려서, 무엇보다 여러 다양한 관점들을 통합적으로 섭렵하여, 자신의 처신 방향을 잘 정한다면, 사회의 실시간 변화 상황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무엇보다 이웃과 동고동락하면서, 흔들림 없는 참다운 생을 누릴 수 있지 않겠는가?
만약, 위기의 상황이라고 하여, 이웃 사람이 이리저리 뛰어다닌다고 할 때, 자기마저도 뛰어다닐 필요가 전혀 없다.
자신이 먼저 이성을 잘 붙들어 매고, 자리를 굳게 지켜 나간다면, 이는 주변으로도 좋은 영향을 많이 줄 것이고, 무엇보다 나중에 회고해 보면, 자신이 당시에 상당히 가치 있는 행동을 했음을 인지하여, 매우 만족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또 여기서, 아주 중요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점은, 자신의 관점에 매몰되어 자기만이 살기 위한 심리에 기반한 ‘사재기’를 그리 쉽게 결정한다면, 자기 이웃은 누가 지켜주겠는가?
그래서 자기 이웃도 못 지키는 상황이라면, 그러고서도 과연 멀리 살고 있는 자기 아들, 딸, 형제 혹은 부모를 지키겠다는 욕심을 부린다면, 이는 ‘어불성설’에 다름 아니다.
우리가, 세상의 이치를 좀 크게 보면, 결국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공동체의 존속이 중요한 것이지, 개별적 생명의 지탱 자체는 추구하려야 추구할 수 없는 가치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즉, 자기 혼자 살아남겠다는 것은, 자기 혼자 살아남은 후 바로 이웃을 따라 죽어야 한다는 것과 엇비슷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볼 때, 우리는 그 어떤 사안에도, 그 어떤 대상에도 아주 다양한 관점이 존재한다는 점을 이해하고, 이를 자신의 지혜와 내공으로 하나로 움켜잡아 해석하고, 자기만의 것으로 잘 만들고 소화하여, 나름의 훌륭한 결론을 스스로 도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하여야, 매사 실수가 적고, 보다 정답에 가까운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이니, 제발 처음부터 여러 관점들을 배제하고 한두 관점에 매몰되는 일을 결코 없어야 하겠다.
또한, 어떤 사안이라도 극도의 확증편향과 대립적 구도로 몰고 가는 것은 아주 최악의 상황을 만들어 낼 수 있음을 잘 인지하여야 하겠다.
물론 인터넷과 SNS가 발달한 작금의 사회적 문화에서, 이러한 외로울 수 있는 자기 처신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오늘날 이렇게 일그러지고 찢어진 사회를 우리가 옳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대로 인정할 수도 없지 않겠는가?
세상 어느 일에도 아주 절대적인 관점은 없을 것이며, 절대적인 하나의 답으로 귀결되는 경우는 더더욱 없다고 보면 된다.
말도 안 되는 단 하나의 깃발로, 그 깃발이 무슨 컬러이든 간에, 주변을 ‘혹세무민’하려는 자가 제발 없었으면 좋겠다!
차라리, 중요한 사안일수록 아주 다양한 관점들을 잘 이해 및 통합하고, 항상 상대를 존중하는 자세를 취하여 시너지 있는 소통을 보탬으로써, 하나의 방향으로 절충 혹은 적절한 합의를 이루어 내어야 할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더 맞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