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는 그것을 알아보는 자에게만 봉사한다

어떠한 가치도 그것을 알아보는 자를 위해서만 봉사한다!

by 신정수


작은 가치도, 큰 가치도 그것을 알아보는 자를 위해서만 봉사한다!


어떤 것도 그 가치를 제대로 알아볼 줄 아는 안목이 있는 자에게만 그것의 사용을 허락하는 법이다.

그리고, 그러한 안목을 얻기 위해서는 항상 무엇이든 진심으로 들여다보아야 하고, 보일 때까지 보아야 하며, 오로지 철저한 자기 성찰과 통찰 위에서만이 자신의 반듯한 혜안(지혜로운 안목, 큰 안목)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똑같은 물건을 볼 때도, 아직 많이 부족한 인물이나 엉터리 인물이 보기에는 별로 소용이 없어 보일 수 있을 것이고, 지혜로운 눈은 가진 자가 볼 때는 보석으로 보일 수도 있다.

또, 똑같은 어떤 일이나 아이디어에 대해서 평가를 할 때도, 생각이 짧은 인물이 보기에는 그냥 별 특징이 없는 평범한 아이디어로 보일 수 있을 것이고, 큰 안목을 가진 사람이 볼 때는 그것을 약간만 더 수정하거나, 거기에 다른 아이디어를 조금만 더 추가하면 엄청나게 큰 아이디어로 커질 수 있음을 직감할 수도 있다.


이와 관련된 사례를 한 가지 들어보자.

춘추시대 송(宋) 나라에 빨래를 가업으로 해서 몇 대째 이어가던 집안이 있었다고 한다.

이 집안에는 대대로 내려오던 비법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겨울에 빨래를 하기 위해 찬물에 손을 담가도 동상에 걸리지도, 손을 트게 하지도 않게 하는 크림을 만드는 비법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떤 점잖은 나그네가 소문을 듣고 찾아와서 그 비법을 자기에게 팔라고 하는 것이었다.

가족들은 처음에는 망설이다가, 그 비법을 팔게 되면, 많은 대가(거금)를 받을 수 있을 것이고, 또 설령 그 비법을 팔더라도, 자기 집안은 여전히 그 비법을 그대로 이용할 수 있으니, 선뜻 그 비법을 팔았다.


가치는 그것을 알아보는 자에게만 봉사한다.jpg 혹한의 겨울 전투(그림;.bastillepost.com/hongkong/article)



이렇게 하여, 그 비법을 사게 된 나그네는, 그것을 가지고서, 그 비법이 꼭 필요할 것이라고 짐작되는 오나라로 말을 타고 떠났다.

그가 오나라에 당도하여, 오나라 왕에게 아뢰기를,


“왕이시여, 이 비법(크림)을 사용하면, 겨울철에 자주 쳐들어오는 지긋지긋한 월나라를 능히 무찌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오나라 왕은 크게 기뻐하여, 이 비법을 채용하기로 하였고, 그 나그네의 의견에 감복하여, 그를 장군으로 임명하게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겨울이 오자 월나라가 쳐들어왔고, 나그네는 선봉장으로 임명되어 월나라 군대를 대적하였다. 전쟁의 결과는 뻔한 것이었다.

오나라가 견벽거수(적군이 스스로 지쳐 녹아 떨어질 때까지 공격을 하지 않고, 수비만 하면서 계속 기다림)로 장기전을 펼치니, 월나라 병사들은 혹한을 맞아 손이 트고, 동상에 걸려 전투를 하기 어려웠으나, 오나라 병사들은 손이 멀쩡하여, 무기를 마음대로 휘두르니 월나라를 크게 무찌른 것이다.

이후 그 나그네 출신의 장군에게는 많은 상금과 영지(땅)가 하사되었고, 제후로도 봉해졌다고 한다.

이렇게 작은 크림 하나를 볼 때도, 어떤 사람은 단순히 자신의 보신에만 연결 지어 생각을 하였는데, 그 나그네는 그것의 가치를 단숨에 알아보고 아주 크게 사용한 것이다.


그럼 여기서, 이렇게 어떤 물건이나 세상사의 여러 가치들을 제대로 잘 볼 줄 아는 지혜를 가지는 방법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보도록 하자.


첫째, 큰 안목으로 길게 길게 보아야 한다.


보통 우리가 현재의 삶에 찌들어 살다 보면, 눈앞의 이익을 위해서 아웅다웅하는 일이 참으로 많으며, 한 치 앞도 못 내다보고 욕심을 부리기도 한다.

이 모두가 나중에 돌이켜 보게 되면, 참으로 못난 행동이었고, 부질없는 행위였으며, 아둔한 자신이 원망스럽기도 하고, 아무 소용도 없이 허송세월을 보낸 자신에게 한숨이 나오기도 한다.


모쪼록 이러한 상황을 벗어나 스스로 현명해지려면, 항상 현재에 매몰되어 있지 말고, 현시점의 볼모가 되어있지도 말고, 당장 지금 이후에 벌어질 일 혹은 다소 미래에 벌어질 상황을 잘 간파 및 이해하려고 해야 한다.

또한, 세상 형편의 변화에 주목하여, 시대의 흐름을 선도할 수 있어야, 그야말로 따르는 자(follower)가 아닌, 세상을 이끄는 자 혹은 선도자(first mover)가 될 수 있겠다.

이러한 큰 안목은 개인의 타고난 능력인 측면도 일부는 있겠지만, 더 중요한 포인트는 자신의 장기적 노력의 여부나 습관 들이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체득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주식, 암호화폐, 부동산, 기타의 금융투자 등을 할 때도 장기적인 관점, 미래의 변화를 이해하려는 관점 등을 꿰차는 사람일수록, 결국 투자에 성공하는 사례가 많은 것만 보아도, 이렇게 길게 보는 안목을 스스로 체득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알 수 있을 것 같다.


둘째, 단번에 파악하고, 단번에 알아보아라.


이렇게 모든 것의 가치를 단번에 파악하고, 단번에 알아볼 줄 아는 능력으로는 보통 스티브 잡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등이 제품을 발명하거나, 연구에 몰입할 때 많이 적용했다는 직관력(intuition)과 워런 버핏, 일론 머스크, 마크 저커버그 등이 자신들의 투자 결정 시에 많이 적용했다는 통찰력(insight)을 많이들 꼽는 편이다.


예를 들어, 스티브 잡스는 당시 아이폰과 같은 손에 들고 다니는 인터넷 환경에 매료되어, 노트북의 활용을 포함한 대부분의 인간 필요 행위에 대한 기능들을 작은 스마트폰 안에 넣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직관적으로 자기 뇌리에 꽂혔고, 이러한 형태의 스마트폰이 앞으로 인간에게 꼭 필요할 것이니, 이를 빠르게 개발하여 전 세계 사람들에게 공급게 된다면, 인간의 생활을 혁신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던 것이다.

이러한 직관을 바탕으로 한 그의 큰 생각은, 단순한 사업 아이디어(business model)를 뛰어넘어, 어쩌면 자신의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감지라도 한 듯, 이 땅에서의 자기 사명으로도 생각한 것 같다.


또, 투자 전문가인 워런 버핏은 엄청난 양의 독서를 통한 지식을 기반으로 자신의 투자 전략을 치밀하게 세우는 인물로 유명하다.

성공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객관성과 통찰적 능력을 기반으로 해야 하는 것이지, 대충 감으로 하거나, 무식하면서 투자를 하거나, 즉흥적으로 투자를 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만약, 무식하다면 용감해질 수는 있겠지만, 반대급부적으로 그만큼 성공의 확률은 떨어지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워런 버핏은 오로지 엄청난 독서와 많은 투자 경험 등을 쌓아서 자기 객관적 인지능력과 통찰력을 확보할 수 있었으며, 그의 이러한 대단한 능력은 그를 세기적 ‘가치 투자’의 대명사로 만들어 놓게 된 것이겠다.

여기서, 직관력(intuition)과 통찰력(insight)의 영어 접두어로 모두 ‘in-“을 썼다는 것에 한 번 주목해 볼 필요가 있겠다.

이는 무엇보다 자신을 둘러싼 외부 환경을 잘 보아야 한다는 것 이상으로 자기 내면도 동시에 잘 들여다보고서, 항상 성찰을 해나가야 한다는 의미라고도 한번 해석해 볼 수가 있겠다.

즉, 진지한 자기 성찰 위에서만이 통찰적 능력이 얻을 수 있으며, 이러한 통찰력의 기반이 어느 정도 있어야, 비로소 직관력도 생겨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어쨌든, 이러한 자기 통찰력과 직관력의 토대를 제대로 만들어서, 그 위에 자기 그릇의 크기를 크게 키워놓지 않으면, 결코 미래 가치를 제대로 알아보기가 힘들다는 의미라고 볼 수 있겠다.


셋째, 모든 지식이나 대화는 명료해야 한다.


어떤 대화나 글은, 그것이 명료하지 않으면 결코 발전적이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지식이나 지혜라는 것은 현재의 수준을 기반으로 조금이라도 더 개선되는 방식으로 그 발전이 이루어져 나가는 것이므로, 만약 현재의 상태 자체가 명확하지 않거나, 그 의미가 명료하지 못하다면, 제대로 된 지식의 공유도 없을 것이고, 그것의 발전 방향 자체가 제대로 잡히지 못하게 될 것이 아니겠는가?

대부분의 일, 작품, 기술 등은, 현재의 상태가 명확하게 기술되고, 현재의 수준이 명료하게 정리되어 있어야, 비로소 이에 대한 평가를 통해 조금이라도 더 발전되어 나가는 형국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반복적 발전 경험이 축적되어, 개인적으로는 진정한 자기 내공이 완성되어 갈 것이고, 사회적으로는 집단지식 혹은 집단지성의 수준도 크게 높아지게 될 것이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인 관계에서 여러 대화를 하거나, 많은 서류를 주고받다 보면, 자신이 전달하려는 메시지 혹은 그 주장하려는 바가 모호하거나, 자기의 명확한 입장을 끝끝내 밝히지 않고서, 상대방의 입장만 캐묻는 경우가 많이 발생한다.

어떻게 생각하면, 이러한 모습들은 참으로 어처구니없거나, 예의 없는 행동이라고 하겠다.


물론 자기 방어나 처세술이 필요하여, 예의고, 입장이고 모두 따질 처지가 아닌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한다면, 그렇게 이해를 해야 되겠지만, 그러한 특별한 상황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아주 습관적으로 모호성을 달고 사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이는 장기적인 관점으로 보면, 자신에게도 전혀 도움이 안 될 것이며, 사회적으로는 더더욱 도움이 못 되고, 불신 풍조만 키워나갈 수 있다.


그러니, 대부분의 사회관계나 일 처리에 있어서, 좀 부족해도 좋으니, 무엇보다 자기 입장과 주장을 항상 명료하게 가지려 하는 것이 좋겠다.

그래야, 상대방이 당신의 입장이나 의견을 잘 들어보고, 보다 용이하게, 잘된 점에 대해서는 박수를 쳐줄 것이고, 잘못된 점은 고쳐주기도 할 것이고, 또 추가적으로 많은 조언도 덧붙여 줄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만약, 자기 입장이나 주장의 의미 자체가 모호하다면, 과연 누가 어떻게 당신을 제대로 도와줄 수 있을 것인가?

매사 모호함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모호한 미래, 불확실한 미래를 키운다는 점을 꼭 잘 기억해야 하겠다.


넷째, 항상 유연함을 지녀라.


일단, 세상에는 정답이 없다는 것을 먼저 인정하자!

어쩌면, 정답은 인간이 모르는 영역이니, 항상 그 정답도 변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단지, 인간이 편의상 정답을 만들어 놓고, 사물을 평가하고, 사람을 평가하고, 세상사를 조목조목 해석하려고 할 뿐인 것이다.

그 어떤 과학도 자연이나 우주 세계를 완벽에 가까이 설명해 주는 이론은 없다. 단지 그 오차의 수정에 수정을 계속 거듭해 나가면서, 그만큼 자연이나 우주에 대한 이해에 다가서려고 노력하는 인간의 본능적 욕구가 있을 뿐인 것이다.


따라서, 항상 모든 것에 겸손하게 접근해야 할 것이며, 자칫 지나친 허세나 가식적 자랑 따위는 일종의 거품일 것이며, 마치 거짓과도 유사할 것이니 절대 경계해야 하겠다.

차라리 허세나 자랑, 가오(폼) 등이 많이 고플 때는 차라리, 그것들을 자기 자긍심이나 자부심 혹은 명예심이나 자존감 등으로 방향을 한번 틀어 보는 것이 좋겠다.


그래서, 당신이 아무리 대단한 능력의 소유자로서, 어떤 사물이나 세상사에 대해 그 가치를 확실하게 평가했다고 하여도, 그게 결코 정답은 아닌 것이다!

세상 모든 것이 항상 변화에 변화를 거듭하고 있으니, 미래에는 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를 것이며, 그 가치 자체도 계속 바뀌어져 갈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제발 항상 겸손과 자숙을 가까이하고, 늘 반성하고 성찰하는 삶이 좋을 것이며, 그 어떤 것에도 가치를 냉철하게 평가는 하되, 그 값을 정확히 매기기는 하되, 절대 매사 유연한 태도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볼 때,

큰 안목은 곧 긴 안목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항상 견벽거수의 마음으로 무엇이든 길게 길게 보아야, 어떤 것에서도 참다운 지혜를 얻을 수 있겠다.


또, 정신적 혹은 물질적 그 어떤 가치도 그것을 제대로 알아보는 자에게만 봉사를 할 것이니, 항상 원하는 바, 명료하게 보일 때까지 기꺼이 수고하여 보려는 겸손한 자세, 항상 주변과 자기 내면의 변화에 주목하고, 기꺼이 그 변화를 수용하려는 유연한 자세가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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