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몸이 어디에 있든, 네 처지가 현재 어떠하든, 아무 상관이 없다. 바탕부터 잘 채워 올리면, 원하는 곳까지 올린다!
뒤가 약한 사람은 맨 앞에 나서더라도 안 된다.
자중하고 뒤부터 챙겨라.
자제하고 내면부터 챙겨라.
천천히 바탕부터 채워라.
성급함과 욕심은 최악이다!
내면이 약한 사람이 호연지기만을 내세우게 되면,
당신 속에 거품이 빠르게 일어나,
네 온전함을 온통 삼켜버릴 것이며,
네 이웃에게는 크나큰 불편을 줄 수 있다.
스스로를 잘 알아, 자기 내공부터 챙겨라!
그릇이 작은 사람이 리더로 나아가기를 고집하면,
그것은 불행으로 향하는 긴 터널의 시작이 될 것이요,
조직을 와해하고 나락으로 빠뜨릴 수 있다.
자신에 맞지 않는 계획은 빠르게 버릴수록 좋다.
욕심일랑 얼른 내려놓아라!
누구나, 어떤 일에 있어서, 앞에 나서기를 좋아하는 그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리더로서 많은 이들을 위해 좋은 역할을 해주고, 개인이나 조직의 성공을 위해 의미가 있는 일을 해준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히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점이 있다.
만약 앞에 나서기를 자청한 사람이 뒤가 매우 약한 사람이라면, 그의 선택은 개인적으로나 조직에서나 큰 악재가 될 수 있을 것이며, 자칫 재앙이 되는 경우도 발생한다.
비유하자면, 장수 감이 안 되는 사람이, 호연지기 하나만으로 혹은 계산 없는 의협심으로 전쟁의 선봉장을 자처하여 나아갔다가, 전쟁에도 패하고 부하 장졸들도 모두 잃게 되는 크나큰 실수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신이 과감히 앞에 나설 때와 물러나 있어야 할 때를 분명히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즉, 누구나 앞에 나서기 전에 어김없이 뒤(어떤 일을 능히 감당하여 행함에 있어서 자신의 준비된 정도)부터 먼저 살펴 챙기고, 그 준비된 수준을 스스로 인정할 수 있는 정도가 되면, 그때서야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좋다.
자칫 무모한 선봉장이 돌이킬 수 없는 과오를 범하여 자신의 몰락은 물론이고, 조직의 존립 자체를 와해하는 우를 범해서는 절대 안 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공격 앞으로!”를 외치기 이전에, 자기 존립의 기초가 되는 자기 방어나 수성(守城)의 수준을 먼저 철저히 챙기고서, 그다음에 앞으로 나아가도 결코 늦지 않을 것이며, 그렇게 하는 것이 또한 자기를 포함한 모두를 위한 마땅한 도리일 것이며, 결국 최종적인 성공을 위해서도 지름길이 될 것이다.
이와 관련된 몇 가지 사례를 한번 살펴보자.
첫째, 한나라 고제 유방(劉邦)은 천하를 통일한 후, 다른 기라성 같은 선봉장 역할을 한 공신들을 모두 제치고, 소하(蕭何)를 최고의 일등 공신으로 추켜세웠다.
당시 소하(蕭何)는 전쟁 때 항상 후방에서 물자나 병력을 지원하는 티가 별로 나지 않는 궂은일을 도맡아 했기 때문에, 자신의 주군인 유방이 그렇게 크게 알아보아 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었는데, 주군께서 그렇게 후하게 평해 주시어 사뭇 감동을 먹었다고 한다.
유방은 후방에서 병참 지원만 했던 소하의 공로를 시기하는 최전방의 장수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소하는 사냥을 지휘하는 사람이고, 너희는 사냥개에 불과할 뿐이다.”
“고대 전쟁에서 엄청난 병력과 물자의 이동” (그림;.lsqww.com/zh-tw/lishimishi/lsjs)
소하는 이렇게 자신의 공명심(功名心; 공을 세워서 이름을 널리 알리고 싶어 하는 마음)을 철저히 절제하고, 뒤에서 묵묵히 그러나 초지일관의 마음으로 유방을 도운 결과, 그의 진심이 결국 유방을 감동시킨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그의 맞수인 한신 장군이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어 나중에 반란을 일으켰다가 토사구팽을 당한 것과 비교하면, 사뭇 대조적인 결과가 나온 것이겠다.
이렇게 하여 그는, 결코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또 앞에 별로 나서지도 않았지만, 최전방 전선에 필요한 온갖 병력, 병기, 물자, 군량 등을 놀라울 만큼, 마치 화수분 단지처럼, 엄청나고 끈질기게 공급해 내는 데 성공함으로써,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루어 내는 데 있어서, 스스로 최고의 수훈을 세운 것이다.
또한, 그보다 연배는 좀 아래였지만, 친구이자 경쟁자이기도 했던 장량(張良) 역시, 워낙 몸이 약해 골골대었기에, 항상 뒷전에 머물러 있었지만, 스스로 병법, 전술 공부 등을 엄청나게 많이 하여 내공을 쌓은 터라, 천 리 밖의 싸움터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세를 미리 짐작하여 작전을 시간대별로 세워 전방 장수들에게 지령을 전했다고 전해질 정도이다.
그야말로 뒤에 물어나 있었지만, 그 멀고 넓게 펼쳐진 전장을 손바닥 쥐락펴락하듯 움직여 나갔던 것이다.
장량 역시나, 이러한 그의 대단한 능력을 주군인 유방이 인정하여 끝까지 최고의 신뢰를 보내주었고, 엄청나게 험악했던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평생을 비교적 무탈하게 지낼 수 있었다.
위에서도 보듯이, 소하와 장량은 모두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화려함의 뒷전에서도 오히려 더 큰 자기 역사이자, 모두의 역사를 훌륭히 만들어 낸 것이다.
이렇게 개인이든 조직이든 간에, 실제의 전장에서 혹은 삶의 여러 현장에서, 항상 먼저 앞서나가서 보란 듯이 맹위를 떨치고, 크게 공을 내세우려는 움직임도 충분히 선택할 수 있겠지만, 항상 그보다 더 우선적이고 근본적으로 챙겨야 할 것이, 뒤를 아주 세밀하고 튼튼히 잘 챙겨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 결국 마지막에 최종적 승리의 깃발을 올릴 수 있을 것이니.
둘째, 조선시대 인조반정이 성공할 수 있게 한 가장 큰 공로자 중 한 사람인 ‘이괄’은 논공행상에서 ‘2등 공신’으로 밀린 후 외직으로 축출된 것에 대해 불만을 크게 품고, 물론 중앙의 서인들이 그와 그의 아들을 무리하게 역모로 몰아세운 원인도 있었겠지만, 난(亂)을 일으켜 처음에는 크게 성공하는 듯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내란의 후반부에 이르러 자신에 데리고 있던 부하장수들에게 배신을 당하여, 취침 중에 목이 잘리는 비극을 맡는다.
즉, 이괄은 뒤가 아주 약한 상태(내란의 명분 자체가 매우 부족했고, 무엇보다도 자신의 사리사욕에 가까운 상태)에서, 오직 자신의 공명심(功名心) 혹은 관종(관심종자)에 사로잡혀, 아예 자기 이성을 잃어버리게 된 것 같다.
이러한 그의 잘못된 처신으로 인하여, 결국 죄 없는 많은 부하 장졸들이 목숨을 잃는 비극을 맞이하게 되었고, 그 후 그에게는 이 세상에서 더 이상의 기회가 없게 되었던 것이겠다.
셋째, 어떤 회사가 투자를 할 경우의 예를 한번 들어보자.
회사 오너가 자기의 과욕으로 인하여 혹은 화려한 성공을 위하여, 무리한 투자를 행사했다고 한번 가정해 보자.
이렇게 무리한 판단을 하기 이전에, 항상 자기 회사의 정상적인 매출과 수익구조, 주주 보호, 직원 보호가 우선시되어야 할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꼭 감당해야 할 적정 재무구조나 안정된 비즈니스 시스템을 제대로 챙겨야 마땅할 것인데, 이러한 기본적 미션을 망각하고서, 회사의 오너라고 자처하면서 목에 힘만 들어가고, 회사를 자기 취향대로 경영하다가는 직원, 협력업체 및 그 회사와 생태계를 같이 하는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엄청나게 큰 누를 끼칠 수 있고,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법적으로 ‘배임죄’까지 성립될 수 있다.
이러한 사람은 대개, 무슨 일을 벌이든, 처음에는 앞서서 막 설쳐대면서 자기 힘과 능력을 과시하다가도, 얼마 안 지나서, 정말 수고가 필요하거나 어려운 시기가 닥치게 되면, 온갖 이유를 가져다 대면서 자기만 뒤로 쏙 빠지려 하는 사람, 또는 항상 빅 스피커(Big speaker ; 항상 크고 위엄 있는 소리를 내는 영향력이 큰 인물)를 자처하다가도, 회사에 위기가 닥쳐오게 되면 자신의 본분을 저버리고, 맨 먼저 도망치려 하거나, 회사 자산을 세탁하여 자기 금고로 빼돌리려는 위선적 성향의 인물인 경우가 많다.
예로부터 진짜 장수는 위험이 닥칠수록 앞서 자기의 목숨도 기꺼이 내어놓으려는 장수, 반면에 평화로울 때는 자신이 굳이 안 나서도 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모든 영화를 뒤로, 주변으로 돌리려 했던 장수이었지 않았던가?
그 구체적인 사례들은 굳이 여기서 언급하지 않더라도, 많이들 알고 있을 것이다.
항상, 회사나 어떤 조직의 리더라면, 막연한 가오(폼)나 화려함, 뭔가를 내세우고 자랑을 하고 싶은 충동적 마음을 내세우기 이전에, 자기 뒤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의 철저한 배제와 자기 위치에 따른 미션에 대한 기본적 책무나 도리를 우선적으로 챙겨야 할 것인데, 이러한 태도는 자기와 함께 평생 고락을 함께 해준 자기 소중한 직원, 협력업체 등 그 전체 가족들을 위한 최소한의 도리라고 하여야 하지 않겠는가?
넷째, 어떤 장애인이 휠체어를 직접 운전하여 가고 있는 상황을 한번 가정해 보자.
그런데, 가다 보니, 앞 도로상에 큰 턱(장애물)이 하나 있어서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고 해보자.
이때, 길을 가던 어떤 사람이 앞에 나서서, 그냥 장애물만 치워주어도 충분히 가능할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굳이 장애인을 업고서 휠체어도 같이 밀면서 힘들게 건네주었다면, 과연 당신은 이러한 그의 행동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아마 이 상황에서의 판단 기준이 되어야 할 것은 “철저히 장애인의 입장과 편의를 먼저 고려해야 한다.”라는 점일 것이다.
이러한 기준으로 한번 생각해 본다면, 장애물을 치워주어 간단하게 도와줄 수 있는 일을 가지고서, 지나치게 요란스럽게, 마치 쇼를 하듯이 그를 등에 업고서, 휠체어를 뒤뚱뒤뚱 밀어 가면서 아주 힘들고 무리하게 도와준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면, 주변의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선행이 노출되어 주목받을 수도 있고, SNS나 여러 매체 등을 통해 좀 자랑하기도 용이할 것이지만, 그 장애인 입장에서 보면, 그의 호의를 거절할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그 권유에 응하기는 했지만, 그러한 상황 자체가 심히 불편했을 수 있다.
즉, 자신의 ‘관종’이라는 욕심을 위해 그 장애인의 입장을 희생한 격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겠다.
모름지기, 진정한 선행이라는 것은 자신의 노출을 최소화하는 것이 당연하며, 불가피하게 노출이 꼭 되어야 할 상황이라면, 그 노출의 정도가 최소로 될 수 있게 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는가?
이러한 상황에서는, 당연히 도로상의 장애물을 잘 치워주어서 장애인 스스로 자연스럽고 부담 없이 그 난관을 잘 헤쳐 나갈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 마땅하다,
관종이나 가오(폼)를 좀 못 챙기면 어떠한가?
여기에서의 본질은 오로지 그 장애인만을 위한 철저한 배려일 것이다.
도와주는 자는 결코 주목받을 필요도 없고, 그냥 그 사이드에서 보이지 않는 역할로서도 스스로의 욕구를 족하여야 마땅할 것이다.
다섯째, 이 사례는 내가 직접 겪은 일이다.
내가 과거 어떤 큰 빌딩에 냉동(냉방) 장치의 고장 여부를 판단해 주러 간 적이 있었다. 내가 관련 분야의 ‘기술사’ 자격을 보유하고 있는 터라 그곳에 가게 된 것이지만, 냉동장치의 상태 및 고장 여부를 판단하기가 만만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어쨌든 그 문제를 해결하고 나서 내가 제안을 하기로, 당시 건물 옥상에 있는 냉동장치의 ‘압력 스위치’라는 안전장치가 ‘수동 방식’으로 되어있는데, 이것을 ‘자동 방식’으로 바꾸고, 압력 설정 범위를 정상 범위 대역으로 잘 조정해 놓게 되면, 앞으로 냉동장치에 알람이 울리는 경우가 거의 없을 것이고, 관리 담당자가 일일이 자주 옥상에 올라가야 하는 번거로움을 피할 수 있어서 많이 편리해질 것이라고 조언을 해주었더니, 그 관리 담당자가 하는 말이 아래와 같이 참으로 가관이다.
“그 압력 스위치를 자동 방식으로 바꾸게 되면, 내가 앞으로 할 일이 별로 없어져 버릴 것이니, 절대 안 됩니다!”
이른바, 건물에 어떤 장치가 고장 나서 알람이 울릴 때, 자신이 직접 옥상에 뛰어 올라가서 조치를 하는 수고를 기어이 하고서, 또 그 고장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쇼맨십)을 건물 이용자나 관계인들에게 직접 보여주어야 좀 폼도 나고, 나이가 들어서도 웬만해서는 쫓겨나지 않을 것이라는 뉘앙스의 말이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노릇이 아닐 수 없다. 내가 보기에는 분명, 그는 설비 전문가로서 상상을 초월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건물의 설비 관리 담당자라면, 응당 그 설비가 고장이 잘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데에 전문가로서의 기술력이나 노력의 초점을 맞추어야 하고, 설령 고장이 나더라고 그 고장을 최단 시간에 그리고, 가급적 자동적으로 고쳐질 수 있게 하여, 건물 사용자와 건물주에게 편익을 최대한 제공해야 함에도, 이런 기본적 책무를 생각하지 않고, 자기 입장이나 돈벌이(고용보장)에만 신경 쓰겠다는 것은 참으로 소인배의 행동이고, 어쩌면 건물 이용자나 건물주를 기만하는 범죄 행위에 가깝다고도 할 수 있겠다.
물론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입장이나 안위를 위해서, 어떠한 상황에서는 욕심이 다소 생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것이 사사로운 것이라고 한다면, 항상 자기 욕심으로부터 출발한 생각을 제대로 자제해 나가야 할 것이다.
만약 그러지 못한다면, 건물의 공적 관리자 혹은 전문가로서의 자격이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이므로, 하루라도 빨리 그 직(職)을 내어놓아야 마땅하다.
위에서 여러 사례를 살펴보았지만, 결과적으로 볼 때, 누구나 공명심 혹은 관종병을 철저히 자제할 줄 알아서, 항상 자신의 마음을 공정하고 치우치지 않게 관리할 수 있어야, 앞으로 보다 큰 일을 해낼 수 있는 자기 내공의 바탕을 만들어 낼 수 있겠다.
특히, 요즘은 관종병이 온통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물론, 관종 자체를 막연히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다. 이는 인간의 기본적 욕구이자, 어느 정도는 본능에 가까운 행동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종이 ‘관종병’의 수준으로 중독이 된다면, 상황은 아주 심각해진다.
이를테면, 자신의 관종 욕구로 인하여, 남에게 여러 형태로 피해를 주거나, 타인을 이유 없이 괴롭히거나, 사기성 행각으로 주목을 끌려고 하거나, 폭력이나 불법 영상물 등으로 착취를 하려 하는 일그러진 인격들이 요즘 많은 SNS나 매체를 통해 자주 보도되고 있는 것이 또한 현실이다.
결론적으로 볼 때,
소하(蕭何)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전장의 후방에 머물렀어도, 천하통일 최고의 일등 공신이 되었다.
소하(蕭何)의 친구인 장량은, 몸이 매우 약한 편이었지만, 후방의 책상머리에 앉아서도, 천 리 밖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의 결과를 내다보고 작전을 세웠지 않은가?
"이렇듯, 너무 관종을, 공명심을 쫓을 필요가 없다.
상장과 표창장, 훈장을 너무 좋아할 필요도 없다.
가오(폼)나 자랑거리에 너무 골몰할 필요도 없다.
선두의 화려함이나 현란한 자기 과시에 집착할 필요는 더더욱 없겠다!"
그러나 이러한 것이 못내 고프다면, 적절하게 자기 관리모드 안에 두는 것이 좋겠다!
어차피, 모든 선택이나 그 결과는 네 마음에, 네 생각에 달렸을 것인데!
이루고자 하는 네 희망을 위한 역량은, 외적으로 보이는 화려한 스펙이나 대단한 배경과는 상관없이, 결국은 네 내재적·총체적 힘(자기 내공의 총합)에 달렸을 것이니, 이를 채우고 스스로 개량해 나가는 것에 수고와 지혜를 마다하지 않아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그 옛날 그들이 천 리 밖에서도 보란 듯이 소원 성취를 이루어 내었듯이, 네 몸이 어디에 있든, 네 처지가 현재 어떠하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
바탕부터 차곡차곡 잘 채워 올린다면, 분명 스스로를 원하는 곳까지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