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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정수 Oct 22. 2023

공간과 스토리를 읽어라

어떤 생이나 존재를 대할 때도 그 에워싼 공간과 스토리를 잘 읽어 내어라


어떤 생(生)이나 존재를 대할 때도 그 에워싼 공간과 스토리를 잘 읽어 내어라!  

   

  어떤 생(生)을 대할 때도, 어떤 존재를 대할 때도 먼저 그 에워싼 공간(곡절, 정황, 배경 등)과 스토리(생이나 존재의 여정에 얽힌 이야기들)를 잘 살피고 헤아리려 해 보는 것이 좋다.

  그러면, 그 생이, 그 존재가 아무리 못났더라도, 지극히 이해가 될 수 있고, 가능하면 잘 보듬고 싶어지기도 하고, 좋게 헤아려 주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겨날 수도 있다.      


  가령, 아주 못나 보이거나 많이 삐뚤어져 보이는 생을 대할 때도, 그 지나온 곡절과 여정 등을 찬찬히 잘 들여다보게 되면, 대부분의 경우 동정심이 발동하여, 때로 용서가 될 수 있고, 때로 바로잡아 주고 싶은 마음이 발동하기도 하고, 때로는 참으로 그 대단한 사연과 스토리에 오히려 감복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저절로 연민 혹은 공감의 마음이 생겨나고, 이러한 연민이나 공감은 다시 그 당사자뿐만 아니라, 고단한 삶에 지친 당신에게 마저도 깊은 위로와 위안이 되어 줄 수 있겠다.     


  또, 아무리 그릇된 행위 혹은 엉터리 행위라고 할지라도, 그 에워싼 공간과 스토리를 제대로 잘 살펴보게 되면, 결국 당신의 머릿속에서 재해석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게 되고, 가능한 한 용서하고픈 마음이 발동할 수도 있겠다.

  그로서도 아마 최선을 다했던 것이었는데, 여러 공간적 정황에 의해 결과가 안 좋게 나온 경우도 있을 것이고, 능력이 다소 부족하여 그러했을 수도 있을 것이고, 그밖에 여러 사연에 의하거나 주변 환경이 다소 못 받쳐 주어 그러했을 수도 있겠다.              



평생을 함께 할 벗 사귀기(그림;. rdasia.com)



  그러니, 그 어떠한 행위도 너무 미워하지만 말고, 공간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전체를 통째로 아울러 살펴보고서, 그동안 숨겨져 있던 예쁜 면도 보아주려 해보고, 용서할 것은 용서도 하고, 보듬을 것은 보듬어 주려 해 보는 것도 좋겠다.

  다시 말해, 처음부터 너무 속단하여 그 엉터리 같은 행위를 욕하지만은 말고, 찬찬히 잘 들여다보아서, 그 에워싼 공간이나 지나온 시간이 가지는 특수한 정황을 잘 살펴 감안해 줄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우리가 살면서 ‘춘풍추상(남에게는 관대하게, 자신에게는 엄격하게 대함)’의 교훈에는 많이들 동의함에도 불구하고, 남들의 행동을 지나치게 빠르게 속단하여 불필요한 오해를 하기도 하고, 서로 사이가 틀어져 관계가 많이 왜곡되어지거나, 영영 원수가 되어 지내는 경우도 많이 있다.

  그러니, 매사 조금만 더 느긋하게, 그를 에워싼 상황과 말 못 할 스토리를 잘 헤아려 보아서, 이해할 것은 이해해 주고, 용서할 것은 꼭 용서해 주는 것이 매우 필요하다고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가 정말 나쁘다면 그때서야 나무라도 결코 늦지 않을 것이니, 매사 어떠한 경우에도 남의 태도나 행위를 서둘러 판단하여, 오해하거나 미워하는 것은 참으로 피하는 것이 좋겠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이렇게 상대를 에워싼 공간적 상황과 스토리를 잘 보듬고 이해하여, 평생 오래가고, 인생의 마지막까지 함께 할 수 있는 벗이나 이웃을 많이 만들 수 있을까?

  오늘 독자님들과 함께 한번 행각해 보기로 하자.     


  첫째, 웬만해서는 미워하지 말자.     


  이는, 어떤 일로 매우 미워하고픈 상대가 있더라도, 여러 상황적 혹은 정황적 스토리가 있을 수 있으니, 그것들을 제대로 파악하기 이전에 너무 성급히 미워하지는 말라는 것이며, 더 나아가 설령 상대방의 명백한 실수나 단점이 발견되더라도, 웬만하여서는 일단 척을 지지 말고, 당분간 그 정황을 잘 지켜보고, 헤아려 보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럼, 이와 관련된 옛 고사를 하나 살펴보자.

  우리에게 관포지교(管鮑之交; 사이가 아주 돈독함)로 널리 알려진 춘추시대 제나라의 ‘관중’과 ‘포숙’이라는 인물의 스토리를 한번 살펴보자.

  관중은 자신의 인생 말년에 절친인 포숙에 대한 칭찬을 아래와 같이 늘어놓았다.     


       “내가 어릴 적 곤궁하여 포숙과 함께 장사를 할 때, 이익의 분배를 내가 포숙보다 더 많이 가져갔는데 포숙은 나를 탐욕스럽다고 여기지 않은 것은 내가 가난하다는 것을 알아주었기 때문이었고, 나중에 벼슬길에 올라 많은 실수로 사람들은 나를 어리석다고 했지만, 포숙만은 나를 무능하다 하지 않고 때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그 정황을 알아주었다.

또 내가 포숙과 함께 전쟁터에 나갔을 때, 내가 세 번이나 도망을 치자, 다른 사람들은 나를 비겁하다고 질책했지만, 포숙은 내가 집에 연로한 어머님이 계시기 때문이라고 알아주었다.

또한 나와 포숙이 제나라의 두 공자인 규(糾)와 소백(小伯)의 사부가 되었다가 내란에서 공자 규를 모시던 내가 공자 소백(후에 제나라 왕, 환공으로 즉위함)에게 패하여, 참수형의 위기에 몰렸을 때에도 포숙이 왕에게 적극 설득을 해주어 목숨을 구하였고, 이후에는 재상의 자리까지 나에게 물려주어 내가 이 자리까지 올 수 있도록 나를 그렇게 알아주었다.

     결국 나를 나아주신 분은 부모님이지만, 나를 진정으로 알아준 이는 포숙이다.”     


  이렇게 절친인 포숙이 여러 어려웠던 모든 상황을 이해해 주었고, 도와주었기 때문에 결국 관중 자신이 ‘세기의 명재상’이 될 수 있었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둘째, 능력의 한계를 보듬자    


  상대방이 큰 실수를 하였거나, 말도 안 되는 일을 하였더라도, 그 행위가 고의가 아닐 진대, 너무 미워하지 말고, 그 부족함을 잘 보듬어 주라는 의미이다.

  만약 당신이 너무 쉽게 미움의 감정을 머리끝까지 올라오게 허락한다면, 이는 오히려 쓸데없이 자기 소모의 결과를 초래하기 쉬울 것이며, 이 경우, 상대방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감정과 체력을 더 많이 고갈시킬 수도 있겠다.     


  사람은 누구나 그 능력면에서 좀 뛰어난 자가 있고, 상대적으로 많이 부족한 사람도 있다.

  부족한 사람은 뛰어난 사람의 눈에는 여전히 많이 부족하게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니, 때로는 많은 실망을 줄 수도 있고, 이로 인하여 주변 동료에게 많은 불편과 다소간의 손해를 줄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친구가 비록 어떤 한 분야에서 실력이 다소 부족하여 그러한 실수를 많이 하였더라도, 장기적인 관점으로 보아주게 되면, 신은 누구에게나 공평할 것이므로, 나중에 또 다른 분야에서는 충분히 그 실수를 만회할 만한 역할을 해낼 수도 있고, 오히려 당신의 실력을 능가하는 그 무엇인가를 이루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객관적으로 보아서 많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그 실수에 대한 고의성이 없다면, 너무 나쁘게만 평하지는 말고, 뒷담화는 더욱더 금물일 것이며, 모름지기 지긋이 더 지켜보아주고 충분히 기회를 주어 보는 것이, 장기적이 관점에서는 매우 적절해 보인다.

  만약 그러지 않고, 그 사람과 척을 지거나, 바로 등을 돌리고 살아 보아야, 이 경우 당신에게는 과연 무슨 이득이 있을 수 있겠는가? 장기적인 관점에서 한번 생각해 보는 것이 좋다.

  이는 벗 혹은 이웃을 하나 잃고, 적을 하나 더 만든 격이 될 것이니, 당신에게 뭐 하나라도 이득이 되는 것이 거의 없을 것이지 않겠는가?     


  셋째, 생각이나 지향점의 차이를 이해하자. 

    

  누구에게나 생각이나 지향점의 차이, 즉 자기 가치의 기준이나 성향의 차이 등을 잘 이해해 주는 것이 좋다.

  어떤 일의 처리에 있어서, 상대가 능력도 있고, 상황도 충분히 이해는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도무지 당신이 생각하는 방식으로 일을 처리하지 않고, 엉뚱한 방향으로 일을 하고 있다면, 서로 간의 생각이나 지향점의 차이를 잘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하겠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과 상대가 옳다고 행각 하는 방향은 당연히 서로 다를 수 있을 것이고, 거기에 따라서 행동의 방식과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가치 기준이나 성향의 차이가 감지되었을 때에는, 가능한 한 섣불리 판단하려 하지 말고, 대화를 많이 하여 그 합의점을 만들어내어 그 합의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좋다.     


  즉, 어떤 사람이 아무리 자기 마음에 들지 않게 행동하고,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서로 간에 생각이나 지향점의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감안하여, 많은 대화와 소통의 시간을 한번 가져보는 것이 좋겠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대화를 통한 소통의 기회를 충분히 가져보면, 상대방이 가치의 기준이 좀 독특하다든가, 좀 특이한 성격을 가졌다든가, 이도저도 아니라면, 단지 단순 실수이거나 의도지 않게 순간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그러했는지 등에 대한 충분한 이해의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겠다.     


  넷째, 미리 여러 대책을 세워두자.     


  친구나 가까운 지인과 어느 정도 관계를 유지하다 보면, 그리 오래되지 않아서 상대가 어떤 유형의 인격이나 성품의 소유자인지, 어떠한 능력의 소유자인지를 어느 정도는 알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상대방의 장점보다는 단점으로 인해, 앞으로 벌어질 수 있는 상황적 사건이나 시나리오가 예견될 수도 있다.

  이를 그냥 가만히 내버려 두지 말고, 그 예상되는 심각성이 더 큰 문제부터 대책을 세워두거나, 마음의 준비를 해둔다면, 지속적인 관계 유지에 아주 유효할 수 있다.


  가령, 그 친구의 성격상, 분명히 사건 시나리오A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생각이 되는데, 그럴 경우에는 내가 B처럼 행동하겠다고 생각해 두고, 혹은 사건 시나리오C가 발생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게 되면, 그 경우에는 내가 D처럼 대응하겠다고 하는 마음가짐을 미리 가져보는 등으로 어느 정도의 가상 대책을 세워두게 되면, 아주 정확하지는 않더라도, 상대방에 의한 돌발 상황의 발생 시에도, 별 큰 요동 없이 담담하게 대응할 수가 있겠다.     

  물론 사람이 무슨 점장이도 아니고, 어떻게 미래에 벌어질 일을 예상할 수 있으며, 어떻게 대책을 세우겠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으나, 사람에게는 의외로 예측과 예감 능력이라든가 직감, 직관의 능력 등도 있어서 상대방의 스타일이나 성격을 잘 고찰해 보면, 미래에 벌어질 관계의 트러블, 사고성 관계의 악화 등을 의외로 잘 예견할 수도 있다.    

 

  다섯째, 상황의 ‘변화무상’을 인정하자.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이 되고,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되는 것 또한 우리 주변의 흔한 모습들이다.

  세상에 모든 것이 꿈틀대며 변하고 있으니, 어디 당신만 변화 없이 머물러 있기를 원한다면, 이는 과연 말도 안 될 것이다.     


  따라서, 오늘의 절친도 나중에 상황에 따라 떠나갈 수 있으니, 항상 너무 미련을 갖지는 말 것이며, 오늘 서운한 감정이 있거나 아주 못나 보이는 벗이나 이웃에 대해서도 나중에는 절친이나 둘도 없는 관계로 변모할 가능성을 열어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이 세상에는 절대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오직 상대적인 것만 존재한다고 보면 된다. 

  가령, 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공간적인 측면으로 보면, 아름답지 못한 꽃과 비교되거나 대비되기 때문에 아름답게 보일 수 있을 것이다.

  과연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고 하더라도 주변 공간에 더 화려하고, 더 찬란한 그 무엇인가가 존재한다면 결코 아름답게 느껴질 수 없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이를 시간적인 측면으로 보게 되면, 그 화려한 꽃도 금방 시들어지거나 없어질 것이기 때문에 더욱 아름답게 느껴질 것이다.

  만약 그 아름다운 꽃이 영원히 아름다운 자태를 그대로 보여줄 수 있다면, 사람들은 아마 그 꽃을 보며 금방 질려버릴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절친이라고 하더라도, 그 가치가 절대적인 것은 아닐 것이며, 덜 친한 친구 혹은 못난 친구들과 비교되기 때문에 소중해 보일 뿐일 것이다. 또한, 세상이 변화무상하여, 이러한 전세(戰勢)는 언제라도 역전이 될 수 있고, 항상 변할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즉, 절친이 어느 날 시들해져 미워질 수도 있으며, 못난 친구가 어느 날 참으로 귀한 존재로, 마치 둔갑한 듯, 변모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관점에서는, 좋아도 너무 좋아하지 말고, 나빠도 너무 나쁘게만 보지 말라는 ‘새옹지마’의 교훈이 정말로 큰 의미를 가진다고 보아야 하겠다.    

  

  여섯째, 이른바,“당신 우선(You first)”이다.     


  여러 친구들이나 이웃을 대할 때, 항상 마음속으로 “당신 우선(You first)”을 먼저 외쳐보는 것이 아주 좋겠다.

  이는 일반적인 논리로, 자기가 편하면 타인이 불편해지기 쉬우며, 자기가 다소 불편해지면 타인이 편해지기 쉬울 것이므로, 자기가 먼저 양보하여, 타인의 편의를 우선시해주게 되면, 이런 이치를 모르지 않을 상대방이 비로소 감흥하여, 나중에는 결국 타인으로부터 깊은 이해와 인정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며, 이는 오히려 자신을 온전히 지켜낼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이러한 개념은, 현실적으로 실리적인 이해타산의 개념을 떠나서도, 모든 존재에 대한 ‘존중’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제대로 실천할 수 있는 길이라고도 보아야 하겠다.

  즉, 우리는 어쩌면 고된 현실 속에서, 너무나도 ‘자기 우선’이 되기 쉬우므로, 자주 혹은 매일매일 의식적으로 ‘타인 우선’이라는 가치를 뇌리 속에 되뇌는 습관을 가져야, 매사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이익만을 먼저 챙기게 될지도 모르는 찌질한 자신의 모습을 피해나갈 수 있지 않겠는가?     


  결론적으로 볼 때,

  평생을 함께 할 좋은 벗이나 이웃을 많이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그들을 에워싼 공간과 스토리를 잘 보듬고, 웬만해서는 미워하는 감정을 갖지 않는 것이 좋다.

  미움이라는 것은, 결국 자기 소모의 과정이며, 타인보다는 오히려 자신을 더 많이 소모시키는 경향이 아주 크다.

  그리고, 벗이나 이웃의 부족한 부분이나 능력의 한계, 생각이나 지향점의 차이 등에 대해서는 항상 보듬어 살펴주는 태도가 매우 필요하다고 하겠다, 타인을 위해서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더욱이, 세상 만물이 모두 매우 혼란스럽게 꿈틀거리고 변화무상하여 그대로 장시간 존재하는 경우는 하나도 없을 것이므로, 어제의 절친이 나와 말년을 함께 해줄 기대도 쉬이 하지 말 것이며, 오늘 현재 미운털이 박힌 벗이나 이웃에게도 나중에는 삶의 가치와 우정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기회와 가능성을 항상 열어두는 것이 필요하겠다.  

   

  무엇보다, ‘나 우선’이 아닌 ‘타인 우선’의 가치로 자신을 매일매일 다잡아 나가는 것이, 자칫 교만 혹은 거만에 빠지거나, 작은 이익에도 치사해질 수도 있는 자신을 항상 꼿꼿하게 바로잡을 수 있는 길일 것이며, 대부분의 친구와 이웃을 평생 자신의 든든한 지원군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묘약이라고도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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