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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나를 위한 34만 원

34만 원의 가계부

by 바다빛 글방

가계부를 펼쳐든 손이 잠시 멈춘다.

빽빽이 채워진 글씨들, 그 속에서 유독 눈에 띄는 한 줄.

'나 자신을 위한 지출 : 34만 원.'

그 옆에 괄호로 적어둔 '술값, 커피값'이라는 단어가 괜히 더 크게 다가온다.


이 돈이 과연 적은 돈일까, 많은 돈일까. 가늠하기 어렵다.

요즘처럼 모든 게 오르는 세상에, 한 달 동안 쓴 돈이 34만 원이면 그리 큰돈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돈의 무게는 단순한 금액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이 더운 날, 주말도 없이 현장에서 땀을 뻘뻘 흘리는 남편의 모습이 떠올라서일까.

가슴 한구석이 왠지 모르게 죄책감으로 쿡쿡 쑤신다.


나는 그저 에어컨 바람 아래서 잠시 숨을 돌렸을 뿐인데, 남편은 찜통 같은 더위 속에서 묵묵히

땀을 흘리고 있다. 남편의 고된 하루를 생각하면, 내가 마신 시원한 커피 한 잔, 친구와 나누며 마신

맥주 한 잔이 마치 사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 돈이면 남편 맛있는 거 사줄 수 있었을 텐데, ''이 돈이면 생활비에 보탤 수 있었을 텐데'하는

생각들이 걷잡을 수 없이 밀려온다.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고, 쓴 돈만큼 마음이 불편해진다.


어쩌면 이런 감정은, 내가 아직도 나 자신을 위해 돈을 쓰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서일지도 모르겠다.

20살이라는 일찍 결혼해 직장 생활보다는 가정에 충실히면 살았다.

모든 주부들이 그렇겠지만.. 나보다는 남편, 남편보다는 아이들. 가족을 위해 사는 삶이

너무나 당연하고 익숙한 나머지, 나 자신을 위한 소비에는 늘 망설임과 죄책감이 따라붙는다.

어릴 적부터 혼자 자라 스스로를 챙겨야 했던 습관 때문인지, 돈을 아끼는 것이 미덕이라 생각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온다.

"괜찮아, 이 정도는 너를 위해 쓸 수 있어."


그렇다. 그 34만 원은 단순한 소비가 아니었다.

찜통 같은 더위와 지친 일상 속에서 잠시나마 나를 지켜준 소중한 나를 위한 투자였다.

친구와 커피를 마시며 나눈 수다가 팍팍한 삶의 윤활유가 되었고, 시원한 맥주 한 잔이 오늘을

버티게 해 준 힘이 되었다. 그 돈 덕분에 나는 잠깐의 여유를 얻었고,

그 여유는 다시 가족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로 돌아갈 힘을 주었다.

내가 행복해야 가족도 행복하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돈의 많고 적음은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그 돈이 어떤 의미로 쓰였는지, 그리고 그것이 내 삶에 어떤 기쁨과 만족을 가져다주었는가이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나를 위한 지출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려 한다.

혼자 조용히 마시는 커피 한 잔이 주는 평화, 친구와 함께 나누는 웃음이 주는 활력,

그 모든 것들이 나를 위한 소중한 시간들이었음을 인정하고 스스로를 칭찬해주고 싶다.


남편의 땀방울이 귀하고 소중한 만큼, 내 삶의 평화와 행복을 위한 지출 역시 소중한 가치를 가진다.

나는 이제 나를 위한 소비에 당당해지려 한다.

내 마음을 채우는 일에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앞으로도 나의 행복을 위해 아낌없이 투자하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이 34만 원은 그 첫걸음이었음을 기억하며....



20250826_233551[1].jpg 8월 한 달 나에게 사용한 돈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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