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상상 속에만 존재했던 20대의 마지막 순간을 마주하고 있다. 정확한 시기는 기억나지 않지만, 군 전역 후 대학교 마지막 학기를 준비하던 때, 나는 막연히 20대의 마지막을 상상했다. 그때의 나는 취업 준비생으로 있거나 사회초년생으로 살고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이제 그 상상이 현실이 되었다.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취업을 했고, 한국에 돌아온 지도 벌써 3년이 되어간다. 항상 막내였던 나는 이제 어디에서도 막내가 아닌 나이가 되었다. 오랫동안 취미로 즐기던 글쓰기는 브런치라는 플랫폼에서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밤을 새우는 일이 이전처럼 쉽지 않아졌다. 지금의 나는 당시 상상했던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 그래서 20대의 마지막 순간을 기록하기로 결심했다. 너무 빠르게 지나온 20대를 천천히 음미하며 지금의 나를 간직하려고 한다.
[20대 마지막 순간 기록하기] 첫 번째, 사진
20대의 마지막을 글로만 남기기보다, 그 자체의 모습을 기록하고 싶었다. 그래서 2024년 봄 우연히 본 흑백사진관을 떠올렸다. 흑백 사진을 선택한 이유는 특별하지 않다.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좋아하는 취향과 지금의 모습을 담담히 담아내고 싶다는 마음에서였다. 많은 사람들의 순간을 기록해 온 사진작가에게 나의 20대 마지막을 부탁하고 싶었다.
12월 어느 날, 통인시장에 위치한 ‘통인시장흑백사진관’을 방문했다. 사진관에서 머리를 정리하며 거울을 보니 10대 중반부터 자라기 시작한 수염과 이제는 익숙해진 안경이 낯설지만은 않았다. 몇 번의 셔터가 눌러지고 흑백 사진으로 20대 마지막 모습이 기록되었다.
[20대 마지막 순간 기록하기] 두 번째, 글
두 번째 기록은 글이다. 어린 시절 숙제로 시작했던 일기부터 해외를 돌아다니며 기록했던 글들은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중요한 단서였다. 그래서 20대의 마지막을 글로 남기는 건 나에게 당연한 일이었다. 좋아하는 LP 카페에 앉아 20대를 돌아보며, 유시민 작가님의 문장이 떠올랐다.
“삶은 지속적 고통과 간헐적 행복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문장은 고민 많았던 20대를 위로해 준 문장이었다. 매 순간 치열하게 고민하며, 쉬운 길은 없었던 내게 이 말은 삶을 덤덤히 받아들일 수 있게 했다. 30대는 어떤 모습일지 아직 모르지만, 삶에서 주어지는 간헐적인 행복이 그 길을 걸어갈 이유가 되어준다고 믿는다.
[20대 마지막 순간 기록하기] 세 번째, 기도
마지막 기록은 기도다. 30년 가까이 신앙생활을 해온 나에게 기도는 감사와 소망을 담는 자연스러운 행동이였다. 20대는 신앙적으로도 많은 고민과 결단이 있었던 시기다.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교회를 다니던 어린 시절과 달리, 20대의 신앙은 스스로 선택한 것이었다.
그리고 29살, 교회 청년부에 등록하며 보낸 1년은 나를 돌아보게 한 시간이었다. 동년배 청년들과의 교류, 그리고 신앙적으로 깊이 고민하는 이들을 보며 나를 다시금 점검하게 되었다. 지금의 30대를 살아가는 선배들을 보며 다가올 나의 30대도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의 기도에는 지난 삶에 대한 감사와 앞으로의 삶에 대한 소망이 담겼다.
[20대 마지막 순간 기록하기]는 단순히 지나가는 시간의 흔적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나를 돌아보고 앞으로의 삶을 준비하는 과정이었다. 흑백 사진은 내가 살아온 날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담아냈고, 글은 나의 마음과 생각을 정리하며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다리가 되어주었다. 기도는 지나온 시간에 대한 감사와 다가올 날들에 대한 소망으로, 나의 20대를 마무리 짓는 가장 깊은 고백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