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이미 자기만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자신만의 정원을 가꾸어 나간다.

by 장가을


어쨌든 시도는 해봐야 한다. 사람을 진짜 움직이는 건 조리 있는 주장, 지상 명제를 증명하는 논증이 아닐지 모른다. 그보다는 어떤 진심, 감정에 호소할 때 변화가 생길 수 있다.
- 박연준, 모월모일, 134




수업을 하다 보면 마음이 흔들리는 순간이 있다. 아이들 덕분에 세상이 밝아 보이고 우리나라의 미래가 참 희망차게 느껴지는 순간들이다. 경주에서 APEC 회의가 막 끝난 시기라 여러 교과를 아우르는 융합수업을 진행했다.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이 학교 밖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고, 더 넓은 사고를 해보길 바라는 마음에서 기획한 수업이었다.


여러 나라 정상들 앞에서 연설을 한다고 가정하고, 자신이 선택한 주제로 연설문을 작성해 보는 활동이었다. 아이들이 쓴 글은 진심이 가득했고 읽는 내내 뭉클했다. 이 나이에 이미 자기만의 시선과 판단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고, 생각을 솔직하게 써 내려가는 모습이 참 사랑스러웠다. 그중 두 편은 오래 기억하고 싶어 이렇게 남겨둔다.


율이가 쓴 글 <서로의 성장속도를 존중하기>

제가 발표할 내용은 <서로의 성장속도를 존중하기>입니다. 우리 반 친구들을 보면 모두 성장속도가 다릅니다. 수학 문제를 잘 푸는 친구도 있고, 수학을 어려워하는 친구도 있습니다. 때로 우리는 친구와 나의 성장속도가 다르다고 그 점을 놀리거나 비난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끝에 다다를 때는 누가 더 빠르고 크게 성장할지 알 수 없고, 서로 다른 성장속도가 모두를 더 크게 만들어 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저는 제 성장속도를 남과 비교하지 않을 것입니다. 더불어 친구의 성장속도를 존중하고 친구가 성장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친구가 되고 싶습니다. 여러분도 함께 해주세요. 우리가 서로를 도울 때 우리 반과 학교가 더 따뜻해질 것입니다. 이상으로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민이가 쓴 글 <초등학생의 고난과 역경>

오늘 저는 초등학생의 고난과 역경이라는 주제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초등학생 때가 좋았지. 걱정도 없고 매일 즐겁잖아." 하지만 우리는 압니다. 우리에게도 고난과 역경이 있다는 것을요.

이른 아침, 졸린 눈을 떠가며 학교에 가야 하고 가끔은 친구와 갈등이 생길 때도 있습니다. 또 시험지를 받을 때의 떨리는 그 마음, 숙제를 깜빡했을 때의 두려운 마음, 몸이 아플 때의 눈물까지 이 모든 순간이 작지만 우리에게는 작지 않은 시련입니다.

하지만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작은 고난들이 모여 나를 성장시킨다는 것을요. 실패를 겪을 때마다 조금 더 단단해지고 눈물을 흘릴 때마다 조금 더 따뜻한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의 인생은 아직 길고 앞으로도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기억합시다. 우리는 수많은 어려움을 이겨냈다는 것을요. 고난을 우리를 막기 위한 벽이 아닌 더 멋진 내일로 가기 위한 계단입니다. 그 계단을 오를 때마다, 우리는 더 강하고 빛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오늘도 포기하지 않고 한 걸음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진정한 작은 영웅이라고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내가 딱 우리 반 아이들 나이였던 시절, 고개를 들어 어른들을 바라보면 한숨과 웃음이 공존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하던 말이 있었다.


"너희가 무슨 고민이 있겠니. 지금이 제일 좋을 때다."


그 시절 나를 잠 못 들게 한 고민의 무거운 무게를 무시하는 것 같아 얼마나 속상했는지 눈물이 차올랐다. 내가 얼마나 힘든지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외치고 싶었고 때론 외치기도 했다. 개구리가 올챙이일 적 생각 못한다는 말처럼 나도 내 어린 시절을 잊고 아이들을 대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들들의 고민과 생각을 그저 '고작 초등학교 6학년의 것'이라며 넘겨버린 적이 있던 건 아닐까.


아이들은 자라면서 자신만의 정원을 가꾸어 나간다. 여러 경험을 하며 가치관이 꽃피우고, 성격은 나무처럼 단단하게 뿌리내리기 시작한다.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으며 취향을 만들어간다. 때로는 친구를 초대해 자신의 정원에서 같이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아이들은 자란다, 생각도 문장도 함께.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이들이 정원을 잘 가꾸도록 응원하고 지지하는 일이다. 정원이 작다고 얕보지 않고 그들의 세계를 존중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