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려도 괜찮다는 말을 가르치기까지

틀리는 경험이 부끄러움이 아니라 생각의 시작이 되기를

by 장가을


지식은 전달할 수 있지만, 그러나 지혜는 전달할 수 없는 법이야. 우리는 지혜를 찾아낼 수 있으며, 지혜를 체험할 수도 있으며, 지혜를 지니고 다닐 수도 있으며, 지혜로써 기적을 행할 수도 있지만, 그러나 지혜를 말하고 가르칠 수는 없네.


- 헤르만 헤세, 싯다르타, 253





틀리는 것이 무서웠다. 선생님이 클릭한 화면의 답과 내가 교과서에 적은 답이 다르면 괜히 자존심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발표하는 짝꿍의 대답을 듣고 선생님은 "잘했다, 정답이다"라고 칭찬해주셨고, 나는 내가 쓴 답을 가만히 바라보다 필통에서 지우개를 꺼내 들었다. 지우개는 너무 빠르게 닳아갔고, 작아진 지우개는 데굴데굴 굴러 교실 어딘가로 사라졌다. 그렇게 내 생각도 함께 지워졌다.




나는 헷갈리거나 모르겠으면 아무것도 쓰지 않는 학생이 되었다. 틀림은 흠이었고, 정답만이 안전지대였다. 누군가 정답을 발표하길, 선생님이 정답을 알려주길, 화면에 정답이 띄어지길 기다렸다. 애꿎은 샤프심만 톡톡 부러뜨리며 괴롭혔다. 토시 하나 틀리지 않고 깔끔하고 깨끗하게 정답만 남기고 싶었던 날들이었다.




수많은 시험들을 통과하고 때로는 뒷걸음질하다 보니, 명확한 정답이 존재하는 문제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문제가 시험에도 삶에도 훨씬 많다는 걸 알았다. 고등학교 국어 기말고사에 글쓴이의 정서를 묻는 문제가 나왔다. '애달프다'가 유일한 정답이었다가 나를 포함한 다수의 학생들의 이의 제기로 '그립다'도 복수 정답으로 인정이 됐다. 그렇다. 정답이 하나뿐일 거라 믿는 문제도 사실은 여럿일 수 있다는 걸. 내가 약속 시간에 늦어 마음이 상한 친구에게 어떤 말로 사과해야 할지, 친구의 말버릇이 조금 거슬릴 때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누가 알려주면 좋겠지만 결국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하는 문제들도 있었다.




정답을 알지 못했다는 자괴감과 틀릴까봐 두려운 마음을 우리 반 아이들이 겪지 않길 바란다. 한 문제만큼의 자괴감과 두려움이 생각의 톱니바퀴에 조금씩 끼이기 시작하다가 결국 멈춘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생각하고 생각을 거리낌 없이 말하는 교실이 되길 바란다.




6-2 국어 (나) 교과서에는 '광고 내용을 그대로 믿으면 어떤 문제점이 생길지 친구들과 이야기해봅시다.'라는 문제가 있다. 맥락과 이유가 합당하다면 무수히 많은 답이 정답이 될 수 있다. 건강기능식품인 것처럼 광고하는 일반 식품 광고를 보고 한 아이가 말했다. "그 제품을 만든 기업을 믿지 못하게 돼요. 서로를 의심해서 사회가 안 좋아질 수 있어요."




아이들의 생각을 먼저 들어본 후 지도서에 나오는 답을 화면에 보여준다. 여전히 그 시절의 나처럼 화면에 답이 띄어지면 지우개부터 드는 아이들이 있다. 그보다 더 빠르게 말해준다. "이건 하나의 예시야. 너희가 생각해서 적은 답이 다 정답이야."




정답이 오직 하나밖에 없다고 믿으면 무한한 가능성의 문들이 닫힌다. 어떤 문제든 스스로 생각해보고 나만의 답을 내려보고 친구들과 비교해보고 때론 바로 동그라미를 그리기도 하고 때로는 수정하고 보충하면서 아이들은 커야 한다. 틀리는 경험이 부끄러움이 아니라 생각의 시작이 되도록. 나는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리며 오늘도 말한다. "틀려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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