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루지 못할 계획보다는, 정말 하고 싶은 것
지금은 오늘자 나를 하루씩 조금씩 알아가기로 했다. 늦은 게 있다면 이 마음가짐이 너무 늦었다. 나는 늦은 만큼 열심히 하는 타입이라서 이제야 나를 너무나 좋아하기 시작했다.
- 임진아, 요즘 사는 맛 중
12월은 아이들도, 담임인 나도 함께 설레는 달이다. 캐럴이 울려 퍼지고 거리마다 조명이 빛나는 크리스마스보다도, 겨울 방학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방학식을 앞두고 준비해야 할 일은 많다. 방학 일정과 개학식 안내, 도서관과 상담실 운영 시간, 학부모님께 전하는 인사말과 겨울 방학 안전 수칙까지. 그중에서도 아이들이 가장 먼저, 가장 유심히 보는 것은 방학 숙제이다.
요즘 방학 숙제는 제법 간단하다. 필수 과제로 스스로 부족한 공부 1시간, 줄넘기나 달리기 등 매일 운동하기가 있다. 우리 학교는 겨울 방학 중 일기 한 편을 쓴다. 내가 초등학생이던 시절과 비교하면 방향성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양은 확실히 줄었다. 개학을 이틀 앞두고 부랴부랴 EBS 방학 생활을 틀어놓고 책 속 빈칸을 채우느라 하루를 다 쓰고, 기억이 가물가물한 2주 전의 일상을 끌어모아 일기를 쓰느라 밤을 새우던 나의 겨울방학과는 다르다.
물론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아이들에겐 선택 과제도 있다. 관심 있는 직업 조사하기, 마음을 담아 편지 쓰기, 만들기나 그리기 같은 예술 활동, 박물관이나 전시회를 다녀오기 등. 그중 아이들이 특히 선호하는 과제는 악기 연주하기다.
악기 연주하기를 선택한 한 아이에게 물었다.
“무슨 악기 연주할 거야?”
“리코더요.”
음, 역시나 싶었다.
“무슨 곡 연주하려고?”
“아직 못 정했는데… 선생님이 정해주세요.”
“그래? 어떤 곡이든 상관없어?”
“아, 쌤. 저 다 연주할 수 있어요.”
슬쩍 건들면 건들리는 대로 반응하는 아이의 모습이 귀엽다.
“그럼, 우리 졸업식 곡인 데이식스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 연습해서 개학 날 연주해 줘.”
살짝 동공이 흔들리는 아이의 동공을 봤지만, 모른 척했다.
아이들의 방학 풍경이 내가 어릴 적과는 많이 다르다. 방학에도 학원을 다니고, 특히 6학년 아이들은 ‘보충’이나 ‘심화’라는 이름의 수업을 더 듣기도 한다. 이런 현실을 알기에 학교의 방학 숙제는 공부보다는 아이들이 자기 자신에게 조금 더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듯하다.
방학식 날, 우리 반만의 작은 활동을 했다. 겨울 방학 동안 이루고 싶은 버킷리스트 일곱 가지를 적는 시간이다. 게임과 관련된 계획은 굳이 적지 않아도 열심히 할 아이들이라 제외했고, 공부나 학습과 관련된 목표를 하나 넣는 것을 조건으로 두었다. 한 달이라는 시간 앞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쉽게 적지 못하는 아이들도 있어서 몇 가지 예시를 함께 나누었다.
눈 오면 눈 사람 만들기
가족과 산책하기
물 많이 마시기
수학 문제집 한 권 끝내기
중학교 생활에 대해 조사하기
가족이나 친구와 보드게임하기
“가족이랑 대화하기도 적어도 돼요?”
“당연하지.”
이루지 못할 계획보다는, 학교에 가지 않는 시간 동안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해보길 바랐다. 어렵고 거창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한 번으로 끝나도 좋으니, 스스로 정한 목표이길 바랐다. 나를 사랑하고 믿는 마음은 작은 성공에서 시작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한 달 동안 자신이 적은 버킷리스트를 하나씩 실천해서 ‘해냈다’는 뿌듯함을 안고 웃으며 학교로 돌아오기를.
마지막으로 아이들끼리 서로의 버킷리스트를 읽고 뒷면에 응원하는 말을 적어 주었다. ‘나 이렇게 해볼 거야’라고 말하는 경험은 생각보다 힘이 있다. 친구의 응원이 적힌 종이를 들고 있는 동안, 아이들은 방학 내내 그 계획을 쉽게 잊지 못할 것이다. 이번 겨울 방학이 아이들에게, 스스로를 조금 더 믿게 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