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심이 부러질 때마다 기다리는 법을 배웠다

틀리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아이를 만난 겨울방학

by 장가을


1학년 선생님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인내심이다. 나는 지금껏 단 한 번도 1학년 담임을 맡아본 적이 없다. 대학교 교생 실습과 보강 수업으로 2학년 교실에 두어 번 들어가 본 것이 전부다. 나와 저학년 아이들의 인연은 주로 복도와 급식실에서 생겨난다. 그것도 아주 찰나의 순간이다.




복도를 걷다가 마주치는 허리쯤 오는 1학년 아이들의 말랑하고 뽀얀 볼, 맑게 울려 퍼지는 웃음 소리는 언제 봐도 귀엽다. 6학년에게는 앙증맞아 보이는 급식판이 1학년 아이에게는 얼마나 커 보이는지, 그걸 들고 조심조심 걸어가는 모양이 아슬아슬하면서도 괜히 기특해진다.




그런 1학년 아이와 5초가 아니라 5일을 함께 보낼 기회가 생겼다. 이번 겨울 방학, 1학년인 원이와 한글 수업을 하게 되었다. 알고 보니 우리반 아이들과도 서로 알고 있는 사이였다. 운동장에서 놀던 원이를 보고 귀엽다며 6학년 여자아이 몇 명이 놀아준 적이 있다고 했다. 사전조사 삼아 원이가 어떤 아이인지 물어보니, “엄청 활발하고 귀여워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저학년 아이와 지내는 게 익숙하지 않은 나는, 내가 잘할 수 있을지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다.




하루만 함께해도 원이가 어떤 아이인지 금세 알 수 있었다. 원이는 틀리는 극도로 싫어했다. 배우는 중이니 당연히 틀릴 수도 있고, 어려운 단어를 잘못 썼다면 지우개로 지우고 다시 쓰면 되는데, 다시 써보자고 말하는 순간 원이는 눈썹을 확 모으고 주먹에 힘을 주고 연필을 꽉 쥐며 소리를 질렀다.




“원아, ‘뚝딱뚝딱’ 써볼까?”

[똑뚝…]

“‘뚜우욱’이면 중간에 어떤 모음을 써야 할까? 우리 다시 써볼까?”

“이이이이이익!!”



또각.

그날도 연필심 하나가 부러졌다.




이틀째가 되자 감이 조금 잡혔다. 원이는 충분한 시간을 주고 기다리며 바라보고 있으면, 아직 뚱한 얼굴이완전히 풀리지 않아도 곧 손에 들어간 힘을 푼다. 단어를 아주 천천히 다시 불러주면, 새 연필을 바로 잡고 다시 쓰기 시작한다. 그러면 바로 잘했다고 폭풍 칭찬을 해주고, 학습지 위에 하트를 그려준다. 단어 열 개를 다 쓰면, 원이가 좋아하는 무지개색 하트 스티커를 마음껏 붙일 수 있게 했다.




선생님도 방학이 좋은데 아이들은 얼마나 방학이 좋을까. 아침마다 한글 공부를 하러 오는 원이가 쓰기를 조금이라도 덜 싫어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문득 나의 1학년 시절이 떠올랐다.




교실 뒤편에 있는 사물함 문에는 포도송이 그림이 하나씩 붙어 있었다. 발표를 하거나, 선생님 심부름을 하거나, 숙제를 잘 해오면 선생님은 잘 익은 포도 같은 동글동글한 보라색 스티커를 하나 떼어 주셨다. 나는 스티커가 혹시라도 바닥에 떨어질까 봐 손가락 끝에 꼭 붙인 채 사물함까지 달려가곤 했다.




그때의 나는 포도 하나에 하루를 버텼고, 오늘 원이는 하트 하나에 연필을 다시 쥔다. 1학년을 맡은 교사에게 필요한 인내심이란, 아이가 다시 연필을 잡을 때까지 기다려주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다섯 날 동안 원이와 나란히 앉아서 연필심이 부러질 때마다 기다리는 법을 배웠다.



누구도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알려고 시도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자는 알아가야 하는 숙제를 떠안는 자이다.
- 이승우, 사랑의 생애, 31




*글에 쓰인 학생의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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