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명 모두가 각자의 세계를 가진 주인이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오래전에 배운 것, 그리고 우리에게 가르쳐 줄 수 있는 것은 사람들에게 일을 시키려면 간섭하지 말고 혼자 내버려 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스트우드가 묻는 건 자기처럼 우리도 준비되었냐는 것뿐입니다."
데이비드 니븐, 나는 왜 똑같은 생각만 할까, 250
초등학교 6학년, 친구 따라 강남 가는 시기. 그때의 나는 친구가 없으면 학교를 다닐 수 없다고 믿었다. 아침 시간에 사물함에서 교과서를 꺼내며 어젯밤 본 드라마 이야기를 하고, 쉬는 시간에 학교 마치고 같이 떡볶이 먹으러 가자고 약속을 잡고, 점심시간에는 운동장에 나가서 '경찰과 도둑'이나 '위아래'같은 게임을 할 친구가 있어야 했다.
9명이서 함께 어울려 놀다 보면, 그 안에는 마음을 제일 잘 알아주는 친구, 괜찮은 친구, 개그코드가 맞아서 웃음이 끊이지 않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같은 무리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어색하고 안 맞는 친구도 있다. 9명이었지만 하나처럼 다녔다.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고 그렇지 못하면 무리에서 '튕겨질' 것 같았다. 사실 짜장면이 좋은데도 짬뽕이 좋다고 거짓말하는 것처럼 사소한 어긋남이 하나 둘 쌓이다가 하나 같았던 우리는 결국 다시 아홉이 되었다. 어른들이 학창 시절을 떠올리며 아련히 말하던 '초등학교 친구는 평생 친구'라는 말은 신기루가 되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9명 모두가 각자의 세계를 가진 주인이었고 우리는 그 다름을 인정하지 못했다.
교사가 된 지금, 나는 또 다른 10명의 여학생들과 매일을 살아간다. 아주 어릴 때부터 친했다는 3명, 관심사가 비슷한 2명, 공부하면서 친하게 지내는 2명, 그리고 각자 홀로 있는 1명씩 3명. 각각의 섬처럼 있는 3명의 아이들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고 싶었다. 친한 친구들과 같은 반이 되지 못했어도 1년을 함께할 우리 반에 마음 붙일 친구가 생기길 바랐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성격이 어울릴 것 같은 아이들을 같은 모둠에 배치하고, 서로 마음을 열고 주변을 바라볼 수 있도록 작은 말을 건네는 정도였다. 앞니가 빠지던 시기부터 친했다고 해서 영원한 친구가 되는 것은 아니며, 마음을 열고 주변을 둘러보면 의외로 좋은 친구를 발견할 수도 있다는 말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계기는 사소했다. 아마 창체 동아리활동 시간이었던 것 같다. 하고 싶은 보드게임을 원하는 친구와 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었다. 교실을 슬쩍 둘러보니, 섬처럼 따로 있던 세 명의 아이가 오랜 친구 세 명과 함께였다. 그 뒤로 6명이서 다니기 시작했다. 쉬는 시간에 서로 머리를 묶어주며 장난치고, 점심을 먹고 한 자리에 모여서 이번 주 주말에 다 같이 이월드에 놀러 가자 이야기했다. 어느 날은 우르르 교탁 앞으로 와 자기들만의 재밌는 에피소드를 쏟아놓기도 했다.
억지로 붙여주지 않아도 조금만 알려주고 지켜보면 그걸로 충분하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다정하고 다름을 존중할 만큼 성숙하다. 다 같이 어울리는 모습이 오래 이어지길, 중학교에서도 이 따뜻함을 잊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