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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Guyt Jan 09. 2017

축구로 영국 채우기 (2)

2 - 꿈을 이루다


 여행 다섯째날, 첫번째 숙소에서 짐을 빼고 유스턴 역으로 이동해 리버풀로 가는 일정이었다. 드디어 리버풀로 가는 날이다. 설렘과 기대가 나를 지배하고 있었지만, 그 전에 먼저 들릴 곳이 있었다.


 기차를 예매하다가 리버풀로 가는 길 중 익숙한 도시를 경유해 가는 기차를 발견하였다. Stoke-on-Trent. 스토크였다. 스토크는 어떻게든 짬을 내어 가기로 했던 곧이고, 영국에선 다른 시간에 목적지가 같은 기차를 타도 상관 없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스토크에 잠시 내려 스토크 시티의 홈 경기장, 브리타니아 스타디움(현 BET365 스타디움)에 가기로 하였다.


Britania Stadium.


 그렇게 해서 무작정 스토크에 내려 브리타니아 스타디움을 찾아갔다. 역시 구글맵(진짜 영국여행에서 절대적인 부분을 차지한다. 길부터 시작해서 버스 시간, 버스 노선, 식당이나 가게 영업 시간이나 휴일까지 구글맵은 영국에서 못하는게 없다.)의 도움을 받아 버스를 타고 한번에 길을 찾을 수 있었다. 사실 스토크라는 도시가 사람들이 많이 찾는 도시도 아니고,  특히 한국 관광객은 찾아볼수 없다시피 하다. 도시 자체도 시골 느낌이 물씬 나기도 하고. 하지만 개인적으로 스토크시티에 대한 좋은 이미지도 있고 늘 가보고싶다고 생각해본 경기장이기 때문에 고민없이 찾게 되었다. 경기장 주변은 매우 한산하다.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경기장 내부가 잘 들여다보이기도 하고 주변 풍경과 어우러져 막연히 예쁘다는 느낌이 많이 드는 경기장이다.


Stoke City FC.


 경기장을 쭉 들러보고 메가스토어에서 신나게 쇼핑을 하고 난 뒤, (풀럼-스토크-리버풀로 이어지는 일정에서 나머지 경기장에서 쓴 돈의 절반은 쓴 것 같다.) 밖으로 나오니 비인지 우박인지 모를 것이 쏟아졌다. 매주 집에서 프리미어리그를 시청할때 내리던 비나, 영화에서 내리던 영국의 비는 맞아도 하나도 추울 것 같지도 않고 그냥 부슬부슬 오는 느낌이었는데, 실제로 맞아본 영국의 비는 그냥 비다. 똑같이 차갑고 똑같이 짜증난다. 어쨌든 다시 역에 찾아와 리버풀로 가는 기차를 탔다. 스치듯 들린 도시이지만 스토크에 대한 인상은 상당히 좋게 남아있다. (비가 오기 전까지는) 날씨도 좋았고, 경기장 분위기도 좋았다. 나중에 기회가 닿으면 경기를 꼭 보고 싶은 경기장이고, 하루 묵어보고 싶은 도시이다.


 이제 드디어 리버풀이다. 비틀즈의 도시, 리버풀FC의 도시. 기차에서 내려 숙소를 찾고 짐을 풀 때 까지는 실감이 잘 나지 않았다. 그러다 도시를 제대로 살펴보기 시작하자, 내가 정말 리버풀에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표지판에, 버스정류장에, 가게 간판에 내가 수없이 찾아보고 또 꿈꿔왔던 이름들이 가득했다. 힘들고 지친 여정이었지만, 이날만큼은 간절하게 아침을 기다리며 잠들었던 것 같다.

 

Liverpool.


  여섯째날, 드디어 안필드를 가기로 예정되어 있던 날이었다. 큰 기대를 안고, 버스를 타고 안필드로 갔다. 리버풀은 나름 큰 도시이기 때문에 버스노선이 잘 되어있다. 특히 안필드나 구디슨파크 까지는 무리없이 버스로 갈 수 있다. (경기가 있는 날은 기사분께 스타디움? 하고 물어보면 쉽게 경기장 가는 버스를 찾을 수 있다.) 시티패스도 있던 것으로 기억하기 때문에 잘만 활용하면 부담없이 돌아다닐 수 있다. 그리고 시내에서 조금만 항구 쪽에 묵는다면 알버트독이나 리버풀 박물관, 비틀즈 스토리 같은 유명 관광지는 얼마든지 걸어서 갈 수도 있다.


 안필드에 도착했다. 스탠드 공사중이어서 전체적인 외관은 잘 파악할 수 없었지만, 상상하던 그대로였다. 티비에서, 인터넷에서만 보던 거리들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애써 흥분을 가라앉히고 투어를 신청하러 갔는데 아뿔싸, 투어가 없단다. 런던 외 도시는 투어 예약을 하지 않아도 충분하다는 말만 믿고 예약을 하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안필드만큼은 꼭 투어 예약을 하고 찾아가는것을 권한다. 아쉬운대로 미니투어를 신청하고, 기다리며 다시 안필드의 분위기를 마음껏 즐겼다. 어느새 투어에 대한 아쉬움은 사라지고, 다음날 있을 경기에 대한 상상을 해보며 즐거운 한때를 만끽했다.


Paisley Gateway. Anfield


 투어 구성도 생각보다 알찼다. 일반 투어보다 간단하지만 확실히 특색이 있었다. 구단 역사나 경기장 밖 건물들에 대한 설명도 더해져 오히려 특별한 시간을 보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니투어는 크게 안필드 내부 관람과 VIP박스 관람, 그리고 그라운드 바로 옆 콥 스탠드 관람이 주를 이루었다. 충분히 안필드의 분위기를 여유롭게 즐길 수 있었다. 다만 다시 경기장을 찾을 예정이 없다면 아쉬울 수도 있는 구성이다. (나는 이날을 시작으로 안필드를 3번 방문했다.)


Anfield

 계속 내가 여길 오다니, 하면서 돌아다녔 던 것 같다. 안필드도 사진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생각보다 아담한 구장이다. 여타 큰 클럽에 비해서는 규모는 조금 작지만, 확실히 경기장이 밀폐되어있는 느낌이 들어 사람들이 가득하고, 그들의 함성 속에 그라운드에 선수들이 있다면 당연히 열광적인 분위기일 수 밖에 없을 것 같았다. 실제로 경험한 바로도 그렇기도 하고.


노스웨스트 더비...


 콥 스탠드. 정확히 말하자면 스피온 콥을 보았다는 사실도 나를 더욱 흥분하게 만들었다. 가이드분의 알아듣기는 힘들지만 맛깔난 설명과 함께, 내일 경기는 꼭 이길 것이라는 근거없는 확신에 가득 차 안필드를 떠났다. 영국 여행중 좋은 순간이 많았지만, 가장 '꿈같은' 시간을 꼽으라면 안필드 투어는 무조건 고르고 싶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메가스토어에서 쇼핑을 마치고, (몇몇 정말 참을 수 없었던 것들 말고는 여행한 경기장에서는 배지를 구매하고, 경기를 볼 예정인 구장에서는 머플러까지 구매했다. 물론 안필드에서는 정신줄 놓고 지르긴 했지만.) 에버튼의 홈구장인 구디슨 파크로 향했다. 버스를 타고 갈수도 있지만, 이 두 경기장 사이를 걸어서 가는 것이 나름 위시리스트에 있었기 때문에 걸어서 구디슨 파크로 향했다. 거리 자체도 멀지 않고, 스탠리 파크라는 공원 하나를 끼고 두 경기장이 있기 때문에 여유가 있다면 공원을 가로질러 산책하듯 가면 여행 온 기분도 나고 운치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Goodison Park.

 

 구디슨 파크는 오래된 경기장이다. 외관도 확실히 낡았고, 맑은 날씨보다는 사진과 같은 우중중한 날씨에 잘 어울리는 경기장이다. 라이벌 팀이지만 팀 케이힐이 활약하던 시절 때부터 에버튼 경기는 찾아서 챙겨보곤 했었다. 그래서 구디슨 파크 역시 꼭 가보고 싶었던 경기장 중에 하나였었다. 이곳은 화이트 하트 레인과 함께 가장 영국스러운 경기장이었다. 여행 막바지에 경기를 보러 와 둘러본 내부도 꽤 옛스러운 느낌이었고. 투어가 있지만, 경기를 보러 올 예정이었기 때문에 외관을 한바퀴 쭉 돌아본 뒤 '딕시' 딘 동상(에버튼의 전설적 공격수)앞에서 사진도 한번 찍고, 메가스토어를 구경한 뒤 다시 리버풀 시내로 돌어갔다. 구디슨 파크는 사진이 꽤 잘 나왔던 경기장으로 기억한다. 주변 거리들의 분위기도 경기장과 잘 어우러졌다. 시간을 내서 천천히 둘러보는것을 추천한다.


Home of the Blues!


 이날 오후 일정은 리버풀 시내 관광이었다. 오랜만에 평범한 관광객처럼 박물관도 둘러보고, 알버트 독과 비틀즈 스토리 같은 명소도 찾아 항구도시, 그리고 비틀즈의 도시라는 느낌을 한껏 즐겼다. 개인적으로 리버풀에서 축구 외적으로도 생각도 많이 하고 나름대로 가지고 있었던 고민에 대해서도 실마리를 얻어서 왔다. 아무래도 살면서 가장 가보고 싶었던 곳에서 하는 생각은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 내가 내 돈을 내고 왔지만 나름 노력해서 삶의 목표중 하나였던 것에 가까이 다가왔고, 나의 목표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 상상속의 모습 그대로였다는 점이 나에게 큰 응원과 용기를 주었다.


 밤이 되었지만 숙소에 들어가기도 싫고, 마침 축구경기도 있고 저녁도 해결하지 않은 상태여서 시내 펍에 들러 축구를 보며 간단히 요기를 해결하였다. 아쉽게도 맥주는 많이 즐기지 못하였지만 그래도 펍에서 축구를 보는 경험은 매우 즐거웠다. 축구여행 큰 관심이 없더라도, 주말에 가끔 프리미어리그 경기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펍에서 맥주와 함께 축구 경기를 즐기는 것도 꽤나 특별한 경험일 것이다.


우리는 빌라와 레스터의 경기를 보았다.


 숙소에 돌아와서 MOTD(매치 오브 더 데이. 영국 있는 동안 유일하게 찾아서 본 티비 프로다.)를 보며 하루를 정리하고 내일에 대한 기대에 부풀었다. 일곱째날 일정은 노스웨스트 더비였다.


안필드 티켓ㅠㅠㅠㅠㅠㅠ


 아침 일찍 일어나 만반의 준비를 마친 뒤 집결 장소인 호텔로 갔다. 리버풀과 맨유의 경기는 워낙 인기가 많기도 하고 풀리는 티켓이 적어 어쩔 수 없이 hospitality 티켓을 이용하여 갔는데, 가격에 따라 다르지만 경기 티켓을 제공해 줌과 동시에 매치데이 프로그램, 식사, 숙소, 경기장까지 교통편 등을 제공해주는 '비싼' 티켓이라고 보면 된다. 리버풀에서 사용한 티켓은 matchday hospitality 였는데 아침 제공, 전 리버풀 선수와 즐거운 한때, 경기장까지 버스 제공, 그리고 경기 티켓 제공이 포함된 패키지였다.


 온통 빨간색으로 가득한 호텔 조식뷔페에서 조식을 먹고, 구단에서 틀어주는 티비를 보고 있으니 Dave johnson이라는 오래전 리버풀 선수(위키피디아에 치면 자세히 나옵니다..)가 와서 이런 저런 이야기도 해주고, 경기에 대한 썰도 풀어주며 경기를 더욱 기다리게 만들었다. 온통 리버풀 팬들만 있는 장소에 있으니 마치 고향에 온 느낌이었다.


Danny Ings. 빨리 그라운드에서 볼 수 있길.

 

 그렇게 리버풀에서 제공해준 버스를 타고 편하게 경기장에 도착해서, 경기 당일 분위기를 마음껏 느끼며 입장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유독 사람들이 많이 몰려있는 입구가 하나 눈에 띄었고, 무언가 촉이 와서 무작정 사람들 속에 섞여 기다려 보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부상으로 경기에 나서지 못하는 선수들이 차를 몰고 들어오는 통로였다. 잉스, 오리기, 그리고 쿠티뉴(ㅠㅠㅠㅠㅠ)가 지나갔다. 사진에 찍혀있는건 그냥 아저씨가 아니고 잉스다.. 많이 아끼는 선수인데.. 하루빨리 부상에서 돌아와 멋진 모습 보여주길 바란다. 그리고 쿠티뉴가 생각보다 매우 친절했다. 몇번 영국사람들에게 리버풀 얘기를 하면 쿠티뉴가 아주 스윗하다는 말을 들었었는데, 실제로 팬들을 다정하게 대하는 모습이었다.


pre-match Anfield.


 경기장에 입장해서 곧 경기가 열릴 안필드를 바라보고 있자니 감회가 새로웠다. 이곳에서 경기를 보는 날이 올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빨리 오게 될 줄은 상상도 못하고 있었다. 친구에게 사진을 많이 못찍을 정도로 떨리니까 사진을 많이 찍어달라고 부탁하고 스스로를 진정시키면서 경기를 기다렸다. 맨유와의 경기이다 보니 경기장 분위기는 더 뜨거웠고, 그날 영국 전역의 관심이 집중된 경기였기 때문에 선수들이나 팬들 모두에게 비장한 기운이 감돌았다. 그리고 왼쪽 위를 무심코 봤는데, 스콜스와 캐러거가 해설을 준비하고 있었다..... 꿈도 너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면 실감나지 않는다고 선수들이 나와서 몸 풀때도 그냥 하늘에 붕 떠있는 기분으로 멍하니 있었다.


Jurgen Klopp.


 이 사진은 그냥 클롭을 보고싶어서 찍은 사진인데.... 뭐 잘 보면 클롭도 있고 데파이도 있고 랄라나 헨도 클라인 미뇰레 다 보이긴 한다. 이때는 경기 전 트레이닝도 정말 집중해서 봤던 기억이 있다.


YNWA


 경기 시작 직전. 그라운드에는 선수들이 경기를 준비하고 있고, 관중들이 일제히 모두 일어난다. 그리곤 경기장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You'll Never Walk Alone이 울려퍼진다. 안필드에 가기까지 심지어 비행기에서조차 수없이 상상해왔었던 순간이다. 평소 조용히 축구 관람을 하는 나이지만, 이때만큼은 머플러를 높이 들고 함께 노래를 불렀다. 실제로 보는 안필드에서의 YNWA은 훨씬 더 장관이었고 감동이었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짜릿한 순간이다.


 그렇게 경기가 시작했고, 정말 어떻게 시간이 흐르는지 모르게 빠르게 90분이 흘러갔다. 경기는 사실 재미있다고 말하기 힘든 수준이었고, 심지어 0:1로 맨유에게 졌지만 (3연속 홈팀 0:1 패배!) 정말 있는 힘을 다해 수만의 관중과 함께 응원하고, 아쉬워하고,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냈다. 이겼으면 좋았겠지만 충분히 값지고 축구에 대한 열정을 다시 불어넣어 준 경기였다.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고, 평생 잊지 못할 90분이었다. 리버풀 팬이 아니라도, 축구를 좋아한다면 안필드에서 한 번정도는 경기를 보라고 누구에게라도 말해주고 싶다.


 진한 아쉬움과 감동을 뒤로하고 부지런히 짐을 싸 다시 런던으로 향했다. 우리는 주로 Trainline 어플을 통해 기차를 예매하였는데, 일주일정도 빠르게 예매한다면 정말 저렴하게 기차를 예매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나 목적지를 착각한다면 환불이 불가하고, 주말에 런던으로 넘어오는 차는 빈자리를 찾기가 힘드니 미리미리 예매를 해두길 권한다. 우리도 리버풀 라임 스트리트 역에 최대한 빠르게 갔지만 안 그래도 런던에 가는 기차인데다가, 축구경기를 본 사람들로 역이 가득해 두세차례 기차를 놓치고 겨우겨우 런던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좌석과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싼 표에 경우에는 최악의 경우 두세시간 내내 서서 가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으니, 미리미리 준비를 잘 하시기를 바란다.


Wembley Park Station.


 여덟째날. 여행의 반이 지나갔다. 런던에서 여유로운 하루를 보내기로 하고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드라마 '셜록'에 나오는 SPEEDY'S 라는 식당이었다. 극중 셜록의 집 1층에 있는 식당으로 나오는데, 마침 촬영지가 숙소 근처라 (유스턴 역 근처) 아침도 먹을 겸 해서 다녀왔다. 생각했던 것보다 저렴한 가격에 맛좋은 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셜록 시리즈를 한번이라도 본 사람은 이곳에 가서 식사를 하는 것도 추천한다. 아침먹기 딱 좋다. 다만 두번을 갔는데 두번 모두 한국사람들이 있었다는 점은 참고하시라.


 본격적인 일정은 웸블리 스타디움을 향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위 사진에 있듯 웸블리 파크 역에 내리면 출구로 나가자마자 경기장을 찾을 수 있다. 현재는 토트넘이 유럽대항전 경기에 사용하고 있지만 저 당시만 해도 영국대표팀의 경기와 콘서트, 럭비경기와 같은 특별한 이벤트 때만 사용되던 곳이라 역시 한산한 분위기였다. 웸블리 스타디움 투어는 시간도 넉넉하고 인원도 넉넉하므로 굳이 예약을 하고 가지는 않아도 문제 없지만, 예약이 쉬운 편이라 (http://www.wembleystadium.com/Wembley-Tours.aspx) 정 불안하다면 예약을 하고 가는 것도 좋다.


Wembley Stadium.


 영국에서 봤던 경기장 중 단연 압도적인 규모를 자랑했는데, 웸블리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아치 구조물이 단연 압권이었다. 워낙 큰 경기장이기 때문에 입구를 찾으려면 빙빙 돌아야 하는데, 군데군데 재밌는 포인트가 많이 심심하진 않다. 입구를 찾아 올라가면 영국 대표팀 관련 물품, 영국 내 유명 클럽들의 물품을 판매하는 메가스토어가 있고, 더 위로 올라가면 투어 입구를 찾을 수 있다.


크다. 정말 크다.


 웸블리는 규모가 큰 만큼 투어도 체계적으로 이루어졌다. 대략 웸블리 스타디움에 대해 설명해 주며 각종 시설들을 돌아보고, 트로피 시상대에 서보고 관중석에 앉아도 보고, 프레스룸과 그라운드와 락커룸을 돌아보는 순서로 이루어졌던 것 같다. 유쾌한 가이드분과 함께 영국 축구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웸블리를 돌아보니 우리도 상암구장 투어정도는 진행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국가대표팀 전용 구장이 있다는 사실이 새삼 부럽게 느껴졌다. 관중석의 규모 역시 어마어마했다. 개인적으로 이렇게 개방형인 경기장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챔피언스리그 결승이나 각종 컵대회 결승때 밤을 새워가면 보곤 했던 웸블리를 실제로 보고 있다는 것이 감격스러웠다. 이렇게 커다란 경기장이 도시의 랜드마크로 자리잡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매일 이곳을 찾는다는  사실이 마냥 신기하고 부러웠다. 결승 때마다 각 팀의 색으로 반반씩 칠해지는 이 거대한 구장에서 꼭 경기를 보고싶다는 생각을 했다. 언젠가는 프리미어리그 승격 플레이오프를 보러 다시 웸블리를 찾아오기로 기약을 하고 웸블리를 떠났다.


여행 사진 중에 두번째로 좋아하는 사진이다. 천진난만...


 다음은 런던에서 보기로 했던 구장들 중 그나마 웸블리와 가까웠던 퀸스 파크 레인저스의 홈구장, 로프터스 로드로 향했다. 이곳이 위치가 상당히 애매한데.. 쉐퍼드 부쉬 역 또는 화이트 시티 역에서 내려서 잘 찾아가야 한다. (어느 역에서 내렸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길을 잘못 들면 아예 다른 방향으로 넘어가니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근처에 BBC 방송국 건물이 있으니 지나다니다 보면 외관이라도 한번쯤은 볼 수 있다.


Loftus Road Stadium.


 어찌어찌 찾아간 로프터스 로드이지만 사실 인상은 그렇게 좋지 못했다. 개인적으로는 QPR을 썩 좋아하지 않고, 또 우리가 유독 피곤했던 탓도 있겠지만 날씨도 주변 분위기도 영 을씨년스러웠고, 메가스토어 직원들도 유독 불친절했다. 그래서 사진도 제대로 남기지 못하고 서둘러 돌아보고 나왔던 것 같다. 이곳이 영국에서 봤던 축구장 중 두번째로 실망했던 곳이다. 그래도 기회가 닿는다면 다시 꼭 찾아 다시 좋은 기억을 남기고 싶다.


 이렇게 여행의 절반이 지나갔다. 어떻게 지나간 지도 모르게 빠르고 꿈같이 흐른 일주일이었다. 그러나 하루하루 적응해 가고 조금은 능숙해지는 스스로를 보며 자신감이 생기고 있었다. 물론 친절한 사람들과 영어가 능통한 친구 덕이 컸지만, 그래도 잘 해내고 있고 잘 할 수 있다는 확신이 내 안에 쌓여갔다. 처음에는 말 그대로 '미친' 계획으로 시작하였지만 어느새 그저 꿈만 꾸어왔던 일들 중 반이 현실이 되어 있었고, 이왕 이렇게 된거 나머지도 제대로 미쳐보자는 생각에 더 힘을 내서 하루를 마무리하고, 또 내일을 시작했었다.  반을 썼으니 나머지 반도 써야 할 것 같다. 다음에 다시 뵙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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