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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롬 Jan 07. 2024

외국에 단골카페가 있다는 것

폴란드살이 3개월 차. 거의 매일 출석하는 카페가 생겼다. 'Green Caffe Nero' 다소 긴 이름의 프랜차이즈 카페, 우리는 간단히 '네로'라고 부른다. 남편이 출근하는 평일에는 주로 나 혼자, 가끔 그가 퇴근한 저녁엔 함께, 휴일에는 무조건 손잡고 룰루랄라 같이. 그렇다. 우리 부부는 카페중독자들이다.



나와 남편의 카페사랑은 대학생부터였다. 발이 붓도록 서울 이곳저곳을 다니던 연애 초기가 지나, 미래를 걱정해야 하는 때가 오자 우리는 사뭇 진지해졌고, 만날 때마다 당연한 듯이 각자 노트북을 가져와 카페로 갔다. 음료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는다. 각자 노트북을 켠다. 주문한 커피를 받아온다. 그리고 시작한다.



우리 잠깐 얘기 좀 하고 각자 공부할까?



매일 같은 패턴임에도 남편은 늘 새삼스럽게 말하곤 한다. 알록달록 환상이 가득했던 대학생 때는 "우리 결혼하면..."으로 대부분 시작했고, 결혼 5년 차 30대 농익은 부부인 지금은 미간에 다소 힘이 들어간다. "자, 현재 처리해야 하는 문제들은..."



한국에서만이 아니다. 해외 살이 중에도 카페중독은 고쳐지지 않았다. 외국살이가 처음이라 허둥지둥했던 아일랜드에서도 집을 구할 때 일단 카페가 근처에 있는지부터 확인했다. 더블린의 그 동네에는 Insomnia 카페가 있었지만 대부분 오후 4시면 문을 닫았다. 호주에서는 늘 좁고 북적북적했던 집 앞 이케아의 카페를 갔고, 말레이시아에서는 겨우 하나 있는 카페에 그 땡볕에 15분을 뻘뻘 걸어 매일 출석했다. 집을 볼 때마다 매번 구글맵에서 'Cafe'를 검색한 집요함 치고는 환경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여기 폴란드. 바르샤바 우리 동네는 다르다. 도보권의 네로만 4개가 넘고, 머물기 좋은 개인 카페들도 수두룩하다. 심지어 저녁 늦게까지 문을 연다. 3개월 동안 늘 말했다. 바르샤바가 참 살기 좋네. 아마 그 이유의 8할은 이 카페들 때문일 것이다.


Unsplash, Toa Heftiba


2024년의 1월 1일도 어김없이 네로에 갔다. 익숙한 듯이 나는 자리를 잡고, 남편은 주문하러 줄을 섰다. 다들 새해를 커피로 깨우러 오셨는지 꽤 북적였고, 주문에도 꽤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 남편이 커피를 들고 오는데 방긋 웃고 있었다. 아니, 내가 아메리카노 두 잔 주문하는데 직원분이 다 안다고 하셨어. Can we get two Americanos, please?라고 하자 직원분이 Yes, I know.라고 하셨다고.






직원분이 알아본다는 것, 그리고 살짝 아는체를 하신다는 것. 바로, 단골이 되었다는 신호다. 당시 백신접종증명서를 보여줘야 했던 21년의 아일랜드에서도 어느 순간 우리 것은 확인하지 않으셨고, 호주 이케아 Pika도 투 아메리카노를 기억하셨다. 페낭의 대학생들이 가득했던 그 카페도 마찬가지. 카운터로 다가가는데 아메리카노 2잔을 미리 찍어놓으시더라. 어디든 매일 가는 곳은 기억되는 것이 당연하지만, 외국의 어느 동네에 단골로 인정받은 카페가 생긴다는 것. 어쩐지 흡족하다.



"거기 어디더라. 더블린 시티에 그 마트"

"어디? 혹시 그 시티 Costa 카페 옆에?"

"맞아 맞아 거기! 이름 까먹었다. 뭐였지"



간혹 추억을 되새김질하다 보면 안타까운 기억력에 희미해진 것들이 꽤 많은데, 우린 대부분의 장소 또한 카페를 기준으로 더듬어본다. 몇 달, 몇 년의 체류가 아닌 3박 4일의 짧은 여행이라도 최소 두 번은 갔던 카페가 하나씩은 있다. 그만큼 카페에 자주, 많이, 반드시 간다는 말이다.



며칠 전, 밤산책을 하면서 남편이 말했다. 이제 너보다 내가 더 카페를 좋아하는 것 같아. 너 만나기 전에는 왜 카페에서 공부를 하는지 몰랐었거든. 근데 지금은 너랑 카페에서 얘기하는 게 너무 재밌고, 집에서는 집중이 잘 안 돼.



나와 남편은 우리가 지나온 도시들을 떠올릴 때면, 살던 동네의 카페들을 얘기한다. 언젠가 폴란드를 떠나게 된다면, 바르샤바 우리 집 앞 네로가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겠지. 아마 무척 그리울 테다. 삶이 녹록지 않았던 더블린, 멜버른, 페낭의 카페들도 이리 자주 생각나는 것을 보면. 보다 여유롭고 안정적인 해외 살이를 시작하게 해 준 이 바르샤바의 카페는 아마, 매우 아주 무척 그리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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