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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롬 Jan 28. 2024

남편의 물욕

물욕=재물을 탐내는 마음

사전의 의미를 기준으로 정도를 매겨보자면, 최대 10에서 나의 물욕은 2, 남편은 4. 방랑벽은 있지만 다행히 물욕은 없는 집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옷, 가방, 가구, 액세서리 등 관심이 없는 편. 그래서 취향도 없다. 친구의 남자친구분이 클래식한 고가구를 구하러 도시를 이동한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서는 상당히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런 나에게도 명품 가방이라는 것이 하나 있긴 한데, 그것도 남편이 거의 빌다시피 해서 샀다. 노트북도 안 들어가는 파우치만한 크기의 무난한 가방이 월급을 한참 넘는다는 사실을 도저히 납득하지 못하는 나와 결혼하는데 부인 가방 하나 안 사주면 어떡하냐며 광광 울부짖던 스물여섯의 남편. 그래서 적당한 것으로 사긴 했는데, 역시 결혼식이나 기념일 빼고는 장롱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비슷한 예로 어느 생일에 남편이 사준 20만 원대의 브랜드 니트가 있겠다. 스무 살에 산 5만 원짜리 자주색 니트를 여전히 잘 입고 다니는 나는 역시 납득하지 못했고, 그의 마음이 상하지 않게 설득한 후, 보다 실용적인 도트백으로 교환했다.






이렇듯 물건에는 하등 관심이 없으나 여행과 술에는 어느 정도 돈을 쓰는 편이라 2를 매겼다. 반면 남편도 비슷한 편. 다만, 한 분야만큼은 제외하고. 마찬가지로 물건에 관심이 하등 없고 심지어 술도 안 마시는 남편에게 4를 매긴 것은 결코 과하지 않다. 그의 거의 유일한 취미는 전자제품 구경 및 가끔 구매 및 언박싱 영상을 보며 희열 느끼기 이므로.     


남편과 전자기기가 거의 한 몸처럼 묶여있다는 사실을 파악한 지는 오래다. 당장 생각나는 것을 말해보자면, 연애 1년 즈음이 되었을 때. 학교 앞 고깃집에서 갈매기살을 굽고 있다 별안간 남편이 잠깐 나갔다 온다고 했다. 집게를 받아 들고 지글지글 구우며 먹고 있는데 한창 상기된 얼굴로 다시 들어왔다. 그리고 그의 손에 들린 새 스마트폰. 이상하다. 분명 바꾼 지 얼마 안 되어 내 눈에는 매끈한 새것으로 보이는 남자친구의 폰이 저리 멀쩡하게 있는데, 이건 뭘까. 물으니 그는 기기에 문외한인 내가 거의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중얼거리며 조용하게 열변을 토했다. 반년이 채 안 되었는데도 굳이 새것을 사야 했던 이유에 대해. 그렇구나. 그때가 그의 무언가를 향한 덕심을 처음 마주했을 때라 기분 좋게 넘어갔다. 그리고 그 뒤로 또 비슷한 상황. 또 비슷한 일들. 내가 위기감을 느끼고 말리지 않았더라면 아마 그는 하우스푸어도 카푸어도 아닌, 다소 억울한 기기푸어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남편은 말한다. 네가 제어해 줘서 다행이라고. 그러니까 내가 말려서 겨우 4 정도이다. 아니었음 8이나 9였겠다.



Unsplash, Oscar Nilsson



다시 돌아와서 현재. 지금도 남편은 가끔 나 몰래 기기를 사곤 한다. 얼마 전에도 그랬다. 폴란드로 오기 전 한국에서 그는 에어팟을 샀다. 아내에겐 일언반구도 없이. 남편은 몰래 꿍쳐둔 돈을 자주 들키곤 했는데 그건 아마 내가 돈 관리를 해서 그럴 것일 테다. 소소한 금액임에도 온전한 본인 돈을 가지려는 본능. 이 에어팟도 그 꿍쳐둔 돈으로 나 몰래 구매한 것. 이왕 살 거면 정정당당하게 말하고 사지 그랬냐 했더니 그는 별안간 불쌍한 표정으로 억울함을 토로했다.


"너는 대체 이어폰이 몇 개가 필요하냐며 나한테 뭐라 그러고 못 사게 했을 거잖아!"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물론 그가 물어보면 나는 저렇게 반응했겠지만 우리 집 돈 관리를 하는 입장에서 나 또한 손을 번쩍 들고 억울함을 말하고 싶다. 불과 몇 달 전에 10만 원대 이어폰을 샀으면서 대체 왜 에어팟이 또 필요하다는 걸까. 귀가 4개인가? 난 도저히 모르겠으나 별 말 안 하고 그냥 넘어갔다. 다른 데 일절 소비를 하지 않는 사람이 이어폰을, 얼마나 사고 싶었으면 말도 안 하고 샀겠나 싶어서.


 




대체로 욕심 없는 남편이 전자기기를 그토록 좋아하는 것은 내가 여행과 술을 이토록 사랑하는 것과 비슷하겠다. 나 또한 물건 쇼핑은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할 만큼 흥미가 없지만 여행이나 술에는 한없이 관대해지니. 5년 차 기혼자가 되어보니 그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결혼이라는 것은 평생 상대방을 봐주며 사는 일이 아닐까, 하는.


남편은 집에 술이 가득한데도 마트에만 가면 주류코너에 달려가서 한참 동안 나오지 않다가 기어코 술을 한 병들고 나와 "사도 돼?" 라며 조급한 애교를 부리며 묻는 나를 봐줘야 하고, 나는 멀쩡한 노트북을 두고 갑자기 호주에서 맥북을 사고 싶다고 한, 그래서 결국에는 사고야 만. 그런 남편을 너그러이 이해해고 봐줘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 당장 남편이 집에 몇 개나 있는 기존의 것들을 뒤로하고 값비싼 키보드를 사고 싶다고 해도 아마 나는 조금 떽떽거리다 결국 사라고 하지 않을까. 내가 "핀란드에 오로라 보러 가자!"라고 말하자마자 그는 "그래! 핀란드 어디가 좋을까?"라고 답했으니까.



그리고 지금 옆에서 이 글을 훔쳐보던 남편이 묻는다.



어, 그럼 나 진짜 키보드 사도 돼?
사실 장바구니에 담아놨거든.
그러니까 지금 이게 왜 필요하냐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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