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의 결혼 생활 중 3년을 해외에 있었다. 새해맞이도, 크리스마스도, 설추석도 언젠가부터 늘 나와 남편 둘이서만 보내다 보니 이제는 둘 만의 조용한 명절이 익숙해졌다. 올해도 마찬가지. 우리는 유럽에서 설 명절을 보내고 있다. 한국은 명절이지만 폴란드는 아니라 명절 특유의 북적북적함도 떡국도 전도 가족도 친구들도 없는 이곳에서 단 둘. 양가 부모님들께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는 인사를 드리고, 친구들과 올해도 재밌게 지내자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냥 보통의 주말과 다름없다.
"어? 다음 주가 설이야?"
명절을 앞두고서는 응당 머리가 지끈거려야 하는 기혼자들이지만, 1주 전까지도 명절이었는지 몰라 어리둥절해하는 이런 자유로움. 여차하면 기차를 타고 베를린에 놀러 갈 수 있고, 내키지 않을 땐 그저 동네의 카페로 가서 책을 읽는 이런 자유로움. 요즘 나와 남편이 "아무래도 폴란드에 집을 사야 할 것 같다"는 얘기를 자주 하는 것에는 아마 이런 자유로움이 큰 몫을 하겠다.
결혼을 했음에도 외국에 산다는 이유로 '나의 삶' 외에는 따로 신경 쓸 것이 없고, 멀리 떨어져 있기에 사실 신경 쓸 수도 없다. 외로움을 잘 타지 않고, 새로운 곳에서의 모험을 사랑하는 나와 알고 보니 완전한 해외 체질이었던 남편. 직업적으로나 일상적으로나 무언가에 혹은 어딘가에 속박되지 않는 삶을 꿈꿨던 나로서는, 남편과 함께 조용히 지내는 이 유럽 생활이 꼭 맞는 퍼즐 같다 느껴진다.
"넌 사는 게 뭐라고 생각해?"
잠들기 전, 남편과 침대에서 뒹굴거리는 시간. 대부분 장난을 치거나 그저 꼭 끌어안고 있는 이 시간에 가끔 나는 이런 질문을 한다. 명절 같은 한국의 큰 이벤트가 있을 때면 더욱이 드는 이런 생각. 가볍게 고민하다 깊어지면 검색해보기도 하고, 관련 책을 찾아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가장 친한 친구인 남편에게 묻는다.
"음. 너랑 놀러 다니는 거?"
사뭇 진지한 표정에 그렇지 못한 내용. 남편은 대부분 장난기가 많지만 나의 진지한 물음에는 다소 진지한 대답을 하는 편인데, 저 답은 분별이 어려웠다. 비슷한 말로 넌 인생이 뭐라고 생각하니, 넌 어떻게 살고 싶어. 잘 산다는 건 과연 뭘까 등의 질문을 했을 때도 그의 답은 비슷했다. 너랑 재밌게 사는 거지. 맛있는 거 먹으면서 여행 다니기. 난 너만 안 아프고 잘 살면 충분해 등등.
나는 스스로 저런 류의 질문을 할 때면 다소 심오한 답을 찾으려 괜히 애를 쓴다. 그러다 남편의 심플한 대답을 들으면 이게 뭔가 싶으면서도 어쩐지 명쾌해지곤 한다. 최근 상황에 맞춰 답을 내놓는 남편의 저 대답은 아마 얼마 전 다녀온 핀란드 여행의 영향이었을 테다. 그런데 별 뜻 없이 내뱉었을 저 답은, 사실 나와 남편의 삶을 한 줄로 요약한 것에 가까웠다.
나는 늘 재밌게 살고 싶었다.
남편에게 청혼할 때 했던 말도 '재밌게 살게 해 줄게'였다. 귀여운 남편이랑 늘 신나고, 흥미롭고, 재밌게. 네이버 메인이나 블로그, 이 브런치에도 명절 관련 얘기가 우두두 올라오는 중, 나는 바르샤바 일상만 우직하게 쓴다. 떡국 대신 피자를 먹고, 가족들을 보러 가는 대신 늘 가던 카페를 간다. 편하고, 조용하고, 재밌다.
가족들과 북적북적 명절을 함께 지내야 행복한 이들이 있고,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은 이들도 있을 것이다. 우리 부부는 명백한 후자이다. 나는 내가 세상에서 결혼을 가장 잘했다고 거의 매일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인데, 아마 그 이유는 이렇게 나와 딱 맞는 결혼생활을 하고 있어서가 아닐까, 싶다. 한국에서 살 때 보다 오히려 나 자신에게 훨씬 더 깊게, 넓게, 자주 집중할 수 있는 그런 외국에서의 삶. 뭔가 스스로 고립시킨 것 같지만, 그래도 남편이랑 같이 고립되어 좋다. 즐기자! 부부만의 오롯한 명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