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롬 Feb 14. 2024

남편과 장을 보러가면

어젯밤, 남편이랑 장을 보러 갔다.


마트 물가가 저렴한 폴란드여도 한 번 가면 10만 원은 예사로 나오는 통에 이번에는 적게 사자 다짐했다. 그러나 역시, 셀프 계산대에 도착했을 땐 꽉꽉 찬 바구니. 이것도 맛있어 보이니 담고 저것도 내일 남편 도시락으로 담고 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옆에서 장바구니 들고 있어~"


늘 그랬듯 남편이 셀프 계산대에 물건을 착착 올리는 동안 나는 집에서 챙겨 온 장바구니를 들고 옆에서 오도카니 있는다. 영어 지원은 되지만, 무게를 계산할 때 재야 하는 과일이나 채소의 낱개 이름은 폴란드어라 '대체 감자는 어딨지?' 등의 어리둥절함을 몇 번이나 맛본 뒤, 겨우 계산을 끝냈다. 역시나 10만 원 가까이 나와버린 이날.


장바구니는 총 3개. 남편은 계산을 마무리하고 하나씩 옮겨 담았는데, 내가 들 것에는 가벼운 것 위주로 차곡차곡 넣었다. '저걸 혼자 들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무거워 보이는 나머지 2개의 것을 들고는 나에게 물었다. 그거 들 수 있겠어? 채소와 샐러드 등으로 구성된 내 몫은 전혀 무겁지 않았기에 가볍게 휙 들고서는 앞서 걸었다. 그러자 뒤에서 빠르게 쫓아오며 계속 물었다.


"안 무거워? 아휴 너한테 너무 무거워 보여. 그거 나 줄래?"


평소에도 나의 모든 짐을 기어코 빼앗아 본인이 드는 남편이기에 이번만큼은 그냥 내가 들고 싶었다. 아니, 안 무겁다니까? 얼른 집에 가자. 그러자 남편은 내 앞으로 와서는 나를 멈춰 세웠다. 그리고 말했다. 아무래도 네 짐보다 이게 더 가벼운 것 같아. 그거랑 이거랑 바꾸자. 아무도 못 말릴 그의 고집에 일단 내 장바구니를 넘겼다. 그리고 그의 것을 가져오려는 찰나 그는 홱 돌아섰다.


"아, 빨리 줘! 내가 들게. 너 혼자 3개 어떻게 들어."

"넌 그냥 안 넘어지고 잘 걷기나 해~ 어서 내 옆에 붙어."


하나도 안 무겁다는 아내의 말을 귓등으로 흘려버리는 남자. 기어코 묵직한 10만 원어치의 짐을 혼자 다 들고나서야 안심하는 남자. 만으로 서른 살이나 먹은 여자에게 길이나 잘 보고 걸으라는 남자. 끙끙대는 그 옆에서 혼자 빈손이라 왠지 악독한 와이프가 된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던 나는 그저, 장바구니를 든 남편 손을 계속 매만지면서 길을 걸을 뿐.



사진_UnsplashMaria Lin Kim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