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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결혼에 관해 말해볼까 한다.
브런치에는 늘 결혼 얘기를 올리긴 하지만
남편 덕질만 하고 있는데, 이건 조금 다른 결.
5년 차 유부녀의 '요즘 결혼'에 대한 속상함이랄까.
요즘 '엑셀부부' '엑셀결혼' '엑셀이혼'이 많다 한다.
글자부터가 뭔가 빡빡한 이 단어들의 뜻은 그렇다.
결혼&생활비, 집안일 등 딱 나눠 엑셀에 정리한다는.
그러니까 그 기저에는 '손해 안 보려는 마음'이 있는 것
그래 요즘 친구들, 똑똑하고 야무져서 그런 건 알겠지만
일단 한평생 함께 할(가능성이 높은) 배우자에게부터
이렇게 어떤 손해를 보지 않으려고 하면 꽤 힘들어진다.
5년째 롤러코스터 같은 결혼생활 중인 나와 남편.
이제는 결혼이 뭔지 조금은 안다. 알 것도 같다.
'결혼은 사랑만으로 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보통 배우자감으로는 경제력 등도 보라는 뜻이지만
기혼자인 나는 조금 다른 의미로 동의하는 문장이다.
[연애&사랑&설렘]이 한 세트로 묶여있다면,
결혼과의 세트는 그런 것이다. 연민, 보호, 성장
물론, 사랑이 기본이다. 부부는 가족이기 전에 연인이니.
하지만 결혼을 하면 상대를 막 사랑의 눈으로 보기보다
연민의 눈, 가엾은 눈으로 봐야 할 때가 훠얼씬 많다.
내 옆에 누워 자는 사람이 안쓰러워 눈물을 흘리는,
이불 밖으로 튀어나온 발까지 안쓰러워 쓰다듬고,
퇴근한 얼굴을 보자마자 괜히 안쓰러워 볼을 만지는.
언제부터 연민의 감정이 크게 생겼는지는 알 수 없다.
결혼 생활이라는 것은 워낙 많은 일에 부딪히기에.
연차가 쌓이면서, 함께 우리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면서
그런 뭉근한 가족의 감정들이 차곡히 쌓이는 것일 테다.
그래서 손해 안 보려고 눈을 번뜩 뜨고 있으면
도저히 그 시련들을 함께 이겨낼 방도가 없으며
결국 진정한 부부로, 한 가족으로 뭉쳐질 수 없다.
그냥 한 집에 사는 동거인이 될 뿐...
활자로만 보면 알록달록하고 예쁘게만 보이지만
내 모든 것을 거의 내던져야 하는 것이 이 결혼이다.
뭣 하나 포기하고 싶지 않고, 다 꽉 쥐고 있고 싶다면
요즘 트렌드인 비혼으로 남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어떤 각오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는 것, 거기서 끝이 아니다.
단순히 예쁜 결혼식을 하고, 신혼특공 청약을 넣으며,
평일엔 일하고 매주 주말에는 놀러 가자고 계획하는,
아기자기한 인테리어 소품을 사는 그런 것만이 아니다.
내가 선택한 내 가족이니만큼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 '최선'에는 과연 삶의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고,
생판 남인 두 명이 맞춰가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나와 남편도 이것에 거의 1년 이상이 걸렸다.
(이것도 우리 집은 남편이 천사라 그나마 짧은 편)
엄청나게 아끼고 사랑해서 안 싸우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남편을 미치도록 사랑하고, 그도 그렇다(아마)
그럼에도 우리는 결혼하고 엄청 싸웠다. 상관이 없다.
싸우고 돌아서면 부둥부둥 껴안고, 또 싸우고 화해하고.
그러니 '대체 우리는 왜 이렇게 많이 싸우지?'를
'아, 이건 사랑이 아닌가'로 귀결시키는 건 섣부르다.
365일 내내 한 집에서 붙어있는 것이 부부다.
안 싸우면 신기하고, 맞춰가며 사는 과정이 결혼이다.
그럼에도 결혼을 한다. 이 사람과 평생 함께하고 싶으니.
나는 그랬다.
이 남자와 함께 손잡고 호호 늙어가고 싶었다.
할머니가 되어서도 이 친구와 모험하고 싶었다.
그래서 겨우 20대 중반에 프러포즈를 했다.
완전한 나의 의지로 했고, 남편을 미친 듯 좋아하는데도
그렇게 신혼 1년, 2년은 이틀에 한 번 꼴로 으르렁댔다.
고운 마음으로 시작해도 결국 시련이 있는 것이 결혼이다.
그러니까 그 '손해 보지 않으려는 마음'으로 시작했다간
둘 중 하나가 이혼하기 싫어서 자포자기하지 않는 이상,
서로를 가엾어하고 보듬고 시련을 이겨내는 그런 결혼,
지극히 정상적인 그런 결혼 생활은 유지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내 옆에서 잠들고, 함께 미래 계획을 세우고
매일 같이 밥을 먹고, 모든 얘기를 하는 사이인데.
이렇게까지 사랑해서 결혼까지 하게 된 사람인데,
조금 져주고, 조금 손해 보는 것이 뭐 큰일인가.
사실 '손해'라는 말을 쓰는 것조차 이상한 것이다.
'결혼'과 '엑셀'의 조합은 너무 슬프다는 것이다.
이 버석한 세상에서 사랑에까지 그러면 어쩐단 말인가.
엑셀 결혼으로 시작해도 결국 엑셀은 사라질 것이니.
단순 룸메이트도 아닌데 그렇게 살 수는 없는 일이다.
나와 남편도 아직 아이조차 없는 조무래기들이지만
어느 부부 못지않게 다사다난했다고 자신할 수 있고,
그 속에서 함께 서로를 보듬으며 세계를 만들어왔으니
이 정도의 오지랖은 부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허허!
요즘 남편 얼굴을 보면 절로 그렇게 된다.
아구... 하면서 그의 볼을 쓰다듬게 된다.
평생 나밖에 모르던, 이기심으로 똘똘 뭉쳐있던 내가
누군가에게 이런 온갖 감정을 느끼게 될 줄은 몰랐다.
부부란 그렇다. '사랑해'라는 말도 가볍다 느껴진다.
부부는 사랑 이상이다.
안녕하세요, 독자님들! 다롬입니다.
정신이 없어서 브런치 못 왔다가 오랜만에 글을 씁니다.
저... 밀리의 서재 월간 밀리로드 우수상에 당선되었어요!
곳곳의 [유럽 골목 술집]을 찾아다니는 이야기인데요,
멋진 작가님들 사이에 제 작품이 왜 끼어있는지 저조차 모르겠지만
아무튼 브런치에는 앞으로도 열심히 결혼, 남편 덕질글 쓰겠습니다.
늘 읽어주시는 독자님들 감사드려요, 우수상도 다 여러분 덕입니다!
그럼 다음에 뵈어요... 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