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폴란드 우리 집 거실에 있는 소파는 크지 않다. 그래도 3인용이긴 해서 둘 다 발 뻗고 누울 정도는 된다. 늘 그래왔으니. 나는 시원하게 다리를 쭉 펴고, 가끔 꼬물거리며 스트레칭도 한다. 그래서 맞은편에 있는 남편도 당연히 그렇다 생각했다. 진지한 생각까진 하지 않았고, 그냥 내가 이러니 너도 편하겠지 싶었다. 이 소파 그래도 편하긴 하다. 내가 말하면 남편이 곧 고개를 끄덕이며 맞아, 맞아 라고 답하기도 했고.
지난 금요일도 그랬다.
평일에는 못하는 과식과 과음과 새벽까지 이어지는 무비나잇으로 구성되는 우리 집 금요일 저녁. 어느 정도의 먹음과 마심이 끝난 후, 소파 양끝에 기대듯 앉았다. 여느 때처럼. 무릎을 접고 있다 다리 두 짝이 모두 뻐근해진 탓에 쭉 펴고 싶었다. 남편을 보고 슬쩍 웃었다. '나 이제 다리 펼 거야' 뜻의 웃음이었는데 그는 오해를 하고 갑자기 발 마사지를 시작했다. 크고 두꺼운 손으로 주물러주는 그 시원함에 잠깐 모른 척하다 이내 사실을 말했다. 아니, 나 다리 펴려고. 그러자 남편은 본인이 쭉 펴고 있던 다리를 접고, 심지어 한쪽 다리는 바닥 쪽으로 내렸다.
내가 다리 두 쪽을 펴니, 남편에겐 공간이 거의 남지 않았다. 한쪽만 겨우 걸치고 있을 수 있는 정도. 오른 다리는 소파에 간당하게 걸치고, 왼쪽 다리는 그냥 바닥에 툭. 그러면 허리도 붕 떠서 불안정한 자세가 된다. 남편은 그렇게 있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내가 편하게 다리를 펴려면, 본인 다리 한쪽은 길을 잃어야 함을.
"어, 너 다리. 내가 한쪽은 접을게. 너 다리 다시 올려."
"아냐 아냐. 괜찮아. 난 이게 편해. 마사지해줄까?"
누가 봐도 편하지 않은 자세로 그는 웃는다. 쭉 편 내 종아리를 엄지로 꾹꾹 눌러주며.
그냥 친구랑 있는 상황으로 생각해 보면, 난 이미 몇 번은 의식하고도 남았을 거다. 내 맞은편에 앉은 이의 다리가 편히 올려져 있는지 접혀있는지, 그 자세가 괜찮은지 아닌지, 내가 혹시 불편하게 하고 있는 건 아닌지까지 세세하게 신경 써서. 남편한텐 안 그러는 거다. 그는 내게 너무 당연한 존재여서, 의식할 의식조차 못하는 거다.
그런데 남편은 아니다. 그는 늘 의식하고 있었다. 내가 지금 어떤지, 앉은 곳이 불편하진 않은지, 오늘 오래 걸었는데 발이 아프진 않은지 등등. 내가 눈만 마주쳐도 '무엇이 필요하니. 말만 해' 표정으로 나를 본다. 헤헤 웃으면 일단 발부터 주무르고 본다. 이런 것뿐만이 아니다. 바로 집 앞 카페에 가는데도 늘 내 가방을 뺏어서 들고, 내가 귀찮아서 안 챙기는 외투를 대신 챙기고, 버스에서는 늘 내게 창가자리를 주며, 3칸짜리 비행기에서는 낯선 이의 옆에 무조건 본인이 앉는다. 나는 그게 당연해졌다. 이제 내게 너무 당연한 일이어서, 의식할 의식조차 못하는 거다.
그러니까 그냥 일반 가족이거나 친구이거나 지인이었다면 손사래를 쳐 가며 내가 불편한 상태로 있겠다는 신호를 줬을 그런 것들인데, 남편이 내게 당연한 듯이 주는 배려는 그저 덥석 받았다. 너 안 불편해? 물으면 난 이게 편해,라고 답하는 그의 뻔한 거짓말에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고 내가 그걸 돌려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소파에서 내 다리 한쪽과 허리를 희생하며 남편의 다리를 온전히 올리게 하고, 본인 노트북에 더해 무거운 내 노트북까지 넣은 그 백팩을 내 어깨에 둘러메며, 혹시 남편이 추울까 간절기 외투를 한쪽 팔에 걸치고, 버스에선 남편을 창가로 밀어 넣으며 또 비행기에서도 그래서 중간 자리에 내가 앉는 일. 우리 집에선 허용되지 않으니까.
늘 연하게라도 웃음을 띠고 있는 남편의 순둥함은 그럴 때만 단호해지는 탓에 나는 결국, 그의 볼을 쓰다듬으며 그 다정한 배려를 받을 수밖에 없으니. 나는 먹구름 잔뜩 낀 날에도 햇볕을 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