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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롬 May 25. 2024

내 남편은 착하지 않다.

어른들 말씀에 결혼은 '착한' 사람과 하는 거랬다.

외모나 능력도 중요하지만, 일단은 착해야 산다며.


그럼 반드시 봐야 한다는 배우자의 덕목 중 그 '착함'이라는 건 정확히 뭘까. 늘 은은하게 웃고 있는 얼굴에, 다른 이들에게 부처 혹은 성인이라고 불리는 그런 절대적인 착함인가. 사회생활 잘하고 대외적인 평판이 좋은 그런 단순한 것인가.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니 정확하게는, 그런 객관적인 선함의 유무만 봐서는 안 된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내 남편은 착하지 않다.


나는 결혼예찬론자에 아이돌 대신 남편을 덕질한다. 그만큼 나의 이 5년 묵은 결혼생활을 애정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과연 누군가 '너는 남편이 착해서 결혼하고 싶었나'라고 묻는다면, 조금 우물거리다 그건 아니라고 답할 거다. 내 남편은 착하지 않다. 물론 나를 포함한 보통의 사람들이 갖는 선함, 사회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선함의 정도는 갖췄다. 성실하니 눈치도 제법 있어 대외적인 평가도 나쁘지 않은 편.


하지만 그는 딱히 '착한' 사람으로 불리거나 그런 유형의 인간으로 여겨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약삭빠른 여우랄까. 연애 관계에서 은근한 폭스끼를 드러내는 게 아니라, 집 밖에서는 자기 잇속을 확실히 챙기는 그런 남자. 별 관계없는 타인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남자. 선을 그어놓고 웬만하면 넘지 않으려 그 누구와도 일정 거리를 두는 남자. 그러면서도 제 할 일은 확실히 하고, 자기 계발을 게을리하지 않는 남자. 늘 일정한 평정심을 유지함으로써 굳이 적을 만들지 않는 그런 일반적인 사회인. 결코 만만하지 않은 앙큼한 고양이다.


집 밖에선 저런 모습이다. 그럼 집 안에선 어떤가.




집 밖 VS 집 안


'나에게만 다정한 남자'

남편을 한 문장으로 설명하자면 바로 이것이다. 어디 소설이나 웹툰에나 나올 법한 이 인물 소개를 정확히 내 남편을 말할 때 꺼낼 수 있다. 나는 친구였던 이 남자가 남자친구가 된 후로 한 번 놀랐고, 남자친구에서 남편이 된 후로 또 한 번 놀랐다. 일반적으로 연인에 대한 다정함의 정도와 함께 지낸 세월은 반비례한다고들 하지 않나. 그런데 이 남자는 아니다. 정비례한다.


늘 나를 신경 쓴다. 사무실에 있든 출장을 가든 2시간 이상 연락이 끊긴 적이 없다. 폰을 그리 자주 들여다보지 않는 나는 솔직히 처음엔 조금 버거웠지만, 이제는 익숙해졌다. 퇴근 후 내 이름을 부르며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서는 먹고 싶은 것 있냐고 묻는다. 웬만해선 초점이 내게 와 있다. 밀당 따위 없다. 무조건 직진. 예쁘다, 귀엽다, 너는 그렇게 귀엽게 생겨서 어쩌려고 그래, 네가 뺄 살이 어딨다고 그래 등 듣기만 해도 절로 민망해지는 간지러운 말을 매일 한다. 집 밖과 집 안의 모습이 천지차이라는 말이다.


'집 안'에는 비단 아내만 포함되진 않는다. 내 원가족과 본인의 원가족까지. 어떤 울타리를 쳐 놓고 신경 쓰는 모양새. 시가는 물론 별일이 있지 않고서야 친정에도 연락하지 않는 무심한 딸 대신 사위와 더 자주 연락하는 친정 부모님. 나는 모르는 양가의 이벤트를 먼저 꼼꼼히 챙겨 내게 알려주기도 하며, 굳이 내가 시어른들과 연락할 필요는 없다며 최소화하게끔 한다. 대신 본인이 자주 하면서. 그래서 나는 사실, 결혼 후 해야 마땅한 그런 일들을 딱히 신경 써 본 적이 없다. 알아서 관리하는 남편이 있으니.


외부활동은 필요한 최소한으로, 가족에 관련된 일에는 최선을 다한다.


얼마 전 무비나잇의 영화, 라이온 킹 :)



저런 남자는 사실,


그런 말을 종종 듣는다.

네가 잘하니까 남편도 잘하는 거야.


그런데 사실, 여기에 '내가' 무언가 보탠 일은 없다. 내가 노력을 했기 때문에, 혹은 경국지색이라 남편이 저렇게 되었다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원래 그런 사람이다. 나를 사랑하겠지만, 비단 내가 아니었어도 그는 저가 사랑하는, 사랑하고자 마음먹은 이들에게는 한없이 다정해지는 성격이니. 예로, 스무 살 언저리에 우리가 친구였던 시절, 그는 여자친구가 있을 땐 나를 포함한 다른 여자사람친구들과는 아예 연락을 안 했다. 연락 오면 이제 헤어졌다는 뜻이다. 친구일 땐 다소 괘씸했던 그 부분이 결혼하니 장점이 되더라. 그만큼 '나'라서가 아니라 원래 한 사람에게만 몰입하는 남자다.(근데 내가 이 얘기를 하면 남편은 으르렁거리며 싫어한다.)


그러니 안타깝게도 이 글에서는 '이렇게 하면 배우자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하는 특별한 비법을 말하진 않는다. 애초에 사람이 사람을 변화시키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고. 물론, 나도 잘하는 부분은 있겠다. 남편과는 그 영역이 달라서 말하기 부끄럽지만, 나는 그를 미친 듯이 예뻐라 한다. 다른 건 몰라도 그것만큼은 자신 있다. 그러나 단순히 상대를 무척 예뻐한다는 행위가 결혼 생활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남편의 지고지순한 애정에 나의 무뚝뚝함이 조금씩 벗겨져 이렇게 된 것이라면 모를까.


그래서 저런 남자는 사실, 유니콘이다. 얼마 없는 희귀한 사람이다. 하지만 잘 찾으면 분명 있다. 관심있는 사람이 멀리서 지켜볼 수 있는 사이라면, 일반 타인이 아닌 지금 옆에 있는 제 연인에게 어떻게 하는지를 보면 알 것이고. 결혼을 고민하는 연인이라면 누구에게나 '그래도 애는 착혀...' 정도의 말을 듣는 사람이 아니라 지금 나를 얼마의 우선순위로 두고 있는지, 나와 얼마나 시간을 같이 보내고 싶어 하는지, 어떤 순간에도 나를 먼저 감싸는지 등등 복합적으로 보면 되겠다.




노력, 노력, 노력


집 밖의 착함과 집 안의 착함이 달라야 한다. 좋은 배우자는 후자가 더 클 것이고, 그 반대가 되면 곤란해진다. 물론, 에너지는 한정적이기에 밖에서 종일 일하고 왔는데 집에서까지 '편하게' 못 있는다며 투덜대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 테다. 하지만 선천적으로 그런 성격이 아니더라도, 즉 방목형이라도 배우자가 그에 불만을 품는다면 노력은 해야 한다고 본다.


결혼이란 무릇 그저 결혼식을 올리고 끝인 것이 아니니까. '그래도 난 결혼했다'라는 어떤 사회적인 안정감을 갖기 위해 하는 게 아니라, 한 사람의 몸과 마음을 서로 평생 보듬어주고 신경 써주는 그런 사이가 되는 과정이다. 그러니 배우자의 입에서 '외롭다, 너는 무심하다, 남들한텐 엄청 잘하면서' 등의 말이 빈번하게 나온다면, 필히 노력해야 마땅하다. 기혼자가 된 순간부터 더는 다른 이와 연애로의 정서적, 육체적 교감을 할 수 없게 되는데 그걸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그를 게을리하면 어쩐단 말인가.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는 처음에 대충이었다. 대충 말을 내뱉고, 대충 배려하고, 대충 스킨십하고 대충, 대충, 대충. 익숙함이라는 핑계로 남편을 주욱 힘을 빼고 대했었다. 남들에겐 조금 더 힘을 주고. 가장 신중하게 대해야 하는 사람에게 그랬으니 이제는 나도 노력 중이다. 배우자에게 '가장'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해. 지인과 친구, 원가족과 함께 사는 가족. 중요성의 무게추를 단단히 잡고 내가 지금 누구한테 가장 잘해야 하는지에 집중할 테다. 아직은 부족하다. 아주 많이. 아마 내 남편을 손톱만큼이라도 따라가려면 평생 의식하며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나만 보고 평생을 함께하겠다 약속해 준 배우자에 대한 예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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