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롬 Feb 25. 2024

낭만의 유럽 밤거리를 걷다가

폴란드 크라쿠프 1박 2일 여행

1월의 핀란드 이후로 근 한 달 만에 여행을 왔다. 우리가 사는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기차로 2시간 반 정도 걸리는 도시 크라쿠프(Kraków). 1박 2일의 짧은 여행이지만, 간만의 도시 이동이라 그런가 들뜬 나와 남편은 아침부터 분주하게 꾸몄다. 늘 자연 본연의 모습으로 있다가 서로의 멀끔한 모습을 보니 또 새롭다. 특히 남편은 더더욱. 본판이 잘생겨서 조금만 손질해도 확 달라지는 그. 결혼식 때 '남편 진짜 잘생겼네' 말을 100번쯤은 들은 것 같다. 날이 풀려 두툼한 패딩 대신 얄쌍한 코트를 입어 더욱 멀끔한 남편을 보고 있자니 절로 나오는 흐뭇한 웃음.



무계획 여행자들 답게 코스는 만들지 않았다. 일단 크라쿠프행 기차를 탄 다음, 내려서 바로 갈 곳을 정하기로만 했을 뿐. 폴란드 기차는 출발일 기준 한 달 전부터 예약이 가능하며, 그때부터는 빨리 예매할수록 저렴하다. 딱 한 달 전에 예약한 크라쿠프행 기차표. 1등석인데 2등석보다 낮은 가격에 '아 역시 빨리 예약해서 이런 행운이!'라고 생각했었다. 허나 착각이었다. 편안한 2인석이 아닌, 호그와트행 기차에 나오는 한 칸의 두 자리였고, 노트북을 놓을 간이 테이블도 없이 양 옆 앞뒤로 미리 타 있던 폴란드 분들과 정답게 앉아갔다. 어쩐지 싸다 싶었지.



크라쿠프에 도착해서는 바로 점심을 먹었다. 가장 관광 번화가인 크라쿠프 올드타운의 평점 좋은 밀크바 Bar mleczny(폴란드 전통음식을 저렴한 가격에 먹을 수 있는 식당). 미리 찾아 놓은 곳에 갔더니 동네 사람들로 만석이었다. 한참을 걷고 또 걷다가 발견한 폴란드 전통 식당. 클래식한 산장 분위기에 옛 폴란드 의상을 현대식으로 개량한 예쁜 유니폼을 입고 있는 직원들. 워크인으로 들어갔는데, 학교에서 단체로 온 날이라 예약을 하지 않았더라면 90분 밖에 머물 수 없다는 직원의 말에 바로 OK를 했다. 먹는 속도가 빠른 한국인 두 명, 90분이면 메뉴 3,4개를 충분히 먹고도 남는다. 허허.



폴란드의 학생들이 와글와글한 식당에서 우리는 조용히 메뉴 3개를 주문했다. 남편의 탄산수와 나의 오코침Okocim 맥주도 물론. 오랜만에 남편 사진을 찍어볼까. 나는 사진 찍는 것을 매우 귀찮아하는 편이다. 블로그에 기록하려고 겨우겨우 찍기는 하지만, 그것 또한 그리 신경 써서는 아니다. 하지만 피사체가 남편이라면 다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피사체, 내 인생의 뮤즈. 기본 카메라로 찍는데도 웬만하면 예쁘게 나오는 그의 외모 덕일지도 모르겠다. 여러 각도로 찍다 보니 어느 순간을 포착할 수 있었는데, 그 모습은 낭만 그 자체였다. 내 남편이 원래도 꽤 로맨틱하게 생기긴 했지만, 직접 보는 모습이 그대로 사진에 담기기는 무척 어려운데, 이 사진에는 그대로 담겼다. 내가 보는 그의 반짝임이, 별이 한가득 박힌 듯한 눈 또한. 사진이 너무 예뻐서 음식이 나왔는데도 한참을 만지작거렸다.



현재 나의 아이폰 배경화면, 크라쿠프 남편

밥을 먹은 뒤 올드타운 한가운데에 잡은 호텔에 미리 체크인을 했다. 하루종일 돌아다닐 힘이 없는 30대의 우리는 그만 잠이 들었고, 1시간쯤 뒤 겨우 일어나 다시 저녁의 유럽을 걸었다. 날씨가 좋았다. 춥지도 그렇다고 답답하지도 않은 선선한 겨울 끝무렵의 공기. 11월부터 시작된 기나긴 유럽의 겨울이 끝났음을 실감했다. 남편과 올드타운을 휘휘 걷는 일. 낭만적인 유럽의 밤거리를 더 낭만적인 남편의 손을 잡고 걷는다는 것. 내 인생이 어쩌다 이렇게까지 내가 원했던 방향으로 흘러왔나. 나조차도 이건 혹시 전부 꿈이 아닐까 의심하게 되는 유럽에서의 하루하루들. 


그러니까 <해외로 도망친 철없는 신혼부부>의 메인 키워드가 #고생 #도전 #외노자 등등이었다면, 언젠가 나올 <해외로 도망친 철없는 신혼부부2>는 #낭만 #로맨틱 #힐링 등으로 기록될 테다. 20대 초반, 처음 본 유럽의 모습에 입 벌리고 신기해하던 나는 "크라쿠프는 체코랑도 조금 비슷하네." 같은 말을 하는, 어느덧 유럽에 익숙해진 척하는 30대 여행자가 되었다. 




"나는 솔직히 내가 이렇게까지 살 줄 몰랐어."

"이렇게까지? 좋은 뜻이야?"

"응. 이렇게까지 원하던 대로 살 줄 몰랐다는 말이야."

"흥흥. 나도 우리가 이렇게 웃기게 살 줄은 몰랐어."



그나마 관광객이 적은 한적한 올드타운의 골목을 걷다가 새삼 로맨틱하게 느껴지는 거리에 마음이 울렁했다. 남편을 툭 치며 말하니 그는 별안간 우리의 삶을 웃기다고 표현하더라. 웃기고, 재밌고, 흥미롭고, 꿈인가 싶을 정도의 낭만이 찾아오는 유럽에서의 매일. 언제까지 유럽에 살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여기 있는 동안에는 정말 힘닿는 데까지 내가 사는 이곳을 사랑해야지. 아주 잔뜩!



작가의 이전글 왜 남편은 선크림을 5분 전에 바를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