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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롬 Feb 21. 2024

왜 남편은 선크림을 5분 전에 바를까

선크림 발랐어?

주말, 해가 밝다 못해 쨍쨍해 미리 피부가 걱정되는 날씨. 동네 카페로 마실 나가기 5분 전, 준비를 다 마친 듯 소파에 앉아있는 남편에게 묻는다. 그러면 십중팔구 그의 대답은 '아직!' 그리고 그에 따라오는 행위는 바로 거울 앞에 가서 선크림 급하게 바르기. 다 펴 바르지도 않고 얼굴 곳곳에 흰 자국을 남겨놓고는 내게 와서 뿌듯하다는 듯 말한다. 선크림 발랐어! 잘했지?


하아아-

재빠르게 발랐는데도 피할 수 없는 제 아내의 깊은 한숨에 주춤하는 남편. 그리고 어김없이 시작되는 잔소리. 내가 어제도 그제도 말했잖아. 선크림은 나가기 5분 전에 바르지 말고 안정적으로 최소 20분 전에는 발라주라고. 나 진심으로 너 피부 걱정 돼서 그래. 샤워하고 나와서 스킨 바르고 바로 선크림 바르면 시간 딱 맞아. 난 화장을 하지만 넌 거의 맨얼굴인데, 선크림이라도 잘 발라야 보호가 되지.


사랑과 걱정이 가득 담겨있긴 하지만 어쩐지 날카로운 아내의 표정에 몸이 절로 움츠러든다. 네에-라고 대답하고 다음 날에는 잊지 않겠다 약속을 하면 그제야 넘어간다. 평일이든 주말이든 할 것 없이 우리 집 흔한 풍경 중 하나. 남편은 매일 선크림을 나가기 겨우 5분 전에야 바르고, 나는 매일 그에게 선크림 잔소리를 한다. 그리고 매일 반복된다. 다음날도 남편은 선크림을 나가기 겨우 5분 전에야 바르고, 나는 또 선크림 잔소리를 한다.


내가 줄곧 부러워했던 남편의 피부. 타고나길 예쁜 결과 여드름 흉터도 하나 없는 매끈한 그의 얼굴. 그러나 그럴수록 아까워서라도 더 신경 써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제는 20대도 아닌 30대 초반 남성의 피부가 언제 훅 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본인의 외모에는 많이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옆에서 지켜보는 나는 그저 걱정될 뿐. 나쁜 짓을 종용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자외선으로부터 너의 고운 피부를 지켜라는 의도인데 말이다.


Unsplash_No Revisions


"잔소리를 하더라도 귀엽게 말해줬음 해."


남편은 간혹 나의 잔소리 어투에 대한 불만을 표한다. 나는 이에 이의가 있다. 나도 처음에 말할 때는 한없이 나긋나긋했다. 선크림 발랐어? 얼른 발라야지이- 내일은 꼭 일찍 바르자, 알았지? 남편의 볼을 쓰다듬으며 내가 직접 발라주기도 했다. 그리고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또 거짓말처럼 그 다음 날도 안 바르는 그를 보며 생각했다. 얘 지금 일부러 이러나. 사실 나도 하고 싶지 않다. 다 큰 성인 남성에게 아침마다 선크림 좀 제대로 바르라는 말 같은 건.


비단 선크림뿐만은 아니다. 밥 먹을 때 야채 먼저 먹자- 몇 번 말해도 어느새 튀김과 빵을 먼저 먹고 있는 남편의 모습,  아이스크림 좋아하는 건 알지만 이건 너무 다니까 반만 먹을까? 열 번 말해도 계속 한 입만, 한 입만을 외치다 바닥이 거의 드러나고서야 숟가락을 내려놓는 남편의 모습, 얼굴 수건으로 그렇게 벅벅 하지 말고 톡톡 두드리기만 해- 백번 말해도 절로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빡빡 닦는 남편의 모습. 난 안볼란다- 부러 외면하려 애써도 결국은 다시 돌아와서 그의 얼굴을 붙잡고 또다시 같은 잔소리를 하게 된다.


다 큰 어른을 어디 물가에 내놓은 애 마냥 걱정하는 마음. 내 얼굴이나 내 몸이 아닌데도 내 것 보다 더 아깝고 보호하고 싶은 이 마음은 아마 애주가인 제 아내에게 "술은 하루에 맥주 두 캔 이하로만 마시는 게 좋지 않을까?"라고 조심스레 말하는 남편의 것과 비슷할 테다.


어제 아침, 출근 준비를 하다 말고 그는 침대에 누워있는 내 옆으로 왔다. 그리고 방긋 웃으며 말했다. 나 오늘은 선크림 20분 전에 발랐어! 잘했지? 그의 엉덩이를 서너 번쯤 토닥였다. 겉으로는 잘했어, 이쁘네 하고 웃었다. 그러나 난 믿지 않는다. 분명 내일이면 또 시작될 것이다. 나의 "선크림 발랐어?"와 남편의 "지금 바르려고 했어!"의 끝없는 굴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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