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해서 좋겠어요. 뭔가 안정적이고."
전에 일하던 곳에서 들었던 말. 그때는 결혼한 지 1년을 갓 넘긴 신혼이었기에 그리 깊이 공감하진 못했다. 그저 얕게만 끄덕이며 답했다. 아, 네. 그런 것 같아요. 허허.
20대 중반에 결혼해서 벌써 5년 차. 이제는 안다. 결혼하면 안정적이라는 말. 누가 말하면 세차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돈이나 생활 같은 면에서의 안정도 물론 있지만, 그에 비할 것이 못 되는 안정감이 있다. 내 편, 온전한 내 편이 있다는 것.
내가 뭘 해도 응원하고 지지해 주는 사람, 내 한정 치어리더가 생기는 것이 결혼이다.
남편은 내가 뭐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변덕이 심한 내가, 어제는 이거 한다 했다가 오늘은 저거 한다 해도 해보라 한다. 너는 다 할 수 있다고. 내가 옆에 있으니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살라고. 그래서 나는 남편에게 모든 일을 말한다. 남편에게만 말한다. 일이 잘 풀리지 않고 꽉 막혔을 때는 특히 더.
혼자 한국에 휴가를 온 지금, 성과가 빨리 나지 않는 일에 몰두하는 지금, 결국 될지 안될지도 모를 이 일이 버겁다 느껴질 때는 남편부터 생각난다. 그래서 막막하고 지치고 한숨만 나올 때 영상통화를 걸고 메시지를 보내면 그의 반응은 한결같다. 모차르트도 10년은 걸렸대. 원래 오래 걸리는 일이니 차분히 해 봐. 시간 많고 내가 볼 때 넌 분명할 수 있어. 다른 이들의 말과 남편의 말은 다르다. 남편이 말하면, 나는 정말 뭐든 할 수 있다는 느낌이 온다.
나 또한 그런다. 나는 남편이 뭐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늘 말한다. 너, 하고 싶은 일 있으면 무조건 회사 바로 그만두고 해. 너는 아까워. 뭐든 해야 해. 남편이 공무원 퇴사를 망설일 때도 그랬다. 그저 '결혼'을 했다는 이유로 그만두지 못한다니, 말도 안 돼. 나는 그의 멱살을 잡고 얼른 사직서를 내라 했다. 그리고 남편은 지금 유럽에서 일을 한다. 하고 싶은 일, 해보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한다. 자유롭게. 우리는 이렇게 서로의 편이 되어 길을 만들어왔다.
온전한 편이라는 게, 별 게 아닌 것 같아도 사실 정말 별거다. 결코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인생, 괜찮다 괜찮아 늘 혼자 위로하고 용기를 내는 것보다 오직 내 편인 누군가가 항상 손을 어깨에 얹어주고 있는 것은 정말 무척 큰 힘이 된다. 다른 사람이 무슨 말을 하든 상관없다. 날 알아주고 믿어주는 한 사람의 응원이면 충분하니. 돈을 아무리 많이 줘도 못 만든다. 진심으로 내가 뭐든 할 수 있다고, 똑순이라고 매일 말해주는 사람은.
요즘은 다들 결혼을 어렵게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냥, 너무 어렵게만은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평생의 내 편이 생긴다. 물론 돈, 재산, 성격, 가치관, 가족 다 고려하긴 해야 하긴 하지만, 어쨌든 그게 본질은 아니니까. 아무리 많이 싸우고 삐지고 그래도 늘 내 옆에 있는 내 편. 모두가 갸웃하는 일에도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일단 해보자고 하는 내 편을 만드는 것, 그게 결혼이 아닐까, 싶다!
"나! 월 스트륏에서 파이낸셜 애널리스트로 일하고 싶다!"
"그럼! 지금부터 4년 정도 준비하면 할 수 있을 거야. 해봐! 석사해도 되고!"
수학, 과학, 통계 머리라곤 0.1도 없는 나. 그리고 내가 그렇다는 걸 알고 있는 남편. 대학생 때 직접 재무관리 수업 공부를 도와주면서 그는 수도 없이 고개를 갸웃했었지. 그런 내가 몇 달 전에 장난식으로 껄껄 웃으며 저런 말을 했다. 그럼에도 남편은 역시 그랬다. 미국 월스트릿에서 너는 분명 일할 수 있어! 그러니까 남편 옆에 있으면 나는 대통령도 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