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롬 Dec 05. 2024

와이프가 기분 좋을 때를 노려라

보통, 직장인인 남편은 나보다 빨리 잠자리에 들고

나는 자정이 가까운 시간까지 깨어있다 침대로 간다.

그러면 열에 일곱은 남편이 코롱코롱 잠들어 있고

세 번쯤은 깨어 있다. 불 꺼진 침실에서 웹툰을 보며.


아직 안 자네? 얼른 자야지.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하며 옆에 누우면

남편은 흥, 하며 잠깐 이불을 뒤척거린다.


내일도 출근하는데 아직 자기 싫음을, 밤이 아까움을

온 몸으로 표현하는 남편이 웃기고 또 안쓰러워서

나는 남편의 얼굴을 잡아 뽀뽀를 한다.

이마든 볼이든 한번 한 뒤 나도 밀린 웹툰을 보는데

어떤 날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토요일, 고기 굽는 남편


볼 냄새 같은 게 엄-청 귀여운 날이 있다.


샤워 후 착착 바른 크림의 향과

남편 본연의 향이 섞인 냄새가 나는 볼,

그 볼에 코를 박고 있으면 기분이 그렇게 좋다.


그래서 나는 볼에 한번 입을 맞췄다가,

본격적으로 남편의 얼굴을 잡아 뽀뽀한다. 쉴 새 없이.

남편은 여전히 웹툰을 보는 채로 그걸 가만히 받는다.

난 그게 또 웃겨서 막 웃는다. 뽀뽀는 계속하면서.


며칠 전에도 그랬다.

내가 그렇게 딱따구리처럼 제 볼을 쪼아대자

남편은 눈을 도르륵 굴리며 뭔가 생각하는 듯했다.

보던 웹툰을 끄고 살포시 배에 손을 올리더니 말했다.


"나 사고 싶은 키보드가 있어."


응?

갑자기?

나는 딱따구리 뽀뽀를 멈추고 남편을 쳐다봤다.

그러자 남편은 내 눈치를 보는 척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무슨 키보드."

"아니...예전부터 담아놨던 건데..."

"그걸 지금? 왜, 나 기분 좋아 보여?"


남편은 가끔 그런다.

내가 기분 좋아 보일 때, 특히 저를 예뻐할 때

웃음이 박한 내가 볼에 뽀뽀하며 까르르 웃을 때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그는 뭣 하나라도 일단 던지고 본다.


"멀쩡한 키보드가 세 개나 있는데, 또 사려고?"

"아, 아니야. 그냥 말해봤어. 안녕. 그럼 잘자."

내가 제정신으로 돌아온 듯 하면 남편은 급히 마무리한다.


아이고-

그게 또 불쌍하고 귀여워서 다시 뽀뽀를 한다.


남편은 아주 여우같은 남자다.

와이프가 기분 좋을 때를 절대 놓치지 않는.

이런 식으로 우리집 키보드나 이어폰은 계속 늘어왔다.

뭐, 어쩌겠나. 이렇게 귀여운 향이 나는 남자가 원하는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