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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6시에 전화하는 남편

결혼의 아주 소소한 장면들

by 다롬

만 나이로 25살에 결혼해서 어느새 5년 차 부부가 된 나와 남편. 동갑이라 늘 친구 같다가도 또 연인 같고, 큰일이 있을 때는 서로의 든든한 보호자 역할을 하며 지낸 5년이었다. 셀 수도 없이 많은 일이 있었다. 크고 작은 일들의 소용돌이. 사랑과 싸움의 연속. 공시생 시절 행정학에서 배운 '중요사건기록법'으로 우리 결혼생활의 굵직한 사건들만 주르륵 나열을 해보면, 못해도 A4용지 대여섯 장은 거뜬히 넘길 테다.


하지만 내가 나-아중에 눈을 감을 때 가장 생각나는 장면들은 그런 일들이 아닐 것이다. 막 중대하고 큼지막한 사건들은 그저 기억하기 좋은 시점일 뿐, 사실 결혼생활의 진짜는 아주 소소한 것들이다. 결혼은 아주 소소한 장면들의 모음이니까.




1) 남편은 내 이마에 계속 뽀뽀를 한다


남편이 가장 뽀뽀를 많이 하는 부위는 어딜까. 바로 이마다. 162cm와 182cm. 20cm의 키 차이 때문에 서 있을 때도 최적의 위치, 안겨 누워 있을 때도 입술이 닿는 최적의 위치. 내 이마는 하필 또 남들보다 널찍한 편이라 뽀뽀할 공간도 참 많다. (+내 입술이 가장 자주 닿는 남편의 신체부위는, 볼!)


서 있을 때 남편은 내 이마 위에서 입술을 옴뇸뇸거리며 침을 다 묻히고, 내가 안겨 있으면 이마에 계속 뽀뽀를 한다. 딱따구리처럼 연속적으로 하는 건 아니다. 한번 하고, 10초 있다가 또 하고, 휴대폰 보다가. 또 하는 그런 식.


오늘 아침에도 그랬다. 남편의 휴대폰에서 7시 알람이 울렸고, 내가 그 소리에 먼저 깼다. 남편은 여지없이 알람 소리를 듣지 못하고 쿨쿨. 여느 아침처럼 나는 남편을 툭툭 치며 "알람 꺼"라고 약간 짜증을 냈다. 그러자 깼다. 남편은 실눈을 뜬 채 끼고 있던 워치를 손등으로 툭툭 눌러 알람을 끄더니 잠이 덜 깬 듯 입술을 오물오물거리다가 내쪽으로 몸을 틀었다. 그리고는 이마에 입술을 갖다 댔다. 내 이마 위에서 입술을 쭈-욱 내밀고는 다시 잤다. 나는 별안간 침이 묻어버린 이마를 슥슥 닦고 역시 다시 눈을 감았다.



2) 남편은 계속 이불을 덮어준다.


침대 위든 소파 위든, 남편은 내 몸에 이불 혹은 걸치는 무언가가 없음을 발견하면 계속 끌어올려 덮어준다. 답답하고 더워서 나는 또 이불을 발로 차서 내리고, 얼마 후에 그걸 본 남편은 또 덮어준다. 배 춥다면서. 겨울에는 당연지사, 여름에도 그러긴 마찬가지다.


"아, 더워! 나 더워서 이불 차는 거야."

못 참고 결국 신경질을 내도 별 소용은 없다.

"그래도 배는 덮어야지···"

꿍얼거리면서도 남편은 다시 이불을 내게로 스윽.


오늘의 퇴근 전화는 6시 22분



3) 남편은 매일 6시에 전화를 한다.


정확히는 매일 저녁 6시에서 6시 반 사이. 6시 근방이 되면 어김없이 남편의 번호가 뜬다. 받으면 바로 치는 남편의 멘트는 언제나 비슷하다.


"퇴근! 집 가는 중~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내 휴대폰은 언제나 무음 모드다. 그래서 그때 휴대폰으로 노래를 듣고 있다면 바로 전화가 왔음을 인지하고 받지만, 다른 일을 하고 있을 때는 놓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남편은 카톡을 남긴다. 멘트는 역시,


-집 가는 중~

뭐 사갈 거 있어?



4) 남편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나를 부른다.


내가 특히 좋아하는 목소리가 있다. 퇴근하고 집으로 들어오면서 나를 부르는 남편의 목소리. 이름을 부르기도, 익숙한 애칭을 부르기도 한다.


다희야-

다롱아-

다로로-


내가 거실이든 방에서든 어디서든 붕방붕방 달려가면 남편은 부드럽게 미소 짓는다. "아구. 잘 있었어?" 어김없는 어린애 대하는 말투로. 어김없이 이마든 어디든 뽀뽀를 하며. 나는 그 시간이 참 좋다. 눈을 감으면 절로 떠오르는 표정이고, 귓가에 나직이 감기는 목소리다. 평생, 절대 잊지 못할.






한없이 다정한 남자와 한지붕 아래 산 지 어언 5년.

(각자 자취방이 있었지만 거의 같이 살다시피 했던 대학생 시절을 포함하면 10년···)


긴 시간 동안 온갖 파도에 부딪히며 모든 것을 함께 겪어낸 우리를 더욱 단단하게 묶어주는 건, 그리고 아마도 가장 그리워질 건 바로 이런 아주 소소한 장면들이 아닐까. 결혼이라는 건 정말, 매일의 소소한 온기로 뭉쳐진 무지개색 실타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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