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좀 쉬어. 너 그러다 쓰러져!

by 다롬

기. 승. 전. 결.



글 구조의 4등분 중 어쩌면 가장 중요한 파트일지도 모를 '결' 부분을 완전히 망쳐버리고 있다는 깨달음을 얻을 때쯤이었다. 다 된 밥에 코 빠트리는(사실 설익은...설익지도 못한 밥일 수도...크흠) 원인이 '성취에 대한 압박감'과 '30대라는 늦은 나이에 대한 조급함' 때문임을 알아챈 나는 고장 난 로봇처럼 일순 뚝 모든 사고를 멈췄다.



아. 내가, 내 손으로 내 원고를 망치고 있는 거였어. 공모전 마감일을 지켜야 한다는 그 조급함 때문에, 빨리 뭐라도 이뤄내서 내 존재 가치를 떳떳하게 증명해 보여야 한다는 그 조급함 때문에, 완벽한 기승전(아니라고;)을 만들어놓고, 결국 마감일에 내쫓겨 가장 중요한 '결' 파트를 망치고 있는 거였다고!



나는 포효했다. 서글픈 짐승마냥 한껏 어깨를 움츠리며. 별 타격을 주지 않을 것 같던 가벼운 남편의 피드백이 결국, 경종을 때린 것이었다.



1.png 야레야레...



공모전 마감일에 너무 급박하게 맞추다 보니 결국 엔딩이 서운해진다. 단단한 앞자락에 비해 뒷자락이 너무도 서운하고 섭섭하다. 남편의 촌철살인 피드백에 나는 무심코 비뚤어진 입술을 감추고 이만 고개를 숙여야 했다. 고개를 바짝 숙이고, 달마다 나의 캘린더를 빽빽이도 채운 '공모전 디데이' 날짜를 모두 삭삭 지우개로 지워야 마땅했다. 지우고, 호흡을 가다듬어야 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끝내야 해. 이걸 빨리, 끝내야 해. 제출해야 해. 이제는, 뭐라도 해야 해. 야.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이 나이 먹고 지금 뭐 하는 거야. 빨리 뭐라도 해. 뭐라도 이뤄 내. 몸을 갈아서라도 빨리 보탬이 돼야지. 사지 멀쩡한 게 지금 알록달록 꿈 찾기 모험도 아니고, 뭐 하는 거냐고.



남편의 말이 날카로운 가시가 되어 나를 찌르든 어쨌든, 경종을 때리든 어쩌든, 나는 이미 성취 조급증에 먹혀버린 인간. 받아들여야 마땅할 피드백을 온전히 수긍하기에는 홀로 너무도 먼 길을 건너왔다. 나는 이 일을 찾기 전까지 너무도 오래 방황했고, 제법 괜찮은 '기승전'에 어울릴 제법 괜찮은 '결'을 위해서라도 남편의 말마따나 '천천히 숨을 고르면서 편안한 마음으로 글을 쓰기'를 시도해야 했지만, 나는 그게 되지 않았다.



타국에서 남편 혼자 외벌이를 시키고 있다는 그 어마어마한 죄책감은 결코 나를 그렇게 두지 않았다. 회사에 다니는 남편과 달리 나는 오직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중이었다. 그러니 내게 쉴 시간 따위 없었다. 없어야 했다. 남편이 출근하고 퇴근하는 시간은 물론, 그 외의 시간까지 나는 정신이 어지러울 정도로, 결국 허리나 손목이 버티지 못할 정도로 쓰고, 또 써야 했다. '작가'로서 제대로 데뷔를 해야 했고, 그건 '공모전'이라는 수단이 가장 적합했다.



글이 잘 읽히지 않는 세상이라 했는데, 다행히 요즘은 또 젊은 층에서 일어난다는 '텍스트힙' 문화에 힘입어 문학 공모전이 늘어난 추세라고 한다. 그렇게 매년, 매달, 매주 마감이 있을 정도로 문학 공모전이 아무리 많다지만, 나는 그 어느 것 하나도 포기할 수 없었다. 그건 직무태만이었다. 남편은 매일 아침 그렇게 일찍 일어나서 출근을 하고 하루 종일 사무실에 잡혀있다가 겨우 6시가 되어서야 집에 돌아오는데, 감히 내가 어떻게 게으름을 피울 수 있으랴. 감히 내가 어떻게 허허, 웃으며 '조금 편하게 해도 되겠지'라고 말할 수 있으랴. 내 기준에서 그런 건 용납되지 않을 짓이었다.



나는 언제나처럼 이를 악 물고, 허리가 부서져라 노트북 앞을 지켰다.



너 이러다 큰일 나겠어.
그러다 쓰러진다고!


그런 나를 보고 어느 날 남편이 말했다. 참다 참다못한 그는 답답함에 가슴을 쳤다.



"다희야. 대체 왜 그래.

내가 널 위해 다 해주는데,

너는 아무 걱정 할 필요 없다니까?


그냥 하고 싶은 일을 걱정 없이 해.

행복하게 글 써. 그냥 제발 행복하게만 해.

너 그러라고 내가 일하는 거고, 돈 버는 거야."



남편은 '제발 좀 쉬어!'라는 말을 고장 난 라디오처럼 반복했다. 귀가 따갑게 아무리 말해도 내가 들어먹질 않으니, 저도 답답했겠지. 그런데 나는 갸웃했다.



왜?



와이프가 늦게라도 꿈을 찾아 열심히 전진하면 좋은 일이 아닌가? 아니, 내가 잘 되기라도 해 봐. 여차하면 이 집에 굉장한 명예와 부(?)를 안겨줄 수도 있는 노릇이고. 그러면 너도 더 이상 회사를 다니지 않아도 될 텐데 말이야... 아무것도 모르고, 이 바보가. 떼잉, 쯧.



외려 남편이 대체 왜 자꾸 그런 말을 하는가, 이해를 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문득 거울을 보고서는 깨달았다.



내가 얼마나 심각한 상태였냐면, 거울 속의 나는 꼴이 아주 말이 아니었다.



goyang.jpg 매일매일 이 상태가 디폴트



아, 남편이 그래서.



내가 아는 내 얼굴이 아니었다. 거울 속 생기라고는 하나 없는 버석버석한 피부를 손끝으로 쓸었다. 화장실의 주황빛 간접등이 반사되는, 내가 마주 보는 나의 눈동자에는 그 어느 것도 담겨있지 않았다. 당연히, 마땅히 있어야 할 일말의 생기조차 없었다. 까다로운 기준으로 보자면, 가히 인간의 형상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는 몰골이었다.



순간, 내게는 남편의 말이 스쳤다.



제발 좀 쉬어.

제발 좀 쉬어!



"아…."



아. 이래서 그랬구나. 내 얼굴이 이래서, 이 모양이라서 남편이 계속 그런 말을 했던 거구나. 간밤에 수분크림을 충분히 바르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나이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면 하루 온종일 모니터 앞에만 앉아있어서인지 어쨌든 수분기 하나 없이 가뭄 인 땅처럼 쩍쩍 말라비틀어진 얼굴을 몇 번 더 벅벅 쓸어내렸다. 그 순간에도 나는 '아, 얼굴이 왜 이렇게 건조해. 아프게.' 따위의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마른 대지에 대충 퍽퍽 물세례를 끼얹고는 거칠거칠한 수건으로 박박 닦고 로션을 찹찹 발랐다. 아까의 지독했던 건조함이 싫어 찹찹 바른 한 겹 위에 두 겹, 세 겹으로 치덕치덕 로션을 덧발랐다. 그리고 자리에 앉았다. 매일, 종일 앉아있는 내 노트북 앞이었다.



멍-



그때 나는 내 눈동자를 볼 수 없으니 초점이 선명한지 어쩐지 알 도리가 없었으나 그런 낌새가 있었다. 자각할 수 있었다. 나는 지금 동태눈이라는 걸. 그냥 무감각한 흐린 눈을 하고서는 붕어의 입처럼 그저 끔뻑끔뻑거리고 있다는 걸.



너 이러다 큰일 나겠어. 쓰러져!

걱정돼서 그래. 너무 걱정돼서.



남편의 말이 귓가에 윙윙 울렸다. 그러면서 손은 자연스럽게 키보드 위로 올라갔다. 백지장 위에 의미 없는 '음음음음'을 적어가면서 머릿속으로는 오늘 내 끝마쳐야 할 분량을 가늠했다.


오늘은 최소 3장까지는 끝내야 하고. 그러니까 여기서 20페이지는 더 써야 하는데. 지금이 몇 시…아, 5시 반. 남편 오면 같이 저녁을 먹고. 아니, 나는 저녁 못 먹고 일단 글부터 쓰고 분량 다 채우면 먹던가. 아니면 자던가… 자고 일어나서 새벽에 일찍 일어나면….



타닥타닥. '음음음음'을 쳐대는 규칙적인 키보드 소리 위로 또다시 남편의 말이 겹쳐 흘렀다.



다희야.

그냥 하고 싶은 일을 걱정 없이 해.

행복하게 글 써. 그냥 제발 행복하게만 해.



아.



그제야 키보드 위에서 손을 뗐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세로줄 커서가 깜빡거리는 하아얀 한글 파일, 그것을 앞에 두고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월요일 연재
이전 02화조급증이 불러온 참혹한 결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