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때문에 글을 망치다니!
내가 글쓰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후, 내 남편이 거의 맨날 하는 말이 있다.
다희야. 모차르트도 10년은 걸렸대.
지금 네가 하고 있는 글쓰기라는 건,
특히 시간이 필요해. 천천히 해, 천천히.
그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당연히 나 때문이다. 내가 전전긍긍하고, 불안해해서. 왜 안 되지? 왜 다 떨어지지? 왜 나를 알아봐주는 사람이 없지? 기회만 주면, 진짜 딱 한 번만 기회를 주면 나 정말 잘할 수 있는데. 나는 매일 그랬다. 빨리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내가 노력하는 만큼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고 절절거렸다.
고로 남편의 반복되는 문장은 나의 상황에 딱 맞을 굉장히 좋은 말이었다. 분명 객관적으로는 그랬다. 하지만 나에게는 위로가 되지 않을 때가 많았다. 오히려 흥분의 자극제가 되었다면 되었을까.
그놈의 모차르트,
그놈의 모차르트!
나는! 못 기다려! 10년!
아빠를 닮아 원래도 급한 성질을 타고났는데, 어찌 10년을 기다리라는 말인가? 나는 당장의 성과가 필요하다. 어떤 결과라도 원한다. 이런 조급함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정말 어쩔 수가 없었다. 지난한 방황의 세월을 거쳐 30대에 겨우 찾은 내 일, 몹시 좋아하는 일이고, 그만큼 정말 열심히 하고. 그래서 너무나 간절하다. 나는 이게 너무도 간절해서, 제발 뭣 하나라도 부디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인생은 결코 뜻대로 되지 않는 법.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한들, 내 몸을 갈아엎고 혼자 생 요란을 다 떨며 허리가 부서져라 하루 종일 글을 쓴다 한들, 기막힌 열정과 노력이 하늘을 뚫고 우주로 솟구친다 한들, 세상은 내게 쉽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 나는 하루 걸러 하루 절망하고 또 절망하기를 성실하게 반복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터덜터덜, 비틀비틀 홀로 외로이 어둠에 갇힌 채 무력히 걷는 느낌이었다.
나는 내가 정상적인 궤도에 있다고 여겼다. 아니, 정상적인 궤도고 뭐고 내가 '뭔가 잘못되었다'라는 느낌을 받을 심신의 여유가 없었으므로 그냥 우직하게, 쉬는 시간도 없이 정면으로만 나아갔다. 하루 한 끼 먹는 15분과 뒤처리 및 청소를 하는 30분 정도를 제외하고는 내 모든 시간과 정신을 글쓰기에 쏟아 넣었다.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시간이 부족하다 느꼈다.
동시에 현재 내가 쓰는 원고에 매우 집착했다.
오. 이건 진짜 좋아.
이건 될 것 같아.
이건 돼야지. 이건.
이건... 돼야 하지 않아?
프롤로그를 쓸 때까지만 해도 가볍게 찰랑거리던 마음의 파동은 어느새 표독스런 광기로 변해있었고, 에필로그를 쓸 때쯤에는 이걸 빨리 공모전에 내서 얼른 세상에 내보이고 싶다는 조급함이 필연적으로 따라왔다. 나는 도통 차분할 줄을 몰랐다.
이게 아니면 안 돼. 이것밖에 없어.
나한테는 지금, 이것밖에 없어.
이게 얼마나 무서운 생각인지, 당시의 나는 알지 못했다. 그러나 어렴풋이 깨달은 순간이 있었는데 남편이 어느 날 내게 준 피드백을 받았던 때였다. 언젠가 보름도 안 되는 기간에 또 하나의 소설을 완결 낸 나는, 유일한 독자인 남편에게 보여줬다.
"다 좋아. 다 좋고 재밌어. 그런데…."
여느 때처럼 남편은 내가 상처받는 것을 예방하고자 밑밥을 깔고 들어갔다. 그리고 쓰읍, 흐음 하는 입소리와 함께 갸웃거리는 고갯짓이 그 뒤를 이었다. 누가 봐도 긍정적인 제스처는 아니었다.
"다 좋은데, 내가 볼 때 결말이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어. 그래서 내 생각에는, 너가 공모전 마감에 너무 급급해하지 말고 조금 더 시간적 여유를 두고 써 보면 어떨까?"
그의 말씨와 표정은 한없이 부드러웠고, 솔직한 피드백을 주는 중에도 사이사이 꼭꼭 칭찬은 빼놓지 않았다. 그러나 나에게는 심장을 후벼파는 날카로운 가시처럼 느껴졌다. 그 원고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것만큼 애정도 큰 법, 어쩌면 '기승전결' 중 가장 중요할 파트인 '결'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을 그저 곱게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티를 내지 않고 고개를 주억거리며 애써 덤덤히 받아들이는 척을 해보았지만, 결국 나의 눈썹이 감정결을 따라 삐딱선을 그렸다. 그걸 보는 남편은 일찌감치 상태를 눈치챘으나 굴하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반복적으로 피력했다. 그렇지 않아도 남편이 늘 제안하던 일이었다. 천천히, 쉬엄쉬엄, 급하지 않게, 공모전때문에 머리 쥐뜯어가며 매달 새로운 작품 억지로 만들어내지 않기 등등.
오로지 내 심신의 건강을 우려해서 던지는 그 다정한 제안을 내가 완전히 새겨들을 때까지 남편은 혼자만의 외로운 입씨름을 지속할 요량이었는데, 그날이 마침 적절한 타이밍이었다. 마침 또 소설 하나를 보여주겠다, 근데 마침 그게 또 마감의 압박으로 인해 급하게 후다닥 쓴 듯 엔딩이 구리겠다. 벼르고 벼르던 차에 좋은 핑계를 잡았으니 이번엔 물러나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보였다.
"공모전을 좀 놔. 매달 하지 말고, 3달에 하나 정도만 해."
남편은 원래도 낮은 목소리에 더욱 묵직한 힘을 주어 말했다. 그에 나는 곧장 고개를 모로 저었다.
"하지만... 어떻게 놓쳐? 이번 달 거도 되게 중요하고 다음 달 거도 사이즈가 커. 난 모든 공모전에 다 참여를 해야 하는데... 딱히 하는 일도 없는 전업 작가지망생이잖아... 공모전을 하나라도 놓친다는 건 직무태만이야."
지긋지긋하게도 말을 듣지 않는 와이프에 남편은 대답하기에 앞서 먼저 큰 한숨을 쉬었다.
"하나, 둘 놓쳐도 큰일 안 나. 애초에 그게 말이 안 되는 거야. 한 달에 소설 하나 쓰는 게 말이 돼? 아니야. 쉬엄쉬엄 해. 천천히, 편하게. 응? 천천히 쓰면서 오래오래 공들이는 거야."
"...그래도..."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실제로 내 소설의 결말이 아쉽다는 피드백을 받아들이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남편이 그저 나 좀 쉬게 하려고, 그놈의 노트북 앞에 그만 좀 앉아있게 하려고 수를 쓰는 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그냥 '일단 맛있는 거 먹자!' 하며 대강 넘겨버렸다.
그러나 바로 다음 달에 쓴 것에도 비슷한 피드백이 따라왔다. 이건 진짜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뭔가 이상했다. 나는 원래 하나를 끝내면 바로 다음 날부터 새로운 원고를 시작하기 때문에 결말을 낸 것은 뒤도 돌아보지 않는다. 뒤를 돌아볼 여유 따위 없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하지만 남편이 계속 그리 말하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으리라. 나는 다음 날에 새 한글 파일을 열지 않고, 어제 끝낸 기존 작품을 다시 찬찬히 살폈다.
그런데,
진짜 이거였다.
내가 쓴 소설이 이 지경이라는 걸, 스스로 다시 읽어보고 나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아. 남편 말이 맞았구나. 진짜 그렇구나. 결말이……개똥이었어.
공모전 마감일을 기준으로 해버려 생긴 나의 조급함은 비단 한가득 내려진 다크서클로 점철된 나의 피폐한 몰골뿐만 아니라 원고의 질에도 악영향을 미쳤던 것이었다. 이건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 글을 너무 사랑해서 오히려 글을 망치다니.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경종을 때렸다.
내가 조금 차분하게 했더라면, 뒤에서 뭐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듯 급박하게 우다다다 키보드만 두드리는 대신 두 달, 세 달, 네 달 이렇게 원고를 보고 보고 또 보면서 단정하게 다듬어가며 오래 고민을 했다면, 지금 이 사달이 나지 않았을까. 기승전결 모든 파트가 아름다운 음율처럼 곱게 어우러지며 아쉽지 않은 스토리라인을 완성할 수 있었을까.
폭주기관차처럼 뜨거운 콧김을 훅훅 뿜으며 질주하던 나를, 멈추게 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