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
생기를 빼앗긴 탁한 눈동자가 한글 파일 위로 도르르 굴렀다.
'나는 지금 뭘 하고 있지?'
글로 먹고살기로 결심한 후 쉬는 날도 없이 우직한 소처럼 달려온 날들. 어느 때부터 나는 문득 멍, 해지는 순간이 늘어났다. 멍, 하다고 해서 가만히 있는 건 아니고, 마우스를 쉼 없이 딸깍거렸다. 고무 패드 위에서 손에 반도 안 차는 작은 마우스를 열심히도 움직이며 사이트를 왔다 갔다 했는데, 방문하는 건 주로 '제출한 공모전 홈페이지'와 '웹소설 무료 연재처'였다.
웹소설 연재처는 하나지만, 참가한 공모전은 수도 없이 많았기에 결국 내 노트북 상단바에는 각종 공모전 요강들로 빽빽이도 차 있었다.
이틀에 한번 꼴로 업로드하는 웹소설 연재처에서는 독자님들의 반응을 확인한다.
새로고침,
새로고침,
또 새로고침.
"흠…이 화는 나름 찢었다고 생각했는데, 댓글이 하나뿐이군? 심지어 선삭* 하나…찢지 못한 것인가."
(*선삭=선호 작품 삭제)
조회수나 댓글, 추천 등등. 한번 확인했으면 이제 미련 없이 끄고, 앞으로의 결연한 다짐을 지으며 내 할 일을 하면 될 것을 나는 무한 새로고침 지옥에 갇혀 약 10분 이상을 웹소설 연재처에서 허비한다. 그리고 겨우 그곳을 벗어나면 이제 공모전 페이지. 여기는 확인할 반응도 없다. 이미 '접수기간'이 끝나버려 수정마저 불가한 공모전이 대부분. 그러니까 이미 끝난 싸움이라는 것이다.
그래, 웹소설 연재처 무한 새로고침은 이해를 할 수 있다. 소중한 독자님들의 반응을 확인하는 것도 작가의 본분 중 하나이므로. 나에게는 없는 내 작품에 대한 객관적인 눈을 가진 그들의 피드백은 피와 살이 될 지어니. 그렇지만 공모전은 아니다. 접수조차 완전히 끝나버린 상황, 도저히 그 페이지에 다시 들어가 볼 이유는 없었다.
그럼에도 같은 짓을 반복한다.
그러면서 한숨을 푹푹 내쉰다.
그런 날들이, 그런 시간들이 점점 늘어났다. 나는 고민에 빠졌다.
내가 왜 이럴까. 원인이 뭘까. 왜 처음처럼 그저 즐겁게만 쓰지 못하고, 왜 자꾸 멈추고, 왜 자꾸 한숨을 쉴까.
어느 것도 명확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 분명한 건, 단순히 쉬지도 않고 하루 종일 무리하며 글을 써서 너무도 피로해진 신체에서만 기인한 무력감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다희 네가 하루도 안 쉬고 그렇게 계속 달리기만 해서 그렇다는 남편의 말에 공감하지 못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나는 나를 너무나 잘 알았다.
나도 쉬어보지 않은 게 아니다. 남편의 제안에 따라 스스로에게 '노트북 금지령'까지 내려가며 반나절 이상 그저 놀기만 했던 적도 분명 있다. 그러나 맞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쉬엄쉬엄은 답이 아니었다. 쉬엄쉬엄이 맞는 사람이 있고, 그 쉬엄쉬엄을 못 견뎌해서 외려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도 있을 텐데 나는 명백한 후자였다.
조급증, '나이가 많다. 이제 나는 뭐라도 이뤄내야 한다. 결과를 얻어야 한다.' 이런 조급증이 일단 우선적으로 나의 생기를 빼앗는 주범이었다. 그리고 그 주범이 이끄는 곳이 바로 저 무수한 페이지들이었다. 이미 내 손을 떠난. 심사 언제 끝나. 발표일이 언제였지? 아. 본심 연락은 이미 갔으려나….
그러니까 결국 나는, 내가 통제하지 못하는 '결과' 파트에서 자꾸 종종거리고 있던 것이다.
한숨의 원인이 명확해졌다.
이렇게 목표를 '공모전 당선', '기획출판' 이런 친구들로 잡으면 이제 힘들어진다. 그런 건 내가 정할 수 있는 결과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내 노력의 여하에 따르는 결과가 아니라는 거다. 아무리 열심히 한들 공모전에서 당선되기, 오롯한 기획출판(독립X, 자비X, 반기획X) 등은 그들(심사위원, 출판사)의 선택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것이지 내가 뭘 어쩔 수 있는 게 아니다.
고로, 이미 내 손을 떠난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아야 했다. 그게 현명한 처사고, 마땅히 지녀야 할 지혜로운 태도다. 그러나 나는 현명하지도 지혜롭지도 못한 사람. 당연히 잘 되지 않았다.
원인을 알아냈지만, 그렇다고 한숨이 줄어드는 것도, 내가 통제하지 못하는 '결과' 요소에 집착하지 않게 되는 것도 아니었다. 똑같이 무한 새로고침이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계속 우울감을 뿜어내고 있을 수는 없지 않나. 나는 새로운 해결책을 모색해야 했다.
이와 관련하여 내 영원한 베스트프렌드, 남편과 대화를 나눴다. 그의 말은 한결같았다.
한숨의 원인: 빨리 뭔가를 이뤄내야 한다는 조급증
남편이 제안한 해결책: 쉬기, 명상, 요가, 마음 수련 등등
그는 하나 같이 정적인 방법을 내놓았다. 명상, 요가, 천천히 해도 괜찮다고 내 마음을 어르르어르르 달래기.
"아…그거 아닌데…."
그러나 나는 역시 고개를 내저었다. 같이 고민해 달래서 좋은 제안을 해줬더니 매번 아니라 하는 괘씸한 와이프. 그럼에도 묵묵히 나를 받아주며 "그래. 그럼 무슨 방법이 있을까?"라고 하는 내 남편은 현자임이 틀림없다.
쉬엄쉬엄도, 명상이나 요가도 아니다. 이런 건 소용이 없다. 나는 나를 너무도 잘 안다. 어차피 실패할 것이다. 요가를 하면서도 원고 수정할 부분을 고민하겠지. 불 보듯 뻔한 결과다. 애초에 '차분함, 인내심' 이런 건 무언가에 간절한 인간이 품을 수 있는 마음이 절대 아니다. 그렇다고 안 간절할 수도 없는 노릇. 그런데 또 간절함 때문에 매일 나를 이렇게 갉아먹을 수는 없고. 엉망진창. 답답하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여전히 무한 새로고침과 봐도 소용없는 공모전 페이지에서 허우적대며 한숨만 푹푹 쉬던 나는, 곧 하나의 분명하고 확실한 해결책을 찾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