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금 웹소설 작가의 남모를 고민
안녕하세요, 작가님.
평안한 오후 보내고 계신가요?
…(중략)…
리뷰고 보내드립니다.
편하실 때 확인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출판사에서 리뷰고를 받았을 때의 일이다.
웹소설 출간 과정은 출판사마다 다르겠지만 대략 아래와 같다.
완고 전송->출판사 리뷰고&작가수정본(2-3번)->출판사 교정고&작가수정본(2-3번)-> 원고 편집과 동시에 표지제안서 및 서지 양식 제출-> 원고, 표지 등등 출판사 내부 마무리
이 중 '리뷰고'는 완고 다음 과정, 즉, 제대로 된 출판사와의 작업 첫 단계이다. 그래서 리뷰본이 뭔데? 물으신다면, 아래와 같이 답할 수 있다.
원고의 방향성 및 수정 사항에 대한
출판사의 의견을 제안하는 것.
반영 여부는 작가의 선택!
나는 웹소설을 쓰는 것도 처음, 출간도 물론 처음이었기에 이 '리뷰고'라는 것이 무언지 정확히 몰랐다. 담당 PD님께서 워낙 천사이신 데다 전 과정에 있어 매우 자세한 설명을 해주셨지만, 나는 직접 그 리뷰고를 받아보기 전까지는 다소 막연하게 느껴졌다.
에세이를 출간할 때는 그저 '수정고: 1교, 2교, 3교'만 있었기에 더더욱 그랬다.
모르면 어쩐다? 검색을 하면 된다. 웹소설 작가 카페에 들어가서 검색을 했다. 멋진 기성 작가님들의 말씀에 따르면, 리뷰본을 받아서 후루룩 넘겨보면 빨간색이 우르르 적혀있다고 한다. 그 빨간색이 출판사의 의견 및 제안. 그래서 웹소설 작가님들은 그것을 '빨간펜 선생님'이라 부르시더라.
일명, 공포의 빨간펜
그리고 리뷰고 파일을 열었을 때, 나 역시 빨간펜이 수두룩했다. 그러나 '공포'는 아니었다. 외려 '구원' 정도에 가까웠지. 업계 전문가의 날카로운 분석과 예리한 시각으로 나도 보지 못했던 설정 오류 등을 콱콱 잡아냈고, 어색한 문장이나 이야기의 순서 역시 부드럽게 바꿀 수 있었다.
다 괜찮았다. 대부분 감탄했다. 아, 역시 전문가는 전문가시구나. 전문가의 눈은 매우 날카로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영광입니다.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수정 제안 수용'의 표시를 해나갔다.
그런데, 후루룩 페이지를 넘기던 나의 손이 문득 멈췄다.
「그의 살갗을 아슬하게 타고 흐르는 삐이
열기에 휘감긴 눈빛과 흔들리는 숨소리에 이내 삐이, 삐이」
나의 웹소설은 표지 상단에 '19세미만구독불가' 딱지가 붙은 완전한 으른용. 그냥 19세도 아니고 하드와 피폐가 접목된, 미성년자는 가라. 절대 근처에도 오지 마라 수준. 그래서 19금 씬도 많은 편이다. 그런데 리뷰고 20몇 페이지쯤 갔을 때 씬이 하나 있었는데, 그곳에 빨간펜이 있었다.
19금 씬에 적힌 편집자님의 빨간펜 피드백은 다음과 같았다.
「작가님! 이 부분은 A가 B의 손에서 삐이, 삐이 되고 삐이 되는 것으로 이해했는데요!
그렇다면 대신, 삐이, 삐이(엄청난 39금) 이런 표현은 어떨지 조심스레 제안드려봅니다.」
"헉."
나의 동공이 세차게 흔들렸다. 무심코 손을 들어 인중을 틀어막았다. 제안된 수정 부분이 마음에 안 들어서는 당연히 아니었고, 순간 당황해서 그랬다. 참으로 새삼스러운 깨달음이었다. 이게 뭐지.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온전히 내 손으로 만들어진 빠알간 장면임에도, 그걸 누군가가 읽고, 피드백을 해줬다는 사실이 이것 참 남사스럽기 그지없었다. 남편이 출근하고 홀로 있는 방 안에서 나는 어쩐지 볼이 홧홧하게 달아올랐다.
게다가 그렇게 온화다정다감상냥친절의 결정체이던 PD님께서 이런 엄청난 39금, 49금을 말씀주시다니… 역시 업계 전문가는 다르긴 다르다며 나의 감탄은 끝없이 꼬리를 이었다.
그러면서도 또 출판사에서 주신 제안은 너무나 마음에 들어서, 나는 이 역시 '수용' 표시를 적어내려갔다. '좋은 제안 감사합니다. 이렇게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타닥타닥, 다소 부끄러움이 깃든 나의 손끝이 느릿하게 움직이고, 동시에 중얼거렸다.
"아니, 내가 지금 출판사와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거지…?"
소설, 에세이, 시나리오 등에는 전혀 '19' 요소가 없다. 넣으려면 넣을 수야 있겠다만 굳이 그러지 않는다. 일단은 '전연령'을 기준으로 해야 독자층이 넓어지고, 그래야 기회가 많아질 테니까.
사실 나는 빨간 장면에 매우 자신이 있는 편인데, 그런 나의 음험한 본능을 뿌리치고 전체이용가를 쓰는 것이다. 그래서 꾹꾹 눌러둔 시꺼먼 욕망은 웹소설에서 마구잡이로 표출이 된다. 다행히도 웹소설은 '19금'이 강세다. 그러니 19금을 써야 이게 뭐가 맞다. 그러니 나는 어쩔 수 없이(?) 19세미만구독불가를 쓸 수밖에.
작년에 대형 웹소설 공모전에 참가를 했는데, 그 기준이 전체이용가였다. 아이들이 읽기에도 무리가 없어야 하니, 그야말로 동화를 써야 하는 수준이었다. 나는 시도를 했으나 역시 불가했다. 다른 장르는 몰라도 웹소설에서만큼은 선을 지키지 못했고, 결국 참가하나마나 하게 되어버렸다. '전연령 웹소설'이라 기획은 했던 그 작품은 지금 나의 바탕화면 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 곧, 19금으로 바뀔 예정.
와다다다 키보드가 터질 만큼 손가락을 강하게 놀리며 입술을 츄르릅 입맛을 다시면서, 그렇게 만족스럽게 완성한 19금 장면들이었다. 나름 자랑스럽고, 뿌듯하지만 그걸 누군가 읽는다 생각하니 이게 참, 하하!
내가 만들어낸 가상의 세계에서, 가상의 인물들이, 살색으로 뒤엉킨 장면을 마치 PD님, 편집자님과 소파에 나란히 앉아 함께 시청하는 느낌이랄까! 부끄러움에 몸 둘 바를 몰랐다. 그러나 그런 역경(?)을 거치며 원고는 더욱 풍족하고, 단단해질 수 있었다.
출판사와 계약을 했고, 그들의 손에 맡겨지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어쨌든 작품은 작가의 것이고 저작권도 그렇다. 그러니 출판사 리뷰라는 것은 결국 내 글을, 전문가의 손길에 따라 더욱 완성도 있게 만드는 작업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면 결코 '공포의 빨간펜'이 아니다. 리뷰본 작업을 하면서, 왜 전문가는 전문가인지 확실히 깨달았다.
계약한 출판사가 대형이라 그런지 몰라도, 계약부터 지금까지 모든 과정이 너무나 깔끔하고 다음 단계는 언제까지 진행하겠다, 말씀하시면 그 날짜를 어긴 적이 단 한 번도 없으시다. 이게 당연한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여기에 더해 특히 나의 담당 PD님 자랑을 너무나 하고 싶다. 정말X3 친절, 다정, 따뜻하게 보듬어주시는데 한편으로는 또 냉철한 분석과 예리한 감각으로 원고를 다듬어주시는. 그러면서 나의 방향성이나 의도 등은 절대 건드리지 않으시려는 노력이 보인다.
웹소설도 다른 장르와 마찬가지로, 글이 아무리 좋아도 출판사 바이 출판사, 담당자 바이 담당자 라던데 나는 출판사도 담당 PD님, 편집자님 등등 완벽하다. (출판사, 사랑합니다!)
그날 저녁, 퇴근한 남편과 저녁을 먹으며 말했다.
"있잖아. 오늘 리뷰고가 왔는데, 19금씬에 피드백이 달려있었거든?
근데 삐이, 삐이한 부분을 삐이, 삐이로 수정하면 어떨까, 하시더라고.
... 조금 부끄러웠어!"
그랬더니 남편이 와하하 웃었다. 진짜 웃긴 모양이었다. 애초에 와이프가 '19금'을 쓴다 했을 때부터 웃겨 했던 남편이었다. 표지 시안이 나오고, 상단 우측에 붙은 '19세미만구독불가' 띠를 봤을 때 남편은 고개를 모로 저었다.
"다희…이런 걸 출간하다니…."
워낙 나를 오냐오냐, 딸처럼 여기는 남편인지라, 제 눈에는 내가 한없이 어리고 약해 보일 텐데. 19금. 19세미만구독불가라니. 아무렴, 웃기긴 하겠지. 껄껄.
아무래도 난 평생 웹소설은 그만둘 수 없을 것 같다. 사회적 메시지+진지+웬만하면 전연령으로 똘똘 뭉친 타 장르들 속, 한도 끝도 없는 19금+도파민+흥미로 꽉꽉 채울 수 있는 웹소설은 그야말로 나의 한풀이 숨구멍이니까.
웹소설, 재밌다. 꺄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