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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on Jun 07. 2024

디자인 텍스트를 읽어야 디자인을 읽는다.

[디자인 언어영역] '디자인 연구의 기초'를 읽었습니다.

#디자인연구의기초 (2024.05)

디자인 연구의 기초 / 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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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읽기: #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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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쓰기:

석사과정시절 유일하게 한 학기를 더 듣고 싶었고, 더 들어야 이해할 수 있겠다 생각한 수업이 있었다. '디자인 미학'수업이었다. 한 학기 동안 논문 1장으로 수업을 진행하셨는데, 수업필기노트는 2권을 가득 채웠고 15년이 지난 지금도 가지고 있다. 교수님의 수업을 들으며 얼마나 공부하면 인간에게 일어나는 다양한 현상들을 디자인을 통해 저렇게 연결 지어 아우를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때부터 교수님이 쓰신 책을 읽기 시작했고, 최근작이 '디자인 연구의 기초'이다. 디자인은 태생부터가 산업중심의 실용학문이기에, 언어보다는 이미지로 어필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디자인 관련 일을 한다고 하면, 당연히 디자이너라 생각하고 나의 결과물이 제품인지 영상인지 포스터인지 묻곤 한다. 그래서 이미지가 아닌 언어로 디자인결과를 이야기하는 나의 일은 비전공자들에게는 생소하고,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디자인을 공부했지만 디자이너는 아니고, 디자인 관련 일을 하지만 이미지가 아닌 언어로 설득하는 나에게는 이 책 가장 첫 장에 적혀있는 '디자인 개념어를 알아야 디자인을 안다.'와 가장 마지막에 적혀있는 '디자인 텍스트를 읽어야 디자인을 읽는다.'는 문구가 깊은 위로아닌 위로로 느껴졌다.


석사학위를 따기 위해 처음으로 '논문'이라는 신세계를 접했고, 어쩌면 그때가 나의 '디자인 연구'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지금 내 석사논문을 보면, 아무도 모르게 모두 소각해버리고 싶은 마음만 굴뚝같아, 감히 연구라는 말을 붙여도 될까 싶지만, 디자인을 중심으로 한 주제를 탐구한다는 개념에서 본다면, 부끄럽지만 석사논문이 내 디자인 연구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석사를 거쳐 박사학위를 위해 소논문을 처음 쓰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다양한 이유로 논문이라는 형식을 빌어 '디자인 연구'를 하고 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프로젝트를 하면 할수록 핵심개념을 어떻게 정의하는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느낀다. 그래서 학생들에게도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 핵심 키워드에 대한 자신만의 재정의를 강조하고 또 강조한다. 설득력 있는 나만의 새로운 정의가 있어야 새로운 관점이 나오고, 새로운 결론이 가능하기 때문이랄까. 그런 관점에서  '디자인연구의 기초'라는 제목으로 디자인 관련 개념어와 텍스트를 정리하고 정의한 이 책은 나에게 참 남다른 의미가 있다.

디자인 이 책에서 '디자인연구를 위한 개념어'라 소개하고 있는 10가지 개념어에 대해 한 번도 구체적으로 고민해보지 못했다.


'디자인의 의미(Meaning of Deign)'에 대해선 디자인을 전공하는 학생들조차도 졸업할 때까지 그 의미를 너무 지협적으로만 인지하고 있는 것에 늘 고민했던 터라 저자가 말하는 비가시적 개념, 조형적 산물, 사회문화적 개념에 대해 다시 한번 공감하는 기회가 되었다. 부가적으론 디자인을 처음 공부하기 시작하는 1학년들에게 한 학기 내내 '디자인 개념'을 가르치며 사용하는 빅터파파넥의 '인간을 위한 디자인'을 이 책에서 만나니 새삼 반가웠다. '


디자인 생산(Production of Design)'에서는 디자이너의 정체성(주체 위치)에 대해 다시 정리하는 기회가 되었다. 대부분의 디자이너들은 디자인 제안자이지만, 스스로가 경영권을 가지지 않은 이상 디자인 결정자는 아니다. 또한 자신이 제안한 결과물에 대해 경영자의 선택을 거쳐, 대중들의 선택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위치에 놓인 것이 현실이다. 디자인은 스타일링만이 아닌 인간이 겪고 있는 다양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라 강조하고 있지만, 정작 디자인에 있어서 중심이라기보다 제안하고 기다리는 수동적인 위치에만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되었다. 어쩌면 디자인에 대한 개념이 외형적인 수단으로만 머물러있기에 디자이너의 위치 또한 유연하지 못하고 좁게만 굳어져있는 것은 당연한 결과인듯하다.


'디자인 방법(Design Method)'에서는 방법 자체가 과학적인 것과 방법과 결과의 관계가 과학적(인과적)인 것의 차이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 또한 디자이너는 결과물을 설득해야 하는 위치이며, 슬프게도 여전히 논리에 취약한 디자이너가 존재하기에, 나또한 논리와 연결성을 강조하고 또 강조한다. 하지만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디자인은 합리성만을 추구하는 과학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람은 감정적이며 감각적이며 정서적인 존재이다. 이런 사람이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만 접근한다면 절대 느끼게 할 수 없고 반응하게 할 수 없다. 이것이 디자이너가 '디자인 방법론'이라는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는 방법을 사용함에 있어 다시 한번 고민해보아야 할 이유이다.


'디자인 산업(Design Industry)'파트를 읽으며, 현재 한국에서 이해되는 디자인산업 개념의 오남용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지극히 산업중심적으로 발전해 온 한국의 디자인이다 보니 디자인 정책, 디자인 교육, 디자인 문화 영역을 모두 '디자인 산업'으로 인식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는 생각이 든다. 분야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해당 분야를 발전시키는 시작일터인데, 한국의 디자인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디자인 정책(Design Policy)'과 '디자인 진흥(Design Promotion)'은 서울시 출현기관에서 디자인 지원사업 기획과 운영업무를 수년간 했었고, 디자인 정책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나에게는 익숙하다 못해 조금은 진부한 개념이다. 핵심은 디자인뿐만 아니라 그것이 무엇이든, 국가주도로 이루어지는 형태는 지나친 간섭과 규제로 인해 성장발전에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디자인 분야뿐만 아니라 지금의 대한민국이 겉모습만 자유민주주의가 아닌, 겉과 속이 진짜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1장의 개념어 정리에 이어 2장에서 소개하고 있는 '한국의 디자인 텍스트'를 통해 디자인을 언어로 고민하고 연구하는 많은 디자인 연구자들을 알게 되었다. 이미 많은 글과 학회를 통해 익숙한 분들도 계시고, 새롭게 알게 된 연구자들도 있다. 소개하고 있는 텍스트 중 오창섭의 '이것은 의자가 아니다', 와 '서양 디자인을 주석하는 힘', 김상규의 '어바웃 디자인'을 알게 된 것이 이 책의 또 하나의 성과가 아닐까 생각한다.

오랜만에 석사시절 인상 깊었던 교수님의 글을 만났고, 그 글을 통해 또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책.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었던 '디자인 연구의 기초'였다.


-디자인 듣기:


/p.20. 추상적 개념은 우리의 디자인 사유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인식론적 층위를 구성하며, 경험적 디자인 개념들의 참조점이자 상상력의 근원적 지평으로서 언제나 열려 이어야 할 어떤 영역이기 때문이다.


/p.28. 비가시적이며 과정적 성격으로서의 디자인이 일정한 역사적 단계에서는 객관적으로 가시화되며 그 도구적 성격 또한 산업사회의 생산과 소비라는 시스템과 관련해 배치될 때 역사적 개념이 성립된다.


/p.37. 계보학적 방법에 의한 디자인의 역사는 디자인을 하나의 자율적 역사로 만들어 결과적으로 역사 바깥으로 밀어내는 대신, 복합적 역사의 장에 위치시켜 진정으로 역사화하고자 한다.


/p.49. 1930년 미국의 자동차 산업에서 등장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로 퍼져나간 '스타일링(Styling)'은 오늘날 대표적인 디자인 기법으로 사실상 디자인의 의미를 대신한다고 할 수 있다.


/p.62. 디자이너가 디자인과 관련해 언제나 디자이너라는 한 가지 정체성만을 가지고 살아갈 필요는 없으며, 어떤 경우에는 효과적이지도 않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이처럼 디자이너의 정체성에 대한 인식은 훨씬 더 유연하고 복합적일 필요가 있다.


/p.77-78. 단지 행위나 산물로서의 디자인, 그 자체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디자인 문화다. 중요한 것은 경험된 디자인이다. 중요한 것은 의미를 낳는 디자인이다.


/p.84. 디자인 산업은 사실상 디자인 회사(의 활동)를 가리키는 말일뿐, 결코 한 사회의 디자인 활동 전체를 지칭하는 용어가 될 수 없다.


/p.94. 가능한 한 정부가 직접 개입하는 모델보다는 기반 조성이나 인센티브 부여 등을 통한 간접 지원 방식이 디자인의 특성이나 현대 민주주의 성격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더 적합하다고 일반적으로 말할 수 있다.


/p.105. 디자인 비평이란 특정한 취향을 기준으로 한 디자인 대상에 대한 등급 부여가 아니라 일정한 디자인관에 기반해 이루어진 해석에 의한 가치 판단이다.


/p.112. 디자인 텍스트는 한국 디자인이라는 콘텍스트 안에서 디자인 개념의 실제적 의미와 용례를 보여주는 구체적 장소다.


/p.138. 디자인에 대한 우리의 이차적 이해 수준은 서양 디자인 텍스트를 얼마나 충실히 주석하고 주해하는가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과정을 거친 이후에야 비로소 우리의 텍스트를 만들어낼 수 있고 새로운 디자인을 창조할 수 있다.


/p.140. 무엇보다도 한국 디자인이 서양 디자인을 주석하는 힘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이는 서양 디자인 텍스트에 대한 단순숭배를 넘어 우리 시각으로 서양 디자인 텍스트를 주체적으로 읽어낼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p.146. 나는 프랑스 디자이너 필립 스탁이 디자인한 착즙기 <주시 살리프>에 대해서는 단순한 호기심 이상의 관심은 없다. (중략) 한국적 상황에 놓일 때 나는 그것에 관심을 갖는다. 그럴 때만이 그것은 단순한 텍스트를 넘어 의미를 발생시키며, 구체적 맥락에서 독해 가능한 텍스트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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