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발되기 전에, 감정을 적는다.

[D-387] 감정도 기록해야 한다.

by Mooon

D-387. Sentence

감정도 기록해야 한다.


IMG_3232.jpg @onestepahead.mag



나는 내 감정을 제대로 바라보려 하지 않는다. 기쁜 순간도, 감사했던 순간도, 아팠던 순간도 대부분은 휘발성을 띠고 순식간에 사라져버린다. 마치 기록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하지만 가만히 돌아보면, 일상 속에서 느끼는 그 사소한 감정들이 내 안에 차곡차곡 쌓여 결국 지금의 나를 만든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감정들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 걸까.


오늘은 아침 일찍, 어렵지 않게 눈을 떴다. 아들을 깨우기 전 집 안을 정리하고, 입고 나갈 옷을 미리 골라두고, 공복에 먹어야 할 영양제도 빠뜨리지 않고 챙겼다. 교회 갈 준비를 거의 마친 후에야 둘째를 깨웠다. 알람이 울려도 늘 “5분만 더”를 외치며 아이와 함께 일어나 나도 챙기고, 집도 챙기고, 아이도 챙겨야 했던 전쟁 같은 아침이 아니었다. 그래서 오늘 나의 감정의 시작은, 어느 때보다 차분했고 여유로웠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차분함의 바닥에는 분주함이 함께 깔려 있었다. 내일 새벽, 시범사업을 위한 기관 미팅을 위해 팀원들과 삼척으로 내려간다. 월요일, 화요일 일정. 하지만 내가 정말 분주한 이유는 그 일정 때문만은 아니었다. 수요일에 예정된 공개강의와 면접, 그 때문이었다. 지난 학기를 마치고 방학이 시작될 무렵, 오랜만에 교수 채용 사이트에 들어갔다. 몇 년간 정교수 공고는 아예 보지도 않았는데, 그날따라 우연히 한 공고가 눈에 들어왔다. 처음 들어보는 대학, 기독교 대학이었다.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끌림에 지원서를 쓰기 시작했다. 한동안 논문을 쓸 여력조차 없었지만, 다행히 작년 여름과 가을, 브랜드 관련 논문 두 편을 게재했고, 작년 초 진행했던 브랜딩 프로젝트가 해외 어워드를 수상하며 수상 경력도 한 줄 더할 수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용기를 냈다.


하지만 제출 마감일이 코앞이었다. 결국 마감 전날 밤에야 지원서를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뜻밖의 난관. 맥북으로는 학교 채용 시스템에서 지원서 작성이 되지 않았다. 결국 집에 있는 낡고 낡은 한성 컴퓨터를 켜고, 맥북에 있던 자료들을 하나하나 메일로 옮겨가며 마감 전날 새벽에 겨우 제출했다.


그리고 3주쯤 지나, 12월 말. 문자 한 통과 메일 한 통이 도착했다. “1차 통과를 축하드립니다.” 순간 멍해졌다.

서류를 통과했다는 사실이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2차 전문성 적격심사가 진행된다는 안내, 그리고 발표일은 1월 14일. 기대하지 않으려 애쓰면서도, 마음 한켠에서는 그 날짜를 계속 의식하게 되었다. 14일 당일, 무의식적으로 계속 시계를 봤다. 하지만 발표는 나지 않았다. 늦은 오후, 결재 지연으로 발표가 미뤄진다는 메시지 한 통. 다음 날 오전에도 소식은 없었다. 그리고 만 하루가 지난 늦은 오후. 동네 도서관에서 책 원고를 쓰고 있던 중, 다시 메시지가 왔다. “2차 통과를 축하드립니다.”


또다시 멍해졌다. 1차 통과는 경험해봤지만, 2차 통과는 처음이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공개강의를 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그제야 천천히 몸으로 내려왔다. 3차 전형은 삼척 일정을 마치고 바로 다음 날, 이번 주 수요일. 공개강의는 수요일이지만, 강의자료 제출은 내일 오후 3시까지다. 이런저런 일들이 겹치며 발표 자료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했다. 그래서 오늘 아침이 여유로웠음에도, 마음 한켠에는 조급함이 남아 있었다. 지금 나는 내일 오후까지의 마감을 앞두고, 스벅 한 자리에 앉아 있다.


섣부른 기대는 하고 싶지 않다. 다만, 나에게 주어진 이 기회 앞에서 최선을 다하고 싶은 마음이다. 짜증 섞인 분주함이나 조급함으로, 동시에 느끼고 있는 설렘과 기대를 망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지금의 감정을 기록한다. 3차를 통과하더라도 아직 4차가 남아 있고,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순간의 감정이 휘발되기 전에 붙잡아 두고 싶었다.


오늘을 기억하자. 최선을 다하고 싶다는 마음, 그로 인해 생겨난 이 미묘한 긴장감과 설렘을.



내 안의 한 줄

포기하지 않는 마음으로 오늘의 감정을 남긴다.


매일의 감정이, 나를 설명할 언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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