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에게 육아휴직이란?
나에게 육아휴직은 일석삼조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나면 꼭 한번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은 육아휴직이다. 2007년 1월에 결혼을 하면서 아내는 나에게 육아휴직을 보장해 주었다. 요즘도 남자가 육아휴직을 하는 비율이 매우 낮지만, 10년 전에는 아예 찾기 힘든 시절이었다. 남자인 내가 자신있게 육아휴직을 할 수 있었던 직업적 배경은 바로 내가 공무원이었다는 데 있다. 일반 회사에 비해 경력단절에 대한 걱정이나 휴직 후 내 책상이 온데간데 없이 사라질 위기에 처하지 않아도 되는 거의 유일한 직업군이었던 셈이다. 이런 배경을 가지고 있더라도 아이를 돌보는 일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면 육아휴직을 결정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리라. 하지만 당시 나에겐 육아에 대한 왠지 모를 강한 자신감이 철철 흐르고 있었다.
나는 어릴때부터 동생들을 돌보는 데 나름 자신이 있는 편이다. 안타깝게 친동생은 없었지만, 방학이면 시골 할머니댁으로 내려오는 어린 사촌 동생들을 돌보는 것을 좋아했다. 동생들을 데리고 다니며 여름엔 냇가에서 해지는 줄 모르고 물놀이를 했다. 겨울에는 칼바람을 맞으며 썰매를 타거나 불장난을 함께 했다. 작은 고모가 아프실 때 몇달 동안 함께 지낸 어린 동생들은 지금도 만나면 가끔 그 시절 추억을 이야기 한다. 농사일에 바쁘시던 부모님과 할머니는 이런 나를 칭찬해 주셨고 동생들도 나를 잘 따랐다(고 나의 뇌세포는 기억한다). 그래서인지 나이가 든 지금도 어린아이들이 나를 좋아할 것이라는 나름 근거 있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직장 때문에 서울에 올라와서는 주말에 바쁜 형과 형수를 대신해 나는 몇년 동안 조카를 전담하다시피 돌보기도 했다. 형수가 담임목사로 일하고 있는 교회에 매 주 출석하며, 형수가 설교하는 동안 젖먹이 조카에게 분유도 먹이고 똥 기저귀도 갈았다. 아예 몇 달 동안은 형수네 집에 기거하면서 조카를 돌보기도 했다. 열이 올라 아픈 조카를 위해 밤을 지새며 부채로 열을 식히고 해열제를 먹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당시엔 조카가 내 아들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애착이 컸고, 조카도 나를 잘 따랐다. 현재는 국가안보(?)를 책임지며 중학 시절을 보내고 있는 조카에게 요즘에도 내 말은 좀 씨알이 좀 먹힌다(고 생각한다). 암튼 능숙하게 기저귀를 가는 내 모습을 보며 많은 교우들은 내가 형수의 남편이자 '준희아빠'라고 생각했다 한다. 그것이 그리 기분 나쁘지 않았고 나에겐 칭찬으로 들렸다.
이런 경험을 통해 내가 알게 된 것은 육아(아이 돌보기)는 여러모로 남는 장사라는 점이다. 나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와 사회가 강요하는 남성스러움에 대해 별로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지 못해 자주 불화를 빚어왔다. 대학 시절에는 선배가 따라주는 술 받기를 한사코 거부해 분위기 깨는 이상한 후배가 되었고, 직장에서도 특히 권위적인 상사와 심한 갈등을 겪기도 했다. 학교 선배나 어른들이 강요(?)하는 이해되지 않은 행동에 대한 반감은 지금 역시도 크다. 그런데 어린아이를 돌보는 일은 달랐다. 어린 아이들은 나에게 강요하는 법이 없고, 반대로 조금만 노력하면 곧바로 나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돌려주었다. 또 주위의 사람들은 나에게 칭찬이라는 반응도 덤으로 주었다. 나에게 육아(아이 돌보기)는 권위적이고 꼰대같은 다른 남자(어른, 선배)들과 스스로를 분리하여 사회에서 나를 돋보이게 드러내 보이는 방법이었고, 주위로부터 칭찬받을 수 있는 도구였다. 이런 이점과 더불어 지겨운 직장을 공식적으로 쉴 수 있다는 이득까지 생각하면 육아+휴직은 나에게 일거삼득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발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