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강원동해안 자전거 여행2

해안사구가 잘 남아있는 동호해수욕장

by 도토리
즐거운 만남 뒤엔 허무함이
있다는 걸 아는 나이가 되었다

새벽까지 이어진 모임을 가진 다른 손님들에 비해 이른(?) 밤 11시에 잠을 청한 나는 아침 일찍 눈을 떴다. 아마 더 늦게 잠들었어도 아침 일찍 눈을 떳을 게다. 이 곳이 집이 아니라는 걸 몸과 마음이 알고 있었을테니. 토스트와 초당순두부로 아침을 챙겨먹고 8시쯤 홀로 자전거를 챙겨 게스트하우스를 나왔다. 만남은 화려했지만 떠날 땐 조용한 게 인생이 아니던가? 이젠 즐거운 만남 뒤에 이어지는 허무함을 아는 나이가 되었다. 가야 할 길이 정해져 있음에 안도하며 페달을 밟는다.


오늘은 강릉에서 속초까지 약 60km를 달려야 한다. 길고 시원하게 펼쳐진 모래해변과 이 곳에 사는 식물들을 관찰하는 것도 중요한 일정 중 하나다. 강릉에서 죽도 해수욕장까지 이르는 약 30여 km의 해안도로는 자전거길이 잘 정비되어 있어 안전하고 편안하게 여행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무거운 가방을 때문인지 등쪽 척추 일부가 살짝 돌출된 느낌이 들었고, 왼쪽 다리 오금의 통증도 계속 심해져서 오히려 다리에 힘이 더 들어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그래서 오늘은 최대한 천천히 달리고 중간 중간 많이 쉬었다. 연곡해변의 소나무 숲에서 발길을 멈추었고, 주문진 해수욕장에서도 간식을 먹는다는 핑계로 또 한참을 쉬었다. 다음엔 꼭 짐받이에 짐을 실어야 겠다며 매순간 다짐했다.



#01. 바위에 벌집같은 구멍이?


해안 도로를 달리다 보니 유난히 바위에 벌집처럼 구멍이 나 있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어제 금진해변 주변 해안도로의 경사진 퇴적암에서 벌집모양의 구조를 보았다. 오늘은 원포해변 근처 다리를 건너다 정자 주변에 돌 탑처럼 쌓여 있는 화강암과 그 화강암에 벌집 모양의 구멍들이 드러나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남애 1리 마을회관 앞 방파제 인근과 인구 해변 주위의 화강암에서도 이런 모습들이 관찰되었다. 지리학에서는 이것을 '타포니(tafoni)'이라고 부르는데, 주로 입자가 큰 사암이나 화강암 등의 암석이 여러가지 풍화 작용을 받아 만들어진 구멍(풍화혈)을 말한다. 특히 이곳은 바닷가 주변이라 염분의 영향을 많이 받는 곳이라 이런 현상이 많이 볼 수 있는 듯 하다.


이런 타포니를 대표적으로 많이 볼 수 있는 곳이 죽도 해변 주변이다. 죽도는 원래 섬이었는데 모래에 의해 연결된 곳이라고 한다. 이 곳에서는 타포니와 함께 평평한 암석의 표면 위에 접시 모양의 동그란 풍화혈을 볼 수 있었는데 이것을 '나마(gnamma)'라고 따로 부르기도 한다. 아무튼 이름을 몰라도 해안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이런 암석에 생긴 구멍들을 심심찮게 발견하게 된다.


#02. 동해해수욕장에서 '시에스타'를


죽도해변에서 동호해수욕장에 이르는 길은 자전거길이 좋지 못해 고생을 좀 했다. 해안을 따라가야 한다는 생각에 무조건 동쪽으로 갈라진 길을 타고 달렸는데 해안이 보이지 않아 당황했다. 결국 길은 통한다며 끈질기게 해안을 찾아 달리다, 허기져 더 이상 달리기 힘들다고 생각한 시점에 동호해수욕장이 눈 앞에 보였다. 게다가 해수욕장 맞은 편에 맛있는 막국수집을 발견하는 행운까지! 막국숫집에는 휴가철이나 주말이 아닌데도 점심을 먹기 위해 관공서 직원들이나 지역주민들이 많았다. 어디가나 관공서 직원들이 가는 곳은 맛집이 아니던가? 춘천에서 먹었던 막국수보다 더 향이 좋고 깔끔한 막국수를 게눈 감추듯 먹어치웠다. 식사 후 해수욕장에 설치된 나무그네에서 즐기는 나만의 '시에스타'는 자전거 여행자에게 주어진 꿀맛같은후식이었다. 배도 부르고 낮잠으로 에너지를 충전하고 나니 해변 풍경이 더 사랑스럽게 보인다.



#03. 모래해변 '사빈'과 모래언덕 '사구'


자동차나 자전거를 타고 강원 동해안을 달리다 보면 해안을 따라 넓고 긴 모래사장이 계속 나타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여름이면 모래해변은 해수욕장으로 이용되어 관광객들이 많이 방문한다. 이런 모래해변을 '사빈(sand beach)'이라고 부른다. 강원 동해안에 모래해변(사빈)이 많은 이유는 경사가 급한 태백산맥 동쪽 사면을 흘러내리는 하천이 가져 온 모래가 해류와 연안류에 의해 잔잔한 해안에 쌓인 데다가, 바다로 돌출된 '곶'의 바위들이 파도에 깨져 형성된 모래들도 많이 공급되기 때문이다. 또 해변의 모래가 바람에 날려가 쌓여 해안선과 나란한 모래언덕이 만들어지는데 이를 '해안사구(coastal dune)'라고 부른다. 사구 위에는 소나무가 심어져 있는 숲을 흔히 볼 수 있는데, 자연스럽게 자라난 숲이 아니라 주민들이 인공적으로 심어서 만든 숲이다. 소나무 숲은 해변 뒷쪽에 있는 농경지와 마을에 모래가 날아가 피해를 주는 것을 막아 주는 일종의 '방풍림' 역할을 한다. 해안사구는 태풍이나 해일 등으로부터 배후에 있는 마을을 지켜주는 자연적인 방파제 역할을 한다. 또한 지하수를 저장해 물을 공급하고 다양한 식생들의 안식처가 되는 등의 다양한 기능들이 오늘날 주목 받고 있기도 하다.

사빈과 사구의 모식도(환경부 자료)


#04. 사구가 잘 보호된 동호해수욕장


동호해수욕장은 이런 모래해변(사빈)과 모래언덕(해안사구)을 전형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곳이다. 2003년 환경부 보고서에 의하면 동해안에서 비교적 사구가 잘 보존된 곳 중 한 곳이란다. 특히 군부대의 철조망과 인공축조물을 따라서 전사구(1차 사구)가 형성되어 있으며, 전사구의 후면에는 사구저지와 2차 사구가 후면을 따라 평행하게 나타난다.


사구 위에는 여러 종류의 식물들이 뿌리내려 모래를 안정시키고 고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해변과 사구의 식생을 살펴보니 바다와 가장 가까운 곳에 먼저 나타나는 식물들은 외떡잎 식물인 사초과 식물들이다. '사초'는 말 그대로 '모래에 자라는 풀'이란 뜻인데, 꽃대가 많이 올라오지 않아 정확히 알기는 어려웠으나 일부 올라온 꽃대와 2003년 환경부 조사를 토대로 보면 좀보리사초나 통보리사초가 가장 많은 분포를 보이고 있다. 10여 걸음 정도 더 사구방향으로 걸어 올라가니 갯씀바귀, 갯메꽃, 갯완두 순으로 식생들이 나타나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다. 이런 차례로 식생이 나타나는 이유는 아마도 식물들이 염분, 바람, 수분 등 과의 관계로 인한 것으로 유추해 본다. 사구 식물들은 강한 바람, 모래의 퇴적과 침식, 염분 등의 열악한 생활 환경을 이겨내고 적응하기 위해 뿌리 줄기를 옆으로 길게 뻗는 경우가 많으며, 이로 인해 사구의 모래를 안정 및 고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대체로 잎은 가늘거나 두껍게 해 강한 햇빛과 바람 속에서 수분의 증발을 억제한다. 또한 해안 사구는 양분이 부족하고 염분이 많기 때문에 뿌리 줄기에 잔뿌리를 많이 내어 수분과 양분을 흡수하며, 갯완두와 같은 콩과 식물은 공기 중의 질소를 토양에 고정시켜 사구 식물들에게 질소질 양분을 공급한다.

동호해수욕장의 사빈(모래해변)과 전사구의 모습
사빈과 사구의 모래를 고정시키는 다양한 식물들


#05. 사라져 가는 모래와 사구


사구는 모래해변과 직접적으로 상호작용하면서 모래를 주고 받는다. 모래해변의 모래가 날아가 사구를 만들기도 하고, 바람의 방향이 바뀌면 사구의 모래가 다시 해변에 모래를 공급하는 식이다. 하지만 우리 나라의 해변과 해안사구는 지속적으로 파괴되고 있다. 특히 해안에 설치된 옹벽, 해안도로, 이를 따라 건설된 건물들이 해변의 모래와 사구와의 유기적인 모래 이동을 막고 있다. 또한 근래에 건설에 필요한 모래가 부족으로 바다 모래를 대규모로 이용하게 채취해 사용함을써 해안의 침식이 더욱 가속되고 있다. 해수욕장으로 개방된 동호해변 또한 해변과 사구 사이에 해안도로가 건설되어 사구와 해변 간의 상호 모래 교환이 단절되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 해안도로 뒤 2차 사구가 있는 소나무숲에는 펜션이나 숙박 시설이 건설되었다. 인간이 자연을 좀 더 가까이에서 소유하고 누리고자 하는 자본주의적 욕심으로 말미암아 해안 사구는 계속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2003년 환경부 보고서에 따르면 동호 해수욕장의 해안 사구가 비교적 잘 보존된 이유는 이를 보호하는 정책이 잘 이루어져서가 아니라, 군사 제한 구역으로 설정된 곳이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군사제한 구역이 오히려 그리운 아이러니!

도로를 만들기 위해 파괴는 사구의 모습과 제주도 해안의 모래 포집기


사구와 해변의 모래를 보호하기 위해 근래에 많이 사용하는 방법 중 하나는 모래 포집기를 설치하는 것이다. 해안과 평행하게 지그재그로 형태로 나무나 대나무를 이용해 만든 모래 포집기를 설치하여 사빈에서 날아가는 모래를 강제로 퇴적시키는 방법 중에 하나이다. 안면도의 서쪽에 위치한 기지포사구에는 2001년 모래포집기가 설치되면서 1년 후 60~80cm의 모래가 퇴적되었고, 다양한 사구성 동식물이 관찰되고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 해안 사구를 가장 잘 안정화 시키는 방법은 인간에 의한 인위적 간섭을 억제하기 개발의 바람 앞에서 지켜 주기 위해서는 되도록 많은 해안 사구를 보존지역으로 지정하는 방법이 가장 이상적이라 할 수 있다. 2011년 현재 국립공원 및 생태경관보전 지역 등으로 보존되는 지역이 약 40여개에 이른다고 한다. 하지만 굴업도에서 볼 수 있듯이 경제성이라는 논리 앞에 오늘날도 많은 해안 사구들이 계속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는 뉴스를 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06. 속초의 게스트하우스로


목표했던 동호 해수욕장을 둘러본 후 두번째 숙소가 있는 속초로 자전거를 밟는다. 쪼그려 앉아 식물들과 사구를 관찰하고 사진을 찍느라 정신없이 돌아 다닐때는 오히려 잠시 통증을 잊었었는데, 자전거를 타자마자 통증은 다시 살아났다. 에너지 총량의 법칙에 따라 에너지를 다 쓰고 마지막 힘을 짜내 숙소로 향했다. 양양 남대천을 지나 낙산 해수욕장에서 잠시 쉬며 이온 음료 한잔 마셨다. 힘들어 낙산사는 거들떠 보지도 않고 지나치고, 대포항을 뒤로하고 속초에 예약해 두었던 청초호 인근 게스트하우스를 향해 앞만 보고 달렸다.

강릉에서 신나는 첫번째 게스트하우스 체험 이후 두번째 게스트 하우스에 대한 기대가 컸다. 입구에 들어서자 깔끔한 외관과 티피텐트, 열린 거실과 깨끗한 화장실과 여러 시설들과 필요한 요소들에 제 위치에 정돈된 시스템은 그 기대를 더욱 키웠다. 결론부터 말하면 조용했지만 심심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옆자리 친구와 한 이야기는 "혼자 오셨나봐요?", "예"가 전부다. 애초부터 이 게스트하우스는 개인의 사생활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곳이라, 이곳에 온 손님들은 조용하게 남들에게 방해받지 않기를 바란다는 인상을 받았다. 의도치 않게 묵언수행을 하게 되었다. 강릉의 북적거렸던 게스트하우스와 분위기가 반 정도 섞었으면 더 없이 좋겠다는 생각이 나 같은 혼자놀기주의자에게도 들 정도다. 저녁 맛집으로 추천받았던 물횟집도 문을 닫아 헛탕치고, 라면과 김밥으로 저녁을 간단히 떼운 후 숙소 근처의 공방카페에서 평소 좋아하는 아이스 캬라멜마끼야또 한 잔으로 기분을 달랬다. 아무도 아는 사람없는 속초의 아기자기한 공방카페에서 분위기 잡고 청승떨고 있는 내 모습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했다. 새로 지어 깔끔하고 편리하지만 약간은 심심한 게스트하우스에서의 하루가 그렇게 지나간다.



< 관련정보 >


* 동호면옥

- 주소 : 강원도 양양군 손양면 동호리 153-3

- 전화번호 : 033-673-3366


* 인소(inn so) 게스트하우스

- 주소 : 강원도 속초시 조양동 선사로1길 28

- 전화번호 : 010-9937-6677

- 웹사이트 : http://innso.modoo.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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