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강원동해안 자전거 여행3

속초에 있는 청초호, 영랑호 둘러보기

by 도토리
속초에는 청초호와 영랑호가 있다


아침 6시쯤 일어나 오늘 일정과 짐을 정리한 후 주방에서 구운 식빵과 콘프레이크에 우유를 말아서 잘 넘어가지 않는 목구멍으로 대충 넣었다. 어쨌든 달려야 하니까. 아침에 일어나니 다리와 허리가 심상찮다. 허리와 등쪽에 통증이 심하고, 무거운 가방을 메서 그런지 이젠 어깨마저 아프다. 왼다리 오금은 여전히 통증이 있어 계단 오르내리기에도 불편하다. 자전거를 숙소에 맡겨 두고 여행할까 고민하다 가방 속의 짐을 먼저 해결하는게 나을 듯 해 일단 가까이에 있는 속초고속버스터미널로 향했다. 광명KTX역으로 가는 16:20분 버스를 예약한 뒤, 지갑, 사진기와 간단한 필기도구를 제외한 모든 짐을 물품 보관함에 쑤셔박아 두었다. 짐이 가벼워지니 훨씬 낫다.


오늘 일정은 속초에 있는 호수를 둘러 볼 작정이다. 엑스포공원에 있는 타워에 올라 청초호를 전망한 후 자전거를 타고 외곽에 있는 영랑호를 둘러보는 코스다. 영랑호에서 속초시내로 되돌아 오는 길에 드라마 촬영지과 아바이 순대로 유명한 아바이 마을에 들러 늦은 점심을 먹은 후 서울로 돌아갈 예정이다.



#01. 해안을 따라 발달한 호수 '석호'


여름철에 강원도 해수욕장으로 여행을 가기 위해 지도를 펼쳐보자.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면 해안을 따라 호수가 줄지어 있는 걸 알게 될 것이다. 강릉 경포해수욕장 뒤에 위치한 경포호가 있고 그 밖에도 양양의 포매호, 속초의 청초호, 영랑호, 그리고 고성의 송지호, 화진포 등의 호수가 해안을 따라 줄을 서고 있다.


그럼 왜 동해안을 따라 줄지어 호수가 나타나는 걸까? 원래 호수가 있는 곳은 오래 전에 육지쪽으로 쏙 들어간 작은 바다였다. 그런데 파도나 연안류로 인해 해변의 모래가 이동해 길게 쌓이면서 만의 입구를 막게 되었고, 바다와 분리된 호수가 된 것이다. 만의 입구를 막은 긴 모래톱을 '사주(bar)'라고 하며 '사주'가 입구를 막아 형성된 이런 호수를 '석호(lagoon)'라고 한다. 강원도 동해안은 화강암 분포 지역이 많고 경사가 급한 하천을 통해 모래의 공급이 풍부해 해안을 따라 모래해변이 발달해 있다. 따라서 '사주'와 '석호' 또한 흔히 볼 수 있다.

사주와 석호가 만들어지는 모식도


긴 모래톱(사주)으로 막혀 바다와 분리된 석호는 하천의 물이 유입되어 일반적인 바닷물보다 염도가 낮은 편이다. 담수의 유입이 증가하는 여름철에는 염도가 더 낮아지고 유입되는 물의 양이 적은 겨울, 봄과 같은 계절에는 염도가 상대적으로 높아진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르면 하천에서 흘러들어오는 퇴적물들이 호수에 쌓여 수심은 얕아지게 되고, 결국 석호는 사라지게 된다. 또한 주민들이 석호 주변의 얕은 곳을 간척해 농경지나 주택지로 이용하면서 호수의 규모가 감소하고 있다. 이처럼 호수 주변에 인간활동이 많아지면서 오염된 물이 유입되어 수질이 지속적으로 나빠지면서 환경부 차원에서 대책을 세워 대응하고 있다.



#02. 속초에는 '청초호'와 '영랑호'가 있다.


속초에는 청초호와 영랑호가 있다. 청초호를 가장 잘 조망하기 위해서는 엑스포공원에 위치해 있는 엑스포 타워에 올라가서 보면 좋다. 엑스포공원은 1999년 강원국제관광엑스포를 위해 조성된 공원이다. 아침 9시에 엑스포 타워에 도착하니 아무도 올라가는 사람이 없어 혼자 엘리베이터를 타고 전망대에 올랐다. 높은 곳에 오르니 속초 시내가 한눈에 시원하게 펼쳐진다. 속초 시내에 위치해서인지 청초호의 모습은 자연적인 석호의 모습을 찾기가 흠들고, 주민들과 관광객들을 위한 인공적인 유원지와 항구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만의 입구를 막은 긴 모래톱(사주) 위에는 도로와 다리가 연결되어 있었고, 다리 아래로 배들이 지나 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전망대에서는 설악산의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맑은 날씨지만 연무때문인지 시계가 좋지 않아 울산바위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어 아쉬웠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자전거를 타고 청초호를 한번 돌아본 후 영랑호로 향했다.



영랑호는 속초시 외곽에 위치하고 있어 청초호에 비해 상대적으로 석호의 자연스런 특징을 많이 볼 수 있었다. 2008년 대한지리학회지에 실린 윤순옥, 황상일 교수외 3명의 논문에 따르면 20세기 동안 영랑호의 면적은 16%정도 감소했으며, 자연적인 석호 형성 조건이 양호하여 잘 보존되어 있지만, 1990년대 이후 공원화로 인해 인공호수처럼 되어 호수 면적이 변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강릉의 경포호는 1960~70년대 경작지와 주택 수요 증가 등으로 인해 석호 '주변이 매립되면서 20세기 동안 가장 호수의 면적과 경관이 가장 큰 변화를 겪은 석호라고 하는데, 최근에 주변의 농경지를 매입하여 다시 습지로 바꾸는 작업이 일부 진행되었다고 한다.



상대적으로 도시에서 떨어져 위치해 있는 화진포, 향호 등은 비교적 석호의 보존 상태가 양호한 편이라고 한다. 시간과 체력적 여유가 더 있었다면 고성의 화진포와 송지호를 둘러볼 수 있었을텐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 다음을 기약할 수 밖에...



#03. 영랑호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화강암 지형


'영랑호'라는 이름은 신라의 화랑인 '영랑'이 이 호수를 발견했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에 근거하고 있다고 한다. 신라시대 화랑인 영랑과 친구들이 금강산에 수련한 후 금성(경주)에서 열리는 무술대회에 참가하러 가던 중에 영항호에 도착하게 되었단다. 그런데 호수가 너무 아름다워 그만 무술대회에 나가는 것 조차 잊었다는 전설이 전해내려오고 있다. 또한 영랑호에는 호랑이가 웅크리고 있는 모습을 닮았고 하여 '범바위'라 부르는 바위가 있는데 둥근 화강암 바위가 마치 탑처럼 쌓여 있는 모습이다. 이 범바위가 내가 꼭 보고 싶었던 지형이다.


탑 모양으로 쌓여 있는 지형은 화강암 지역에서 많이 발견된다. 화강암은 수직과 수평으로 블럭처럼 갈라진 틈이 많은 암석이다. 땅 속에 있던 화강암의 블럭처럼 갈라진 틈 사이로 지하수가 흐르게 되면, 틈 주변의 암석이 풍화되어 모서리가 둥근 바위를 만든다. 시간이 지나 화강암이 땅 위로 드러나면 블럭 모서리 주변의 풍화된 푸석푸석한 모래(새프롤라이트, saprolite)는 쉽게 제거되고, 풍화되지 않고 남아있는 둥근 형태의 돌(핵석, core stone)은 그 자리에 남게 된다. 이런 둥근 형태의 바위가 탑처럼 쌓인 지형을 '토르(tor)'라고 부르는데, 범바위가 바로 전형적인 지형이다.


자전거를 세워놓고 다른 관광객들을 따라 범바위에 올라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궁근 큰 바위 위에 위태롭게(?) 놓여져 있다. 둥근 바위의 크기는 어른키보다 훨씬 커서 여러 개의 둥근 바위 사이로 생긴 공간으로 사람이 통과할 수 있을 정도다. (약간 경사가 져 있어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로서는 살짝 긴장되긴 했지만, 앞서가는 여성분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오르는 모습을 보고 나도 긴장하지 않은 척 했다.) 둥근 바위(핵석) 아래에는 화강암이 풍화되어 만들어진 푸석푸석하고 입자가 큰 모래들(새프롤라이트)도 쉽게 관찰할 수 있었다. 범바위 정상에는 영랑호를 관찰할 수 있는 정자(영랑정)가 만들어져 있었지만, 높이가 낮고 나무들이 가려져 있어 전체적으로 조망하기는 조금 힘들었다. 하지만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한 숨 돌리기에는 충분했다.



#04. 실향민들 만든 아바이마을

영랑호를 둘러 본 후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아바이 마을로 향했다. 아바이 마을은 청초호를 막은 사주에 해당하는 곳에 위치해 있는 청호동 일대를 말한다. 한국전쟁 때 함경도 주민들이 피난왔다가 휴전 이후에도 남아서 만든 마을이라 한다. '아바이'라는 말은 '아저씨'라는 말의 함경도 방언이라고 한다. 지금도 실향민 2세들이 냉면, 아바이순대, 오징어순대 등 함경도 음식을 파는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가을동화, 1박 2일 등의 방송에 등장하면서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찾는 이들이 많았다. 아바이마을은 금강대교의 아래에 위치해 있으며, 다리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어 자전거를 타고도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나도 통오징어에 속을 채운 오징어 순대를 먹겠다고 1박 2일에 나온 집을 찾아가서 주문했는데 생각보다 맛있지가 않고 퍽퍽하다. 주인장이 힘겹게 먹고 있는 내가 딱해 보였는지 순대국물을 조금 내온다. 안타깝게도 그 순대국이 더 맛있다. 순대는 냉면이나 순대국의 사이드 메뉴로 먹는게 나을 듯하다. 방송에 나오는 맛집을 갔을 때의 기대감이 실망감으로 바뀌는 일은 너무 흔한 법! 인간에 대한 기대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쉽게 기대하고 쉽게 실망하고 분노하지 말아야 할 세상살이다. 식사를 마친 후 근처 작은 까페에서 아이스 카라멜마끼야또 한잔으로 여유를 부리며 버스 시간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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