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태백 철암역

석탄산업 호황기 모습을 볼 수 있는 곳

by 도토리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촬영지 태백 철암역


영화를 잘 찾아보지 않은 나에게 굳이 기억에 남는 영화가 뭐냐고 묻는다면 1999년 개봉한 '인정사정 볼 것 없다.'(감독 이명세)라고 말할 것이다. 평소 가벼워 보여 비호감이었던 배우 박중훈을 좋아하게 만든 영화이기도 하다. 박중훈은 극중에서 49계단 살인사건을 맡은 형사반장을 연기했다. 말은 적고 어줍지만 정이 많고 겁이 없는 베테랑 형사다. 늘 젊은 대학생 역할로만 나오던 장동건의 연기변신도 볼 만했다. 내가 뽑은 최고의 장면은 비가 억수같이 내리는 날, 범인 안성기와 형사 박중훈이 만나는 장면이다. 비지스(Bee Gees)의 'holiday'가 빗물처럼 배경음악으로 깔리고, 검은 얼굴을 한 두 명의 주인공이 서로 주먹을 날리는 장면은 압권이었다. 지금도 박중훈의 씩~ 웃는 마지막 연기가 생각이 난다. 배경이 되었던 철길이 깔린 어두컴컴한 분위기의 건물도 영화 흥행에 큰 몫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최근에야 그 장면이 촬영된 것이 바로 태백에 있는 '철암역'이란 걸 알게 되었을 때 꼭 한번 가보리라 마음먹었다.


#01. 최대 무연탄 생산지 태백

태백은 우리나라에서 석탄(무연탄)이 가장 많이 생산되는 곳이다. 고생대 후기에 이 곳은 호수나 얕은 바닷가였는데, 당시 육지에서 크게 번성했던 키가 큰 고사리, 소철 등의 식물들이 이곳에 대량으로 퇴적되어 석탄이 되었다. (전세계적으로 이 시기에 석탄이 많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이때를 '석탄기'라고 부른다.) 당시 얕은 바다였던 이 곳이 지금은 솟아 올라 높은 산줄기가 되었다. 태백의 석탄은 고생대 이후 오랫동안 땅속에 묻혀 있었기 때문에 탄소(C)의 함량이 매우 높고 다른 휘발성 불순물들이 적은 무연탄이다. '무연탄'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불순물이 적어 연기가 거의 없기 때문인데, 난방용 연탄을 만들거나 화력발전소의 연료로 사용된다.

우리나라에서
석탄을 가장 많이
생산하는 곳이
태백이다


우리나라 최대 무연탄 탄광인 장성광업소도 역시 태백에 있다. 몇 해 전에 MBC의 '무한도전'이라는 예능프로그램에서 유재석과 차승원이 석탄을 캐던 막장이 바로 이곳이다. 현재는 해수면보다 무려 425m 아래에서 석탄을 채굴하고 있는데, 채굴된 석탄은 수직으로 끌어올리는 수직갱도(수갱)이 설치되어 있다. 하지만 석탄이 계속 고갈되면서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다 보니, 해마다 여러 사고가 끊이지 않고 발생한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들려온다.

위 : 선탄장이 있는 철암역 / 아래(원쪽) : 장성광없 / 아래(오른쪽) 수직갱도


#02. 석탄을 선별하는 선탄장이 있는 철암역


장성광업소에서 채굴된 석탄은 철암역으로 운반된다. 철암역에는 무연탄과 폐석을 선별하고, 선별된 무연탄을 연탄 공장이나 발전소로 보내는 '선탄장'이 가동되고 있기 때문이다. 1935년 건립된 이 시설은 석탄 산업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는 근대문화유산의 가치를 인정받아 2002년에 등록문화제 21호로 지정되었다. 선탄장을 더 자세히 보고 싶어 맞은편 언덕에 있는 삼방동 마을을 올랐다. 건물 곳곳에 탄광촌과 관련된 벽화들을 볼 수 있었지만, 정작 사람은 흔적은 많지 않았다. 언덕 위 마을에서 본 선탄장의 검은 석탄이 마치 흑백사진을 보는 듯하다.

#03. 석탄산업 호황기를 보여주는 까치발 건물


철암역 맞은편에 석탄산업 호황기의 생활을 재현해 놓은 까치발 건물

철암역 맞은 편에는 금방 무너질 듯한 오래된 건물들이 그대로 방치된 듯 서있다. 구경하려고 거리를 걷는데, '페리카나 치킨'이고 쓰인 가게에서 왠 여성분이 나와 친절하게 말을 건낸다. 처음엔 치킨집 주인이 호객행위를 하려는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그곳은 진짜 치킨집이 아니라 관광안내소였다. 바로 그 여성분은 문화 해설사셨다. 태백시는 관광객을 위해 옛 광부들의 주거지였던 까치발 건물 11채를 복원해 '철암광산촌 역사관'을 개관하고, 광산촌 사람들의 생활사를 전시하고 있다. 오래된 이 건물들이 바로 작은 박물관인 셈이다. 까치발 건물은 석탄산업이 호황이던 1960~70년대 일자리를 찾기 위해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들어 주거공간이 부족해지자, 하천 바닥에 목재나 철재로 만든 지지대(까치발)을 세워 주거 공간을 넓힌 건물을 말한다. '봉화식당'이라는 간판을 내건 가게가 있는 것으로 보아 인접한 경북 북부지방에서도 사람들이 많이 이주해 온 듯 하다. 주변에 철암 시장이 있지만 인적이 드물고 문을 여는 가게도 드물다.


최근 V트레인, O트레인 등 백두대간 협곡 열차가 인기를 얻으면서 관광객들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오지였던 이곳을 방문하기도 옛날처럼 어렵지 않다. 여행하기 좋은 가을이다. 기차를 타고 태백으로 단풍 구경와도 좋을 듯하다. 그리고 태백에 오신다면 이곳도 꼭 방문해 보길 권한다. 비지스의 'holiday'를 들으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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