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는 살만한 곳인가?
조선 후기 대표적인 지리서를 꼽는다면 이중환이 쓴 ‘택리지(擇里志)’이다. 조선 전기 지리책들이 주로 왕실에 보고하기 위해 관원들이 조사한 내용을 정리해 나열해 놓은 것들인데 비해, 택리지는 조선 후기의 실학적 흐름에 영향을 받아 서술된 근대적 지리서로 평가받는다. 이 책에서 이중환은 인간이 거주하기 좋은 곳(마을)의 4가지 조건을 제시했는데, ‘지리’, ‘생리’, ‘산수’, ‘인심’이 그것이다. ‘지리(地理)’란 풍수지리상 명당을 의미하고, ‘생리(生利)’란 생활에 이익이 되는 경제활동에 유리한 곳을 말한다. ‘산수(山水)’란 자연환경이 아름다운 곳을 말하며, ‘인심(人心)’은 말 그대로 마을 주민들의 인심이 좋은 곳을 의미한다.
폭설로 연기되었던 마을 총회가 지난 월요일에 열렸다. 마을 회관 내부는 따뜻했다. 가끔 얼굴을 뵌 이장님과 공방 사장님, 그리고 마을 워크숍에서 보았던 감사님과 어색한 인사를 나누었다. 어느 모임과 비슷하게 뒷자리부터 자리가 찼고, 벽 쪽에는 허리가 아프신 마을 어르신들이 등을 기대고 앉아 계셨다. 부녀회에서 나누어 주는 차를 마다하고 함께 참여한 학부모들과 맨 앞쪽 구석에 옹기종기 자리를 잡았다. 남의 잔치에 참가한 듯 기가 죽고 어색한 느낌은 어쩔 도리가 없다. 아마 학부모들과 함께 하지 않았다면 참여할 엄두를 못 냈을 것이다. 학부모들이 마을 총회에 이렇게 많이 참여한 경우는 처음이라 한다. 사실 여기까지 오는 건 쉽지가 않았다.
사건이 발생한 건 설 명절 2주 전쯤이다. 가끔 매캐한 냄새가 나는 건 그저 마을 어르신들이 쓰레기를 태워서라고만 생각했었다. 학부모 단톡방에 마을 근처에 있는 ㅇㅇ산업의 실상을 알리는 사진이 올라오기 전까지는. 사진을 보고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한 학부모들은 읍사무소에 전화해 점검을 요구했지만 자기 관할이 아니니 시청에 연락하는 답변만 돌아왔다. 답답한 마음에 학부모 9명이 제주시청에 직접 민원을 제기하러 가려던 길에 확인차 현장을 먼저 방문했다. 사진으로 보던 것보다 더 심각한 상황에 차에 타고 있던 학부모들은 모두 경악했다. 비닐 쓰레기를 태우는 검은 연기와 숨쉬기 조차 힘든 매캐한 냄새로 잠시 동안 창문을 내리기가 겁났다. 결국 자동차에서 내리지도 못하고 창문만 빼꼼히 열어서 겨우 동영상을 촬영할 수밖에 있었다.
제주시청 환경지도과에 도착하니 공무원들이 긴장한다. 전화로 민원을 제기했을 땐 이리저리 돌리며 차일피일 미루더니 이렇게 떼거리로 찾아올 줄 몰랐는지 당황한 표정이 역력하다. 역시 우르르 몰려가는 것이 주효했다. 학부모들의 강경한 요구와 당일 아침 확보한 동영상을 보고는 결국 시청 공무원 5명이 바로 현장을 방문했다. 이장님께는 따로 전화를 드린 후 우리 차로 모시고 현장으로 갔다. 업체는 비닐 쓰레기를 이용해 플라스틱 원료를 생산하는 곳이었다. 산더미처럼 쌓인 비닐 쓰레기와 매연 속에서 스리랑카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들이 열악한 마스크 하나에 의지해 일을 하고 있었다. 엄마들은 매연이 너무 심해 밖에서 대기할 수밖에 없었고, 아빠들만 입을 가리고 공장으로 들어가 노동자들의 입과 코를 막고있는 허름한 마스크만큼이나 열악한 내부 시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치 1970~80년대로 되돌아간 듯한 모습이다. 이 업체는 집진장치와 저감장치를 가동하지 않은 채 영업을 하고 있었고, 비닐쓰레기도 무단으로 소각한 것이 확인되었다.
공장을 둘러보고 나니 ‘왜 서울을 떠나 이런 곳으로 이주했나’라는 허탈한 생각이 들었다. 풍수지리상 명당인지는 알 수 없지만, 공기 하나만은 최고라고 알려진 이곳에 집을 짓고 직장까지 그만두고 내려온 게 한심스러웠다. 나름 지리를 공부한 사람이 한 입지 선택이라고 하기엔 너무 어리석었다. 어떤 학부모는 어린 자녀들을 생각하며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이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는다면 다른 곳으로 이주하겠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도시생활의 척박함과 환경오염을 피해 제주로 이주했건만 이곳 또한 쓰레기와 난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오히려 인구가 많은 도심에서 쫓겨난 시설들이 힘없는 작은 마을들에 너나없이 몰려들고 있었다. 도시를 떠나는 것 만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었던 게다. 그저 잠시 눈을 감으려 했을 뿐이다. 제주 중산간은 이미 난개발의 최전선이 되어 있었고, 그것이 이제 나와 우리의 문제가 되었다.
이런 상황을 눈으로 직접 지켜본 학부모들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는 이 업체로부터 겨우 1km 남짓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어떤 이는 시청, 도청, 교육청에 이와 관련 해 여러 건의 민원을 넣었고, 누군가는 환경 기준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다. 관할 소방서에 열악한 업체의 소방시설 점검에 대해 따져 묻기도 했다. 졸업식에 참가한 도의원과 면담을 진행하고, 도의원을 통해 시청에서 보여 줄 수 없다던 서류도 받아냈다. 며칠 후 소집된 학부모 총회에서 학부모들은 곧바로 대책위원회를 꾸렸고 매일 감시단을 돌렸다. 누군가 곧 있을 마을 총회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자고 제안했고, 마을 행정의 중심인 개발위원회에 참가해 읍소하고 나서야 마을 총회 때 10분간의 시간을 약속받았다.
마을 총회에는 100여분의 주민들이 참여했고, 프레젠테이션은 예상외로 따뜻한 박수와 환호 속에 진행되었다. 하지만 총회에서 결정된 것은 아무것은 없었다. 오히려 마을에 더 심각한 사안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현재 우리 마을에는 ㅇㅇ산업뿐만 아니라 악취를 내뿜는 비료공장, 유류 저장소 그리고 크게 논란이 되었던 대기업이 주도하는 동물테마파크 등이 이미 들어섰거나 들어설 예정이다. 이장님과 개발위원회의 입장은 법리적으로 어쩔 도리가 없으니, 조금이나마 마을에 경제적으로 더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방향을 잡은 것 같다. 이와는 달리 총회에 참여한 대부분의 주민들은 이에 대해 반대한다. 하지만 어떻게 싸워야 할지 어떻게 반대해야 할지 몰라 속만 끓이고 있는 상황이다. 그 사이에서 갈등의 조짐들도 보였다.
우리 가족과 비슷하게 육지에서 제주도로 이주한 대다수의 학부모들은 택리지의 4가지 조건 중 ‘산수(山水)’가 가장 중요한 조건이었을 것이다. 제주 중산간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답답한 도시를 떠날 수 있는 하나의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기존에 터를 잡고 살고 있던 분들에게 가장 중요한 조건은 그저 먹고사는 ‘생리(生利)’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마을 총회를 다녀와서 그런 생각이 조금은 바뀌었다. 교만한 생각이었다. 대다수의 마을 주민들은 본능적으로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15일 영업정지를 받았던 ㅇㅇ산업은 설이 지나자 다시 영업을 재개한 상태다. 장기전이 될 전망이다. 이제 학부모들은 마을 안으로 한발짝 더 들어가려고 한다. 가칭 생태환경위원회를 만들어 줄 것을 마을에 요청하고 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로 했다. 사실 나는 이런 노력의 결과에 대해선 회의적이다. 경험으로 판단하건대 상대적으로 보수적이고 경직된 현재의 마을 조직 체계에 발을 맞추다 보면 지금보다 더 나은 결과를 얻기는 힘들 것이다. 오히려 문제 상황에 대처하는 기동력은 떨어질 것이며, 기존 마을 조직은 옥상옥이 될 것이다.
나는 시골 마을에 대한 막연한 환상 따윈 없다. 오히려 내가 기억하는 마을은 정겹고 인심이 좋아 서로 배려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도시보다 더 자본주의에 길들여져 돈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곳이다. 그럼에도 ‘아는 관계’라는 이유로 서로 눈감아 주던 곳! 젊은 시절 고향을 떠나 생면부지의 서울에 살면서 얼마나 자유로웠던가! 다시 마을이 있는 제주로 이주하면서 일부러 마을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기로 마음먹었고, 대부분의 다른 이주민들도 비슷한 생각이었을 것이다. 사실 괸당이라는 ‘문화’로 미화되지만 제주 마을 곳곳에서 이루어지는 노골적인 적대와 도를 넘는 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어이없을 때가 많다.
그럼에도 이제 마을 안으로 한걸음 더 다가가게 될 것 같다. 그렇게 결정한 가장 큰 이유는 함께 하는 이웃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 일을 통해 매일 일상의 안부를 묻고 소소한 밥과 술을 함께 나누며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이웃들이 찾아왔다. 닫아 두었던 서로의 따뜻한 마음, 곧 ‘인심(人心)’을 확인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 방법이 내가 사는 마을의 아름다운 ‘산수(山水)’를 지킬 수 있는 유력한 방법 중 하나일 거라고 가능성 때문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알고 싶지 않은 사실들도 알게 될 것이고, 기쁨뿐만 아니라 상처 또한 주고받겠지만 그것이 인생살이가 아닐까 한다. 그러다가 안되면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