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투쟁?

2025.05.02

by 도토리

잦은 비로 마당의 풀이 고사리마냥 쑥쑥 올라와 일주일 만에 또 예초기를 꺼내 들었다. 빠르게 회전하는 플라스틱 끈이 풀들의 목을 치자, 토끼풀이 점령했던 마당이 그래도 뭔가 잔디처럼 보인다. 예초하느라 땀이 난 김에 잔디 인형처럼 삐죽삐죽 올라온 내 머리카락도 전기 바리캉으로 시원하게 밀었다. 머리숱이 적어 20대 중반부터 한 달에 한 번 정도 집에서 스스로 머리를 밀고 있다. 스님들도 못하시는 일을 20년이 넘도록 하고 있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 이발하기 전에 세탁기에 빨래를 집어넣고 시작 버튼을 누른 뒤, 샤워 후에 세탁이 완료된 빨래들을 예쁘게 건조대에 널어 쨍한 햇빛에 내놓았다. 우리 집엔 건조기가 없어 해가 나면 무조건 빨래를 해야 한다. 건조대에서 이미 마른 수건과 옷가지들을 걷어 차곡차곡 개서 가족들의 방에 예쁘게 넣어 주었다.


뭔가를 유지한다는 건 어떤 물건이나 공간 등을 최초의 상태와 비슷하게 돌리는 작업이다. 그런데 이런 작업은 끊임없이 이루어져야 하고, 잠시라도 멈추면 금방 티가 난다. 누리는(?) 사람 입장에선 늘 같은 상태가 유지되는 게 너무나 당연하다고 인식한다. ‘변화 없음’을 유지하기 위한 발버둥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이들은, ‘어제와 오늘이 다른게 없어 보이는데, 뭐 큰 수고가 있었을까?’ 하고 잘못 판단하는 오류를 저지르기 쉽다.


굳이 내가 가사 노동의 어려움을 설파하고 생색을 내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지금과는 반대로 결혼 직후 10여 년 동안은 내가 직장을 다니고 아내는 집에서 살림을 했었다. 나름 아내를 ‘도와야’ 한다는 갸륵한 마음으로 퇴근 이후에는 설거지, 청소 등을 담당하겠다고 큰소리쳤다. 당시 아내는 아파트 친구들과 모임을 만들고, 음식도 만들어 먹으며 신나게 지냈다. 피곤한 몸으로 퇴근하면 집이 엉망이 되어있는 경우가 많았고, 뒷감당은 내 몫이 되기 일쑤였다.


어느 날 ‘나는 돈도 벌어 오는데, 퇴근 후에 집안일까지 해야 하는 건 불공평한 거 아니냐?’며 볼멘소리를 했더니 아내는 곧바로 정색을 했다. 당신은 말로만 페미니즘이니 뭐니 하면서 결국 태생적으로 남자이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차별받아 온 여성들의 삶에 대해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면서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와 가타리의 ‘되기’, ‘리좀’ 등등 거창하고 어려운 단어 등을 술술술 열거하며, 말로만 여성의 편이라고 주장하는 나의 위선을 준엄히 꾸짖었다. 또한 당신이 직장에서 돈을 번다면, 나 역시 가정을 유지하는 노동을 하고 있기에 당신 버는 돈의 절반은 내 몫이라며 당당히 선언하는 모습이 멋있었다. 당시 감명받았던 것 같다.


‘그래.. 맞아... 그렇지. 남자인 내가 느끼지 못한 우리나라 여성들이 받아온 사회적이고 근본적인 차별에 대해 고민하지 못했구나. 가사 일을 나의 일이라 생각하며 열심히 해야지’ 이런 류의 다짐을 하며 깊은 반성을 했던 것 같다. 퇴근 후에도 당연한 것이라 여기며 가사 일에 매진했더랬다.


이제 상황은 반대로 바뀌어 요즘은 아내가 직장을 다니고 내가 가사노동을 하고 있다. 당연히 아내도 예전의 나와 같은 생각일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내가 도맡아 하는 가사도 아내에게 존중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아내가 출근해 돈을 벌더라도 조금도 미안하지 않았다. 나도 당당히 가사 노동을 통해 함께 가정경제를 공동으로 유지하고 있는 거니까.


그런데 그렇게 철석같이 믿었던 아내가 태도를 바꾸었다. 자기는 피곤해서 도저히 예전에 나처럼 설거지는 못하겠다고 버텼다. 그때는 애들을 키우는 때라서 자기가 더 힘들었다고 억지를 부렸다. 내가 차린 저녁밥을 먹고선 곧바로 침대에 벌러덩 누워서 하루 종일 캐콘보다 재밌다는 정치 유튜브를 보며 화를 냈다가 웃었다가 한다.


아내의 자지러지는 웃음소리를 배경으로 저녁 설거지를 하고 있자니 슬슬 부아가 치민다.


역시 자신의 권리는 투쟁을 통해서만 얻어지는 건가?


두고 보자! 단겨얼~ 투쟁!


photo_006.jpg 예초기를 풀을 깎은 마당에서 우리집 냥이 소다가 한가로이 낮잠을 때리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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