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철새들로 숲은 활기가 넘친다. 흰눈썹황금새는 4월 중순에 미리 도착해 이미 짝을 찾았다. 요즘엔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우기 좋은 신혼집(나무 구멍)을 찾아 분주히 부동산 임장을 다니고 있다. 일찍 도착한 자의 특권이랄까? 남의 둥지에 자기 알을 맡기는 탁란으로 유명한 뻔뻔한 뻐꾸기와 두견이는 이틀 전에야 도착했다. 경험대로라면 며칠 후엔 멸종위기종인 긴꼬리딱새와 팔색조도 곶자왈에 도착할 것 같다.
2019년부터 마을 인근 숲에서 탐조활동을 해오고 있다. 국내 최대 리조트 기업이 우리 마을 코 앞에 ‘열대맹수사파리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난리를 쳐서, 말도 안 되는 개발사업을 막아보겠다고 멋모르고 멸종위기종 새들을 찾아 숲을 떠돌았다. 그렇게 시작한 활동을 7년째 계속하고 있다. 특히 5월에서 8월까지는 매주 한두 번 숲으로 가서 여름 철새들을 관찰하고 사진을 찍어 그 결과를 SNS에 올리고 있다.
탐조 활동을 위해 숲에 들 때면 그 계절의 숲의 색과 비슷한 색의 옷을 입는다. 겁 많은 새들을 놀라게 하지 않기 위해서다. 새들은 눈이 좋아 자외선 영역까지 볼 수 있다고 하니, 탐조 시에는 튀는 색의 옷을 입지 않는다. 최선을 다해 위장하고 숲에 든 내 모습이 새들에겐 어떻게 보일지 궁금하긴 하다. 게다가 곶자왈은 온통 현무암 바위들이 있는 곳이라 발목까지 감싸는 튼튼한 등산화가 필수다. 잘못 디뎠다가 돌이나 이끼를 밟고 미끄러지기 일쑤다. 우당탕탕 넘어져 새들에게 놀림을 당하지 않으려면 최대한 조심조심 걸어야 한다.
특히 멸종위기종인 긴꼬리딱새와 팔색조는 나무가 우거진 어두운 숲에서 번식을 하기 때문에, 술래에게 들키지 않으려면 머리카락이 별로 없는 나도 꼭꼭 숨어야 한다. 올해는 이 녀석들이 도착하기 전에 미리 위장막을 설치했다. 녀석들이 도착했을 때 원래부터 이 숲 속에 있었던 것이라고 인지하도록 해서 위장막에 대한 경계심을 낮추기 위해서다.
이렇게 겁 많고 예민한 녀석들이지만 막상 숲에 도착하면 ‘저기요! 나 여기 있다고!’라는 듯이 높은 나뭇가지 위에서 목청껏 소리를 지른다.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 녀석들은 보통 수컷인데 짝을 찾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할까? 화려한 깃털과 긴 꼬리를 가진 쪽도 역시 수컷인데 그래서 암컷보다 쉽게 눈에 띈다. 이런 큰 소리와 화려한 색은 천적에게 들킬 가능성을 높인다. 그럼에도 수컷들은 위험을 감수하고 짝을 찾는다. 천적에게 죽임을 당할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한 사랑이라니! 인간에게도 새들에게도 사랑은 역시 미치지 않고서야 설명되기 힘든 위험한 행동이다.
내가 대학생이던 1990년대쯤으로 기억된다. 외국의 어느 과학자가 인간(동물)의 사랑은 뇌에서 분비되는 호르몬 때문에 생기는 ‘화학현상’이라고 주장해 난리가 났었더랬다. 지금은 상식이 된 그 주장이 당시 사회에는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럴 리가 없으며 그래서는 안된다’고 성토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내가 느끼기엔 마치 다윈의 진화론을 대하듯 특히 종교인들의 반발이 심했던 것 같다. 이런 과정을 통해 당시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숭고한 사랑’이라는 환상과 낭만이 깨져나가는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근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사랑에 대한 환상은 애초부터 깨질 수가 없다. 왜냐하면 동물은 뇌에서 호르몬이 분비되는 걸 전혀 알아차릴 수 없으며, 단지 호르몬이 분비되면서 발생한 결과인 감정만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동물에게 중요한 건 인지할 수조차 없는 호르몬의 분비가 아니라 실제로 현존하는 감정(느낌)뿐이다.
장담하건대 사랑은 그저 화학작용임을 우리에게 계몽하려 했던 과학자들 중 몇몇은 분명 밤새 실험실에서 호르몬을 연구하다 서로 눈이 맞았을 것이고, 자신들조차도 옥시토신이 언제 분비되었는지 인지하지 못한 채 결국 사랑이라 불리는 낭만적인 감정에 풍덩 빠져 헤어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이론과 실제는 이렇게 다른 거구나 생각하면서. (아님 말고ㅎㅎ)
아무튼
바야흐로 사랑의 계절이다.
오늘도 제주 곶자왈에는 사랑과 낭만이 강물처럼 차고 흘러넘친다.
제주 곶자왈 숲에서 노오란 흰눈썹황금새 수컷이 둥지를 들락날락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