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한양도성 인왕산길

한양은 화강암 위에 건설된 도시다

by 도토리

지긋지긋한 미세먼지가 잠시 물러난 5월 어느날 인왕산에 올랐다. 한양도성길에 대해서는 2014년 육아휴직 때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조선시대 한양이 성곽도시였다는 이야기만 들었지만 그 길이 남아있으리라 생각하지 못했었다. 관심이 없었다는 말이 더 맞겠다. 서울에 사는 사람들이 오히려 63빌딩에 별로 호기심이 없고 한강 유람선을 타본 사람들이 별로 없듯이 말이다.


지난 휴직 때에는 한양도성길 1 ~ 3구간을 걸었는데 마지막 구간인 인왕산길은 결국 걷지 못했었다. 3년이 지나서야 이 길을 다시 걷게 되었다. 사실 이 길을 걷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경사가 급한 바위산이어서다. 예전 멋모르고 관악산을 등산 했을 때 급한 경사의 바위에서 줄을 잡고 달달 떨었던 안 좋은 기억이 있다. (뒤에서 아줌마 몇분이 얼른 가라고 다그치는 바람에 겨우 올라갈 수 있었다ㅜ.ㅜ) 한양도성길 3구간에 있는 북악산에서 바라본 인왕산은 큰 바위로 이루어져 있었고 경사가 무지 급해보였다. 두번째 이유는 북악산과 인왕산 모두 청와대를 둘러싸고 있는 산이어서 이를 지키는 군인(경찰?)들이 군데군데 매서운 눈초리를 하고 서 있어 약간의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 산길을 걸으며 이런 사람들을 만나는 기분은 썩 유쾌하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 5월 어쩔 수 없이 광화문 인근에서 7시간을 보내야하는 상황이 되자 남아있던 마지막 길이 숙제처럼 떠올랐다.


#1. 한양도성 인왕산구간 가는 방법

원래 인왕산이 있는 한양도성길 4구간은 숭례문에서 시작하지만 시끄럽고 흔적이 잘 남아있지 않은 도심 구간은 생략하기로 했다. 북악산, 인왕산, 남산 주변 등 접근하기 힘든 곳의 성벽은 비교적 잘 남아 있으나 도심이나 집들이 많이 들어선 곳은 흔적을 찾기가 힘들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강북삼성병원 앞에 있는 돈의문(서대문)터에서 출발해 서울시교육청을 지나 인왕산을 넘어 창의문(자하문)에 이르는 길을 택했다.

한양도성길 인왕산구간 : 돈의문터(강북삼성병원) - 인왕산정상 - 시인의 언덕 - 창의문


#2. 사라진 성벽의 흔적 찾기

서울시교육청을 지나 도성길을 따라 걷다 보면 여전히 여기에 성이 있었다는 흔적을 찾기 힘들다. 빌라와 다세대 건물 같은 주택들이 줄지어 서 있어 서울 외곽의 여느 주택가의 골목쯤으로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예전의 성곽의 흔적을 조금이나마 발견할 수 있다. 빌라 주차장 뒷벽에 성벽이 일부 드러나 있기도 하고, 성곽을 축대로 삼아 그 위에서 집을 지은 모습도 볼 수 있다. 한양의 성곽이 이처럼 크게 망가지게 된 가장 큰 계기는 일본의 침략 때문이라고 한다. 전차를 놓는다는 이유로 도심의 성곽을 허물어 뜨렸고, 조선신궁을 짓는다는 이유로 성벽이 사라졌다고 한다. 게다가 해방과 한국전쟁 이후 농촌 사람들이 서울로 급격히 모여드는 과정에서 우후죽순격으로 성벽을 허물어 집을 짓거나, 성곽 위에 집이 들어서며 훼손이 심화되었다.

빌라 주차장 뒷벽에 성벽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성곽을 축대삼아 지어진 오래된 건물

한양은 화강암 위에 건설되었다



#3. 화강암으로 만든 성벽

주택가를 지나 바람이 시원한 산길에 들어서면 성곽을 따라 군데군데 드러난 널찍한 바위를 볼 수 있는 이 암석이 바로 화강암이다. 화강암은 우리나라에서 편마암 다음으로 두번째로 많은 암석인며 전체 암석의 약 30%를 차지한다. 조선시대 한양과 성곾은 바로 이 화강암의 기반위에 만들어져 있다. 따라서 성곽을 쌓은 돌들도 일부(남산 일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화강암이 사용되었다. 서울의 화강암은 공룡들이 뛰어놀던 중생대(약 2억년 전)에 땅 속 깊은 곳에서 용암이 식어 형성된 암석이다. 회강암을 구성하는 주요 광물은 밝은 색을 띄는 장석과 석영이 대부분이고, 검은색의 운모 등이 1% 내외이다. 화강암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윳빛, 연한 핑크빛 또는 연한 회색을 띈 밝은 암석에 검은 운모가 주근깨처럼 콕콕 찍혀있는 모습이다. 땅속에서 천천히 식어서 만들어진 암석이기 때문에 입자가 상대적으로 커 눈으로도 쉽게 확인이 가능하다. (물론 돋보기를 이용하거나,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 확대해 보면 더 확실하다~^^) 화강암이 풍화된 토양은 굵은 모래처럼 알갱이가 큰 편인라 미끄러지기 쉬우니 경사진 길을 걸을 때 조심해야 한다.

<서울의 지질도 > 분홍색으로 표시된 서울도심, 북한산 주변, 관악산 주변이 화강암 분포지역이다. 참고로 갈색은 편마암 분포지역이다.
주위에서 흔한 화강암으로 축성된 성벽들, 축성된 시기에 따라 형태가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화강암이 풍화되어 만들어진 입자가 큰 조립질의 토양, 미끄러질 수 있으니 조심 !


#4. 화강암은 어떻게 땅위로 드러났을까?

약 2억년 전 땅 속 10km 아래에서 만들어진 화강암이 어떻게 지금은 땅위로 드러나게 되었을까? 학자들은 화강암 위에 덮여 있던 지표가 오랜 세월동안(약 2억년 가까이) 깍여나가면서 땅위로 드러나 큰 바위 봉우리를 가진 산들이 되었다고 본다. 1년에 0.1mm 침식이 된다고 가정하면 1억 년이면 10km가 깍여 나간 셈이 된다는 것이따. 또한 깊은 땅속에서 큰 압력을 받고 있던 화강암이 땅위로 드러나면서 압력이 감소하게 되어 부피가 팽창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바위들이 수직과 수평 방향으로 갈라지는 모습(절리)들을 볼 수 있다. 화강암으로 형성된 산지들은 큰 암반 하나가 봉우리를 이루고 있어 돌산(바위산)의 형태를 많이 띈다. 봉우리를 이루는 바위가 크고 경사가 급하기 때문에 흙이 많은 지리산 같은 산에 비해 나무들이 자라기 힘들고 계곡에는 물도 많지 않은 편이다. 북한산, 관악산, 북악산, 설악산, 금강산, 월악산 등의 돌산이 바로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산들이다. 눈치채셨겠지만 이 산들의 이름 가운데 '악(岳, 嶽)'이 들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산세가 험해 오르기 힘든 산을 의미한다.

< 북한산 화강암 생성과정 및 지표노출 과정 > 출처 : 한국과학창의재단 고등학교 과학


#5. 화강암 암반이 봉우리를 이룬 인왕산

인왕산 정상을 올라가는 군데군데 등산복을 입고 선글라스를 낀 무표정한 군인들이 지키고 있다. 시작하는 지점에서는 경사가 급하지 않더니 범바위를 지나고 인왕산에 가까워지면서 경사가 가파르다. 해발고도는 겨우 340미터이지만 나에게는 에베레스트로 보였다면 과장일까? 인왕산 정상부는 급경사의 큰 화강암 암반으로 되어 있고, 바위를 깨어 내 좁은 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후달거리는 다리를 위로하며 로프를 잡고 겨우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정상에 올라 널뛰는 심장을 겨우 진정시키고 나서야 한양 도성과 서울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경복궁을 기준으로 숭례문(남대문)까지 남북방향으로 이어지는 서울의 중심도로망이 보이고, 멀리 목멱산이라 불리던 남산과 남산타워도 보인다.

화강암의 암반이 드러나 나무가 별로 없는 인왕산의 모습
범바위를 올라가는 급경사의 계단, 화강암 암반을 깨서 계단을 만들었다
급경사의 계단 위에 있는 범바위 정상의 모습


#6. 인왕산 정상에서 바로 본 한양도성

인왕산은 풍수지리상 주산인 북악산(백악산) 오른쪽 우백호(右白虎)의 위치에 자리해 있다. 그런데 역사지리학자인 이현군씨의 책을 보면 한양을 도읍으로 결정한 이후에도 북악산으로 주산으로 할것인지, 인왕산을 주산으로 할 것이 논쟁이 있었다고 한다. 무학대사는 인왕산을, 정도전을 북악산(백악산)을 주산으로 삼자고 주장했는데, 결국 정도전의 의견이 받아들여져 경복궁은 북악산 남쪽에 들어전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는 것이다. 만약 무악대사의 의견대로 인왕산이 주산이 되었다면 어떤 모습일까? 경복궁은 인왕산 아래에 남쪽이 아니라 동쪽을 바라보게 지어졌을 것이며, 중심도로는 동서방향으로 그리고 종로와 시장은 남북방향으로 배치되었을지도 모른다.

<도성삼군분계지도> 조선 영조(英祖) 27년(1751년) 제작된 수도 한성의 지도
인왕산 정상에서 바라본 한양도성의 모습


#7. 간단한 점심과 여유로운 휴식

정상에서 창의문쪽으로 내려오는 길도 경사가 만만치 않으나 다행히 계단이 잘 되어 있어 무리없이 내려 올 수 있었다. 도중에 청와대가 보이는 쉼터에서 준비해온 점심과 물로 간단하게 허기를 달랜다. 박근혜씨가 탄핵되고 새롭게 당선이 된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와 지지가 높다. 2014년 박근혜씨가 대통령일때 북악산에서 청와대를 보고는 화를 냈었는데, 오늘은 왠지 친근한 느낌이 든다. 청와대가 보이는 벤치에 길게 누워 시원한 바람과 하늘을 보며 책을 읽는 기분이 새롭다.

점심으로 준비해간 유부초밥, 토마토, 물, 음료등을 먹었다
서울 도심을 바라보며 편안하게 책도 읽어본다



성곽을 따라 걷다보니 문득 성벽을 경계로 성밖과 성안이 철저하게 구분된 시대를 살아가던 조상들의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다수의 배제되고 가난한 백성들이 성밖에서 농사 짓고 물고기를 잡아, 성안에 살아가는 소수의 사대부와 권력자들을 먹여살리는 불합리한 구조! 성벽은 성안의 사람들만을 보호했을 뿐이고, 사대문은 오직 이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물자를 실어나르기 위한 구멍으로서만 그 역할을 하지 않았던가? 성벽은 사라졌고 신분제도 사라진 듯 하지만, 억압과 착취의 구조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듯 하다. 비정규직, 노동자, 농민이라는 생산의 주역들이 만들어낸 열매는 기업가, 유통업자, 금융자본가들이 고스란히 챙겨가는 구조가 지속되고 있다. 그나마 예전엔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구호나마 있어 농민을 위하는 척이라고 했고, 마을 공동체를 통한 최소한의 돌봄이라도 있었지만, 이젠 이마저도 남아있지 않고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시키고 있는 세상 아니던가! 오랫동안 지속된 불합리한 구조가 대통령 한 사람이 바뀌었다고 달라질 수 있을까? 또 예전처럼 흐지부지 그들과 적당히 타협해 버리고 마는 건 아닐까? 길을 따라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내려오다 보니 벌써 창의문에 다다랐다.




<참고 도서>

- 옛 지도를 들고 서울을 걷다 / 이현군 / 청어람미디어

- 서울성곽 걷기 여행 / 녹색연합 / 터치아트

- 한반도 자연사 기행 / 조홍섭 / 한겨레 출판


<참고 사이트>

- 위키백과 / 도성삼문분계지도

- 서울한양도성 / http://seoulcitywall.seoul.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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