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굴업도 백패킹1

해식와를 만날 수 있는 사연 많은 굴업도

by 도토리
백패킹의 성지,
사연 많은 굴업도

굴업도는 우리나라 백패킹의 성지이다. '백패킹'이란 텐트와 먹거리 등을 모두 배낭에 짊어지고 떠나는 캠핑을 말한다. 나를 포함하는 남자들의 로망이랄까? 바람이 살랑부는 아름다운 들판에 벌러덩 누워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보며 잠이 드는 상상만으로도 벌써 자연인이 된 듯하다. 백패킹으로 유명한 굴업도는 사실 사연이 많은 섬이다. 2000년대 초반 방사능폐기물처리장으로 지정되었다가 지질적인 이유로 취소되었으며, 그 후 C*라는 대기업이 섬의 대부분을 사들여 골프장을 지으려다 환경단체와 사람들의 반대로 유보되기도 했다. 그 후 조용했던 이 섬의 아름다운 자연 경관이 알려지면서 캠핑 족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단지 백패킹뿐만 아니라 지형적으로도 많은 의미를 지닌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더 아름답게 보이지 않을까?

인천광역시 옹진군에 있는 작은섬 굴업도
굴업도의 지형 및 안내도

이번 여행을 위해서 생각보다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먼저 백패킹을 위해 가벼운 1인용 텐트와 큰 등산용 배낭을 장만해야만 했다. 배를 2번이나 갈아타야 했기에 배시간과 날씨를 미리 확인하는 것 또한 필수였다. 주민들이 많지 않은 곳이라 도착해서 먹을 점심을 미리 예약 해야했고, 토끼섬을 돌아보기 위해 바닷물의 저조와 고조 시간을 확인해야 했다. 1박 2일동안 필요한 최소한의 먹거리와 준비물들을 나름 차곡차곡 정리해 넣었는데도 배낭의 무게는 훌쩍 12kg를 넘었다.


그보다 가장 큰 문제는 마음의 준비였다. 얼마 전 새벽 잠을 자다 호흡이 가빠지면서 숨을 쉬지 못해 죽을 것 같은 '과호흡 증상'이 발생해 응급실을 다녀와야만 했다. 그 후로도 잠 잘때나 버스, 지하철에서도 이런 경험을 하다보니 죽음에 대한 공포가 찾아오기도 했다. '배 아니면 텐트 안에서 갑자기 이런 상황이 발생한다면 어쩌지?'하는 걱정이 들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평생 내가 가지고 가야 할 업이니 피할 수만은 없다.'고 생각하고 여행을 감행했다.



#01. 굴업도로 가는 길


인천연안여객터미널에서 9시에 출발하는 쾌속선을 타고 덕적도에 10시 20분쯤 도착했고, 덕적도에서 11시 20분에 배를 갈아타고 굴업도에는 12시 20분쯤 도착했다. 배가 도착하자 선착장에서는 여러 대의 트럭과 경운기가 대기하고 있었는데, 미리 점심을 예약한 서인수 전 이장님의 파란색 포터를 타고 민박집에 도착해 점심을 먹었다. (식당이 없기 때문에 민박집에 미리 예약을 해야 점심을 먹을 수 있다.) 직접 채취한 고사리, 우뭇가사리묵, 양념게장과 물메기탕까지 준비해 주셔서 대접받는 느낌을 받으며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 요즘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개머리 언덕을 보기 위해 손님들이 많아 숙소 예약이 거의 다 찬다고 말씀하시니, 일단 개머리 능선에서 혼자 텐트를 치고 밤을 보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한시름 놓였다.



#02. 굴업도는 화산섬이다


굴업도는 중생대 말 화산폭발로 만들어진 화산섬이다. 그래서 화산이 폭발할 때 분출한 화산재를 포함한 여러 물질들이 퇴적되어 형성된 응회암과 그 속에 포획된 화강암, 유문암, 적색셰일 등의 암석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제주도나 울릉도와 같은 화산섬이긴 하지만 분화구, 용암동굴 같은 화산 지형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 이유는 비교적 최근인 신생대에 만들어진 제주도나 울릉도와는 달리 수억년 전 중생대에 형성된 후 오랫동안 침식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03. 토끼섬과 해식와


점심 식사 후 무거운 짐을 민박집에 맡겨두고 토끼섬으로 향했다. 토끼섬은 굴업도의 남쪽에 있는 작은 섬이다. 이 섬은 썰물 때에만 굴업도와 연결되기 때문에, 이곳에 가기 위해서는 국립해양 조사원의 홈페이지에서 저조와 고조 시간을 확인해야만 한다. 홈페이지에서 바닷물의 높이를 확인해 보니 오늘 수위가 제일 낮은 시간이 오후 2시 35분이라기에 점심 식사 후 제일 먼저 토끼섬을 방문하기로 한 것이다. 토끼섬은 한때 주민들이 토끼를 풀어놓아 키운 곳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이 섬의 동쪽는 120여 미터나 되는 '해식와'가 전형적으로 나타나 장관을 이루고 있다. '해식와(notch)'는 바다에 의해 침식되어 반달모양으로 깊이 파인 지형을 와지를 말하는데, 굴업도에서 내가 가장 보고싶었던 지형이다.


바다에 의해 침식되어 깊이 파인 와지인 '해식와'
사람키보다 더 많이 파인 해식와의 모습
해식와는 바닷물과 소금기가
만들어낸 작품이다.


건국대 지리학과 박종관 교수는 조석(밀물과 썰물) 및 파도에 의한 침식이 토끼섬의 '해식와'를 만든 중요한 요인이라는 견해를 드러내고 있다. 토끼섬에 발달된 '해식와'는 밀물 때 바닷물에 잠기고 썰물 때 드러나는데, 이러한 바닷물의 드나듦에 따른 풍화작용과 파도의 침식작용이 함께 영향을 미쳐 이와 같은 지형 발달을 가속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 황해상에서는 일반적으로 조류(밀물과 썰물)의 움직임이 해류의 흐름보다도 강하게 나타나고 있는데, 이때문에 '해식와'의 발달에도 조류의 영향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는 달리 관동대 지리교육과 이상영 교수는 소금기를 머금은 안개에 의한 풍화로 '해식와'가 형성되었다고 설명한다. 수심이 얕은 주변 바다와는 달리 이 섬의 동쪽 해저에 60~100m에 이르는 단층이 통과하고 있어 밀물과 썰물이 드나들 때 수온 차에 의해 안개가 하루에도 여러 차례 발생되는 '조석전선'이 형성된다고 한다. 전선 때문에 생긴 소금기를 머금은 안개가 암석을 풍화시키는 '염풍화(salt weathering)'로 인해 침식이 활발히 일어났다고 보고 있다. 특히 해안 전체가 동일한 암석인데도 불구하고 토끼섬의 서쪽 해안과는 달리 동쪽 해안에 '해식와'가 발달한 이유는 해저 지형(수심)의 차이와 이로 인한 국지적인 기상의 차이로 인해 동쪽은 상대적으로 저온 습윤하고 서쪽은 온난 건조한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복잡한 설명이지만 공통적으로는 바닷물과 소금기(염분)가 원인이라고 이해하면 될 듯하다.

굴업도 주변의 해저지형도, 굴업도 동쪽해안이 수심이 깊어 더 진한 푸른색으로 표시되고 있다


요렇게 신기하고 아름다운 토끼섬의 해식와는 학계의 노력으로 2010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예고 되기도 했었지만, 지방자치단체인 인천시의 개발논리에 때문에 결국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지 못했다 한다. 세계적으로 독특한 모양을 가지고 있어 지형학적으로 가치가 높고 아름답기까지 한 이 곳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04. 개머리 능선을 걷다


짐을 맡겨 두었던 민박집에 다시 들러 배낭을 둘러메고 오늘밤에 묵어야 할 개머리 언덕으로 가는 발걸음을 재촉한다. 개머리 언덕의 끝자락이 바로 백패킹 장소로 유명한 곳이다. 해안에서 가파른 언덕을 조금 올라가면 철조망과 C*의 사유지임을 알리는 경고문이 서 있지만 옆으로 통과할 수 있는 틈이 있어 누구나 쉽게 올라갈 수 있다. 경사진 언덕을 오르는데 서어나무처럼 나무들의 외피가 근육질처럼 되어 있는 나무들이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알고보니 '소사나무'라고 한다. 나무 아래에는 독초로 알려져 있는 천남성 군락들이 군데군데 보이고, 망개떡을 만들때 쓰이는 '청미래 덩굴'이 나무를 타고 올라가는 모습도 쉽게 볼수 있었다. 경사진 길을 몇 분 정도 오르면 나무들이 거의 없는 긴 능선이 나타나는데 키 큰 강아지 풀 같은 '수크령'이 갈대처럼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장관이다. 듣기로는 예전에 주민들어 이곳에 사슴을 키우기 위해 나무들을 벌목했고, 사슴 사육이 중단된 지금은 넓은 초지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 때 살아남은 사슴들을 개머리 언덕 주위에서 볼 수 있다.) 바람에 흔들리는 수크령 사이로 난 좁은 길을 따라 여행자들이 배낭을 메고 걸어가는 모습은 마치 유럽의 어느 언덕의 풍경을 연상케 한다. 군데 군데 군락을 이루고 피어난 노오란 '금방망이' 꽃은 바다와 잘 어울려 단조로운 풍경을 풍성하게 만들어 준다. 민속식물연구소 소장 송홍선씨에 따르면 금방망이는 산림청이 지정한 희귀의 취약종이라고 하며, 한반도에서 균일분포의 대규모 금방망이 군락지(약 50만 개체 집단)가 발견되기는 굴업도의 목초지가 처음이라고 한다. (2012년 5월 21일, 인천일보)

큰 강아지풀 같은 '수크령'이 우거진 개머리 능선
초원이 펼쳐진 개머리 능선을 걷는 백패커들
개머리 언덕에서 바라본 큰말 해수욕장
근육질의 소사나무와 노란색이 아름다운 금방망이 군락



#05. 개머리 언덕에서 잠들다


아름다운 길에 심취해서 30분 정도 걸으니 개머리 언덕의 '머리'쯤에 해당하는 곳에 도착했다. 민박집에서 점심을 함께 먹었던 한 분이 먼저 도착해 텐트를 쳐놓고 쉬고 계시는 걸 보니 괜히 마음이 편안해진다. 간단히 인사를 나눈 후 텐트를 겨우겨우 설치했다. 그 후 자유롭게 언덕 주위를 돌아다니며 사진도 찍고 바다와 지형들을 구경도 했다. 멀리 바위에서 사슴 몇 마리가 풀을 뜯으며 우리를 구경한다.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겨우 막아 코펠에 저녁밥을 지었다. 가지고 온 햄과 김치로 간단히 저녁 식사를 한 후, 엄기호 씨가 쓴 '단속사회'라는 책을 집어들어 해질 때까지 바위에 앉아 읽는 호사도 누려본다. 자기 편을 얻기 위해 욕먹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내 편이 아니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차단(단속)하고, 내 편이라고 생각되는 '취미의 공동체'와 'SNS'에 끊임없이 접속해 있으면서 자신을 희화화해 소비로 내모는 사회와 우리 자신에 대한 이야기이다. 환대보다는 예의바름으로 쉽게 선을 긋는 나, 그리고 그것을 강제하는 지금의 우리사회! 구름에 가려 해지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옆 텐트의 아저씨와 '예의바른' 인사와 이야기를 나눈다. 둘의 중간에 켜 놓았던 가스 렌턴을 끄고 나니 비로소 하늘의 별들이 서서히 제 모습을 드러낸다. 감동이다. 오랜 만에 어릴 때 친구들과 똥바가지로 부르던 북두칠성도 보고 마젤란도 보면서 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해본다. 하지만 바람이 너무 심하다. 텐트 안에서 랜턴을 켜고 책을 쓰고 있는 지금 텐트의 펄럭거림이 더 심하게 느껴진다.


드디어 도착한 개머리 언덕, 이미 텐트가 여럿 눈에 띈다
강한 바람때문에 나뭇가지들이 휘어 자라는 관목
소금기 머금은 바닷바람에 풍화된 절벽의 암석들
개머리 언덕에 친 내 작은 텐트




<관련정보>

@ 굴업도 서인수 이장님 연락처

- 휴대전화 : 011-715-3777

- 집전화 : 032-818-3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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