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에 바람이 너무 세게 불어 텐트가 펄럭거리는 소리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일어나니 주위는 이미 밝아졌고 해는 벌써 바다 위에 사뿐히 떠 올라와 있다. 저녁으로 먹다 남은 밥을 끓여 김치와 깻잎으로 대충 떼운 후, 옆 텐트 아저씨와 짐을 꾸려 8시쯤에 개머리 언덕을 떠나 능선을 다시 걸어 내려왔다. 어제와는 달리 맑고 화창한 날씨 때문인지, '이 길이 어제 우리가 걸어왔던 길인가?' 싶을 정도로 아름다워 계속 발걸음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뭐 물론 내가 좋아하지 않는 손가락 마디만큼 큰 메뚜기, 그보다 더 큰 사마귀, 뱀까지 있었지만 ㅜ.ㅜ) 풍경에 취해 사진을 찍느라 1시간이 넘게 걸려서야 마을로 내려올 수 있었다.
살모사로 보이는 뱀이 기어가고 있네요
엄지손가락보다 더 큰 무서운 메뚜기까지
#01. 마을 구경하기
굴업도에 살고 있는 10여 가구가 안되는 주민들은 주로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민박업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듯 하다. 해변 근처에 정리되어 있는 어구들을 보아하니 어업을 하시는 분들도 있는 듯 하나, 농사를 짓는 넓은 농경지는 찾을 수 없었다. 마을 입구 창고 벽면에 붙어있는 주민들의 우편함에는 보건소에서 넣어준 약봉지가 편지마냥 주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여느 촌락이 그렇듯 젊은이들이 떠난 이곳도 대부분의 주민들이 고령이신 듯 하다. 마을에서 사용하는 전기는 마을 가까운 곳에 설치된 태양광 발전소에 공급받고 있었고, 민박집에서 물을 쉽게 사용하는 걸 보니 지하수도 비교적 풍부해 식수는 그리 부족해 보이지 않았다. 개머리 언덕을 함께 내려 온 아저씨가 짐을 민박집에 두고 잠시 쉬는 동안, 둘러볼 곳이 많아 마음이 급했던 나는 배낭을 메고 언덕을 넘어 바로 목기미 해변으로 향했다.
마을 입구 창고 벽면에 설치된 우편함. 10가구의 우편함에는 약봉투가 편지마냥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10여 가구들만 살고있는 굴업리의 마을 풍경
마을에 전기를 공급하는 태양광 발전소
굴업리의 마을 풍경. 대부분 민박업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듯 하다
선착장 인근 해변에서 볼 수 있는 오래된 어구들
#02. 사구와 습지, 육계사주, 시아치
배를 타기 전까지 봐야 할 것들이 많다. 목기미 해변의 '사구'와 '육계사주', 코끼리 바위라 불리는 '시 아치' 그리고 붉은모래 해변의 사구와 그 뒤에 발달한 '사구습지'도 꼭 챙겨보고 싶었다. 먼저 해안에 나타나는 지형의 특징과 이름을 조금 알면 이 글을 읽기가 편하실 듯 하다. '사구'는 해변의 모래가 바람에 날려 쌓인 모래 언덕을 말하며, 사구 뒤쪽에는 '사구습지'가 발달하기도 한다. '사주'는 해변의 모래가 연안류를 따라 모래 기둥처럼 긴 형태로 쌓여 만들어진 지형인데, 육지와 섬(또는 섬과 섬)을 잇는 사주를 '육계사주'라고 부른다. 마지막으로 흔히 꼬끼리 바위로 불리는 '시 아치'는 파도에 의해 침식을 받아 형성된 아치 모양의 바위를 말한다.
모래해변(사빈)의 모래가 날려 언덕처럼 쌓여 형성된 사구(모래언덕)과 그 배후의 습지 모식도 (환경부 자료)
연안류의 흐름에 따라 해변의 모래가 만의 입구를 막기도 하며, 섬과 육지 또는 섬과 섬을 연결할 경우엔 '육계 사주'라고 부른다.
파도에 의해 침식되고 남은 암석이 꼬끼리 처럼 아치형태로 남아 있는 경우를 '시 아치'라고 부른다.
#03. 목기미 해변의 육계사주
모래로 만들어진 목기미 해변은 현재 10여 가구의 주민들이 살고 있는 '서섬'과 연평산(128m)과 덕물산(138.5m)이 있는 '동섬'을 연결하는 '육계사주'다. 두 섬을 잇는 사주(해변) 양쪽에는 바다가 있고, 모래톱 중간 중간에 예전 동섬으로 전기를 끌어가던 전신주들이 서 있다. 현재 동섬은 사람들이 살지 않고 폐가의 흔적들만 볼 수 있는데, 모래에 파뭍힌 전신주만이 얼마전까지 사람들이 살았음을 알려주고 있다. 해변의 오른쪽에는 약 30m 높이에 이르는 거대한 모래언덕이 만들어져 있는데 배 시간이 촉박해 멀리서만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다. 다음에 굴업도를 찾을 이유가 생긴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하며 발길을 연평산으로 옮겼다. 연평산을 오르는 길에 높은 위치에서 본 육계사주의 모습 자연의 신비를 보는 듯 멋지다. 목기미 해변의 북쪽에는 입구가 완전히 막히지 않았지만 석호 형태의 지형도 볼 수 있었다.
밀물이 들어왔을 때 '육계사주의 모습, 이 사주가 바로 목기미 해변이다.
물이 빠졌을 때의 목기비 해변, 건너편에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서섬이 이 육계사지를 통해 연결된다
동섬과 서섬을 연결하는 육계사주 위에 전기를 공급하는 전봇대가 설치되어 있다
전봇대의 아랫부분이 모래에 뭍혀 윗부분만 드러나 있다.
사람이 살던 동섬은 이제 옛날 가옥의 흔적들만 군데군데 남아있다
#04. 시아치의 전형, 꼬끼리 바위
결국 연평산 등반은 경사가 급하다는 핑계로 포기하고, 오르는 길에 봐 두었던 코끼리 바위쪽으로 발걸음을 급히 옮겼다. 바닷물에 의해 침식된 급경사의 절벽 앞에 침식되지 않고 남아있는 아치 형태의 지형을 '시 아치'라고 하는데, 바위의 모습이 코끼리를 닮았다고 하여 코끼리 바위라고 부른다. 바위는 회색 응회암 중간 중간에 붉은 암석들이 함께 섞여 있다. 코끼리 바위의 뒷쪽 경사면에는 예전에 농사를 지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계단식 농경지의 흔적도 볼 수 있었다.
연평산을 올라가다 바라본 전경
파도의 의해 침식된 후 바위가 코끼리 모양으로 남아 있는 '시 아치'
회색응회암과 붉은 셰일이 함께 엉켜있는 암석
#06. 붉은모래 해변의 사구와 습지
해안에서 올라와 반대편 능선을 바라보니 붉은 빛의 모래들이 해안을 이루고 있다. 이른바 '붉은모래 해변'이다. 연평산과 덕물산 사이에 있는 주머니 모양의 이 해변이 붉은 이유는 주변 암석이 주로 붉은 셰일과 철분이 많은 포획암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해변 모래들은 굴업도의 다른 곳의 모래보다 비교적 알갱이가 굵은 조립질이다. 해빈의 바로 뒤에는 사초과 식물들로 덮여 있는 약 10m 정도의 사구(모래 언덕)가 나타나며, 그 사구를 올라서면 뒷면에 바로 연못(사구 습지)이 만들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관동대 이상영 교수에 의하면 이곳은 담수여서 미꾸라지 등이 서식하며, 주민들은 예전에 이곳에서 미꾸라지를 잡아서 요리를 해먹었다고 한다. 사구 습지 주변에 계단식 농경지가 있는 것으로 보아, 예전에 마을에서는 이 물을 농업 용수로 이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붉은모래 해변과 사구, 그리고 배후에 있는 사구습지
붉은모래해변과 모래가 날려 언덕을 이룬 사구의 모습
붉은셰일의 풍화로 만들어진 붉은 모래
사구뒤에 형성된 사구습지, 담수(민물) 연못으로 뒤에 보이는 계단식농경지에 물을 공급한 것으로 보인다
사구습지 뒷편 언덕에서 바다쪽으로 바라본 모습
#07. 여행의 마무리
바쁜 걸음으로 둘러보고 내려오니 오전 11시쯤이다. 굴업도에서의 마지막 하루가 아쉽게 마무리되어야 할 시간이다. 내가 다시 이곳에 올 수 있을까? 괜한 생각을 해 본다. 목기미 해변의 모래 언덕(사구) 위에서는 누군가가 연주하는 첼로와 바이올린 소리가 바람을 타고 흐른다. 인간이 만들어 낸 악기 소리와 자연이 만들어 준 파도소리, 바람 소리, 그리고 따뜻한 햇살마저 어울어져 마치 꿈을 꾸는 듯 평화롭다.
모래언덕(사구)에서 바이올린과 플룻을 연주하는 음악가들과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
여행내내 나와함께 해 주었던 무거운 배낭과 스틱
이제 다시 배를 타고 돌아가야할 시간이다
돌아갈 배를 기다리며 배낭에서 빵과 물을 꺼내 모래밭 위에 앉아 간단히 점심을 먹었다. 먼 바다에서 간간히 대포 소리가 들려온다. 함정에서 훈련하는 소리일 것이다. 서해 바다의 긴장은 한 낮 굴업도의 평화와 어울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