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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미 Jul 01. 2023

유치원에 가기 전, 이 남자가 하는 일

아침 먹고 세수와 양치질을 한다. 머리를 감고 말린다. 옷을 입는다. 물통, 간식 통, 젓가락을 넣어 가방을 챙긴다. 유치원에 가기 위한 준비 과정이다. 머리만 감겨주면 나머지는 스스로 한다. 모든 준비를 끝낸 후 아이가 하는 일이 있다.


씻을 때 쓴 수건과 벗어놓은 내복은 세탁기 통에, 아침 먹은 것에서 쓰레기는 버리고 식기류는 개수대에 넣어두기.  청소기로 부스러기와 먼지 빨아들이기. 드라이기 정리하기. 어질러진 쿠션 소파 위에 가지런히 놓아두기. 삐뚤어진 매트 바로 펴기. 가지고 놀던 장난감 제자리에. 밤에 틀고 자느라 방으로 옮겨 둔 선풍기는 코드 뽑아서 거실에 가져다 두기. 마지막으로 마스크 챙기기.
머리만 감겨주고 나도 같이 나가느라 준비하는 동안 아이가 하는 일이다. 일곱 살 둘째가.


보통은 아이들 등원 후 폭탄 맞은 것처럼 어질러진 집을 보고 한숨을 푹푹 내쉬는 장면이 떠오르지 않던가. 우스갯소리로 하는 '등원 전쟁'이라는 말도 있을 정도니까.
우리 집은 마치 청소를 끝낸 것처럼 깨끗하다. 둘째 아이의 수고 덕분에.


매일 그렇게 하는 모습이 기특하고 대견해서 견딜 수 없던 어느 날. 아이를 살짝 불렀다.
"유치원 가기 전에 왜 집 깨끗하게 치우고 가?"
"음, 엄마 힘들까 봐."
"태어나줘서 고마워. 네가 엄마 아들이라 정말 좋아."
"엄마가 잘 키워줘서 고마워."
생각지도 못했다. 그런 말을 할 줄은.
'잘 키워주긴. 엄마가 한 게 뭐 있다고. 네가 알아서 잘 커주는 거지.'라는 말을 속으로 삼켰다. 울컥하는 마음도 함께.


"이제 그만 치워. 엄마가 이따 하면 돼."
"아니야. 엄마 힘들어서 안 돼."
한참 집을 정리한 후 "드디어 다했네."라며 자기 나름의 깊은숨을 내뱉는 아이를 돌아보니 콧잔등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다.
하루를 또 힘내서 살아야 할 이유가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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