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닻

제4장 _ 긍인(肯認) (Ⅱ)

by 노하윤

N군은 집중력이 부족하고 행동이 과하다는 점에서 H군과 유사했다. 이 아이는 H군보다 한 살이 어렸고 같은 학교에 다녔다. 내가 N군을 가르치기 시작한 건 초등학교를 진학하기 약 3개월 전이었다.
N군이 H군에 비해 두드러진 것은 공격성이었다. H군은 어른에게 공격적이지 않았다. 내 앞에서 비속어를 쓰거나 반감을 표출한 적도 없었다. 울분을 표출한 적은 제법 있었어도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화를 내며 반항하는 경우도 없었다. 그러나 N군은 명백히 공격적인 언사를 보일 때가 있었다. 심지어 아이의 어머니가 내게 체벌을 요청한 적도 있었다. 물론 난 단호히 거절했고 이유는 앞선 H군의 경우와 같았다.

교사와 함께하는 순간이 불쾌하면 아이는 표현을 멈추게 되고, 결국 생각을 정립하는 데 필요한 적절한 피드백을 받을 수 없게 된다. 방문교사와 일주일에 고작 한 번, 그것도 30분 남짓을 만나면서 그런 경험을 하게 되면 한 주 동안의 학습 의지마저 꺾이게 될 우려가 크다.

방문 학습지 교육의 한계는 명백하다. 교사는 아이와 지지고 볶으며 씨름할 여유가 없다. 아이에게 교사가 온화하고 편안한 손님이자 자신의 지지자가 아니라면 교육과정 전체가 아이에게 폄하될 여지가 크다. 따라서 학습효과의 최소한을 담보하는 기초는 아이 스스로 교사와의 시간이 그리 나쁘지 않다는 인상을 계속 간직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아이에게 맞춰준다는 뜻이 아니다. 교사는 아이에게 자신의 방문 이유, 함께 공부하는 합리성을 납득시켜야 한다. 아이가 교사의 목표에 공감하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그 목표를 공유하고 있다는 의식을 유지하는 게 필요했다. 그래야만 교사가 내리는 지시나 요구의 맥락이 아이에게 와닿기 때문이다.

N군의 가정환경은 H군보다 풍족했다. 부모님 내외는 모두 교육자였다. 거주하는 아파트도 넓고 쾌적했다. 그러나 아이의 불안정한 모습에 대해 양친은 제법 엄혹하게 대처했다. 아이 아버지의 훈육방식은 내가 직접 볼 수 없었으나 어머니가 하는 말을 통해 아이를 다루는 방식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체벌이 심한지는 모르겠으나 상당히 강압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은 분명했다.

N군이 나와 함께하는 시간을 아주 달가워하진 않았다. 그건 날 싫어했다기보다 공부를 싫어했기 때문이다. 나도 지나치게 압박하지 않은 채 학습량 조절에 힘썼다. 보통 이런 아이는 학습효과를 높이기 어려워 서비스 이탈이 높다. 그래서 나도 크게 기대하지 않고 매 순간 아이가 부담스럽지 않게 나와 있을 수 있도록 배려하는 데만 집중했다.

이 가정에선 아이 어머니와 대화할 일이 많았다. 그녀는 N군에 대한 걱정 때문에 늘 예민해 보였다. 하루는 N군이 학교에서 친구를 때리고 수업 때 소리를 질러 교사에게 호출을 받은 일을 호소했다. 그러면서 담임교사가 아이를 장애 아동으로 분류하려 한다며 불쾌감과 분노를 표출했다. 내가 그 문제에 완전히 공감할 수는 없었지만, 대개 그녀의 말을 끝까지 들었다.

공격적 과잉행동이 보인다는 점에서 H군의 경우보다 우려스러웠던 건 사실이다. 그러나 N군은 한 번도 교사인 나에게 선을 넘는 짓을 하지 않았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단지 부모에 대한 두려움 때문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아이의 수업 중 문제점을 아이 어머니에게 특별히 언급하지 않았고, 오히려 아이의 긍정적 측면을 합리적으로 어떻게 해석하고 다룰지를 많이 논의했기 때문이다. 만일 아이가 단순히 두려움에서 그랬다면 더욱 고압적인 학교의 분위기 속에서 그런 절제력을 보이지 않는 까닭을 설명하기 어렵다.

N군은 에너지가 많은 아이여서 한눈에도 잡생각이 많아 보였다. 그리고 그것을 스스로 통제하기도 어려워했다. 그런 상황에서 강압적인 훈육을 경험하면서 아이는 잦은 불안감을 경험한 것으로 보였다. 게다가 쉬이 전염되는 불안감의 특성상, 아이 어머니가 불안감과 예민함을 자주 표출하는 환경도 아이를 더욱 불안하고 예민해지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상황을 단정한 건 아니다. 난 그저 조심스레 아이와 가정의 분위기를 관찰하면서 그 기저를 찬찬히 상상해 보았을 뿐이다. 내가 할 일은 상황에 맞게 수업의 난이도와 분위기를 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N군은 그 어린 나이에도 내게 제법 진중한 마음을 자주 털어놨다. 간혹 학교에서 겪은 일을 은근히 언급하기도 했다. 아이는 또래들과 달리 학교에서 겪은 일을 구체적으로 말하는 법이 없었다. 마치 비밀을 전하듯 미묘했다. 그러면서 내게 어떤 게 옳은지를 확인하듯 묻곤 했다. ‘선생님, 이런저런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그럼 나는 눈치껏 아이의 상황을 스스로 헤아리도록 도와주었다.

한 번은 갑자기 공부하기 싫다면서 시작도 전부터 떼를 썼다. 베란다에 서서 시위하면서 수업을 거부했는데, 부모님을 호출할 수도 있었으나 그렇게 하진 않았다. 내게 부모님을 호출하는 경우란 오직 아이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수업을 감내하기 어려운 사정이 관측되는 경우뿐이었다. 아이가 수업을 거부하는 경우 그것이 아이의 신체적 혹은 심리적 장해로 인한 것이라 판명되는 경우인지 살피는 게 먼저였다.

난 N군에게 말했다. 안 좋은 일이 있었는지, 왜 성이 나 있는지, 그리고 마지막엔 이렇게 말했던 걸 기억한다. “네게 함부로 하지 않는 선생님에게 이렇게 하면 안 되지 않겠니? 어서 오너라.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여기 앉아서 하렴.” N 군은 말을 듣고 머뭇머뭇 자리로 돌아와서 별말이 없었다. 죄송하다는 말만 남기고 교재를 마저 풀었다.

어쩌면 이런 사례를 보고 내가 친밀함만 신경 썼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선생님이 친구 같아야 한다는 뜻이 절대 아니다. 오히려 선생님 권위의 본원이 무엇인지가 내겐 늘 화두였다. 훈련에는 규율이 필요하나 공부에는 자율이 중요하다. 그 아이가 내 말을 들은 까닭은 단지 내가 친밀해서가 아니다. 난 아이들과 수업 때 노닥거린 적도, 놀이를 가장한 적도 없었다. 농담을 던진 적은 여럿이지만 결국 수업을 위해 계산된 발언이었다. 수업은 결국 항상 진지했다.

돌이켜보면 몇몇을 제외하고 아이들은 대체로 수업에 협조적이었다. 그 이유를 가만히 생각해 보면, 첫째로 그 상황 자체가 아이들에게 불쾌하거나 버겁지 않았고, 둘째로 교사가 자신의 지지자, 지원자라는 인식이 있었으며, 셋째로 그 아이들이 보기에 교사의 요청과 태도가 합리적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합리성은 아이들의 시선이니 딱히 거창한 것은 아니었을 테고, 그저 그들이 보기에 수용할 만한 요구였다는 뜻이다.

요컨대 교육자의 권위는 해명될 수 있는 객관적 합리성에서 나온다. 선생이 혼자 노발대발하며 강조한다고 없는 권위가 생기지 않는다. 약속된 권위 같은 건 없기 때문이다. 그런 걸 뜬금없이 요구하는 권위주의로는 가르칠 수 없다. 역지사지(易地思之)가 안 되는 이가 선생 노릇해선 안 되는 이유다. 교육에 있어 권위주의는 반드시 실패하는데 늘 존재가 당위에 우선하기 때문이다.

상기 두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아주 명백하다. 폭력과 강압은 합당한 교육 방식으로 채택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애초에 비교육적이다. 아이에게 폭력과 강압을 행사해 봤자 얼마나 하겠는가? 아이를 패 죽이기라도 할 것인가? 난 이미 그런 교육을 겪어봤는데, 그 결과로 내게 남은 것은 어른들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과 증오뿐이었다. 그리고 내가 그 증오를 극복하기 전까지 그 대가는 주변 사람들이 고스란히 겪어야 했다. 그것은 교육을 가장한 학대의 결과다.

난 사람들이 솔직해졌으면 한다. 많은 사람들이 아이를 혐오한다. 아주 많은 이들이 그 불완전하고 교정되지 않은 무지를 경멸하면서도, 사회적 시선 탓에 비뚤어진 애착을 감추고 혐오를 내비치지 않는다. 그러나 당장에 익명성만 보장되면 온갖 막말을 퍼부으며 요즘 애들 운운하지 않는가? 그러면서 밖으로는 의젓한 어른 행세를 하며 자기 연민에 빠진다. 그 이중성의 의미는 자신에게서 자의 반 타의 반 줄곧 적출해 온 유치함과의 막연한 적대관계다.

나는 무엇을 안 하고자 했는가? 내가 고민한 역할은 오로지 아이들에게 건전한 예외가 되는 것뿐이었다. 열린 자세로 존재를 비추어 주고 나아가 자신이 필연적인 존재임을 못 박아 주는 존재. 세상의 풍파 속에서 자기를 정박하는 데 필요한 닻을 건네주는 어른이 되길 바랐을 뿐이다.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교육자는 자신의 권위와 의지를 관철하기 위해 아이들을 의식적이든 아니든 오류의 자리에 놓는다. 이는 곧 수치의 자리이며, 바로 그 자리 위에서 자기혐오라는 암 덩어리가 자라난다. 그리고 그 암은 쉬이 전이되지만 쉽게 뿌리 뽑히지 않는다. 그들을 세계에 부유하는 존재로 만드는 것은 교육이라는 주제를 떠나 온건한 타자의 역할에서도 벗어난다. 그렇게 발생한 곰팡이가 바로 우리들의 나쁜 이웃이다.

앞서 다소 극단적인 사례를 들기는 했지만, 멀쩡하고 착하게 공부 잘하는 경우라 해도 자기혐오의 그림자는 쉬이 드리울 수 있다. 자기혐오의 핵심은 결국 자신의 전부 또는 일부를 자의식의 범주에서 배제하거나 말소하려는 분열감에 시달리는 것이다. 따라서 현실에서 주체가 객관적으로 딱히 부족한 게 없다고 평가받는다는 사정은 자기혐오를 막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전부, 자아의 일체가 세계로부터 필연적으로 도출된다는 사실을 부정당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그건 순전히 자기해석의 문제이다.

예컨대 K군은 초등학교 1학년이 되던 해 초부터 내게 수업을 받았다. 이 아이는 밝고 활력 넘치는 부모로부터 사려 깊은 보살핌을 누렸다. 양친은 아이를 늘 긍정적으로 지지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경험을 시켜주고 좋은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는 여건도 확보하려 노력했다. 그러면서도 아이를 닦달하지 않았다. 사실 아이가 되레 지나치게 성급해서 문제였다.

K군은 스스로 아침 6시에 일어나 등교 전에 숙제를 끝낼 정도였다. 교사인 나를 포함해서 양친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런 일정에 힘쓰면서도 독서마저 꾸준히 하는 아이였다. 난 교사로서 이 아이에게 기대하는 바가 컸다. 열성적인 학생만큼 선생에게 어여쁜 존재가 또 어디 있겠는가? 게다가 질문도 많았다. 공부하면서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물론, 실생활에서도 이해가 안 되는 부분에 대해서까지 묻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내가 아이들을 강압하지 않는 까닭이 바로 그 때문이었으니 내심 뿌듯했다. 그런데 조금 우려되는 부분도 있었다.

이 아이는 간혹 수학 문제를 풀다가 이해되지 않을 때마다 제분에 못 이겨 울곤 했다. 나 또한 이해를 시켜주기 위해 애를 썼지만 쉽지 않을 때가 있었다. 이해시키기의 핵심은 상대방에게 직관적인 것이 무엇인지를 헤아리는 데 있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엔 경험의 간극이란 게 놓여있기 마련이다. 그러니 항상 이해시키기에 성공할 순 없는 노릇이다. 그럴 땐 어떻게든 아이를 교재에서 떼어놓으려 노력했다. 그러나 아이는 자신이 풀지 못한 문제에서 집착을 쉬이 놓지 못했다. 조금 쉬고 있으면 자연히 풀릴 것이라고 한참을 다독여야 했다.

사실 이런 경우도 일시적인 자기혐오의 예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앞서 말했듯 이 정서의 핵심은 자신의 전부나 일부에 대한 부정과 배제 및 말소 경향이기 때문이다. K군은 자신에 대한 주변의 기대를 항상 의식하고 있었다. 또한 자신이 그것 덕분에 사랑과 인정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아이의 부모님도, 선생인 나도 그 아이의 그런 점에 상관없이 사랑하고 인정했을 것임에도 아이는 그러한 진실을 쉬이 받아들이지 못했다. 아마 학교에서 사회적으로 학습된 반응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본인에 대한 과대평가와 자기 확신 때문에 K군은 자신의 부족함이 드러나는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한 것이다. 이를 통해 근거 없는 자기 확신도, 맥락 없이 이루어지는 자기애나 자기연민도 자기혐오를 예방하거나 극복하는 방법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와 대조적인 경우도 있다. 중학교 2학년인 P양은 양친이 중국인이었으나 어릴 때부터 줄곧 한국학교를 다녔다. 아이는 중학교 1학년을 반쯤 마친 무렵부터 나와 공부했는데, 전임 교사로부터 인수인계를 받던 시점부터 이미 숙제를 전혀 하지 않고 있었다. 한창 사춘기인 아이였기에 문답은 거의 하지 않았지만, 농담에 곧잘 웃는 밝은 아이였다.

P양은 딱히 언행이 불량하지도 않았고 교우관계가 나빠 보이지도 않았다. 표현이 활발한 편은 아니었는데, 이는 내 협소한 경험에서는 대개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이 보이는 특징이었다. 아마 가정에서와 사회생활에 쓰는 주요 언어가 달랐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 아이의 다른 특징은 만사가 태평한 성격이라는 점이다. 적어도 수업 때 특별히 예민하지도 않았는데 다만 듣기로는 어머니와 말을 잘 섞지 않는다고 들었다. 사실 사춘기 아이라면 으레 그럴 법하다. 그래도 강제하지 않는 게 내 원칙이었던 만큼 아이를 특별히 자극하지 않았다. 그저 매 수업 때 최선을 다할 수 있게만 지도했다. 그런데 하루는 아이 어머니로부터 희한한 부탁을 받았다. 아이가 너무 공부를 안 해서 도저히 어찌해 볼 수 없으니 혹시 아이를 제대로 훈계해 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사실 조금 웃기는 상황이다. 일개 학습지 교사에게 너무 큰 바람이 아닐까? 학교 담임교사도 못했을 일일 텐데 말이다. 그러나 굳이 수업을 하루 빼가면서까지 진지한 대화를 해달라는 요청까지 받았는데 마다할 명분도 없었다. 다만 고민은 깊었다. 아이 어머니는 전부터 아이와의 대화 단절을 고민하고 있었다. 하나뿐인 자녀에게 어른의 입장을 들려주고 싶었을 터이고 학업에 정진하길 설득하고 싶었을 것이다.

간혹 수업이 끝나고 아이의 어머니와 현관에서 현황을 나눌 때마다 어머니가 어눌한 한국어로 답할 때면 아이는 얼굴을 찌푸렸다. 난 아주 예의 없는 그 반응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고민했는데, 학교에서 한창 가치관을 형성하고 있을 나이라 그러려니 했다. 아이에게 내재한 문화적 표준이 한국이었던 탓에 어머니의 어눌한 한국말은 P양 자신의 정체성을 어지럽히는 부분이었을 수 있다.

그런데 이는 앞선 K군의 사례와 결이 조금 다르다. P양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만족하는 모양새였고, 굳이 주변, 특히 어른들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사실 아예 관심도 없어 보였는데 그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확인할 수 없으니 그러려니 할 도리밖에 없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어른들에게 이해받기를 이미 포기한 상태라는 점이었다.

아이와의 수업을 하루 포기하고 상담한 날이 생생하다. 난 그 아이에게 말을 시켜봤자 헛수고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니 지적하고 따져봐야 아무 소용도 없을 터였다. 어차피 중요한 것은 아이가 공부의 가치에 공감하게 만드는 일이었고, 그마저도 아이의 마음 상태에 따라 결과가 아주 다를 터였다. 난 그때 다룰 ‘공부’라는 주제를 반드시 학교의 표준 교육과정에 임하는 일로 한정할 필요가 없다고 정했다.

아이는 이미 어른들에게서 자신의 존재 의미를 수혈받지 않았다. 어른들이 중요하다고 백날 떠드는 게 P양에겐 무의미했다. 후회할 거라고 협박조로 이야기한들 소용없을 것이라 확신했는데, 내가 그런 일을 겪은 당사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온건한 한담이 오가는 편이 나았다. 난 약간 가볍게 물었다.

“오늘 하루는 서로 이야기나 한번 하자 … 그런데 넌 무얼 좋아하니? … 그림 그리는 거랑 패션에 관심이 많다고? … 선생님이 패션에 문외한인데 좀 설명해 줄래? … 이런 부분이 흥미롭네? 그런 지식을 친구들과도 공유하니? … 오, 네가 설명해 준다고? 그렇게 친구들에게 뽐낼 지식이 있다니 대단한걸! … 그런 공부를 계속한다면 앞으로도 뿌듯할 일이 많겠는데? … 운운” 대략 이런 이야기들이 오갔다.

갖은 농담으로 유쾌한 분위기를 이어갔던 모양이다. 아이는 다른 날보다 좀 더 많이 웃었다. 내 개인적인 이야기도 조금 곁들이니 점점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아이가 친구들 흉을 볼 때쯤엔 나도 제법 흥미진진하게 듣고 있었다. 그리고 슬슬 대화를 마칠 때가 왔다. 내 경험상 바로 그 순간이야말로 맹자의 조언을 명심해야 할 때이다. 내가 선생 노릇에 심취해서 독선에 빠져 조언하는 순간 대화는 단절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저 아이가 지식은 행복에 유용하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얻는 과정인 공부란 보람찬 일이라는 사실을 공감했다면 충분했다.

솔직히 이 글을 쓰는 지금은 그 아이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모른다. 나도 그 일을 관둔 지 제법 됐고, 개인적으로 연락을 한 적도 없기 때문이다. 다만 그 상담이 기분 좋게 끝난 후 집으로 돌아가던 중, 아이 어머니로부터 받은 전화가 기억에 남는다. 내용인즉, 오래간만에 아이와 대화를 하셨단다. 내게 들은 이야기를 자신에게 전해주었는데, 아이가 밝게 그런 이야기를 해주니 감동이었다는 소감이었다. 이제 P양의 어머니가 나설 차례가 되었다.

그 이후로 아이가 공부를 정말 열심히 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 변화는 애초에 나를 포함해서 그 누구의 것도 아니다. 내가 그랬듯 아이는 어른의 말 몇 마디로 변하지 않는다. 결국 스스로 변화시키는 것일 뿐이다. 어른들의 잔소리는 사실 책임을 다했다는 자의식의 발로일 뿐이다. 이는 비하하려는 게 아니다.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아이와 건설적인 관계를 맺을 수 없으리라는 뜻일 뿐이다. 아이가 몇 살이든, 타인은 타인이다.

P양은 높은 확률로 이민자 가정이라는 정체성이 자기부정의 이유였을지 모른다. 아이의 어머니는 그 사실에 관한 현실의 표상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아이가 그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재확인하는 과정을 통해 좀 더 건전한 자기 이해로 나아갔다고 생각한다. P양은 자신의 자아를 이루는 바깥, 즉 자기 자신에 표상하는 세계를 받아들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타인의 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