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닻

제4장 _ 긍인(肯認) (Ⅰ)

by 노하윤

중국 전국시대 유가(儒家)를 대표하는 사상가인 맹자(孟子)는 말했다. “(하여간) 사람들은 (남의) 선생 노릇하길 좋아해서 탈”이라고.

그런데 내게도 감히 아이들을 가르쳐 볼 기회가 있었다. 다만 가르치는 일을 좋아해서 시작한 건 아니었다. 건강 문제로 직장을 관두고 요양 중 우연히 학습지 교사를 하게 된 것이다. 처음엔 심심한데 용돈벌이나 하자는 심산이어서 맹자의 권고를 접어두었다.

맹자 본인도 정작 교육자였음을 생각하면 단순히 지적 허영과 독단을 경계해서 했던 말이 아니다. 아마 가르치는 일이 얼마나 까다로운지 개탄한 것일 테다. 그의 말은 분노와 냉소로 가르치던 어른들의 추억을 얽는다. 교단 위에만 서면 제 하고 싶은 말만 실컷 떠들다가 동태눈을 한 학생들을 경멸하듯 흘기던 교수들, 혹은 한눈을 판다고 대뜸 달려들어 학생 뺨을 갈기던 물리 선생을 떠오르게 한다. 그와 유사한 입장에 서면 내 밑바닥도 그렇게 드러날까? 애초에 대체 왜 그럴까? 그저 몇몇의 몰지각함일까?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을까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이해하지 못함을 걱정하라고 배웠다. 가르치는 일을 꼭 선생만 하는 건 아니다. 듣기로‘敎(가르칠 교)’란 지푸라기 몇 가닥을 걸어놓고(爻) 아이(子)에게 셈하기를 가르치는 모습을 그린 것이라 한다. 아이 옆에는 몽둥이를 든 어른의 손(攵)이 보인다. 그 갑골문 전거(典據)를 생각하면 ‘가르치기’에 관한 저 개념은 3천 년도 더 된 셈이다. 그러나 아주 구체적이고 생생하다. 한 번은 8살짜리 남자아이를 데리고 수학을 가르치는데 아이가 계속 딴소리를 하자 방에 있던 어머니가 튀어나와 아이 등짝을 매섭게 내리치는 게 아닌가?

그녀는 왜 자식의 등짝을 후려갈겼는가? H군은 입학을 앞두고 있었다. 직전 담당자로부터 인수인계를 받고 수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당시는 찬바람이 여전히 매섭던 1월 말이었다. 아이가 살던 집은 항구와 이웃한 오래된 아파트였는데, 겨울이면 들어설 때마다 피리 소리가 들렸다. 습한 겨울 바닷바람이 단지를 가르며 나는 소리였다.

방문 때마다 아이 어머니는 H군을 몰고 다니며 실랑이였다. 이미 5과목이나 하고 있던 H군은 매우 산만한 편이어서 습관을 기른다며 꾸역꾸역 학습량을 채우고 있었다. 나는 솔직히 고등학생들 수업시간에 해당하는 50분을 아이가 감당해야 할지 매번 의문이었다. 고작 8살 아이에게는 버겁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매번 떠나지 않았다.

교육영업직으로서는 이익이 되는 경우라지만 마음은 늘 편치 않았다. 난 결국 아이의 집중력 한계를 생각해서 정해진 분량을 해내기만 하면 수업을 마칠 수 있도록 어머니를 설득했다. 다행이지만 H군의 어머니는 흔쾌히 승낙했다. 사실 그녀도 H군의 산만함 때문에 과히 붙잡고 있을 수 없다고 인정한 게 아닐까 싶었다.

확실히 H군은 주의력결핍장애가 의심될 정도로 산만했다. 교재에 집중하거나 내 설명을 주의 깊게 듣는 일은 물론, 가만히 앉아 있는 것도 버거워했다. 수업을 시작한 초기엔 혼자 풀만한 수준의 교재를 주고서 말을 거의 하지 않았는데, 내가 무슨 말이든 할 때마다 자극을 받아 집중력이 흐트러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노력에도 아이는 수업 내내 다른 이야기를 하거나 실없는 장난을 치려 했다. 그 탓에 아이는 그 어머니에게 자주 호통을 들었다.

사교육의 영업이익은 아이의 불완전함을 드러내는 교사의 능력에 좌우된다. 아이의 부족함을 교육 서비스에 대한 수요로 연결하는 게 당해 영업의 기본 전략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솔직히 그 일에 있어 난 별로 소질이 없었다. 후술 하겠지만 내 눈엔 제자들이 죄다 온전해 보였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어린 시절의 나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차이와 결핍은 다르고 교육의 본질은 교정이 아닌 조율이라 생각했기에, 어떤 아이를 두고 함부로 모자라다 말할 수 없었던 것이다.

H군에겐 두 살이 어린 여동생이 있었다. 그 아이도 마찬가지로 내게 수업을 받았는데, 또래에 비해 영특하고 조숙해서 매우 방정(方正)했다. 수업 때만 되면 숙제와 필기구를 가지런히 정돈해 두고 정좌한 채 나를 맞았다. 그런데 그런 상황이 H군에겐 불리했다.

아이는 사사건건 비교당하는 일이 잦았다. 심지어 내가 보는 앞에서도 비교를 당하곤 했는데, 정말이지 그땐 부모의 마음을 이해해 보려 진지하게 노력해야 했다. 어머니는 대놓고 H군에게 동생을 본받으라고 면박하기도 했다. 아이의 얼굴에 수치심과 모욕감이 일었고 동생은 은근한 우월감에 취한 듯 보였다. 그런 일은 기본적으로 인격을 단일하고 단편적인 기준만으로 평가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정말이지 불편한 상황이다. 그 탓에 선생으로서 난 괜히 언행은 물론 표정까지 신경 써야 했다.

결국 성적 차이는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내가 아이들을 맡은 이후, 여동생은 수학에서 H군을 앞질러 버렸다. 나로서는 남매의 관계를 위해 억지로 수준을 낮출 수도 없으니 난감한 일이었다. 간혹 H군의 여동생이 대놓고 오빠를 가르치려고 들 때도 있었다.

그 가정은 그리 유복한 편이 아니었다. 아이의 부친은 제법 안정적인 직장을 다녔지만 넉넉한 편으로 보이진 않았다. 아이 어머니의 머릿속에는 학업성적과 긍정적 미래에 관한 막연한 연결에 젖은 빨래처럼 걸쳐진 기대가 있었을지 모른다. 보통 착한 아이와 순종적 아이는 거의 동의어다. 아이의 본성은 부모가 예정한 미래로 이행할 수 있도록 통제되어야만 한다. 아이의 자유의지란 그저 예측할 수 없는 장애 요소에 불과하다. 게다가 높은 확률로 나태와 방종으로 빠지게 만들 잡초일 뿐이다. 그러한 기대와 장애의 대립이 애증으로 실현된다. 단순한 부모는 아이의 본능을 뿌리 뽑아버릴 잡초처럼 여길지 모른다. 그들이 아이에게 속삭인다. “네 안에 내가 혐오하는 무언가가 있다. 그러니 내 말을 잘 듣고 그것을 없애버려라.” 점잖게는 극기복례(克己復禮)하라는 소리다.

그래서 체벌의 논리는 일종의 권위에 관한 신앙을 낳는다. H군의 어머니가 품은 기대 속에서는 아이가 어른의 권위를 끊임없이 의식해야만 한다. 그런데 전혀 현실감 없는 그 기대에 눈치 없는 아이가 순순히 따를 리 없으니, 충격과 공포를 일으키는 일들이 자꾸만 벌어진다.

그런데 아이들의 어머니는 자신이 기대한 것, 바라는 것을 이루기 위한 방식이 적당했다고 생각할까? 그녀 자신조차 즐겁지 않으면서도, 어떤 알 수 없는 힘이 솟구쳐 손이 나가고 목소리가 높아지는 걸 용인하는 걸까? 아니 애초에 적절하다고 판단할 역량이 있을까? 그저 아끼는 마음에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는 건 아닐까? 어쩌면 그 적정성에는 관심도 없을지 모른다. 다만 내가 확신한 것은 그녀가 과거로부터 흐른 어떤 게으름의 물살로 가해진 압력에 시달린다는 사실이다.

등짝을 맞은 아이는 조금 울다가 잘못했다고 연방 주억거린다. 그리고 곧 울음을 그치고 문제 풀이에 집중한다. 아이 어머니의 마음청소는 늘 그녀 주변으로만 이루어진다. 그녀는 자신이 아닌 아이의 마음을 청소하고 있다. 두 팔과 목소리로. 덕분에 손님이자 선생인 나는 무안해져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난 어떤 아이든 본격적인 수업에 들어가기에 앞서 하루에 관한 소감을 묻곤 했는데, H군이 그런 처지가 되니 더할 말이 없어져 버렸다. 그러니 그날 배울 내용을 개괄해 주기도 어렵고, 아이의 자연스러운 흥미를 유도하기도 어려워진다. 당혹스럽다. 아이는 당장은 어머니가 원하는 대로 ‘닥치고 조용히 짜져서’ 문제만 푸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이는 이제 연필을 쥐고 있는 시간의 의미에 새로운 포섭을 이루었다. 불안과 수치, 자기 검열이 들어가고 발견의 기쁨은 희미해진다.

그렇게 나는 일주일에 한 번뿐인 수업을 망쳐버린다. 그 시간을 불쾌감과 엮지 않으려고 했던 노력에 찬물을 끼얹다니. 그때로부터 아이는 침울함에 빠져서 맥락을 이해할 수 없는 체벌과 예측할 수 없는 분노에 주눅이 들고 말 것이다.

라스콜리니코프가 개심한 까닭은 그 자신의 죄에 걸맞은 벌을 받는다는 자기의식 덕분이다. 그는 운이 좋은 편이다. 자신의 행위와 그 결과의 필연성을 스스로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였으니. 그걸 깨닫고 달갑게 받아들이는 과정이야말로 벌(罰)이 정의를 실현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죄와 벌을 묶는 통찰이 일어나지 않을 때 둘은 각자의 길을 걸으며 멀어진다. 그렇게 억울한 죄인이 탄생하는 것이다.

비슷한 시기 내가 가르치던 다른 아이가 수업 중 대뜸 물었다. 그 아이는 조용한 사춘기를 보내는 13살이었다. “선생님, 공부는 왜 해야 하는 거예요?” 내가 답했다. “해야 하는 건 아냐. 하면 좋은 거지. 다만 너희 부모님은 널 공부시켜야만 해.” 당위의 짐이 실제로 누구에게 지워져 있는가에 대한 내 생각이 선생으로서는 어긋나 보인다는 걸 안다. 그러나 내가 아는 한, 양육할 의무가 아닌 배워야 할 의무가 규정된 법을 아무리 생각해도 떠올릴 수 없었다. “덕(德)을 쌓는 일이야 중요하지. 그렇다고 모든 중요한 일이 의무가 되는 건 아냐. 교양과 능력이 출중한 선한 시민이 된다면 너 자신은 물론, 주변도 풍요로워지지 않겠니? 그런데 안 한다고 벌 받을 일은 아니고.” 하지만 몽둥이를 들고(攵) 아이(子)에게 셈하기(爻)를 가르치는 부모의 마음은 시대를 초월할 만큼 두루 한 가지였다. 그래서 그 일반성과 일방성이 마치 법처럼 보이게 만든다. 어쩌면 암묵적으로 그런 약속이 존재한다고 해야 할까? 그렇다면 가르쳐야만 하는 나는 어떻게 해야 했을까?

H군에겐 어떤 것도 해명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일주일에 한 번뿐인 수업 시간이 불쾌감과 묶여버렸다. 그 불쾌감과 수치심은 선생인 내가 나간 후 한 주 내내 숙제할 때마다 아이 머릿속에 어른거릴 것이다. 결국 아이에게 공부는 수치의 굴레가 되고 만다. 그날로부터 H군은 매번 어머니가 바라는 모습을 애써 취하려고 분투하며 자연스러운 자신을 마음 한구석에 떼어놓을 것이다.

이 토끼는 살려고 뻔뻔함을 배운다. 그렇게 간을 보채는 용왕에게 집에 두고 왔다고 헛소리를 해댈 것인데, 근엄한 용왕은 굽실거리는 모습에 그만 흡족해져 버리고 만다. 그러니 그녀는 영영 토끼 간을 볼 일이 없다. 그게 알아서 배 밖으로 나들이라도 하겠는가? 이제 아이의 마음속엔 어제의 자신과 오늘의 자신 사이에, 안과 밖 사이에 넘을 수 없는 벽을 쌓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벽 뒤에서 간에 지방이 끼고 누렇게 뜨다가 결국 배 밖으로 튀어나올 만큼 커져서, 그 자신의 장기를 손상시키고 마음에서 뻗은 일상까지 어지럽히게 된다. 한 14살만 되어도 짧은 한숨과 욕지거리를 뱉으며 어제나 주변을 흘길 것이다.

아이는 그렇게 어머니의 너무도 즐거운 선생 노릇에 대해 배운다. 권능의 손바닥이 치고 간 자리의 얼얼함에 깜짝 놀랄 때마다 그것의 존재감을 남몰래 욕망한다. ‘오호라, 어른이 되면 저렇게 해도 된다는 말이지?’ 절대반지를 탐하는 일은 무릇 미묘한 순간부터 시작된다.

내 생각과 의지대로 무언가가 변한다는 건 얼마나 매력적인가? 게다가 저것이 나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다니, 이 유쾌한 자가 복제를 어떻게 끊을 수 있으랴? 힘과 의지로 누군가의 판도를 다 뒤집어엎은 뒤에 난 참 대단했다고 혼잣말하는 유치함이다. 그러고는 자신의 희생과 헌신에 어떤 감상에 젖어 ‘삶이란 참으로 의미 있는 것이구나. 내가 가르치고 길러서, 방황하고 태만하며 죄를 짓는 것을 올바르게 만들었구나.’라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고작 매질과 엄포로 그 위업을 달성하길 바라는 건 욕심이다. 물론 너무 바빠서 그랬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일은 끝이 없다. 허수아비에 색을 칠하고 그럴듯한 관절과 동력계를 붙인 뒤, 머리 부분에 컴퓨터를 심어서 스스로 움직이게 만든다. 그리고는 ‘나, 피그말리온이 해냈도다!’라 말한다. 결국 선생 노릇하기 좋아해서 탈이란 말은 주체로서의 의지가 누군가에게 관철되는 짜릿함, 권능이 존귀와 이익을 연역하는 일에 자신도 모르게 도취된다는 뜻이 아닐까? ‘아이야, 네가 내 걸작이 되길 바란다. 하지만 아니래도 솔직히 상관은 없다. 난 한풀이를 다 해버렸거든. 그래도 본전 찾을 때까지 난 멈추지 않을 거란다.’ 요컨대 선생 노릇을 좋아하는 것은 ‘주관 중독’이다.

그렇게 몸과 마음에 대한 매질은 반복된다. 아이는 커서 자신을 가르치고 기른 과정에 속한 모든 것에 대관절 어떻게 감사할 수 있을까? 아니, ‘감사함’ 자체를 느낄 수나 있을까? 자신을 초월할 수 없어서 매일 자기다움이 내는 소리에 시달리면서도 밖에서 “넌 도대체 왜 그 모양이냐?” 따위의 말에, “저도 몰라요. 그런데 어쩌라고요! 저도 이러고 싶은 줄 알아요?”라 일갈하고 싶을 터이다. 그래서 잠시 공부는 내려놓고서 멍하니 자신을 들여다볼 적마다, 바쁜 일상에서 고개를 돌려 잠깐 한숨을 돌리던 부모가 쌍심지를 켠 채 다가와, “뭐 하고 있느냐?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라 훈계하리라. 그렇게 ‘자기 자신’이라는 숙제는 죽기 직전에 병원에서 할 때까지 미뤄두게 될지 누가 아는가?

가만히 보면 통제 대상의 자기혐오는 지도자나 선생, 부모 등에게 아주 쓸모가 많다. 자기 다운 인간은 쓸모가 없고 말만 많을 뿐이다. 그것과 뭐 하러 피곤하게 갈등(葛藤) 해야 하는가? 그렇게 되면 내 말과 손짓, 발짓의 가치와 무게만 떨어질 텐데 말이다. 이제야 나이 좀 먹고 주인공처럼 말하고 소비하고 뒹굴며 살고 있는데 남들 주인공 만들어 주려고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단 말이다.

그런 식으로 주인공이 되는 일이 별로 내키진 않는다. 우선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 여린 것에 화를 쏟아내다가 필요 이상의 힘을 가할까 두려웠다. 단호함이 필요하다는 것에 그 누구보다 동의한다. 수업 시간이 되어 H군의 집을 방문하면 아이들이 달려와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하고는 좌식 책상에 달려가 앉았다. 아이들은 최선을 다했다.

아이 어머니의 언행을 종합해 보면 삶을 위해 자신을 쓸데없이 의식하길 포기하고서 희생이라는 이름 아래 사랑하려 노력하는 게 보였다. 그녀도 무언가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본인이 왜 자꾸만 이끌리고 경도되는지조차 모른 채 그리 살아왔을 것이다. 그 의문에 그럴듯한 답을 얻기엔 너무 늦어버린 것이라 생각했을지 모른다. 이젠 자신에게 관철할 의지가 있으나 지혜가 부족해서 꾸역꾸역 키워내야 할 과업만 남은 것이다. 자신을 가만히 내버려 두면 죄악이라 여겼을까? 그 버릇이 태도로 남았을까? 그래서 내 수업에 난입해서 제자에게 손찌검을 했는가?

H군의 어머니가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머리로 이해하지 못한 건 아니었다. 그녀에겐 생활의 여유가 적었고 사려도 부족했다.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 부족한 게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본래 부족한 식견에서 더 강한 아집이 나오기 마련이고, 어떤 것이든 여유가 없으면 불안해지고 비겁해지기 쉽다. 불안감은 사실 경제력과도 상관없다. 다른 사례를 통해 그 예를 보이겠지만 자신의 마음을 평화롭게 하는 것도 사랑하는 이를 지키는 방법임을 그들이 알지 못했을 뿐이다.

수업 때마다 H군은 자신이 손수 만든 찰흙 인형이나 장난감을 소개해 주곤 했다. 한 3분 정도 할애해서 들어주고 있으면 아이는 자신이 그걸 언제, 어디서 만들었는지, 무얼 만들었는지, 무엇으로 만들었고 어떻게 만들었는지 신나게 이야기했다. 그렇게 브리핑이 끝나면 나도 그날 수업 때 알아야 할 것을 말하고 숙제를 훑어보면서 일주일을 되짚어 주었다.

아이의 기억이 기대감과 해방감 속에서 되살아나면 마치 내게 선물하듯 조리 있게 포장된 채 전해진다. 작은 발표회에 내가 소감까지 얹으면 5분 정도 지나고, 아이는 연필을 다시금 손에 쥐고 전보다 집중해서 자신의 역사를 쓰기 시작한다. ‘거 나쁘지 않은데? 할 만하군!’ 그렇게 매일 해볼 만한 공부가 된다. 잘만 되면 조금씩 성장하며 칭얼대는 내면은 점점 잠잠해지고, 매질은 멈추고 일상은 살만한 것이 될 것이었다.

그런 순간들이 지나며 H군은 2학년이 되었다. 아이는 여전히 집중하기 힘들어했지만 비교적 안정돼 보였다. 침울함과 체념 속에서 자신을 억누르던 그는 이제 자기 안의 말 안 듣던 아이를 희망의 방에 보내놓고 앞에 놓인 문제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아이를 가르쳤던 내내 화낼 일이 전혀 없었다. 냉소하듯 질책할 필요도 없었다. 부모의 분노 덕을 본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어차피 아이는 커서 분노하고 증오하는, 잔뜩 찌푸린 세상과 계속 마주할 것이다. 따라서 이성(理性)의 모범을 보이는 일이 되레 중대해져 버렸을 뿐이다. 그 태도로부터 흘러나오는 말이 아이에게 합리적이라면, 그리고 아이가 자신의 부모를 적어도 소중하게 생각한다면, 분노는 부적절하다.

아이가 부모나 선생의 언행과 존재감을 기꺼워하는 까닭은 돈과 마음을 쓰는 그들을 아이가 중히 여기기 때문이다. 아이가 그러한 만큼 어른들도 그들의 존재에 연루되어 있다. 그저 부모나 선생이라는 천연의 권위가 아이에게 그 수업을 감내할 책임감을 느끼게 하는 게 아니다. 그러나 과연 언제까지 그렇게 여길지는 뭐, 어른들 하기 나름 아닐까?

작물이냐 잡초냐는 그것을 기르는 농부에게만 유의미하다. 자연계에선 무용(無用)한 당위적 구분이다. 사람들 사이에서도 같다. 권위와 서열의 구별은 그것에 대한 우리의 믿음 안에서만 유력해서, 그것만으로 누군가가 자기다움을 포기할 이유가 된다는 것은 어쩌면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그런 이유에서 아이가 내 앞에서 40분, 50분간 집중한 채 공부를 한다는 것은, 내 권위에 우선하는 존재에 가해지는 그 아이의 의지를 따라 일어나는 기적이다. 진짜 감사해야 할 이는 그러므로 내가 아닌가?

교육에 있어 선무당이란 잘못되거나 부족한 지식을 가진 경우만이 아니다. 오히려 지식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아주 확실히 선무당인데, 예컨대 아픈 사람에게 주사를 놓으면서 약제만 생각하고 혈관 찾는 일은 등한시하는 간호사와 같기 때문이다. 학습자를 이해하는 일은 지식을 늘리는 일 이상으로 중요하다. H군 같은 경우가 여럿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동안 단 한 번도 화내지 않았다. 아쉬움을 표명한 적은 제법 많았다. 숙제를 안 했거나 지나치게 장난을 치는 경우, 혹은 수업을 아주 거부하려 할 때는 개인적인 유감을 표현했다. 그렇다고 냉정하거나 단호하지 않았다는 건 아니다. 부모처럼 다양한 감정폭을 보여주며 교감해야 할 경우와 다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성(理性)으로 교류해야 할 관계에서 분노는 골칫거리다. 가르치는 사람은 거의 언제나 상대방의 불완전함을 추상적으로 전제하기 마련이라, 내가 실제로 지적할 수 있는 한계를 쉬이 넘어버린다. 그런 권한유월 때문에 분노의 남용이 일어나는 것이라 생각한다.

게다가 사람들은 종종 냉정함과 이성적인 것을 혼동한다. 정말로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감정을 적절히 표현하는 일에도 훨씬 능하기 마련이다. 교육자는 아이의 표현을 자연스럽게 끌어낼 수 있는 감정을 고려해야 한다. 그래서 오히려 부정적 감정이라도 슬픔이나 섭섭함 등은 적당히 표현하는 게 좋다.

당시에 그렇게 한 이유는 단순했는데, 그저 아이가 내 앞에서 입을 다물지 않길 바랐기 때문이다. 난 내 말을 잠자코 듣기만 하는 아이보다 말하는 아이를 선호했다. 외장을 뜯어보지 않고선 고장 난 곳을 알 수 없지 않겠는가? 그런데 상대방을 공포로 억압하게 하는 분노의 언행은 아이의 자연스러운 표현을 가로막는다. 더러는 그런 방식 때문에 아이가 함부로 말하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할 것이다. 그러나 난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늦든 빠르든 아이는 어른의 예법과 화법이 더 합리적이라는 걸 알게 될 것이고, 그때 준비되어야 할 건 단지 열린 마음뿐이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조건을 충족하는 일이야말로 어려운 일이다. 극히 미약한 폭력도 함부로 허용되어선 안 되는데, 왜냐하면 그것이 일단 본질적으로 폭력인 이상 아이가 그 상황을 배제할 수 있는 선택만을 합리적인 것으로 여기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선엔 한계가 없다. 따라서 아이는 막연한 위협도 회피하려고만 할 것이고, 결국 문제가 노정될 때까지 입을 다물 것이다. 나처럼 다쳤다고 뺨을 맞는다면 다친 사실을 언급하는 일 자체가 불합리해져 버린다. 그러나 설령 아버지가 화만 내었더라도 결과는 같았을 것이다. 강도가 아니라 상황의 형식이 문제기 때문이다.

H군은 그런 면에서 굉장한 악조건 속에 있는 셈이다. 그나마 아이가 특정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건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내 신분상 아이의 양육에 대해서 개입할 수 없는 노릇이었지만, 그래도 당시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은 다했다. 난 언제나 설득했다. 이유는 묻지 말라는 말 대신 우리가 왜 함께하고 있는지를 설명했다. 아이가 무엇이든 이유를 물어보면 가능한 선에서 충분히 답했다. 그 어떤 질문도 불허하거나 무시하지 않았으며 아이의 감정표현에 공감하는 일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당연한 일이지만 나와 있을 땐 절대 동생에 관해 말하지 않았다. 비교는 물론 언급 자체를 하지 않았는데, 만일 H군이 동생에 관해 물을 땐 가치평가로 보이는 언급을 피했다. 그러면서 H군이 자신의 강점을 스스로 인식할 수 있는 피드백을 계속했다. 아이가 부적절한 언행을 보일 땐 그저 단호하게 그게 부적절하다고 설명했을 뿐이다. 아이가 자신의 감정에 냉정해질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주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분노와 공포를 교육의 도구로 쓰는 건 위험하다. 특히 만성적 수치심을 안기는 방식은 장래의 인격을 말살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훈련과 교육을 혼동하면서 저런 도구를 쓰려고 하는데, 이는 아이들에게 기술을 습득시키는 과정과 인품을 함양하는 과정을 뒤섞기 때문이다. 만일 말을 가려서 하는 사람을 만들고 싶다면 그 첫 단추는 잘 말하게 하는 것인데, 이는 질문을 잘하는 아이를 만드는 전제이다. 질문이란 그 아이의 수많은 표현 중 하나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 어떤 표현도 주눅이 들어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아이가 질문을 잘하고 적절히 표현할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적절히 선택하는 아이를 기르려면 먼저 적절한 선택지부터 줘야 한다.

H군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가끔 문제를 일으키곤 했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싸우거나 수업 때 과한 언행으로 물의를 범했다는 이야기가 아이 어머니를 통해 들려왔다. 그럴수록 난 원칙을 철저히 고수할 수밖에 없다. 수치심을 자극하는 것을 피하고, 아이가 자기 행위의 이유에 대해 객관적이고 냉철한 해석을 듣도록 했다. 그렇게 자기다움의 충동에 다르게 반응할 선택지를 주는 데 임했다.

나는 아이를 일주일에 한 번밖에 만날 수 없었다. 그래서 되도록 나와 공부하는 그 시간이 아이에게 부담스럽지 않고 불쾌하지 않도록 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 굳이 즐거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행히 그런 방식은 H군이 나와의 시간을 유익하고 편안하게 여기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오히려 주변에서 아이를 엄하게 훈육하려고 할수록 내 일이 되레 편해졌다. 일종의 심리적 병목현상이다. H군은 날 실망시키지 않는 게 본인에게도 최선이라고 여겼을지 모른다.

물론 이상적인 상황은 전혀 아니었다. H군은 여전히 자신에게 억압적이고 적대적인 환경에 노출되어 있었다. 아이에게 세계의 이유를 해석해 주고, 지지해 주는 사람이 적다는 것은 좋은 현상이 아니다. 그래서 종종 학부모 상담 때마다 교사인 내가 아이에게 어떠한 입장과 태도를 견지하는지,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일이 불가피했다. 다행히 내 방식은 유지될 수 있었다. 게다가 결과적으로 아이의 수준도 향상되고 있었다. 고무적이게도 아이의 학업 수준이 또래 아이들의 통상 범주에 진입했고, 수업 중 아이의 과잉행동도 상당히 완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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