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닻

제4장 _ 긍인(肯認) (Ⅲ)

by 노하윤

G양은 막 초등학교 3학년이 되던 무렵 나와 처음 만났다. 아이는 또래보다 말이 어눌하고 표현이 서툴렀는데 아이 어머니께 듣기로 언어치료를 받는 중이라 했다. 아이도 그런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면이 엿보였다. 그리고 그 탓인지 몰라도 학교생활에 적응하기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이의 어머니는 평소 잔걱정이 많은 예민한 성격으로, 아이 때문에 학교에 갈 적마다 한껏 날카로워져 있었다.

G양은 초기에 수업 시간인 30분도 집중하기 어려워했다. 늘 쉽게 지치고 공부를 따라가지 못했다. 아이는 숙제할 때마다 모친에게 자주 야단을 맞는 듯했다. 오죽하면 한 번은 아이로부터 자신에 관해 아무 말도 안 해줄 수 없겠냐는 부탁도 들었다.

그때도 난 원칙대로 했다. 아이에게 공감하되, 상황을 설명해 주며 내가 어떻게 협조해 줄 수 있는지만 이야기했다. 아이는 날 잘 믿었고 내 조언을 귀담아들었다. 아이는 나와 있을 때 유독 말이 아주 많았는데, 아이의 사정에 비추어보면 다소 이례적이었다.

G양의 질문은 점점 늘어갔다. 아이는 교재를 푸는 내내 거의 쉬지 않고 말했다. 그런데 오히려 교재를 푸는 속도는 점점 더 빨라졌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며 가족들과 있었던 일까지 별 이야기를 다 들을 수 있었다. 심지어 자신의 어머니가 겪은 고부갈등이며, 학교에서 자신을 놀리는 친구에 대한 험악한 험담까지 들을 수 있었다.

난 수업에 특별히 방해되는 경우만 아니면 대부분의 표현을 허용했다. 다만 아이의 표현마다 내 피드백이 더해져, 마치 만담을 나누는 것처럼 되는 경우도 많았다. 물론 규범적인 당부도 잊지 않았다. 예컨대 G양을 놀린다는 친구 또한 내 제자였기에 진솔한 조언을 얹지 않을 수 없었다. “S 말이구나? 그래. 걔가 좀 직설적인 편이지? 선생님도 잘 안단다. 너무 지나치면 선생님 말대로 해보렴.” 그러고는 몇 가지 현실적인 방안을 이야기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친구인 S양을 만나서 G양과의 일을 들을 때마다 마찬가지로 우회적인 조언이 곁들인다. 다만 누군가의 편을 들지는 않았다. 그냥 법에 관한 재밌는 이야기를 했을 뿐이다.

G양은 자신의 어눌한 말솜씨가 부끄러워 교재 음독을 거부했다. 나로선 본래 회사 방침을 따라 저학년 국어 교재 풀이 시 음독을 시켜야 했지만, 그때만큼은 아이의 입장을 수용했던 것 같다. 수업이 아예 안 되는 것보단 나았기 때문이다. 할 수 없이 눈으로 최대한 빨리 읽고, 나와 지문 내용에 관해 문답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처음엔 굉장히 우려스러웠다. 그러나 아이는 그 뒤로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는지 더 쉽게 읽었다. 독해력도 양호했다.

G양은 의외로 흥미로운 기질을 가진 아이였다. 표현이 서툴 뿐, 생각도 둔한 편은 아니었고 눈치도 빨랐다. 어른인 내 입장을 헤아릴 줄도 알았고 내가 조리 있게 설명하는 만큼 알아듣는 아이였다. 감성적인 면이 두드러졌지만 차분하고 자제력이 있었다. 특히 자제력만큼은 수업을 시작한 초기와 달리 상당히 강해져서, 1년쯤 지난 시점에는 50분간 집중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학업 수준도 친구들을 따라잡기 시작하면서 말미엔 전형적인 모범생이 되어 있었다.

G양은 자기혐오의 굴레에 빠지기 쉬운 상황에 놓여있었다. 어눌한 말투와 쭈뼛거리는 태도가 워낙 두드러져서 주변의 걱정거리와 놀림거리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이의 어머니는 아이의 당찬 동생보다 G양을 엄하게 대했다. 그렇게 아이는 자신보다 3살이나 어린 여동생과 비교를 당하곤 했다.

물론 그 여동생이 당찬 건 사실이었다. 마찬가지로 내게 수업을 받던 동생은 G양처럼 지나치게 주눅 든 모습으로 임하는 경우가 없었다. 오히려 지나칠 만큼 활발하고 자신감 넘쳐서 장시간 학습하기 어려웠다. 그렇지만 여러 측면을 두루 고려할 때 G양 주변의 경솔한 언행에 동조할 수 없다.

G양은 비록 소심하긴 했지만 그만큼 신중하고 선량했다. 아이의 진중함은 어른의 그것보다 더 가치 있다. 나아가 문제를 끈기 있게 들여다볼 줄 아는 특유의 고집도 있었기에, 자신을 긍정하고 신뢰할 줄만 알게 되면 제 몫을 다할 것으로 여겼다. 실제로도 그 아이는 마지막까지 날 실망시키지 않았다.

사람은 성장하면서 내외의 변화를 겪지만 그 안과 밖이 같은 속도로 변하지는 않는다. 또한 사람마다 그것을 느끼는 계기나 정도도 같지 않다. 아이들에게 그러한 변화는 자기 자신을 버겁게 만드는 감각일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얼핏 비협조적이고 반항적인 것으로 보이는 이유도 그 버거움을 빼고 생각할 수 없다. 그들은 마치 전혀 다른 재료를 억지로 붙여 만든 활과 같다. 그래서 그 재료를 붙이고 있던 풀이 떨어지면 웬만해선 다시 붙이기 어렵다.

존중받지 못하고 무시되는 사춘기는 아이의 내면을 쪼개놓는다. 이 시기야말로 아이가 자기 내부의 분열감을 진지하게 다루어봐야 할 때이지만, 주변에서 망각을 요구하며 통제하려 들 때마다 그 자기해석의 기회는 사라진다. 이는 세상의 얼개가 강요하는 선택지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복종할 것인가? 아니면 막장을 기어 다닐 것인가?’

여전히 대체 그런 게 왜 중요하냐고 반문할 어른들이야말로 실은 그 얼개의 피해자다. 자신은 어린 시절 그런 존중을 받지 않고도 잘 살았는데 뭐가 문제냐고 말할 때마다, 그들은 남몰래 자기 안의 어린 피해자를 흘깃거린다. 실은 누구나 현재의 우리보다 더 나은 사람을 키워내야만 희망이 있다는 걸 뻔히 알고 있다. 그러나 자신의 그 칙칙한 그림자 밑에서 아이 또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학업이나 사회생활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예컨대 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들었다면 자신에 관해 숙고하는 과정을 지지하고 지원하는 게 아이의 내면을 단단하게 만드는 데 좋다는 뜻이다. 그게 어렵다면 최소한 방해는 하지 않는 게 좋다. 아이들이 여유를 가지고 자기 본위에 이르도록 배려받았으면 한다. 그들이 왕자나 공주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뜻도 아니다. 그보다는 자아의 투쟁에 쓸 갑주를 입히고 그 여린 손에 무기를 들려주자. 그 엄중한 순간을 무시하면 아이 본인만 대가를 치르는 게 아니다.

처음에 M군은 누가 봐도 막 사춘기에 접어든 12살이었다. 전임자로부터 인수인계를 받을 때도 그런 평가를 들었고, 만났을 때의 첫인상도 크게 다르지도 않았다. 아이는 일단 숙제를 제대로 하지 않았고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 어른과 논쟁을 벌였다. 듣기로는 학교에서도 마찬가지라 했다. 아이 어머니는 외동인 자녀를 제대로 다그치지 못했다.

그런데 내겐 제법 영특해 보였다. 꼭 학업 성적이 좋아야만 영특한 건 아니다. 아이는 항상 자기 나름대로 따져보기 좋아했다. 그래서 어른들이 부조리하게 굴면 성을 내며 반박했다. 심지어 자존심도 강해서 자신의 주장이 먹히지 않을 때면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 아이 또한 한껏 예민해진 자신이 이해받지 못함에 불만이 있었다. 다만 아이의 부모님은 하나뿐인 아들을 사랑했기에 지나치게 몰아붙이거나 강요하지 않았다. 덕분인지 몰라도 아이가 표현에 있어서는 자유로워 보인 것이다.

대개 아이들이 사춘기에 이르면 자신의 변화를 막연하게만 느끼며 불편해할 뿐 그 실체를 제대로 톺아보지 못한다. 왜냐하면 관찰하고 사고하는 방법론을 배우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는 그저 착하게 숙제를 열심히 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소로우의 말마따나 용기와 끈기로 자기 안의 해안선을 살피는 모험이 필요하다.

내게 M군은 그럴 자질이 있는 아이였다. 왜냐하면 우선 아이가 비판적 태도를 이미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비판적이라 함은 단지 반항적이라는 뜻이 아니다. 어른들의 지시나 요구에 대해 그 정당성의 한계를 규명하려 했다는 의미다. 다만 아쉽게도 아이가 어른에게 그런 식으로 따지는 모습을 직접 볼 수는 없었다. 왜인지는 몰라도 나와 대화할 땐 늘 납득하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대신 자신이 친구들과 했던 말씨름이나, 독서토론 때의 일화, 부모님과의 실랑이에 대해 내게 들려주었다. 아이가 말끝마다 대체 왜 그 모양인지 당최 모르겠다는 표정일 때마다 우리의 진지한 대화는 시작됐다.

아이는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문제가 왜 그따위인지, 왜 자신이 그런 문제를 풀어야 하는지, 어른들이 자신에게 왜 이러저러한 요구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드러낼 때마다 말대꾸하는 아이가 되어갔다. 나는 무슨 소피스트라도 된 듯 아이의 그런 의문에 늘 답해주느라 골머리를 앓았다. 실은 나도 아이와의 대화가 꽤 재밌었다. 그래서 괜한 욕심에 일부러 마지막 수업으로 조정하기까지 했다. 다만 너무 길어질까 괜히 아이 눈치를 살피며, 얼마나 문답해야 할지 머리 한구석을 데굴거리곤 했다.

요즘 애들이라고 해서 무슨 테러리스트 같은 생각을 하는 건 아니다. 반달리즘을 신봉하거나 사회를 전복하는 따위의 생각은 사실 철부지 어른들의 전유물이다. 아이들은 대개 자신에게 버겁거나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을 씹어 뱉을 뿐이다. 어쩌면 그런 한탄을 제대로 된 질문으로 바꾸는 것도 선생 노릇의 하나다. 어른들의 사정을 모르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아이가 궁금해하는 현실에 관한 해명은 부조리함이 복잡한 세상의 편린(片鱗) 임을 조용히 수긍하게 한다. 일방적이지 않은 대화는 아이의 마음에 생각의 지도로 남는다.

M군과는 그 일을 관둔 지 수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연락을 주고받는다. 이 글을 쓰는 현재, 아이는 15살이다. 간혹 통화를 하면 아이의 말투와 목소리는 밝고 활기차며 겸손하다. 아이가 들려주는 그의 일상은 평탄하고 평화롭다. 아이는 평범하게 학업과 학교생활에 임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소통할 것인지는 매번 화두였다. 아이들은 성장하며 변해가므로 소통의 방식도 계속 변한다. 변화의 가능성을 외면하거나 단정할 때마다 오류에 빠졌던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어쩌면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인간의 실존에 관한 사실이었다. 아이들은 무지하지만, 어른들도 전지적인 건 아니다. 주관성은 엄중하다. 개체란 그렇다.

우리의 관점은 몇 년을 살든 협소하다. 사실 경험이 많다는 게 꼭 시야를 넓혀주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어떤 경험들은 오히려 가치관이나 관점을 더욱 편협하게 하고 편견을 고착시키기 때문이다. 우리의 지적 지평이 넓어질수록 그에 맞닿은 무지의 영역도 넓어진다. 알아내는 일은 힘겹고 까다롭다. 탈진실 시대라는 진단은 이미 독단이다. 진실이 없다는 게 아니라, 누가 진실을 말할 수 있느냐가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자격이 문제 될 때마다 약속이라는 이름으로 권위가 대두하고, 결국 흐르는 시간이 개념과 실재를 전도시킨다. 그러나 모두가 같은 위격(位格)으로 이 세상에 놓여 실존하므로, 진리의 무게는 특정인의 어깨에만 과도한 것이라 말할 수 없다. 타인은 나와 나란하다. 아이들이 그러하듯 나도 아이들에 대해 잘 모른다. 그러니 눈을 맞추고 겸허히 묻는다.

O양을 처음 만났을 땐 6살이었다. 난 이 아이를 초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이 끝나갈 무렵까지 가르쳤다. 아이는 약 20분 동안 수업을 받았으며, 내게서 수학과 국어를 배웠다. 아이는 말이 많고 표현의 폭이 넓었으며 언제나 호기심이 넘쳤다.

아이는 궁금한 게 너무 많아서 가끔은 수업을 진행하기 까다로울 지경이었다. 그 덕인지 몰라도 나이에 비해 말을 잘했고 읽기나 쓰기에도 능했다. 이는 아무래도 부모의 영향이었다. 아이의 어머니는 교육열이 강했고, 듣기로 그 아버지는 아이에게 늘 자상하고 열린 태도로 대했던 모양이었다. 게다가 유복한 가정환경이 아이의 발달에 좋은 영향을 주고 있었다.

O양은 나와 수업하는 내내 한결같았다. 상대방에 대한 순수한 지향과 호기심은 아이의 가장 큰 장점이었다. 이는 아마 일관되고 적절한 관심과 사랑 덕분일 것이다. 그렇지만 아이의 어머니가 엄격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녀의 장점은 아주 확연한 단호함이었다. 아이가 잘못을 범하거나 나태하게 굴 때마다 엄하게 혼을 내셨는데, 나는 아이의 눈이 가끔 퉁퉁 부어있는 것을 보고 알 수 있었다. 간혹 수업을 마치고 인사를 바르게 하지 않을 때도 짧지만 강한 호통이 일었다.

그런데 난 아이 어머니의 방식이 과하게 폭력적이라 여겨지지 않았다. 사제지간과 달리 혈연관계에서는 분노라는 감정도 나눠질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 관계엔 이성(理性)의 편식이 허용되지 않고, 서로가 너무도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개성을 가진 인간이어야만 한다. 다만 그 가정에서 본 분노의 특징은 앞선 H군의 경우와 달리 지나치거나 변덕스러운, 그리고 지속적인 통제감을 동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로 미묘한 문제다. 내가 그 실상을 이루 다 알 수는 없다. 간혹 보조개가 들어간 빵빵한 볼 가운데 작은 입을 밀어 넣은 채, 부어버린 큰 눈으로 멍하니 정좌한 아이에게, 때아닌 사탕을 몰래 건네며 하루를 묻곤 했다. 그러면 O양은 의연하게도 짐짓 웃으며 좋았다고 말했다.

그럼 나는 어릴 때 솜씨를 발휘해 그림을 그려주었다. 고래나 공룡을 그리다가,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얼굴을 반이나 차지한 소년 만화 주인공의 진지한 조동이를 그려내면 함께 웃는다. 5분도 안 돼 아이는 금세 밝아져 읽고 쓸 준비가 되어서는, 과감하고 또렷이 읽고서 그 대강을 추려댄다.

고슴도치와 사과나무는 어떤 사이인지, 그들에게 무슨 일이 닥쳤고, 코뿔새는 무엇을 했는지, 그 이유가 지문 어디에 있는지를 묻고 답한다. 난 빨간 색연필로 크게 동그라미를 치고서, 가운데에 곰돌이 얼굴을 그린다. 아이는 내 몹쓸 그림 솜씨에 단 두 마디를 더한다. “와, 귀엽다!”, “선생님은 어떻게 그렇게 잘 그려요?” 참 눈치도 바른 녀석이다.

그러나 수학 시간이 되면 아이는 한껏 진지해진다. O양에게 수학은 쉽지 않다. 아이의 모든 곳엔 이야기가 채워진 까닭에 12에서 7을 뺄 때조차도 그 이야기들이 직관을 대신한다. 아이는 아직 어려서 G양처럼 차분히 응시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어른들이 그런 아이의 마음을 일의 성패에 달려있다.

마치 성서나 법조문을 해석할 때처럼 우리가 머리로 가지치기한 한 줄의 문장에 대한 포섭을 감행함으로써, 매질을 대신한 간지럼이 정좌한 아이의 이유가 될 수 있다. 이는 공부하는 정서에 관한 경제다. 아이가 수능을 볼 때쯤엔 옆에 앉은 친구에게 이리 말할지도 모른다. “그냥 하는 거지. 뭐 누가 시켜서 하니?” 그렇게 말할 수 있다면 이는 매질과 달리 간지럼이 흉터를 남기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흔적 없이 이뤄진 좋은 습관은 티 없이 깨끗한 도화지가 되어 훗날 장성한 아이의 붓질로 완성될 것이다.

요즘 애들은 문제라고들 한다. 뭐 천 년 전이건 이천 년 전이건 마찬가지겠지만 말이다. 교권이 추락했다면서 학교폭력이나 학부모들의 갑질이 연일 언론과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른다. 그러면서 심지어 아이들에 대한 체벌을 부활시키고, 심지어 촉법소년 제도를 철폐하여 어른들처럼 처벌하자는 여론도 있다. 통상 사람들은 형식적으로 아이들이 사랑받고 존중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소리 없이 가장 혐오받는 대상은 단연 아이들이다. 왜냐하면 내 주관에 들어서는 세계에서 뛰어다니는 아이들은 건실한 자아의 불완전한 건너편에서 적출되어야 할 부덕함을 다 갖춘 존재처럼 여겨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 자란 어른에게도 건실하고 온전한 자아가 없다. 그래서 자기혐오의 최대 피해자도 아이들이다. 어른들은 대책 없는 자기혐오로 순교 강박에 시달리며 온갖 생색으로 후대를 짐 지운다. 그 노력은 분명 숭고해 보인다. 하지만 뭐가 잘못되었는지 몰라도 아이들을 상처받은 세대의 삼각주로 자꾸만 밀어내는 중이다. 더러는 제도가 그들의 권리를 과잉보호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과정이 그리 장밋빛이라면 왜 하나 같이 그 시절로 돌아가려 하지 않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적어도 이 나라에서 어린 시절이란 썩 유쾌하지 않기 때문이다.

교권의 추락은 제도적 노후화와 진화된 세대의 대비이다. 아이들을 직접 만나며 선생 노릇의 위태로움을 느끼며 난 오히려 그 아이들이 나보다 더 재능 있고 훌륭한 바탕을 지녔다고 확신했다. 왜냐하면 내가 그 나이였을 땐 그렇게 살지도 못했고 그런 역량을 보일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자기 비하가 아니다. 그저 세대를 거치며 우리가 전보다 더 훌륭한 아이들을 낳았다는 자부심이다. 마치 다람쥐처럼 작았던 선조들보다 현재의 우리가 더 크고 강한 것과 마찬가지다. 그 시간이 아무리 짧더라도 기술과 시대정신이 발전하며 아이들은 구세대와 명백히 다른 존재로 태어난다. 그러므로 아이들을 기르는 방법이 여전히 구시대적 가치와 방식을 유지한다면 이는 제도가 늙었다는 뜻이다.

햄스터를 기르는 방법이 고양이를 기르는 방법과 다르고 호랑이나 코끼리를 키우는 방법이 독수리나 곰을 키우는 방법과 같을 수 없다. 이는 교육이 어떤 전범을 후대에 전달하는 표준과 방법론이 다양해져야 함을 뜻한다. 그럼에도 구시대적 가치를 주입하면서 경쟁을 부추기고 불안을 자극하는 탓에 자아분열에 빠진 아이들은 이제 전형이 되어 버렸다. 대체 자신이 존엄하지도 않고 자유롭지도 않은데 뭣 때문에 법을 준수하고 타인을 관용해야겠는가? 작금에 수많은 사회문제가 바로 그 토대에서 기인한 것이라 단언한다.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까닭은 누리고 싶은 것과 지키고 싶은 것들의 큰 틀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법과 도덕이 존속하고 기능하는 이유도 같다. 그러나 모든 길이 서로 평행한 건 아니다. 모두가 조금씩 어긋나게 걷기 때문에, 거대한 흐름이 한 방향일지라도 세상은 모순과 갈등으로 가득하다. 교육은 아이들이 그 흐름에서 적어도 역행하는 것을 막는 게 본령이다. 조금 다른 길을 가는 것은 조정할 수 있고 어쩌면 장려되는 것이지만 아예 거스르는 것은 교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교사와 부모가 그 일에 성공하는 건 아니다.

교육을 일방적이고 타율적인 일로 여기는 사람일수록 그 실패는 필연적이다. 그들이 가르치는 내용이 문제가 아니다. 그들이 대하는 그 아이들도 인생에 내던져져서 그들과 같은 기압을 견디고 있다는 것, 즉 그 아이들의 주체성도 교육자들의 그것과 같다는 사실이 문제다. 그래서 자유를 빼앗긴 아이에게 올바른 사람이 되는 일은 대수가 아니다.

영광스러운 십자가와 가시관도 결국 해방된 영혼에만 어울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자기혐오로 수치의 굴레를 쓴 이들은 결국 자신이 서 있는 지상에서 아무것도 소중히 다루지 않게 될 것이다. 그 무엇보다 소중해야 할 자신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나는 그 일을 오래 할 수 없었다. 내가 도무지 버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교육은 아이들의 온전함을 부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들이 모자란 존재라는 관점을 부모들에게 주입해야만 과잉교육의 수요가 발생한다. 그런데 난 그런 관점을 용인할 수 없었다. 선생 노릇하며 돈을 버는 입장에서는 채택할 수 없는 세계관을 가진 셈이다.

사실 그런 가치관과의 충돌 문제를 제외하면 대체로 만족스러웠다. 그저 아이들과의 시간이 거의 항상 즐거웠기 때문이다. 오고 가는 사랑과 믿음이 자기혐오로 시름하던 내게 다른 술어가 되어주어 비로소 완전한 문장이 된 듯했다. 즉 그들을 사랑하며 종국에 나 자신까지 더 이상 미워하지 않게 된 것이다. 나 자신이 느낄 수 없었던 존재의 마땅함, 그 필연성을 부여받았다. 그 아이들이 내게 실존의 닻이 되어준 것이다.

자기혐오는 날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아침마다 피치 못해 거울을 보듯 날 들여다볼 적마다, 안에서부터 막힌 변기가 역류하듯 솟구치는 매스꺼움에 나 자신으로부터 고개를 돌려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분열은 감각일 뿐 현실이 아니므로 자기도 모르게 미래로 나를 던지는 나날은 한 치도 편할 수 없었다.

한순간이라도 현재를 오롯이 누릴 수 있기를 바랐던 어제여, 나날이 소중함을 몰라서 그랬다고 말하지 말아 주길. 그걸 몰랐다면 내 앞에서 막 피어난 꽃을 그리 대할 수 없었을 것이니. 머잖아 이 몸 대신 열매와 씨를 남길 수 있도록, 거름 천지 황무지를 뒤엎고 고르며 이랑을 파는 일이었음을.

이제는 그 분열감의 항해를 끝내고 제법 잘 떠 있을 수 있음에 감사하다. 내가 아이들을 현재에 붙들어주려 노력하는 과정이 나 자신까지 붙든 것일까? 아니면 아이들이 날 그렇게 대해준 덕에 붙들린 것일까? 어쩌면 그 모두일 것이다. 우리가 서로 다른 시간 속에 살았던 것은 아니니.

세계와 자신의 관계를 해명하는 일은 오로지 각자의 몫이다. 실제로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그 일을 하고 있다. 마치 화관 하나를 엮기 위해 봄을 기다리고 싱싱한 풀밭에서 적당한 꽃을 찾아 헤매듯, 자기해석도 그와 비슷하다. 난 아이들이 소박하게나마 자신만의 화관을 엮어나가길 바랐다. 사람들이 정체성이나 주체성의 문제에 대해 가지는 관념의 차이로 말미암아 찬란한 세계가 우리 앞에 드러난다. 모자이크의 반짝이는 조각들이 서로를 비추어 드러낸다. 이곳에 경계는 있어도 빈틈은 없다. 그러나 그것을 느끼고 살기는 쉽지 않다.

그렇지만 세계는 우리의 몸과 마음을 있는 그대로 깨끗하고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말하자면 세계는 나의 정의항이었다. 어쩌면 이 세계에서 유리(遊離)된 기분은 당연했다. 나라는 피정의항은 정의항에 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선량한 결론을 얻는 과정은 대개 공포와 혐오, 소외와 고독, 분노와 폭력의 늪을 건너는 일이다. 안타깝지만 그 과정은 생각보다 일반적이어서, 이웃들은 대개 이 순간에도 자신의 허물을 줄이기 위한 열두 과업에 죽을 맛이다. 그러므로 어른들이 아이들을 위해 해주어야 할 일은 그 과정의 안전판이 되는 일이라 생각한다.

삶을 음미하는 일은 여유나 자의식 때문에 하는 게 아니다. 자기 세계에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포식하고 어떤 식으로든 배설하기 마련이었다. 그것이 거름이 될지 오물이 될지는 정말이지 선택이다. 어디에, 어떻게 쏟아낼 것인가? 그런데 그 결정은 그 누군가의 전유물이 아닌 삶을 사는 이들의 것이라 믿는다. 그렇다면 이젠 노자(老子)의 말을 되새기자. “낳고 기르되, 가지려 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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