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국토와 사회 경제 모든 면에서 복구와 재생 활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개인도 집단도 전쟁 트라우마를 이기려고 노력하였다.
그리고 오히려 더 먼저 추진했어야 했던 전몰자에 대한 수습과 예우. 아직도 진행 중이다.
여기에서 두어 기념지를 찾아본다, 회상에만 빠지지 말고. 과연 기념 풍경을 통해 다가갈 수 있는지.
1. 비목공원,비목탑 그리고 비목
강원도 화천, 평화의 댐 일대는 "피스로드 9" 길목으로 "세계평화의 종" 등 여러 관련 시설이 모여있다. 그중 하나 비목공원은 물문화관 광장에서 좁은 길을 내려가면 나타난다. 비탈면 자체이다.
그런데 실재 "비목의 장소"는 이곳에서 북쪽으로 12km 정도 떨어진 백암산 계곡 비무장지대 속에 있다 한다. 여기는 재현된 곳이다.
희게 눈부신 큰 조형탑이 먼저 나타난다. 비목탑이다. 옆길을 내려가서 다시 기단부 중앙으로 올라가야 한다.
비탈면 꼭대기에는 비목탑이 우뚝 섰고, 아래쪽에는 비목 노래비가 자리하였다.
강원도 화천군 비목공원의 노래비, 비목
그 사이에 돌무덤, 철조망, 나무 십자가, 그리고 철모가 더불어 흐트러져 있다. 비목이다. 현지인의 말에 따르면, 장총도 있었는데 분실했단다. 철모도 다시 가져다 놓았다.
비목은 앞뒤로, 아래 위로 막혀있다. 이름 모를 야생화는 화사하게 피었는데….
높이 12m 정도의 비목탑은 3m가 넘는 원형의 기단 위에 네 개의 곡면의 탑신이 얽히어 특정한 공간을 구성하고 있다. 기단 하부는 더 거친 질감을 살렸다. 몇 마리 비둘기도 보인다. 바깥으로 마치 호위하듯 참전국 깃발이 에워쌌다.
기단 좌우 끝에 남녀 두 동상이 나란히 섰다. 아기를 껴안은 여자는 아내인 듯, 소총을 내려 쥔 남편은 왼손을 들어 뭔가 아쉬운 모습이다. 한 가족, 그러나 떨어져 있을 뿐.
강원도 화천군 비목공원, 비목탑
두 청동상은 이상적인 인체미를 갖추었으니, 마치 고대 그리스 신화 속 주인공 같은 몸매이다.
그래도 표정과 동작이 나름 사연을 보여주는 듯하다. 기다림과 한탄.
그리고 기단부 석재 외벽에는 눈물인 듯 흘러내리고.
강원도 화천군 비목공원, 비목탑 남여 동상
풍경 속 비목을 촬영하려 해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비목탑 탓이다.
비목탑은 자기 완결적이다. 더구나 형상이 성채 같다. 전방이라, 마치 요새처럼 방어적으로 조형을 한 것이지? 주변과 어울릴 필요가 없다는 인상을 준다.
웅장한 비목탑에 비하여 비목이 더 가냘프게 보인다. 비목 자체가 보잘것없게끔, 기념 풍경을 만들고 있는 문제이다.
이곳에서 어느 것이 제일 소중히 다루어져야 할까? 비목탑도 아니요 비목 노래비도 아니요, 당연히 비목 그 자체이다! 그런데?
강원도 화천군 비목공원, 비목
비목 노랫말:
1절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 녘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이름 모를 비목이여
먼 고향 초동 친구 두고 온 하늘가
그리워 마디마디 이끼 되어 맺혔네
2절
궁노루 산울림 달빛 타고 달빛 타고 흐르는 밤
홀로 선 적막감에 울어 지친 울어 지친 비목이여
그 옛날 천진스러운 추억은 애달파
서러움 알알이 돌이 되어 쌓였네
녹슨 세월에 절망스러운 그래서 더 통절한 비목. 애잔한 숭고미와 덧없는 허망함이 뒤섞이는 듯하다.
그나마 먼산이 보이는 양지바른 곳이다. 고향은 멀기만 한데.
2. 한국전 순직 종군기자 추념비
6.25 당시 종군기자들의 프레스센터였던 문산역의 평화열차가 내려다보이는 유서 깊은 취재현장이었던 통일공원 구석에 10m 높이로 섰다. 휴전 후 거의 24년이 걸렸다.
기단은 1.4m 높이 화강석의 타자기 형상이다. 본체는 텔리 타이프 종이와 승리의 월계수와 지구의와 펜을 쥔 손으로 구성되어있다.
지구의는 한국전쟁을 뜻한다고 한다. 그리고 펜을 쥔 손은 기자정신을 상징한단다. 저널리스트의 머리글자 "J"자를 딴 텔리 타이프 종이가 기사를 송고하는 듯 힘차게 솟아나고 있다. 대각선의 종이 끝이 더 역동적으로 만든다.
파주시 통일공원, 한국전 순직 종군기자 추념비
기단 뒷면의 녹슨 동판은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있다.
비문:
“여기는 보도의 명예와 승리가 서린 곳
공산군의 침략으로 한반도의 평화와 인류의
자유가 위협당했을 때
유엔군 용사와 더불어 필탄을 퍼붓다 젊음을
이 땅에 바친 여러 나라 펜의 기수 18명
먹물은 스러져도 기자의 얼은 푸르다
그 영광의 희생 길이 정의를 밝히리”
순직 종군기자 명단에는 열여덟 분의 이름을 모두 새겼는데, 미국 기자 열 분, 영국 기자 네 분, 프랑스 기자 두 분, 필리핀 기자 한 분, 그리고 서울신문의 한규호 님이다.
파주시 통일공원 한국전 순직 종군기자 추념비, 비문, 순직 종군기자 명단 및 이면
펜을 쥔 손에는 힘이 가득하다. 녹슨 청록색은 흔히 보기 힘든 색감이다. 인상적이다. 기자의 정신과 활동 자체를 성실히 보여준다. 그 어떤 추념탑도 모방할 수 없는 형상을 지녔다. 즉 사명감에 "먹물"만 보여줄 뿐, 사람이 나서지 않았다. 기사 뒤에 묵묵히 있는 듯, 추념탑 형상에서 순직 기자 자체를 엿볼 여지가 없다.
추념의 시작은 먼저 올바르게 회상할 수 있다면 족할 것이니, 여기서는 "기자정신"이다. 그러한 감정 유발, 촉매제로 이 탑은 충분하다.
그런데, 시대도 변하여 요즘은 군에 종속된 뜻의 "종군"기자(從軍記者, war correspondent)라는 명칭보다 "국제분쟁 전문기자", "전쟁 기자"라는 명칭이 더 바람직하다는 주장도 있다. 이쯤 되면, 또 비문을 고쳐야 할지?
3. 영천전투 호국기념관, 염원의 마당
이번 주제와 관련해서 최근 사례를 보자.
경북 영천시가 추진하는 "영천전투 메모리얼 파크"의 하나로 조성된 곳이다. 영천호국원 바로 앞쪽에 자리한 이 기념관은 6·25 전쟁과 영천전투의 의미를 되짚어 보고 참전 세대와 전후세대 간 교감하고 추모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중 외부의 염원의 마당에 펼쳐진 작품 중 하나를 보자.
작품 명: 잃어버린 세월
작가의 말, "낙동강지구 전투에서 전사한 호국 용사들의 집단 유해발굴지를 재현한 공간이다. 발굴된 유해와 유품들을 통해 전쟁의 참혹함을 기억하고 그들의 값진 희생에 대한 추모와 경의를 표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영천전투 호국기념관 염원의 마당, "잃어버린 세월"
황토 바닥에 앙상히 드러나 유해 모습은 처참하다. 너무 사실적인 연출이다.
국방부 유해발굴 감식단의 유해발굴 현장을 보는 듯하다.
아직도 6·25 전쟁의 전사 및 실종자 국군 수는 약 13만 4천 여. 이중 발굴된 유해는 1만여 구. 별도로 북한군과 중국군의 전사 및 실종자도 1,500여 있다 한다.
발굴은 엄숙한 개토식과 함께 시작된다. 그리고 발굴 완료 후에는 산림을 복원한다. 산림청 산림복원 평화 산림 이니셔티브(PFI)의 활동이다. 현장의 의미를 되살리는 것은 관련된 전투기념비가 될 것이다. 그만큼 예를 갖추고 제자리를 찾는 일이다.
그런데 6·25 전쟁의 노병은 이 작품을 수긍할지. 과연 이런 연출을 바랄지?
마무리하며
내버려진 듯 아스라한 비목과 기자정신을 내세운 순직 종군기자 추념비. 분명 우리가 기리고 되살려야 할 소중한 기념 풍경이다.
부실한 부분과 경박한 분위기를 걷어내어, 진정함과 숭고함이 더 깃들기를 고대한다.
관련 기념지(건립 순)
1. 한국전 순직 종군기자 추념비: 1977년 4월 27일 건립, 경기도 파주시 파주읍 통일로 1586-24 통일공원, 건립: 한국 기자협회, 비문: 유광열, 홍종인, 최석채, 윤종현, 설계 및 조각: 최기원
2. 비목공원, 비목, 비목탑: 1995년 6월 6일 조성 건립, 강원도 화천군 화천읍 평화로 3481-18, 비목 시: 한명희, 작곡: 장일남, 비목 시비 글씨: 원충식, 작가: 이일영, 제작: 남산미술원, 비목공원 설계: □□□
3. 영천전투 호국기념관: 2019년 10월 8일 개관, 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 용담로 2054, 건축: □□□, 염원의 마당 조형: □□□